40화_새끼 쥐와 무서운 고양이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40화>
새끼 쥐와 무서운 고양이
* * * * *
라일라는 영진을 만나기로 했었다.
그리고 소식이 끊어졌다.
라일라의 문자는 의미심장했다.
준희가 전해준 영진의 이야기는 더 의미심장했다.
영진은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었다.
"나는 우리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잘난 엄마 자랑하고 싶어서 아주 지랄을 하시네요. 우리처럼 불쌍한 영혼들 앞에서 할 소리냐?"
친구들은 영진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라일라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라일라는 영진을 잘 알았다.
라일라와 영진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라일라는 금세 영진에게 싫증을 느꼈다.
영진을 떠났다.
한 남자와 변하지 않는 관계라는 것은 우스웠다.
금세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됐다.
라일라가 영진을 처음 떠났을 때 영진은 울며불며 라일라에게 매달렸다.
라일라는 누군가 붙잡는다고 돌아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생각이 먼저 중요했다.
라일라가 돌아오지 않자 영진은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줬다.
라일라는 영진에게 돌아왔다.
영진이 자신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가엾었다.
영진은 사랑이 필요한 아이였다.
라일라는 영진이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을 잘 견뎠다.
한동안 영진의 여자로 잘 지냈다.
그러나 라일라는 다시 또 다른 새로운 남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영진아, 나, 다른 남자 생겼어."
"안 돼. 나는 너만 사랑해. 왜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안 돼? 나를 사랑하기로 했잖아."
"넌 나한테 너무 집착해. 우린 아직 어려. 새로운 사랑은 얼마든지 올 수 있는 나이야."
"나한테 사랑은 오직 너 하나야. 난 안 돼. 너 하나만 필요해."
"너에게도 다른 사랑이 필요할 수 있어. 내가 떠나면 너에게 훨씬 좋은 여자가 생길 거야."
"너도 알잖아. 난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하도록 운명지워졌어. 운명이야. 안 돼."
라일라는 영진이 자기에게서 편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라일라는 타고나길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으며 사는 것이 맞았다.
영진은 한 여자만 바라봤다.
노력으로 본성을 바꿀 수는 없었다.
라일라는 영진과 어울리지 않았다.
라일라는 준희와 사소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준희는 정우를 좋아했다.
정우를 좋아한다는 말을 라일라에게 처음 했다.
이때 라일라는 영진과 사귀고 있었다.
준희는 정우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준희가 여전히 정우에게 고백도 못하고 있는 동안 라일라는 영진과 몇 번을 헤어지고 만나고 다시 또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라일라는 준희에게 영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른 친구들은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은 나중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준희는 입이 무거운 아이였다.
영진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잘 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들은 비밀을 잘 감추지 못했다.
비밀을 못 감추는 아이는 라일라였다.
라일라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비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영진의 일에 대해선 함구했다.
물론 준희에게는 영진의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준희에게선 영진에 대해 아무도 듣지 못했다.
라일라는 함구한 일이었다.
영진은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가 있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알고 있는 영진이었다.
친구들은 영진이 완벽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편한 세상 살려는 이기적인 아이라고 했다.
단순히 편하게 살고 싶어 집을 떠나 생활한다고 생각했다.
영진의 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거대기업을 이뤘다.
성진그룹을 세운 영진의 할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강한 분이셨다.
뭐든 앞서서 움직이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도적 성격으로 거대 시장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부동산 졸부로 미약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거세게 추진하고 밀어붙이는 일처리로 거대기업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다.
자수성가한 중견 재벌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졸부란 이름을 떼고 싶었다.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는 신분세탁을 하고 싶었다.
똑똑한 며느리를 얻고자 했다.
영진의 아버지는 심약했다.
성진그룹의 창시자 할아버지는 카리스마가 너무 강했다.
할아버지는 심약한 아버지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었다.
영진의 아버지는 영진이 어려을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영진아, 넌 이 아버지 앞에서 작아지면 안 된다. 아버지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되어야지.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 서 있으면 작은 점이야. 아주 작은 점.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점. 할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자꾸 작아지거든. 무서우면 작아지는 거야. 넌 아버지가 안 무섭지?"
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당연히 무섭지 않아야지. 형들도 무서워 하지 마. 무서우면 지는 거야. 세상에 나가면 무엇도 무서워하면 안 된다. 작아져선 안 돼."
그건 영진이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영진이 어려서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해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들은 이야기는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아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심약하고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에 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심약한 마음을 들키면 안 되는 거대기업의 후계자였다.
심약한 것은 비밀이어야 했다.
영진의 아버지는 마음이 단단한 아내를 맞았다.
할아버지가 고른 며느리였다.
영진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서울대를 나온 판사 출신이었다.
영진의 어머니는 영진의 아버지와 결이 아주 달랐다.
영진의 아버지는 말이 조용조용했다.
어쩌면 생각도 조용조용했을 것이다.
영진의 어머니는 여장부였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영진의 아버지는 키가 작았다.
할아버지는 키 큰 며느리를 얻어 큰 손자를 얻기 원했다.
영진의 아버지에게 영진의 어머니는 너무 거대했다.
똑똑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논리정연하게 말을 시작하면 어느 누구도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똑똑한 며느리는 몸도 허약하고 심약한 남편임에도 연년생으로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
손이 귀한 집안이었다.
그런데 아들도 못 낳을 것 같은 자신의 아들에게서 손자를 셋이나 낳아 줬다.
영진의 할아버지는 최고의 며느리를 얻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손자들은 어미를 닮아 모두 똑똑했다.
어려서부터 군계일학으로 뛰어났다.
첫째와 둘째의 이야기였다.
셋째 아들은 아니었다.
셋째 아들은 형들에 비해 몸집도 작고 소심했다.
머리도 형들에 비해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셋째만 아버지를 닮았다.
영진의 어머니는 남편을 닮은 셋째를 부끄러워했다.
무엇을 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영진도 어머니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어린 영진을 데리고 마당을 산책하고 있었다.
때마침 집에 아무도 없었다.
햇살 좋은 봄날이었다.
영진의 아버지는 햇살 아래 누웠다.
영진도 아버지 옆에 누웠다.
무엇도 깔리지 않은 잔디밭이었다.
다른 가족이 봤으면 뭐라고 했을 풍경이었다.
잔디 위에 눕는 행위는 기업 후계자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이 더없이 맑았다.
어린 영진은 하늘이 너무 예뻤다.
“아빠, 하늘이 너무 파래. 파란 물감을 어디서 저렇게 많이 칠했지? 대단하다. 파랑하늘은 바다에서 물감을 퍼왔나?”
“파란 하늘이 참 예쁘다. 높기도 하구나. 바다에서 물감을 퍼온 것 같아? 우리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하늘의 파랑은 이제부터 파란 바다라고 해야겠다.”
"응, 파란 바다. 바다면 고래도 있겠다. 저기 저 높은 하늘 위로 고래가 있을 거야."
"이야, 우리 영진이 대단하다. 푸른 하늘바다에 고래가 있었구나. 아빠도 처음 알았어."
“아빠, 저기 새가 날아간다.”
“서울에서도 새가 날아가는구나. 나도 날고 싶다.”
“아빠는 날개가 없어. 그러니까 못 날아가지. 아빠는 새가 아냐.”
“영진아, 아빠도 날개가 있었단다. 지금은 잃어버렸어.”
“거짓말. 사람은 날개가 없어. 날개가 있는 것은 새인데, 아빠는 그것도 몰랐어?”
“영진아, 사람들도 다들 새처럼 날개가 있단다. 마음의 날개가. 아빠도 날개가 있었어. 지금은 날개를 잃어버렸어. 이젠 날 수 없어.”
“아빤 날고 싶어?”
“응. 지금은 우리에 갇힌 힘없는 새끼 쥐야. 왜냐면 거대하고 무서운 고양이가 아빠를 발톱으로 꽉 누르고 있거든. 절대 도망칠 수 없어. 아빠는 힘없는 새끼 쥐야.”
“무서운 고양이는 엄마야?”
“엄마?”
“아빠한테 늘 소리 지르고 무섭게 하잖아. 엄마는 아빠한테 고양이 같아.”
“아냐, 아빠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 거야.”
“그렇구나. 아빠는 이야기도 잘 한다. 다음에 새끼 쥐와 무서운 고양이 이야기 또 해줘.”
영진의 아버지는 영진이 어려서 들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었다.
아빠의 슬픔이 담긴 이야기라면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다.
영진은 아빠의 말을 들은 후로 엄마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두 형들은 키도 크고 힘도 셌다.
영진은 작고 힘도 약했다.
형들은 행동도 느리고 몸집도 작은 영진을 싫어했다.
“바보. 뭐든 못 해. 네가 동생이라는 게 창피해. 따라오지 마.”
영진은 형들도 무서웠다.
영진의 할아버지는 병을 얻어 갑자기 돌아가셨다.
강골인 집안은 아니었다.
성진그룹은 후계자 1순위인 영진의 아버지가 상속을 받았다.
하지만 영진의 아버지는 사업이 무서웠다.
결국 경영은 영진의 어머니가 모든 걸 좌지우지했다.
모든 것에서 거칠 것 없는 영진의 어머니는 남편인 영진의 아버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영진의 어머니는 아마 남자관계도 복잡했다.
어린 영진이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영진의 아버지가 혼자서 괴로워했던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영진은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에게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 어머니를 몇 번이나 벌주고 있었다.
영진의 아버지는 어느 날, 영진의 또래가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
도현의 집이었다.
영진은 자기처럼 자그마한 아이가 반가웠다.
형들은 너무 컸다.
너무 힘이 셌다.
영진은 약해 보이는 도현을 보자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영진이 보기에 세상은 너무 거대한 것들 투성이었다.
영진은 작은 것들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작은 것들이 있는 세상은 도현이 있는 곳이었다.
도현은 어머니가 매일 아팠다.
영진은 자신의 어머니도 도현의 어머니처럼 매일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진의 어머니는 너무 튼튼했고 거대하고 무서운 고양이였다.
절대 병에 쓰러지지 않았다.
영진의 어머니는 자신의 것에 대한 소유욕이 강했다.
무엇도 뺏기지 않는 성격이었다.
자신이 얻은 아들 셋은 매우 귀한 존재였다.
막내아들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손에 놓고 뭐든 조정하려고 했다.
영진은 엄마에게 벌주는 방식으로 자기가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영진은 도현과 함께 파리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원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의사의 길을 택했다.
영진이 선택한 일은 생각보다 더 크게 영진의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영진의 어머니는 무엇도 자기 맘대로 못하는 것이 없었다.
남편도 아들도 일도 뭐든 마음대로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맘대로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기가 그렇게 못났다고 욕하던 그 아들이 자기 말을 안 들었다.
영진은 여자와의 관계에서 새끼 쥐와 무서운 고양이 관계가 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일이 싫었다.
사랑이란 오로지 하나여야 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했다.
라일라는 영진의 첫사랑이었다.
라일라는 영진의 엄마처럼 거대하지 않았다.
영진이 라일라를 좋아해던 첫 번째 이유였다.
충분히 중요하고도 커다란 이유였다
라일라는 작은 새처럼 작고 가엾고 약했다.
영진은 라일라를 자신의 품에서 돌보고 사랑해주고 싶었다.
라일라는 영진의 첫사랑이었다.
이제 라일라는 영진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자신만 바라보는 작은 새여야 했다.
결코 날개를 펼치면 안되었다.
언제나 영진이라는 둥지에서 자라지 않는 작은 새여야 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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