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_부활 의식의 밤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60화>
부활 의식의 밤
* * * * *
그린섬에서 그들만의 비밀스런 회합이 열렸다.
회합은 재인의 작업실에서 시작해 늦은 밤이 되면 지하의 비밀장소로 옮겨갔다.
그들이 의식을 치르는 장소는 달빛이 보이지 않는 지하였다.
하지만 달밤이 되면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로 달빛이 쏟아졌다.
그린섬 연못의 둥그런 우물로 빛이 잠기기 때문이었다.
이때 달빛이 지하로 들어오도록 연못 안 우물 아래 지하 공간의 지붕이 열렸다.
물론 지붕이라고 한 것은 건물 위의 지붕이 아니었다.
지하공간을 덮고 있는 지붕을 말하는 것이었다.
특수 장치로 움직이는 비밀스런 지붕이었다.
지상과 지하의 닫혀있던 공간의 문이 열리면 그린섬 연못의 빛이 그대로 의식의 장소로 쏟아졌다.
유리로 설계된 우물 아래는 투명했다.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는 지하공간의 상부는 하늘의 달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상의 연못에서는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단순히 달빛이 연못의 우물에 잠길 뿐이었다.
밖에서 연못의 동그란 우물을 아무리 바라봐도 그저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우물일 뿐이었다.
동그란 우물은 연못 가운데에 있어서 가장자리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치였다.
물에 빠져서 들어가야만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물론 건물 위에서 바라보면 그땐 또 너무 깊어서 그 존재를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의식이 진행되는 때는 아무도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과연 밤이 되자 그린섬 비밀통로로 차들이 몇 대 들어갔다.
그린섬 비밀의 회합 장소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재인, 성 부장, 김 교수, 영진, 정우였다.
도현은 없었다.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수도사처럼 까만 가운을 입었다.
가운은 모자가 달려있어 모두들 머리까지 까맣게 뒤집어썼다.
이들은 모두 까만 형체가 되었다.
그들은 회합장소에서 조용히 의견을 나누었다.
성 부장은 의식 준비로 분주했다.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원형의 공간 가운데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성 부장이 유리관 하나를 의식의 장소 가운데로 밀고 왔다.
유리관 안에는 꽃이 가득했다.
그 안에 윤지가 꽃처럼 예쁘게 인형처럼 미동도 의식도 없이 누워 있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윤지를 꽃이 가득 둘러싸고 있었다.
윤지는 일본 출장을 위해 출국했다고 했었다.
어찌된 일인지 윤지는 그린섬 지하의 유리관에 누워 있었다.
사유와 윤지가 함께 바라보며 웃는 사진이 그 뒤로 놓여 있었다.
의식을 위한 시간이 가까워 오자 이들은 다시 유리관 하나를 가져왔다.
사유의 시신이었다.
사유가 누워있는 유리관 역시 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유는 교통사고가 심하게 나서 온몸이 다 망가졌다고 했었다.
그런데 사유는 거의 온전한 모습이었다.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던 시신의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김 교수가 죽은 시신을 성형수술하듯 해달라고 했다는데 그렇다고 죽은 시신을 이렇게 온전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었다.
진하게 화장을 한 얼굴은 기묘했지만 여전히 생전의 사유처럼 고왔다.
둘의 유리관이 나란히 놓였다.
둘이 누워있는 유리관 뒤로 사진 속에선 둘이 함께 웃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웃는 사진은 기묘하게 섬뜩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벽시계에 시간의 빨간 불이 들어왔다.
새벽 2시였다.
<삐>
시계의 알람 소리가 들렸다.
의식의 시간이 된 것이었다.
김 교수가 연단으로 올라가 부활의식의 절차를 밟았다.
먼저 두 개의 유리관에 달빛이 들어오도록 위치를 잡았다.
까만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꽃이 담긴 두 개의 바구니를 위로 들어 올렸다.
치자꽃과 아카시아꽃이었다.
두 개의 바구니를 들어 치자꽃과 아카시아꽃이 섞이도록 커다란 유리볼에 부었다.
의식은 매우 경건했다.
두 개의 꽃이 섞였다.
김 교수가 어떤 버튼을 누르자 상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자 지붕이 열리듯 상부가 열렸다.
상부에서 하늘의 달빛이 쏟아졌다.
달빛은 원형의 중심으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바닥의 둥그런 빛을 향해 엎드렸다.
둥그런 빛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인다.
그 빛의 가운데에 섞인 꽃을 김 교수가 쏟아 부었다.
사람들은 빛을 향해 함께 기를 모으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김 교수는 어떤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김 교수의 주문은 어둠 속에서 달빛을 불러들이는 것 같았다.
주문이 이어질 때 어떤 푸른 기운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여든 푸른빛은 꽃들에게로 스며들었다.
푸른빛이 꽃들에게 스며들자 꽃들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꽃들이 빛에 놀라서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튀어 오르는 꽃들에게서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을 가진 푸른 빛들이 꽃들을 감쌌다.
비명을 지르던 꽃들은 어느 순간 괴로워하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음습하고 어두운 푸른 달빛이 꽃을 태우자 기이한 기운이 만들어졌다.
그 기운은 푸른 빛 연기가 되어 공중을 떠돌아 윤지의 위에서 둥글게 머물렀다.
김 교수가 어떤 주문을 다시 외우자 기운들이 회오리처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푸른 연기가 윤지를 감쌌다.
푸른 연기가 윤지를 감싸자 잠을 자고 있는 윤지가 갑자기 큰 숨을 내뱉었다.
그 다음 윤지에게서 숨이 빠져나왔다.
그 숨은 푸른빛의 연기를 타고 사유에게로 흘러갔다.
숨은 푸른빛을 타고 사유에게 가 닿아 사유에게 스미고 있었다.
숨이 사유에게 스미면서 사유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치 수혈을 받는 사람이 생기를 찾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숨이 빠져나간 윤지는 생명을 뺏긴 나무처럼, 꽃처럼, 말라버린 낙엽처럼 변하고 있었다.
윤지의 생기가 사유에게로 스며드는 동안 사람들은 엎드려 여전히 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의 주문도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빛이 사라졌다.
김 교수는 주문을 마쳤다.
공중에 떠올라 타오르던 꽃들은 바닥에 마른 꽃잎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꽃들은 형체도 없이 부서지더니 공중으로 흩어졌다.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꽃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꽃들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개의 유리관에 사유와 윤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사유은 편안하게 잠자는 모습이었고 윤지는영혼이 빠져나간 미이라의 모습이었다.
의식이 끝나자 성 부장이 어떤 버튼을 눌렀다.
<위잉>
소리가 나며 두 개의 유리관에 냉매가스가 차오르고 있었다.
상부의 지붕은 스르르 닫혔다.
돌연 벽면이 움직이더니 통로가 생겼다.
거대한 기계장치의 소리가 이어졌다.
여러 가지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통로는 아름다운 인조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숲의 산책길이었다.
다만 살아 있는 것이 없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두 개의 유리관을 움직여 어느 통로로 향했다.
문 앞에 사유의 방이라고 쓰인 곳이었다.
그곳은 이미 사유의 물건들과 그림들로 가득했다.
사유가 사는 동안 사랑했던 많은 물건들로 채워진 방이었다.
그녀가 사랑했다는 치자나무는 정원에 심겨졌다.
김 교수는 유리관 속의 사유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사랑해, 사유. 나의 영원한 사랑. 당신은 영원이 살아 있는 거야. 늘 당신 곁에 내가 있어. 걱정하지 마. 외롭지 않게 자주 들를게. 사랑해. 너를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교수님, 축하드립니다. 사모님이 다시 돌아오셨군요. 영원불멸의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죠. 교수님의 영원한 사랑을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모두의 덕이야. 우리의 영원한 불사를 결코 잊으면 안 되네.”
“물론이지요. 불사를 위하여!”
성 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따라서 외쳤다.
“불사를 위하여!”
사유의 유리관이 사유의 방에 안치되었다.
윤지의 유리관은 다른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아름다운 이의 방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기에 위로를 주고자 붙인 이름인 것일지 모를 일이었다.
아름다운 이의 방으로 윤지의 유리관이 움직였다.
윤지는 부활의식을 하기 전에는 살아있는 인형처럼 보였었다.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지금은 미이라처럼 보였다.
어디에도 생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생명과 습기가 모두 빠져나간 모습이었다.
그들은 의식에서 윤지를 직접 죽이지 않았지만 윤지는 생명은 사라지고 없었다.l
윤지는 그렇게 박제된 사람이 되어 아름다운 이의 방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의식을 끝내고 재인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의식에 힘을 쏟아서 인지 모두 기운이 없었다.
성 부장이 술과 안주를 내왔다.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술은 압생트였다.
독한 술이었다.
압생트는 아니스 향이 아주 강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중세부터 원기를 돋우고 해열작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알칼로이드 성분이 함유된 향초 식물(향쑥)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 술이었다.
18세기에 한 프랑스 의사는 이 식물에 아니스, 회향, 히솝을 사용해 녹색의 독한 리큐어(알코올 농도 60~70% Vol.)를 만들어냈고 그 제조법을 앙리 루이 페르노에게 팔아 넘겼다.
페르노는 1797년 이 술을 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인들이 ‘녹색 요정’이라 칭했던 이 술은 19세기 말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
압생트를 마시기 위해선 우선 잔에 압생트 일정량(1dose)을 넣는다.
그 다음 구멍이 뚫린 납작한 스푼을 잔 위에 걸쳐 놓은 다음 각설탕 한 개를 올린다.
그 설탕 위로 압생트의 3~5배 되는 차가운 물을 아주 천천히 부어 희석한다.
이 술은 신경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실제 향정신성 물질로 분류되어 1915년 3월 16일 법령에 의해 프랑스에서 그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다.
오늘날 이 술은 ‘압생트 추출물을 넣은 스피릿 주류(알코올 도수 45~70% Vol.)’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1915년 금지 사태를 불러왔던 해당 유해성분은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압생트는 독한 술이었다.
그린섬 멤버들은 일부러 술을 흡입하는 것처럼 마셨다.
모든 걸 잊을 듯 마셨다.
사람들에게 술은 이들의 피로를 숨기기 위해 필요한 장치로 보였다.
김 교수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모두들 김 교수를 축하했다.
그들은 푸른 그믐에게 다시 한 번 건배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술이 이들의 피로를 덮어 주었다.
재인도 술에 취해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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