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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55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4.26 21:23
조회
374
추천
3
글자
6쪽

81화 전우치전(17)

DUMMY

붉은 갑옷을 입은 자는 나를 한번 째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쫓아가서 선생님을 돌려내라고 하고 싶었지만 얼음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다.


한 참을 발버둥 친 뒤에야 얼음을 깨고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놈은 사라진지 오래다. 남아있는 선생님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텅 빈 방 안에 혼자 남겨졌다.


전부 나 때문이다. 나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생각해보면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불행해졌다. 아빠가 도망간 것도 엄마가 내게 나타나지 않은 것도 전부 내 잘못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나 때문이다. 나를 데려가지 않았으면 외삼촌과 외숙모는 아기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화담 선생도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한다.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된다. 내가 조금만 행복하다고 느끼면 주위 사람들이 상처 받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내 자신을 탓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졌다.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은 사라졌다. 대신 가슴 한 가운데가 텅 빈 느낌이 난다. 뭔가 붕 뜨는 기분만 계속 든다. 가만히 있으면 저 멀리 날아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곳에 있다.


기분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익숙해지기 어렵다. 멀미 날 것 같다. 너무 지친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그저 조금 쉬고 싶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댔다.



주위가 시끄러워서 잠에서 깼다. 얼마나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관을 들고 방에 들어온다. 그들은 텅 빈 화담선생의 몸을 관에 담고 뚜껑을 덮었다. 관 뚜껑에는 여러 가지 부적이 붙어 있다. 그들은 힘겹게 관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잠시 뒤 우투리 형이 들어왔다.


“작별인사는 잘 했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러자 형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그의 손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관을 옮기는 사람들을 따라갔다. 글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강가에 관을 놓았다. 강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도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항상 정기회의에서 보던 얼굴들도 있다.


회장은 주위를 정리하고 강 윗부분을 얼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관을 얼음 위에 올려놓았다. 도사들은 합장을 하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회장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도사들은 일제히 기를 모아 강 전체를 얼렸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전부 검게 얼었다.


최상급도사 10명은 얼어버린 강을 작은 조각으로 쪼갰다. 선생님이 담긴 관은 작고 날카로운 얼음조각들 틈에 파묻혔다. 얼음들 틈으로 물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더니 조각들이 물에 휩쓸려가기 시작했다. 점점 물살이 빨라지면서 얼음조각들이 관을 스쳐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관이 조금씩 깎여나갔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쏟아져 내려온 물살과 얼음조각들에 의해 선생님의 몸은 관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도사들은 다시 합장을 하고 강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걸 끝으로 모두들 마을로 향했다. 나도 우투리 형과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


마을 안의 거대한 회관에서 도사들은 술을 마시며 화담 선생이 회장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도사들은 당시의 선생님이 무척이나 엄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서운 건 앞에서만 이었고 사실은 뒤에서 다 챙겨줬다고 한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 스승을 잃은 나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뒤따라 나온 우투리 형이 내게 말했다.


“갈 곳 없으면 우리 집에서 계속 머물러도 돼. 어차피 방은 남아나니까.”


“형 고마워요. 그런데 혼자서 지내고 싶어요.”


“어디서 자려고?”


“일단은 선생님이랑 살던 집에서 살다가 알바로 돈 모으면 원룸에 들어가려고요.”


“그러면 차라리 도사협회에 가입하는 건 어때? 자잘한 요괴나 귀신 잡고 배당 받는 게 알바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할 거야. 그리고 가끔씩 내 일 도와주면 두둑하게 챙겨줄게.”


“그게 좋겠네요.”


형은 나를 데리고 회장에게 갔다. 둘이서 이야기를 좀 하더니 회장이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말단 직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종이 몇 장과 인주를 가져왔다. 그녀는 그걸 받아 내게 건넸다.


“적당히 읽어보고 지장 찍어.”


계약서라고 적힌 종이에는 여러 항목이 적혀있다. 이런 건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단어들이 어려워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냥 대충 훑어보니 일한 만큼 주는 것 같다. 어차피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히고 종이에 꾹 눌렀다.


“자, 이걸로 너도 협회원이고 다음 주부터 일 시킬 거니까 전화번호 좀 알려줘.”


나는 그녀가 건네준 휴대폰에 내 번호를 찍은 뒤 돌려줬다.


“문자 보냈으니까 저장해놔.”


“네.”


회장은 다른 사람들과 더 이야기를 하다가 앞에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회관에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마무리 하는 분위기가 되자 우투리 형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는 여전히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다. 집 안은 나갈 때 모습 그대로다. 다만 먼지가 조금 쌓인 것 같아서 바람으로 걷어내고 방 안에 들어가서 누웠다. 여기에 나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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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7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0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2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2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1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0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5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5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39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59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7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7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8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2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1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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