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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69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2.22 01:58
조회
548
추천
7
글자
10쪽

41화 남염부주지(8)

DUMMY

염라대왕과 그 신하들은 서류를 계속 검토하면서 그 자의 처분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 그 곳에 있던 다섯 명의 신하 중 두 명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두 명은 안 그래도 저승사자가 부족한데 이런 인재를 보낼 순 없으니 재교육을 시키고 다시 일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규정대로 지옥에 보내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규칙을 어긴 자를 복직시키는 것은 저승사자의 기강을 어지럽히니 이 곳에서 노역을 하다가 환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라대왕은 어떤 자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나의 의견을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곳에서 교육기간의 대부분을 행동강령을 가르치는데 쓰는 걸 보면 저승사자라는 자리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 곳과 이승에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 어째서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는 차사라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 자가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서 규칙을 어기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평소에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던 다른 이들도 마음속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집단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죄를 저질러도 능력만 있으면 처벌이 약한 걸 알게 된 다른 이들은 조금씩 부정을 저지르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서로의 잘못을 묵인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서서히 부패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람이 부족해도 그를 다시 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난 뒤 한차례 더 의견을 나누다가 결론을 냈다.


“죄인의 차사직위를 박탈한다. 규정대로라면 죄인을 지옥에 보내는 게 맞지만 가혹한 처벌은 자칫 다른 이들의 저승사자 지원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성 위의 감옥에 2년간 수감하고 바로 환생 하게 하도록 한다.”


그렇게 이번 재판은 끝나고 무사들은 죄인을 밖으로 끌고 갔다. 염라대왕과 신하들은 다음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직무실로 돌아갔고 나는 관리의 안내에 따라 항상 차를 마시던 곳으로 와서 다음 재판 시작 전까지 쉬기로 했다. 차를 마시며 편안히 쉬다가 주선동자가 나를 데리러 와서 그를 따라 다시 재판소로 이동했다. 아까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안내되었는데 이번에는 책상 앞과 옆에는 유리로 된 것처럼 보이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관리에게 물었다.


“이건 뭡니까?”


“이번 재판의 죄인은 귀신이었던 자이기 때문에 혹시 몰라서 안전장치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자리에 앉고 잠시 뒤 무사들이 사슬에 포박된 죄인을 끌고 온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비록 추억 속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곳에 온 사람은 너무나도 그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꿈에서 찾아 헤맬 정도로 그리워했지만 끝내 만나볼 수 없었던 그 분이 이 곳에 죄인이라며 끌려왔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불렀다.


“아버지!”


하지만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이 쪽을 돌아보지 않으신다. 볼 위로 뜨거운 것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를 다시 불러 본다. 여전히 그는 이 곳을 보지 않는다. 목 뒤로 뜨거운 것이 몰려오며 머리가 아파 온다. 이런 꿈에서 빨리 깨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 뺨을 세게 때려본다. 하지만 아무리 꿈속에서 뺨을 때려 봐도 깨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옆에 있던 관리가 나를 말리고 동자들이 거대한 거울이 들어와 아버지를 비춘다.


하얀 빛이 들어오며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조금 뒤 하얀 것이 걷히면서 한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은 언제나 집에서 공부를 하며 기다리다가 저녁에 그의 아버지가 오면 함께 놀며 추억을 쌓았다. 그렇게 천천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소년은 어느새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지역 명문고에 입학하기 위해서 입시공부를 시작했고 공부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거리가 멀어져 간다. 시간이 흘러 시험 날이 오고 재능과 노력 그리고 자본이 충분하게 뒷받침 됐던 덕에 소년은 쉽게 합격했다. 명문 고등학교에서 뛰어난 학생들과 서로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만 투자해야했고 소년과 아버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그렇게 한 참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소년은 명문대에 진학했고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되었다.


스무 살 청년이 되어 대학에 올라간 그는 책에서 얻은 지식은 많았지만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해서 그런지 세상을 잘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고위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비리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청년의 가정은 그 때 이후로 점점 힘들어 졌고 온실 속 화초로만 자랐던 그는 남들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세상에 내쳐져 홀로 서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청년은 세상의 혹독함을 알아가며 어른이 된다. 청년은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한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어느 여인을 만난다. 그들은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점점 관계를 발전시켜가다가 결혼에 성공한다. 결혼 후 1년이 지나고 청년은 아버지가 된다. 아이의 아버지는 태어난 아들에게 박생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어린 내가 태어난 지 1년이 지났을 때 아버지의 아버지는 심한 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는 슬퍼하면서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했던 부정한 일에 대해 계속 원망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항상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6살이 됐을 무렵에 비극이 발생했다. 한밤중 밑에 집에서 난 불이 크게 번져 온 아파트를 뒤덮었다. 이상한 낌새에 눈을 뜬 아버지는 먼저 어머니를 깨우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손을 더듬어 가며 나를 찾아 깨웠다. 아버지는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 하던 나를 두 손으로 안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 코와 입을 막게 한 뒤 어머니와 함께 문밖으로 나와 연기가 가득 찬 계단으로 향했다. 한참동안 계단을 내려가던 우리가족은 불 때문에 더 이상 지나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 계속 멈춰 있다가 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셨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나를 꽁꽁 싸맨 다음 품에 소중히 안고 어머니와 함께 불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의 희생덕분에 나는 등에만 조금 화상을 입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신과 폐에 화상을 입어 나오자마자 쓰러지셨고 뒤늦게 도착한 구급차에 의해 병원에 이송되었다.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부모님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두 분의 영혼이 몸에서 나오고 저승사자가 찾아왔다. 저승사자는 어머니를 저승으로 인도하고 나서 아버지를 보내려는데 갑자기 다른 동료 저승사자가 와서 지원을 요청하여 아버지의 영혼을 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버지의 영혼은 그 곳에서 저승사자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내가 무사한지 보기 위해 나를 찾아다녔다. 할머니 댁에서 무사히 생활하고 있는 나를 본 아버지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려다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봤다. 그 뉴스에서 이번 화재 사건은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고백을 거절당한 어느 남성이 보복으로 그녀의 집에 저지른 방화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본 아버지는 분노에 휩싸여 그 남성을 찾아 나섰다. 복수심을 가지고 이승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아버지의 영혼에 부정이 모여 들면서 귀신이 되었다. 완전히 귀신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감옥에 있던 방화범을 찾아내 그를 저주하며 천천히 괴롭혀서 죽이려 했다. 그러다가 저승사자에게 잡혀 이 곳으로 끌려왔고 정화상자에서 오랫동안 부정을 다 씻어내고 사람으로 돌아와 이 곳 재판소로 오셨다. 그걸 끝으로 나의 의식은 다시 재판소로 돌아왔다.


염라대왕은 신하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고 나는 복잡한 기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참 뒤 이야기를 마친 염라대왕은 바로 판결을 내리지 않고 내 쪽으로 와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아버님의 죄를 눈감아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흔들렸다. 분명 아버지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방화범이 받은 고통은 사소하게 보였다. 고대 그리스의 정의관에서도 보면 복수 역시 정의로운 행동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지만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는 염라대왕에게 아버지의 죄를 눈감아 달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해버린다면 결국 영향력 있는 자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정해진 규칙을 무시하는 게 돼버린다. 내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계속해서 갈등했다. 답답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나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염라대왕은 자리에 돌아가 판결을 내렸다.


“죄인을 지옥에 6개월간 수감시킨다.”


눈물을 닦고 아버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책상 앞에 펼쳐져 있던 유리에는 크게 금이 가 있었고 아까 책상을 칠 때 난 소리 때문인지 아버지는 이 곳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가 언제나 지으시던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이 곳을 보셨다. 하지만 그 미소는 유리에 난 금 때문에 산산조각 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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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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