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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79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1.03 04:32
조회
403
추천
4
글자
8쪽

48화 설공찬전(5)

DUMMY

어째서 이런 조그마한 절에 도착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 곳에서 내 육체를 느낄 수 있다. 내 감을 믿고 가장 끌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수많은 항아리가 칸이 나뉜 선반 위에 정렬되어 있었다. 항아리로 가득 찬 선반은 온 벽면을 덮고 있다. 각 칸마다 앞에 유리로 된 작은 문이 있었는데 안쪽에 항아리 주인의 웃고 있는 사진과 하얀 꽃이 붙어 있었다. 도대체 왜 내 육체가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닐 거라고 믿었다.


건물 안을 좀 더 둘러보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 옷을 차려 입으신 우리 부모님이 서계신다. 부모님은 어떤 항아리 앞에서 세상을 다 잃으신 표정을 하고 계셨다. 눈물을 흘리고 계시진 않았지만 뺨에는 선명하게 눈물 지나갔던 길이 여럿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슬픔의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잡아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평생 동안 우리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던 두 분이다. 비록 지금 내 모습이 부모님께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그들의 약한 모습을 보는 걸 원치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의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괴로웠다. 우선은 밖으로 나가서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가 보기로 하고 납골당건물을 나와 건물 벽에 기대앉았다.


시간이 흐르고 부모님은 건물 밖으로 나와 절을 떠나셨다. 그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두 분이 있던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그 어느 곳보다 내 육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항아리가 선반에 놓여 있었고 그 항아리 앞에는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내 사진이 있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항아리 앞에는 설공찬이라고 적혀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렸을 때부터 죽은 자들을 봐왔고 사후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설령 죽더라도 무덤덤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하얀 뼛가루로 변한 내 육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여러 감정들이 쌓여 올라간다. 27년 동안 쌓아온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허무감, 나 때문에 슬퍼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자들에 대한 증오감이 한데 뒤섞여 마음을 가득 매우며 나를 답답하게 한다. 그 감정들은 겹겹이 쌓여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슬프고 억울하고 분하고 화난다. 내 몸이 이렇게 될 동안 나를 저승에 잡아둔 염라대왕이 원망스럽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나를 저승에 보낸 저승사자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증오스러운 건 날 내 몸에서 떼어낸 꼬마귀신과 푸른 불꽃의 여인이다. 반드시 찾아내서 갈가리 찢어 소멸시킬 것이다.


복잡한 감정에 몸을 가눌 수 없어 선반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누군가를 다급하게 찾는 것처럼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자가 비틀거리며 이 곳에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그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여인의 영혼이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남자는 안을 둘러보다가 어느 유골함 앞에 놓인 사진을 발견했다. 그의 뒤에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인과 달리 사진 안의 그녀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다 하얀 국화꽃 옆에 놓여있는 새하얀 팔찌를 발견하고 울부짖었다. 남자는 바로 옆에 서있는 여인을 계속해서 불렀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남자는 듣지 못한다.


남자는 한동안 이곳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도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계속 이곳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남자는 거의 정신을 반쯤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고요한 이 곳에 문자 알림 음이 울려 퍼졌다. 남자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 너머 누군가와 이야기를 마친 뒤 휘청거리며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옆에서 내내 울고 있던 여인의 영혼도 그를 따라 나갔다. 그들이 떠나자 조금 외로워졌다. 운명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조금은 위안이 됐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던 슬픔만 달래주었고, 날 이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증오는 그대로 남아 내 몸을 움직이게 했다. 오직 그들을 없애버릴 생각만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보련사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나는 귀신을 찾아 헤맸다. 해가 지면 쉽게 느껴지는 귀신 특유의 더럽고 불결한 기운을 쫓아 걷고 또 걸었다.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마음 내키는 대로 계속 걷다보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눈을 만났다. 육체가 있건 없건 귀신은 한결같이 나를 보고 달려든다. 오른 손을 변화시킨 뒤 귀신이 뻗은 주먹을 바깥쪽으로 쳐내고 아무것도 없이 열려있는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귀신은 맞은 충격에 뒤로 자빠져 드러누웠다. 평소 같았으면 다시 덤벼들지 않는 귀신은 무시하고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흥분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자빠진 귀신의 가슴과 오른쪽 팔을 무릎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녀석의 얼굴을 내리쳤다.


녀석은 몸부림치면서 깔리지 않은 손으로 계속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게 귀찮게 느껴져 왼손으로 못 움직이게 잡고 오른쪽 손날을 진한 은색으로 물들이며 놈의 손을 잘라내어 땅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놈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잘려진 귀신의 손은 검게 변한 뒤 가루가 되어 공중에 흩날렸고 손이 잘린 부위로부터 보라색 기운이 새어나왔다. 귀신은 버둥거리면서 내게 애원한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8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남자귀신과 푸른 불꽃을 사용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여자귀신을 본 적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녀석이 뭔가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목에 손날을 갖다 대고 다시 물었다.


“진짜로 없어?”


그는 겁에 떨며 대답한다.


“정말입니다. 진짜로 그런 자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자에게 더 물어봤자 얻을 게 없을 것 같다. 누워 있는 놈을 내버려두고 일어서서 다른 곳을 향해 걸었다. 5분 정도 걸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뒤쪽에서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뒤돌아서 확인해 보니 방금 전 내게 한쪽 손을 잘렸던 놈이 다시 양쪽 손을 멀쩡히 달고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어디 하나를 잘라도 금세 채우고 다시 달려들 것 같아서 아예 존재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오른손으로 가슴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놈의 몸 전체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그 중심에 뭉쳐있던 검은색 불결한 덩어리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보라색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그 침울한 색을 보고 약간 두렵기도 했으나 빨리 놈들을 찾을 생각에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도 계속 귀신이 있는 곳을 찾아 다녔고 귀신이 내게 덤벼들 때마다 몸 한구석을 후벼 파며 그 놈들에 대해 물었다. 귀신들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며 살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고 다시 다른 놈들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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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金鰲新話)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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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8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4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9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3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4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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