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金鰲新話)

1화 서장(1)

꿈이란 때론 실제처럼 느껴지면서도 꿈에서 깬 이후에는 금세 무언가로 잘린 듯이 기억에서 떨어져나간다.

그러나 이번에 꾼 꿈은 뭔가 달랐다.

전혀 비현실적인 꿈인데도 꿈에서 깬 이후에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감각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누군가 기억을 지우는 장치로 플래시를 터트리며 내 기억을 전부 지우려 한다 해도 이 꿈에서 겪은 경험만큼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뚜렷하게 머릿속에 자리매김한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에서 깼기 때문에 오히려 꿈에서 깬 지금이 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라서 주위를 둘러보고 상황파악을 하기 시작한다.

평소에 잠에서 깬 직후의 풍경이 아니다. 내 침실과는 다른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얼굴에는 호흡을 돕는 것 같은 마스크가 씌어져 있고 왼쪽 팔목에 꽂혀있는 주사 바늘은 링거와 연결됐으며 오른쪽 새끼손가락에는 하얀 집게가 집혀져 있다. 집게에 연결된 선을 따라가 보니 모니터에서 초록색 그래프와 여러 가지 숫자가 나의 상태를 끊임없이 나타내고 있다.나는 현재 침대 위에서 환자복을 착용한 채로 누워 있다.

이곳은 병원이다.

나는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 지를 눈을 감고 기억을 따라 생각을 정리해 본다. 3월 7일 월요일 사법고시 1차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확실하다.

아침을 먹고 그 동안 공부했던 것을 머릿속으로 되새김질 한 뒤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하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아무리 수많은 시험을 통해 시험에 익숙해져 있더라도 이런 큰 시험 직전에는 긴장이 가시지가 않았다.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 나섰다.

기억 속에서 나는 한 참을 시험장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의 마지막 장면에 도달했다. 나는 제법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캐릭터 가방을 매고 한 올의 머리카락도 빠짐없이 단정하게 한 갈래로 머리를 묶은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길을 건너고 싶어 신호만 쭉 쳐다보던 소녀는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그 나이에 맞는 발랄함을 행동으로 표현하며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 때 도로위에는 주황불은 멈춰야 하는 신호가 아니라 빨간 신호로 바뀌기 전에 빠르게 지나가야 되는 신호로 착각하는 몰상식한 운전자가 있었고 그 차는 빠른 속도로 여자아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뒤에 있던 소녀의 어머니의 표정에는 잠시 뒤의 상황을 예상한 듯 이 세상의 모든 절망이 담겨 있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자동차는 그 작은 여자아이와 충돌하고 만다. 저 정도 속도라면 어린아이의 몸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 하고 부서져 버릴 것이다.

차가 여자아이와 충돌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

나는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 뒤에 밀려오는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으로 그 때의 기억이 끝난다.

[북정동낭인]

잘 보고 가요

[매월당]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