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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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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68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3.27 03:49
조회
312
추천
2
글자
8쪽

79화 전우치전(15)

DUMMY

구미호는 비명도 지르지 못 하고 바람에 휩쓸렸다. 놈을 삼킨 회오리는 세차게 돌며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뻗어간다. 바람과 바람이 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 누군가의 비명소리처럼 느껴진다.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 바람을 안쪽으로 집중시키려 했지만 회오리는 이미 내가 다룰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할 수 없이 바람이 멈출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한다.


쉬는 동안 아까 바람을 모았던 오른손을 봤다. 손등부터 팔목까지 작은 상처들로 덮여있다. 날카롭게 다듬는 과정에서 바람이 조금씩 새어 나갔는데 그것들이 긁고 지나가면서 생긴 것 같다. 바람에 부정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상처 속에 부정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땅에 떨어진 낙엽 하나를 주워 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낙엽 끝부분을 날카롭게 다듬어 부정이 자리 잡은 부분을 하나씩 도려냈다. 깊게 파고든 건 아니라서 살짝씩만 잘라내고 바로 도술로 치료했다.


상처를 다 치료하고 선생님 쪽을 바라봤다.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서 그런지 땅에 박힌 지팡이에 기대어 누워 있다. 어째 그의 머리가 더 하얘진 것 같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바람이 위쪽에서부터 흩어지기 시작했다. 회오리의 색깔은 점점 옅어져갔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남아있는 기를 활성화시켰다.


회오리는 서서히 작아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땅바닥에는 구미호가 엎어져 있다. 놈은 작은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있다. 하지만 아직도 요기가 느껴진다. 선생님은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으니 내가 마무리 지어야한다.


왼손에 바람을 감싸고 천천히 다가갔다. 녀석이 다시 기운을 차리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몸이 제대로 안 움직인다. 한 발짝씩 내밀 때마다 옆구리가 쑤셔온다.


다친 곳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다가가는데 구미호의 몸에서 보라색 연기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가만히 있던 놈이 조금씩 움찔움찔 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토할 것처럼 기침을 해댔다.


“케엑 크헉 쿨럭 쿨럭 흐으 후으 우읍 우윽 후우”


나는 아픈 것을 참고 빠르게 달려갔다. 녀석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바로 앞까지 가서 손을 휘두른 순간 꼬리하나가 날아와서 내 팔목을 감싸 묶었다. 반대쪽 손으로 꼬리를 잘라내려고 했지만 오른손마저 다른 꼬리에 묶여버렸다.


“불쌍해서 봐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엿 먹여? 편하게 죽을 생각은 하지마라.”


그렇게 말하고 구미호는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떨어지면서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 몸을 일으키려고 오른손을 짚었지만 어깨가 쑤시면서 힘이 안 들어간다. 아픈 걸 참으면서 몸을 비틀어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구미호의 공격이 계속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휘청거리다가 다시 땅에 엎어졌다.


땅에 엎드려 있는 구미호의 몸에 파란 불이 피어올랐다. 불꽃은 세차게 타오르면서 구미호의 몸을 뒤덮고 점점 짐승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잠시 뒤 불 속에서 금빛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불이 걷히고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은빛 여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알던 누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요괴 그 자체의 모습만 남아있다. 여우는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쪽으로 달려와서 내 어깨를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갔다.


피가 많이 흐르지만 이미 상처를 치료할 기는 남아있지 않다. 손으로 눌러 지혈하려고 했지만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 이제는 서있기도 힘들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다시 내게 달려온 구미호는 내 허벅지를 물어뜯고 지나갔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가 양쪽 팔다리를 전부 못 쓰게 되자 놈은 가까이 와서 몸 이곳저곳을 천천히 긁어댔다. 아파서 몸을 비틀 때마다 녀석은 기분 나쁘게 웃어댄다.


상처 틈으로 부정이 스며든다. 이곳저곳이 불에 덴 것처럼 아프다. 구미호는 몇 차례 더 발톱으로 할퀴더니 아까 구멍이 뚫렸던 곳을 짓밟았다. 안에서부터 뭔가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몸 안이 뒤틀리면서 속에서 뭔가가 꿀렁꿀렁 올라왔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입에서 새어 나온다.


죽을 것 같다. 곧 있으면 죽을 것이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을 거였으면 차라리 아까 편하게 죽을 걸 그랬다. 그냥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다. 앞이 흐릿해진다. 점점 어두워져 간다.


갑자기 주변이 싸늘해 졌다. 누군가 내 몸 위에 뭔가를 얹는다. 파스를 붙인 것처럼 시원하다. 상처에서 부정이 뽑혀져 나가는 게 느껴진다. 몸 안의 기가 다시 돌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기가 회복되자 나는 본능적으로 상처들을 치료했다.


눈을 떴다. 앞이 뿌옇다. 좀 기다리니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보이던 검은 점들이 나비 떼로 보인다. 저 앞에 회장아줌마가 서있다. 그녀를 보자 이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꼴 보기 싫었는데 지금은 너무 반갑고 고맙다.


그녀는 여유롭게 구미호를 상대하고 있다. 아까는 여유가 없어서 못 느꼈는데 구미호의 요기가 처음에 비해 굉장히 약하다. 이대로 가면 손쉽게 퇴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비들이 그녀의 손짓에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구미호는 도망치면서 푸른 불꽃을 날려 쫓아오는 나비를 한 마리씩 없앴다. 하지만 나비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끝없이 놈을 따라갔다. 빠르게 도망치는 구미호 위에 몇 마리가 내려앉아 가루로 변하면서 닿은 부분을 검게 얼렸다. 은빛 털 위 곳곳에 검은 얼음이 자리 잡는다.


다리까지 얼게 된 구미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모든 나비들이 구미호를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 다 끝날 줄 알았지만 윙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 말벌들이 날아와 구미호에게 달려드는 나비들을 하나씩 꿰뚫었다.


멀리서 누군가 걸어온다. 그가 가까이 올수록 회장 아줌마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 남성은 구미호의 옆으로 가서 들고 있는 지팡이로 언 부분을 털어냈다.


“거 참 꼴이 말이 아니네.”


“입 닥쳐. 용골대.”


“기껏 구하러 왔는데 너무 까칠하네.”


남자는 날아오는 나비들을 여유롭게 쳐내고 회장 아줌마를 향해 싱긋 웃었다.


“명월아, 오래간만이야.”


“이시백, 이 쓰레기새끼”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네. 근데 예전에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시백씨~ 하고 불러줬었는데. 아, 그 때가 그립다.”


회장은 입술을 꽉 깨물고 손을 부들부들 거렸다.


“만나서 반가운 건 알겠지만 오늘은 이만 가볼게. 할 일이 많아서”


남자는 구미호를 데리고 뒤돌아 걸어갔다. 그를 향해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갔지만 대부분이 보라색 벌에 막혀 사라졌다. 그래도 그 중에서 몇 마리가 남자의 다리에 붙어 얼렸다.


“말했다시피 내가 바빠서 상대를 해줄 수가 없어. 대신 오늘은 이 녀석들하고 놀아.”


남자는 다리에 붙은 얼음을 지팡이로 깨고 공중에 여러 개의 부적을 날렸다. 부적에서 보라색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더니 사람 형상으로 변했다. 형상들이 점점 뚜렷해지다가 완전히 귀신으로 변했다.


귀신들은 이마에 부적을 붙인 채로 이쪽으로 달려왔다. 회장 아줌마는 남자를 향하던 나비를 불러들여 귀신들을 얼렸다. 그 틈에 구미호와 남자는 멀리 사라졌다.


회장이 귀신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동안 아무 일 없이 땅에 떨어졌던 부적에서 갑자기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 연기는 갑자기 귀신으로 변해 내게 다가왔다. 피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놈은 부정을 두른 손으로 나를 공격하려 한다.


그 순간 화담선생이 내 앞으로 빠르게 달려와서 지팡이로 귀신의 가슴 한가운데를 뚫었다. 귀신의 핵에서 부정이 새어나오려했지만 선생님은 얼음으로 빈틈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강하게 응축되어있던 부정은 얼음을 뚫고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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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7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8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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