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44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2.09 01:44
조회
515
추천
8
글자
8쪽

33화 호질(2)

DUMMY

“저건 이 산에 있는 호랑이 귀신입니다. 가끔씩 지혜롭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의 영혼을 작게 한 입 베어 먹고 그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준다고 알려졌습니다. 딱히 질서를 어지럽히는 귀신은 아니니 마주치더라도 신경 쓰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럼 훈련을 계속하겠습니다.”


주선동자는 주악에게 가서 그의 구슬도 받아오더니 한 상자에는 자신의 구슬을 다른 한 상자에는 주악의 구슬을 넣었다. 주악동자는 구슬을 건네주는 게 그의 역할의 전부인 모양인지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제 서로 다른 종류의 영혼을 구별하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이 두 구슬에 담긴 힘은 그 크기가 같지만 성질은 조금 다릅니다. 어느 쪽이 누구의 구슬인지 맞히시면 됩니다.”


이번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둘의 느낌은 같아 보이면서도 전혀 달랐다. 영혼의 성질이란 건 지닌 자의 성격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 모양이다. 누가 봐도 훨씬 사나운 쪽의 상자가 주악동자의 것이다.


“이 쪽이 네 거고 이 쪽이 주악동자 쪽 맞지?”


“틀리셨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섞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다시 한 번 같은 방법으로 골랐더니 틀렸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고르니 정답이었다. 영혼의 성질과 성격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맞히니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훈련입니다. 이 산 안 어딘가에 숨어있는 주악동자를 찾으시면 됩니다. 저희가 고른 이 산은 영적 기운이 굉장히 짙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찾으셔야 할 겁니다. 그럼 저는 여기서 두 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산 전체에서 숨바꼭질이라니 바로 이전 훈련과는 난이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마지막 훈련이니 이것만 끝내면 집에서 쉴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오늘 익힌 요령을 바탕으로 주악을 느껴보니 아래보다는 위쪽에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바로 올라가기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힘들어 보이니 다시 나뭇가지들을 뚫고 등산로로 향했다. 최대한 빠르게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아까 밑에서 봤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정치인과 젊은 여인이 딱 붙어서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고 조금 뒤에 있던 사진작가는 등산로를 벗어나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꽃을 찍고 있었다.


사진작가가 각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니 ‘찰칵’하는 소리가 났다. 앞서 가던 정치인은 갑자기 멈춰 주변을 살펴보다가 여인과 약간 거리를 두고 빠르게 올라갔다. 나도 위쪽에서 주악동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서 그들을 쫓아 올라갔다.


올라가다보니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같이 온 그들은 무언가 대화를 하더니 여기서 서로 다른 길로 올라갔다. 어차피 이 두 길은 올라가다가 다시 하나가 되므로 지쳐 보이는 여인에게 쉬운 길을 올라가게 하고 자신은 힘든 길로 올라가 제대로 등산을 즐기려나보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주악동자가 정치인이 간 쪽에 있을 것 같아 그쪽으로 따라갔다. 한 참을 올라가다 무심코 나뭇가지를 밟아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놀란 정치인은 갑자기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더니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등산로 옆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그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다.


흙투성이가 된 그의 앞에는 거대한 호랑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찾아 볼 수 있으므로 이 호랑이는 아까 주선동자가 말한 호랑이귀신인가보다. 정치인은 그 호랑이가 보이는지 도망치기 위해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가 여기에 떨어진 것에는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그를 구하려고 하다가 호랑이귀신을 마주쳐도 신경 쓰지 말라던 주선의 말이 떠올라 일단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 그가 뒤돌아 뛰려고 하자 호랑이는 크게 포효한다. 멀리서 들을 때는 잘 몰랐지만 가까이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니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 포효에 다리가 얼었는지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호랑이 쪽으로 엎드려서 빈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네 놈이 무엇을 잘못했느냐.”


“제 아내를 두고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네 놈 잘못은 그게 다가 아닐 텐데.”


“많은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사실 저는 가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청렴한 사람도 아닙니다. 뇌물을 주고 제 친척을 기업에 입사시킨 적도 있고 세금으로 걷은 돈의 일부를 사적인 용도로 쓴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기를 얻기 위해 방송에서는 깨끗한 척 해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더럽구나. 더러워. 자고로 사람 위에 선 자는 자기 자신을 더 엄격하게 다스려야 하거늘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백성을 다스린다는 놈들은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지 모르겠다. 소문을 듣고 너를 맛보러 왔지만 네 놈의 더러운 냄새 때문에 가까이도 못가겠다.”


“다른 정치인들에 비하면 저는 그래도 훨씬 깨끗한 편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는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정치인은 계속 엎드려 빌고 있었지만 호랑이귀신은 그를 무시하고 위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점점 내가 있는 쪽에 가까워지더니 눈이 마주쳤다.


“네 놈이 저승사자만 아니었어도 한 입 맛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구나.”


내게 그렇게 말하고 호랑이는 멀리 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아까 본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기 위해 이 쪽으로 내려오다가 엎드려 있던 정치인을 보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곳에서 뭐하고 계시나요?”


엎드려 있던 정치인은 고개를 들어 호랑이가 없는 것에 안심한 표정을 짓고 갑자기 옆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를 주우며 일어났다.


“등산객들이 가다가 쓰레기를 버려놨더라고 그래서 그것 좀 치우고 있었습니다.”


“혹시 북곽 의원님 아니신가요? 이런 곳에서 뵈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혹시 사진이라도 같이 찍어주실 수 있나요?”


“아 예 물론 됩니다.”


보기 드물게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던 북곽 의원의 실체를 안 나는 더 이상 저 정치인이 보기 싫어 주악을 찾아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그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혼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미안.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빨리 돌아가자.”


그와 함께 주선동자에게 돌아갔다. 주선동자 역시 생각보다는 늦었다고 말한 뒤 동자들은 다시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다가 조금 쉬기 위해 오랜만에 휴대폰으로 SNS에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아까 본 정치인과 사진작가가 함께 찍혀있는 사진과 함께 밑의 글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정치인들은 여가활동으로 골프를 치거나 방 잡고 젊은 아가씨들이랑 술을 마시지만 우리 북곽 의원님은 산에서 쓰레기를 주우신다.’


이 게시물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북곽 의원을 칭찬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걸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왔다.


-호질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오신화(金鰲新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7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0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2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7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4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2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8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1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4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0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0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4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8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5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7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8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5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39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2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59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7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7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8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7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2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1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