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호질(1)
호질(虎叱) - 호랑이의 질책
지귀 사건이 끝나고 일주일이 흘렀다. 일주일간 보험회사 직원도 만나고 가해자와 만나 합의도 마쳤다. 사고 후유증이라면 몸이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이지만 진단서로 증명할 길이 없으니 이걸로 합의금이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머리 아픈 일도 끝냈고 이제는 맘 편히 내년 사법시험도 천천히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민법 책을 한 장 한 장 다시 읽어보며 공부하는 감을 되찾고 있는데 불길한 예감이 든다. 불길한 예감은 두 개의 불기둥이 되어 주악동자와 주선동자로 변한다.
“잘 지내셨습니까. 차사님.”
“일 때문에 온 거야?”
“아니요. 대왕님께서 차사님이 훈련을 원한다고 하셔서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리신 물건도 가져왔습니다.”
주선동자의 손에는 저번에 대왕님이 주신 감투가 있었다. 박지연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깜박하고 온 모양이다.
“아 그래 이거 두고 왔었네. 고마워.”
“무장상태로 한 번 착용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주선의 말대로 홍옥의 힘을 이용해 변한 뒤 투구를 없애고 감투를 쓰니 갑자기 감투에 불이 붙으면서 사라져 버린 게 느껴졌다. 놀란 눈으로 주선을 바라보니 설명해주었다.
“이제 그 감투는 차사님의 무장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차사님이 쓰시는 사슬처럼 원하실 때마다 불러낼 수 있습니다.”
그 말 대로였다. 사슬을 만들어내는 요령을 감투에 적용하니 머리에 뭔가 생겼다. 거울을 보니 감투와 투구의 중간형태의 애매한 것이 있었다.
“이제 앞으로는 사람들 앞에서도 맘 편히 차사 일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감투도 착용을 하셨으니 이제 훈련을 하러 가보죠.”
사실 지금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 동자들도 내 훈련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돌려보내 시간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동자들을 따라서 30분 정도 걷다보니 우리 옆 동네에 있는 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평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사람 한 명이 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청렴하기로 유명한 40대 초반 정도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속하는 정치인이었다. 얼마 전 어떤 프로그램에서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게 기억난다.
그의 옆에는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자신이 등산하는데 비서까지 데리고 온걸 보면 그렇게 좋은 고용주는 못 되는 모양이다. 그 둘 말고도 또 한 명 사람이 있었는데 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아마 산의 풍경을 찍으러 온 사진작가 같은 사람인가 보다.
산 중턱까지는 등산코스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올라가다가 동자들을 따라 코스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빠졌다. 좁은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 나오니 제법 넓고 평평한 장소가 나와 그 곳에서 훈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저번 사건 때 차사님께서 산 인간과 죽은 인간도 구분 못 하신 걸로 봐서 감지능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훈련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해보겠습니다.”
주선 동자가 땅에 손을 대자 3개의 불꽃이 나오더니 같은 크기의 3개의 정육면체 상자로 변했다. 그리고 품 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어 가운데 상자에 넣었다.
“이 3개의 상자 중에 가운데 상자에만 제 힘이 깃든 구슬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이 상자들을 섞은 다음 어느 상자에 구슬이 들어있는지 맞히시면 됩니다.”
주선동자가 양 손을 상자 쪽으로 뻗고 집중을 하자 상자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계속 자리를 바꾼다. 사실 차사가 되기 전이었다면 이 정도 속도는 눈으로 못 따라갔을 텐데 동체시력도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자 이제 고르시면 됩니다.”
아무리 집중해 봐도 동자의 힘을 느끼는 걸로는 상자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까 눈으로 쫓은 상자를 선택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으시군요.”
상자를 섞느라 눈치를 못 챘던 주선동자와는 달리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악동자는 내가 구슬을 느껴서 찾은 게 아니란 걸 안 모양이다.
“아니야. 내가 저 신참이 눈알 굴려서 맞춘 거 다 봤어.”
“흠.......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긴 합니다만 이번 훈련은 감지훈련이니 상자를 섞을 때 뒤를 돌아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뒤를 돌자 주선동자는 다시 상자를 섞었다. 다시 돌아 구슬이 들어간 상자를 찾으려고 집중을 했으나 아무리 봐도 똑같은 상자들이다. 그래서 감으로 찍다가 결국 여섯 번 중 두 번만 성공하고 나머진 실패하고 말았다.
“안되겠습니다. 구슬에 제 힘을 더 넣고 하겠습니다.”
주선동자가 상자에서 구슬을 꺼내 손에 쥐자 작은 구슬이 주먹만큼 커졌다. 그리고 커다래진 구슬로 다시 구슬 찾기가 시작됐다. 이번엔 한 상자로부터 동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항상 느껴지던 불길한 예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상자를 선택하자 안에 구슬이 들어있었다. 같은 요령으로 몇 번 더 정답을 맞히자 주선동자는 구슬의 크기를 점점 줄여갔다. 구슬이 작아질 때마다 느낌도 희미해졌지만 일단 요령을 알게 되자 계속 답을 맞힐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의 크기와 같아질 때까지 이 훈련은 계속됐다.
“훌륭합니다. 이제 다른 훈련을 하겠습니다. 대상을 감지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대상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번엔 2개의 상자에 각각 크기가 다른 구슬을 넣을 테니 어느 쪽이 큰 쪽인가 맞히시면 됩니다.”
주선동자는 주먹만 한 구슬과 조그마한 구슬을 준비해 두 개의 상자에 따로 넣고 섞었다. 명백하게 한 쪽 상자로부터 큰 힘이 느껴져 그 상자를 골랐다.
“정답입니다. 점점 난이도를 올려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작은 쪽 구슬의 크기를 조금 키운 후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쉽게 맞힐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난이도가 올라가 구슬의 크기차이가 미묘해지자 정답을 맞히기 힘들어졌다.
“좀 더 섬세해지실 필요가 있습니다. 집중하고 다시 해보시길 바랍니다.”
좀 더 집중을 하자 상자 안의 구슬이 눈에 보이는 듯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둘 다 비슷비슷하지만 오른쪽 상자의 구슬이 약간 더 크다는 게 느껴진다.
“오른쪽”
“네 맞습니다. 이대로 하면 감지훈련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럼 다른 훈련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주선동자가 훈련준비를 하는데 어디선가 짐승이 우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크워어어흥~어흥~’
“주선동자야 지금 어디서 이상한 소리 안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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