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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35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2.23 19:36
조회
318
추천
5
글자
8쪽

42화 남염부주지(9)

DUMMY

재판이 끝나고 아버지는 무사들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새로운 재판이 시작된다. 나는 복잡한 기분에 재판 내내 집중할 수 없었다. 업경을 통해 다른 이들의 불행한 과거를 봐도,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염라대왕의 판결을 들어도 다른 일로 머리가 꽉 차있어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저 아까 내린 판단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염라대왕의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로 두 번의 재판이 더 끝날 때까지 계속 멍하니 있었고 창문에서는 붉은 빛 대신 노란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염라대왕은 오늘 재판 일정을 끝내고 나를 따로 불러 언제나 차를 마시던 방에 데려갔다.


내가 안내대로 방석이 놓인 자리에 앉자 염라대왕은 신하들을 물린다. 신하들이 모두 빠져나가 방안에 염라대왕과 나만 남게 되자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죄송합니다. 사실 선생님의 아버지의 재판은 오늘이 아니라 이틀 뒤에 잡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오늘로 바꿔 재판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게 내버려 뒀으면 이렇게 괴로운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신 것입니까?”


“저는 이제 염라대왕으로서 임기가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후계자를 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저승을 위해 일하고 있는 자들을 하나씩 검토해 보고 있었는데 도무지 이 자리를 맡길 만한 인재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이곳에 오신 것입니다.”


“저는 염라대왕 같은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번에 보여드렸다시피 선생님의 이름은 두루마리에 붉은 색으로 적혀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무언가 뛰어난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먼저 한나절 동안 이 곳을 살펴보게 한 다음 현재 저승이 가진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뛰어난 통찰력과 지혜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선생님이 저승의 어느 관리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후계자 후보로 생각해뒀습니다. 그리고 오늘 재판의 배심원으로 초대하여 의견을 물어봄으로써 선생님이 염라대왕이 갖춰야할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아버님의 재판을 통해 선생님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왜 굳이 저를 시험했습니까? 같이 이곳에 온 설공찬이 염라대왕에 더 적합하지 않습니까?”


“그도 역시 선생님처럼 특별한 색으로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런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급한 성격은 다음 염라대왕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곳은 개혁이 필요합니다. 힘 있는 자보다는 지혜롭고 올곧은 자가 맨 위에 올라서서 이곳을 바꿔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후보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다음 염라대왕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네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제 아버지가 가게 될 지옥은 많이 고통스럽습니까?”


“이 성 밑에 위치한 지옥은 열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래로 갈수록 형벌이 가혹해지기 때문에 죄의 깊이가 깊을수록 더 아래에 위치한 지옥에 수감됩니다. 선생님의 아버님께서는 귀신이 되어 사람을 괴롭혔지만 목숨은 빼앗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지옥인 도산지옥에서 저승사자의 무기를 만드는 일을 하며 죗값을 치룰 것입니다. 칼을 만드는 게 힘든 일이기는 하나 다른 지옥처럼 고통을 겪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은 아니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계속해서 가슴 속에 박혀 있던 가시 하나가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재판에서 업경을 통해서 본 비극들은 저승에서 관심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분명 현재 저승의 구조상 무언가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현 저승의 최고 관리자는 새 인물로 나를 선택했지만 문제는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이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판단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계속 한 곳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람 보는 안목이 틀렸을 수도 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계속 고민을 하던 중 문득 복잡한 감정 때문에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이곳은 꿈이다. 언젠가는 깰 꿈속의 세상이다. 그걸 깨닫자 나도 모르게 허탈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 염라대왕 자리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일어서 나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뒤쪽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찻잔을 가져온 다음 품 안에서 투박한 빛을 띠는 작고 붉은 보석을 꺼냈다. 그가 보석을 꽉 쥐고 찻잔위에 대자 주먹 안에서부터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찻잔이 서서히 채워진다. 그리고 찻잔이 다 채워지자 내게 건넸다. 찻잔 안은 토마토주스 같은 것이 채워져 있었다.


“드시지요.”


손으로 잡았을 때 잔이 차가웠기 때문에 그냥 한 번에 들이켰는데 갑작스럽게 뜨거운 것이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뜨거운 것은 가슴 한 가운데에서부터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뜨겁다고 느껴지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그저 느낌이 낯설어서 당황했다. 뜨거운 느낌들은 한차례 진정이 되고 이내 따뜻하고 익숙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이게 뭡니까?”


“홍옥입니다. 그걸 받아들이시는 걸로 이제 확실하게 후계자로 정해지셨습니다. 원하신다면 이곳에 더 머무실 수도 있지만 위에 있는 육체가 걱정되니 이승으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그렇게 하죠.”


염라대왕은 나를 철성 입구까지 배웅해주었다. 조금 기다리니 처음 여기에 올 때 탔던 수레가 도착했고 나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수레에 올라탔다. 수레는 속도를 점점 올리면서도 안정감 있게 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한 참을 달려 철성 입구에 서있던 경비병들이 작아서 안보이게 됐을 때쯤 아무 흔들림 없던 수레가 갑자기 덜컹하더니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온 세상이 까맣게 변하면서 의식이 사라진다.


그것이 저승에서의 마지막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고 그 곳에서 다시 동자들을 만나 저승에서의 일들이 꿈이 아니라 현실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저승차사로 일하면서 염라대왕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일들을 떠올리며 기다리다보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며 가고 있는데 문득 이 가슴에 홍옥은 언제 생긴 건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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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7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0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2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7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4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2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8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1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6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3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4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0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0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4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8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5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7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8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6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5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39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19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2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59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7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0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7 5 8쪽
»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8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7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1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2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7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5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1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3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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