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75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2.16 00:32
조회
433
추천
5
글자
7쪽

38화 남염부주지(5)

DUMMY

그 둘은 자신들을 각각 주선동자, 주악동자라고 소개하고 각자 등에 매고 있던 두루마리를 탁자에 펴 보였다. 주악동자가 펼친 두루마리는 검은 종이에 푸른 글씨로 이름들이 써져 있었고 주선동자가 펼친 두루마리는 흰 종이에 붉은 글씨로 이름들이 써져 있었다. 글자들은 종이 안에서 계속 자리가 바뀐다.


“길의 오염이 심해 악인으로 분류된 자들은 이 검은 두루마리에 이동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하얀 두루마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들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렇게 자리가 계속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죽었을 당시를 기준으로 이름이 검은 두루마리에 남아있으면 이 곳에 남을 수 없습니다.”


“신기하네요. 혹시 제 이름이 어디 적혀 있는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염라대왕이 하얀 두루마리 위에 손을 올리자 스크롤을 내리는 것처럼 붉은색 문자들이 왼쪽으로 빠르게 넘어간다. 한 참 동안 글자들이 지나가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게 되었을 때 두루마리에는 하얀 종이 대신 노란 종이가 있었고 그 위에 붉은 색 대신 청색, 흑색, 은색으로 적힌 이름들이 모여 있었다. 그 모여 있던 다양한 색의 이름들 중에 유일하게 붉은 빛을 띠는 이름이 있었는데 염라대왕은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선생님의 이름입니다.”


“제건 뭔가 조금 다르네요. 지금 보이는 이 이름들은 다른 이름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끔씩 하늘 위쪽에서 이들을 데려가는 걸 보면 두루마리 끝부분에 적힌 자들은 평범한 이들과 달리 특별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들이 이 곳에 오면 저승을 위해 일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기대를 져 버리지 않죠.”


“저도 뭔가 특별한 사람인가 보군요.”


“예. 선생님께선 그 중에서도 뭔가 특별한 게 느껴집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쪽에 있는 이름 중에 유일하게 붉은 색을 띠고 있습니다.”


내가 꾸는 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내 자신이 너무 특별하게 묘사되어 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내 자신을 뭔가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염라대왕의 이야기에 관심 없는 척 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던 설공찬은 동자들이 두루마리를 펼 때부터 이 곳을 흘끗거린다. 아마 자신이 어떤 두루마리에 이름이 실렸는지 궁금한 것 같다. 그는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제 이름 좀 보고 싶은데요.”


“아 그러시죠.”


염라대왕은 노란 종이 위에 다시 손을 얹고 문자들을 조금 오른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여러 색의 이름들 중 은색 이름을 가리켰다.


“이것이 설공찬 군의 이름입니다. 설공찬 군도 박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뭔가 특별하니 나중에 수명을 다하여 이 곳에 다시 오시게 되면 저승을 위해 일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때 가서 생각해볼게요.”


“이 형이라면 분명 잘 할 겁니다. 영기가 강하고 귀신을 퇴치해왔다고 하니 이 쪽 일도 금방 배우고 할 겁니다.”


“귀신을 퇴치하셨답니까? 그것 참 대단하군요.”


“그런데 귀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영혼은 양(陽)의 성질을 띠는 혼(魂)과 음(陰)의 성질을 띠는 백(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혼백은 바깥의 추위를 막아주는 육체 안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육체가 수명을 다하면 밖으로 나와야합니다. 더 이상 이승의 추위를 막아줄 육체가 없게 된 혼백은 추위를 버티기 위하여 양의 성질을 띤 혼을 늘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음양의 조화가 깨지게 되고 영혼은 다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외부에서 음의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가장 찾기 쉬운 것이 주변에 널린 부정이지요. 그 부정이 영혼에 쌓이면 흔히 알려진 귀신이 되는 겁니다.”


“귀신이 된 자는 어떻게 되나요?”


“귀신이 된 자는 저승사자들이 발견하는 즉시 이 곳으로 끌고 옵니다. 그리고 성 앞에 있는 직육면체의 정화상자에 넣고 부정이 다 사라질 때까지 가뒀다가 인간의 영혼으로 돌아오면 바로 환생시킵니다. 부정이 많이 쌓인 귀신일수록 정화가 오래 걸리고 도저히 정화가 불가능한 귀신은 이 성 지하에 있는 지옥에 가둡니다.”


“저승도 하는 일이 꽤 많네요.”


“그렇기에 선생님 같은 인재가 많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수명이 다 하시거든 이 곳을 위해 일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높은 자리만 주신다면 기꺼이 해보지요.”


염라대왕이 계속 추켜세우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도 내가 나중에 저승을 위해 일을 한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며 말한다.


“선생님께서 오신다는데 당연히 높은 자리를 준비해 드려야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밖은 아까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던 붉은 빛도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조금 더 차를 마시며 이 시간을 즐기는데 신하 중 한명이 다가와 말한다.


“대왕님 이제 시간이 늦었습니다. 슬슬 내일 일을 준비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손님 분들도 갑자기 이 곳에 보내져서 피곤하실 겁니다.”


“그게 좋겠네.”


대왕은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우리는 아까 우리를 이 곳으로 데려온 관리의 안내에 따라 각각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책장이 있었다. 할 것도 없고 해서 책장에서 평범한 소설책을 빼내 책상 앞에 읽기 시작했다. 도사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한 참을 읽다보니 몸에 힘이 점점 빠지면서 나른해졌다. 정신은 말짱해서 잠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침대에 엎드려 누워서 책을 계속 읽었다. 읽다가 팔꿈치가 아프면 돌아누워 읽고 팔이 아파오기 시작하면 엎드려 누워 읽었다.


몇 권을 다 읽고 나니 창문으로부터 붉은 빛이 들어와 온 방을 환하게 밝힌다. 그러자 나른한 기분이 싹 날아간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데 누군가 노크를 해서 들어오라고 했다. 어제 그 관리가 들어온다.


“편안한 밤 보내셨습니까? 내일 이승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마을을 둘러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설공찬 형은요?”


“그 분은 방에 있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마을에 가면 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운이 좋다면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정확히 어디에 계신지는 모르나요?”


“네 정확한건 모르겠습니다.”


“그럼 일단 나가죠. 여기에 계속 있기도 지루하니까.”


우리는 철성을 나와 마을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오신화(金鰲新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8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