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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90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1.12 21:17
조회
492
추천
4
글자
7쪽

54화 설공찬전(11)

DUMMY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마치마. 자수가 열릴 때까지 매일 밤 해가 질 때쯤 이곳에 와서 같은 훈련을 반복하겠다. 난 내일 훈련을 위해 다시 이곳을 정리할 테니 너는 들어가서 쉬어라.”


옆에 있던 호랑이가 얼떨떨해 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켜서 시간을 봤다. 아침 6시다. 천천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나는 지금 누워있고 미간을 찔렀던 은장도는 내 왼손에 있다. 훈련을 시작하고 해가 다시 뜰 때까지 그 하얀 세상 속에 갇혀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훈련인지 모르겠고 뭐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의식은 깨어있었는데 몸은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한 느낌이다. 그리고 허기도 느껴진다.


배부터 채우고 나서 생각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일어나서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등산로를 따라 내려갔다. 가는 내내 아침이슬에 축축해진 옷 때문에 불쾌했다. 산 아래로 내려와 아침을 먹을 식당을 찾아봤지만 문을 연 곳이 없어 그냥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삼각김밥이랑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열시 반 수업에 출석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역에서 조금 기다리니 집까지 가는 지하철이 왔다. 자리는 많았지만 앉으면 축축한 옷이 그대로 살에 닿으면서 기분이 나빠져 그냥 서서 가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가자 집근처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 오자마자 보건소를 들러 감기 걸린 척해서 약을 받고 서류도 챙겨서 강의실로 갔다. 수업 5분 전에 들어갔는데 뒷자리부터 다 차있었다. 할 수 없이 맨 앞자리에서 딴 짓도 못하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열심히 듣는다고 들었지만 지루한 교수님의 목소리 때문에 15분을 넘기지 못하고 멍해졌다. 눈이 천천히 감기면서 고개가 떨어지려고 하는데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교수님은 나를 무섭게 쳐다보신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계속 들었다. 교수님은 이제 중간고사에 대한 힌트를 준다고 했다. 비록 내 성적은 아니지만 몸을 빌린 대가로 최소한의 노력은 해주려고 한다. 교수님이 설명해주는 힌트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도를 최대로 높였다.


그 순간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어제처럼 아무것도 없이 전부 새하얗지는 않았다. 새하얀 배경 속에서 교실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몸이 아닌 영혼이 흐릿한 형체로 보인다. 눈에 보인다기 보다는 그 자체가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형체를 알 수 있었고 교실 너머의 사람들도 모습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영혼의 형태와 색은 제각각이었지만 안에서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잠깐 지나자 멀리까지 퍼졌던 하얀색은 사라지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바로 시계를 봤는데 겨우 20초밖에 안 지났고 교수는 계속해서 시험 힌트를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집중했지만 방금 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대로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아까 그것이 계속 신경 쓰인다. 분명 어제 훈련 때문에 생긴 것인데 아직은 정체를 잘 모르겠다. 천천히 그 때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하얀 배경에 영혼들의 형태만 어렴풋이 보였다. 눈으로 본 죽은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정확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리고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호랑이는 자수가 구미호의 환각 속에서 진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했지만 이 상태로는 진실을 파악할 수 있더라도 싸움에는 실제로 활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훈련을 다 끝내면 뭔가 달라질 것 같다. 혹시 모르니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혼자서 구석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여자애가 식판을 들고 이쪽으로 온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빠 왜 밥 혼자 먹어요?”


그녀의 그 한마디는 안 그래도 복잡한 내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선 이 여자의 정체부터 파악해야 한다. 매일 집에서 게임을 하던 설공침에게 여자 친구가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동아리도 안하기 때문에 동아리 후배도 아니다. 옆에 내려놓은 책의 제목은 일반심리학 전공 책이기 때문에 과 후배도 아니다.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누구세요?”


“저 김미영이요. 저번 학기에 스피치와 토론 같은 조였잖아요. 같이 밥도 먹고 토론준비도 열심히 했었는데 벌써 까먹었어요?”


“아니야 기억나. 잠깐 생각이 안 났어. 근데 넌 왜 여기서 혼자 먹어?”


“수강신청 다 튕겨서 오늘 시간표가 동기들이랑 다 달라요. 오빠도 이 시간대에 같이 먹을 사람 없으면 앞으로 저랑 먹어요.”


“어 그래. 안 바쁘면.”


“그러면 오빠도 월요일 시간표 비슷하잖아요.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같이 먹어요.”


곤란하다. 물론 설공침은 학교생활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학교 안의 인연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가 쌓은 인간관계를 바꿔놓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이 여자에게 가까워져서도 안 되고 더 멀어져서도 안 된다. 딱 가끔 보면 인사하는 정도의 선만 유지해야한다. 적당히 변명거리를 대서 피해야겠다.


“그 날은 잘 모르겠어. 약속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수요일은요?”


“나중에 체크 해보고 알려줄게.”


“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여자애가 뜬금없이 물어본다.


“오빠는 여자 친구 왜 안 사귀어요?”


“음....... 귀찮아서?”


“아, 그렇구나.”


다시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곤란한 상황이 왔다. 나는 다 먹었는데 앞에 여자애는 다 먹으려면 조금 멀어 보인다. 가고 싶은데 먼저 가버리면 너무해 보이고 그렇다고 계속 여기에 앉아 있자니 불편하다. 마음속으로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는데 갑자기 아까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앞에 있는 여자를 포함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흐릿한 영체로 보인다. 파악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다가 학생식당 위층에서 조금 다른 영혼을 발견했다. 분명 다른 영혼들처럼 안쪽에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순환하고 있는데 차가운 것이 지나치게 까맣게 보인다. 영혼 자체가 약간 거뭇거뭇한 느낌이 나는 영혼은 있었지만 그 안에 순환하고 있는 것이 새까만 것은 처음이다. 사라지기 전에 빨리 가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잠시 뒤 원상태로 돌아왔다. 여자애한테는 미안하지만 어디 멀리 가기 전에 가봐야겠다.


“미안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


“네? 네.......”


여자애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니 더 미안해졌다. 그래도 그 검은색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식당을 나와 위층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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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8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1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4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9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3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2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7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6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50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8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9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3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5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4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8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80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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