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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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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78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3.20 11:24
조회
262
추천
2
글자
8쪽

78화 전우치전(14)

DUMMY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상처 난 부위가 타오르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도 안 잡힌다. 방금까지 같이 싸웠는데 어째서 내게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녀에게서 요기가 느껴지는지 이해가 안 간다.


화담을 바라봤다. 전투 중 우리의 공격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 곳곳에 부정으로 오염된 상처가 있다. 마치 요괴에게 당한 것 같은 상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뭐가 사실이었고 뭐가 가짜였는지 구별이 안 된다. 지금 내 옆에서 나를 비웃고 있는 그녀가 어릴 적 보았던 그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던 그녀는 사라지고 추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요괴만 남아있다.


완전히 속은 것 같다. 어릴 적 추억에 잠겨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녀를 도왔다. 꼬리 아홉 달린 요괴라면 구미호밖에 없다. 나는 화담 선생을 포함해 여러 명의 도사가 몇 달에 걸쳐 봉인한 요괴를 너무나 쉽게 풀어줬다.


이제 선생님과 지낼 수 없다. 어차피 힘들기만 했던 인생 이제 갈 곳도 없는데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편할 것 같다. 몸이 점점 차가워져 간다. 머리도 멍해진다. 미칠 듯이 아프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편해질 것이다.


점점 잠이 쏟아지면서 편안해지는 가운데 갑자기 머릿속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그러면서 굉장히 화가 났다. 가슴속에 답답한 것이 꽉 막히더니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


억울하다. 이제야 겨우 뭔가 자리가 잡혀가는데 이제야 겨우 있을 곳을 찾았는데 전부 망가져버렸다. 복수하고 싶다. 저 요괴 년을 찢어버리고 싶다. 아직 죽기 이르다. 갈 때 가더라도 저 년한테 한방 먹이고 싶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치료를 시작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빠르게 활성화시키느라 속이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없다.


구미호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벌레 보듯이 한번 쳐다보고 돌아섰다. 그녀는 다리에 박힌 창을 뽑아 부셨다. 창에 꿰뚫렸던 상처는 순식간에 매워지고 아홉 갈래의 꼬리 끝에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요괴는 아홉 개의 불덩이를 하나씩 날리면서 화담 선생에게 접근했다. 선생님은 양 손의 지팡이에 기를 담아 쳐내면서 불꽃을 흘려냈다. 대부분의 공격이 옆쪽으로 빗겨가긴 했지만 선생님의 검은 기와 요기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는 게 보였다.


선생님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휘청거렸다. 그 사이 빠르게 접근한 구미호가 은색 기운을 두른 손으로 화담 선생의 심장을 노렸다. 겹쳐진 두 개의 지팡이에 얼음을 둘러서 겨우 막긴 했지만 지팡이가 모두 반 토막 나버렸다.


그는 재빨리 등에서 지팡이 하나를 꺼내 구미호가 접근하지 못하게 벽을 치고 얼음길을 만들어 뒤쪽으로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거리를 벌린 화담선생은 품에서 부적 세 개를 꺼내 땅에 펼치고 그 위에 지팡이를 꽂아 세웠다. 그리고 남아 있는 모든 기를 끌어 모아 지팡이 끝에 집중시켰다.


구미호는 가볍게 벽을 부수고 꼬리에 부정한 기운을 감은 채 화담 선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홉 개의 꼬리가 아홉 개의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공격이 날아가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대신 그의 환수가 앞으로 뛰어나와 뿔로 꼬리들을 쳐냈다.


몇 차례의 공격을 받아 낸 뒤 사슴의 양쪽 뿔은 모두 부러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 환수는 구미호를 향해 맨 몸으로 달려들었다. 선생님의 환수는 구미호의 손날에 목이 잘렸고 그 잔해는 은빛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구미호는 온 몸에 푸른 불꽃을 두르고 선생님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나는 대충 치료를 마치고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바람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상처부위가 쑤셔서 제대로 조준을 못했고 내 공격은 전부 빗나갔다.


구미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화담 선생의 바로 앞까지 갔다. 그리고 그를 공격하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한 곳에 응축되어 있던 차가운 기가 폭발하였고 주변에 검은 안개가 깔렸다. 안개는 순식간에 선생님이 있던 곳으로 모였다.


화담 선생의 앞에는 얼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 기둥은 지금까지 본 검은색 중에 가장 진한 검은색을 띠고 있다. 얼음이라기보다는 흑수정에 가까워 보인다. 저 정도로 강하게 기가 서린 얼음에 갇힌 거라면 아무리 구미호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손으로 직접 한방 먹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편안해져서 그런지 잠이 쏟아졌다. 선생님도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서 그런지 축 늘어지셨다. 싸움에서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힘들어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눈을 감고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불안해 보인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자려고 드러누웠다. 눈이 절반 쯤 감겼을 때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잠시 뒤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쾅, 쾅, 쾅, 펑’


갑작스러운 소리에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얼음기둥에 금이 가 있었다. 얼음 곳곳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담 선생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얼음 조각들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커다란 조각 하나가 기둥에서 떨어져 나갔다. 한차례 더 굉음이 나고 기둥은 조각조각 나서 무너져 내렸다. 그 잔해가 움찔움찔하더니 속에서 구미호가 튀어나왔다. 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내 기운을 차리고 선생님을 노려봤다.


구미호는 요기를 방출하면서 화담 선생을 끝장내려 하고 있다. 놈은 선생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놈을 막기 위해 손에 부정을 막는 부적을 붙이고 바람을 모았다. 바람은 평소보다 훨씬 적게 모였다. 이 정도로는 작은 상처도 내지 못한다.


나는 부적을 떼버렸다. 그러자 부정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모여들었다. 손이 조금씩 저려왔지만 이 정도까지 날카롭게 다듬으면 놈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을 날리기 위해 구미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너무 가까이 있다. 게다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공격을 날리지 못 하고 계속 망설였다. 손의 감각도 점점 무뎌졌다. 구미호는 어느새 화담 선생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놈이 요기를 담은 손으로 그를 공격하려 할 때 선생님이 눈을 떴다. 그러자 무너졌던 얼음 잔해들이 검은 안개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구미호를 덮었다. 화담 선생은 나를 보고 소리쳤다.


“지금이다.”


그는 확신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그 때문에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저 안개가 뭘 의미하는지도 확실히 전해졌다. 나는 바람 칼날을 구미호가 아니라 안개 한 가운데를 향해 날렸다.


빠르게 날아간 바람은 안개가 가장 진한 부분에 닿았다. 나는 그 순간 뭉쳐진 바람을 풀어 회전시켰다. 그 때 이후 한 번도 성공하지 못 했다. 그래서 성공할 자신이 없다. 이걸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될 것 같다.


화담 선생의 검은 기운들이 내 푸른 기운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안개 속에서 검푸른 회오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안개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빨라졌다.


순식간에 커진 회오리는 구미호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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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金鰲新話)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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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4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9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3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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