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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58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2.25 01:34
조회
547
추천
5
글자
8쪽

43화 남염부주지(10)

DUMMY

염부주 성벽 남쪽 문


지금 나는 이 곳에서 문을 지키며 저승사자님들이 지나다닐 때 마다 문을 여닫고 있다. 최근 일주일간은 지옥의 정비 때문에 이승으로 나가는 통로가 닫혀서 평소보다 한가하게 일할 수 있었지만 이틀 전 이승에서 온 설공찬이라는 놈이 모처럼의 느긋한 시간을 망쳐버렸다. 나는 규정대로 대처했을 뿐이고 다친 것도 난데 그 놈의 이름이 특별한 색으로 적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관리자에게 혼났다. 그리고 사건 보고서를 쓰느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아까 그 놈이 저승사자님들과 함께 이 곳을 지나갈 때 그 놈 면상을 다시 봤었는데 싸울 때 생각이 떠올라서 그런지 갑자기 그 놈한테 맞은 옆구리가 아려오기 시작했었다. 지금은 그 놈이 지나간 지 꽤 돼서 괜찮았지만 막 봤을 때는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제 곧 그 놈이랑 같이 온 박생이라는 놈도 여기에 온다고 전달 받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더 기다리니 저 멀리서 먼지를 날리며 커다란 수레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아마도 여기 오기로 박생일 것이다. 수레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문을 열 준비를 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안 보인다. 수레가 이 곳에 도착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텅 비어 있었다. 지금 수레로 성 쪽에서 올만한 자는 설공찬과 함께 왔던 그 인간밖에 없는데 지금 이 안에 없다는 걸 확인하니 불안한 느낌이 든다. 중간에 무슨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수레에 올라타서 성 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중간정도 왔을 때 길에 수상한 자가 서있는 걸 발견했다. 수레를 멈추고 내려서 확인해보니 그의 옆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 복장으로 봤을 때 쓰러져 있는 건 오늘 이승으로 가기로 한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옆에 서있는 놈은 미라처럼 온 몸을 문자가 쓰여 있는 붕대로 감고 보라색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걸로 봤을 때 지옥을 탈출한 귀신일 것이다. 저 놈을 여기서 놓치면 안 된다. 반드시 잡아서 지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우선 지원요청용 불꽃을 하늘에 쏘아올리고 놈이 도망칠 수 없게 들고 있던 창을 녀석의 허벅지에 던졌다. 날아간 창이 다리를 뚫고 지나가 지면에 박혔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다. 창에 관통당한 허벅지도 어느새 검은 기운으로 다시 채워지고 찢긴 붕대도 원상태로 돌아온다. 놈은 붕대로 감싸진 틈 사이에서 붉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째려보며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소매에서 사슬을 꺼내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를 감아 전투태세를 갖췄다. 먼저 공격하고 싶었지만 녀석의 눈을 본 이후부터 느껴지는 압박감 때문에 함부로 달려들 용기가 나지 않는다. 놈은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불안한 느낌은 점점 강해진다.


걸어오던 귀신이 갑자기 멈춰서고 오른손 검지 끝부분만 붕대를 살짝 풀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검은 기운이 탁구공정도 크기로 망울망울 맺히자 민들레 홑씨를 불듯이 입에 대고 후~하고 분다. 그 검은 기운들은 공중에 흩날리다가 점점 커지면서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로 변하더니 나를 향해 날아와 주변을 감싸며 돌다가 한 마리씩 달려들었다. 몽둥이로 날아오는 놈들을 다 쳐내긴 했지만 팔과 다리 한쪽씩 까마귀의 날개에 베여 상처 입었다. 귀신은 자신의 까마귀가 다 사라지자 새로운 공격을 하기 위해 다시 손가락에 검은 기운을 모은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 커지자 이번에는 다른 쪽 손으로 잡고 엿가락 늘리듯이 쭉 잡아 늘려 채찍을 만들었다. 놈은 그것을 바닥에 한번 내리쳐보고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를 향해 휘둘렀다. 다리를 다쳐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몽둥이로 쳐내려고 했지만 몽둥이에 닿은 채찍이 그대로 휘감겨 버렸다. 채찍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몽둥이를 타고 올라와 내 팔을 감싼다. 뿌리치기 위해 팔을 당겨보지만 채찍은 더욱 세게 조여 오고 몸에서 힘이 빨려나가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의식이 거의 희미해지면서 눈이 반 정도 감겼을 때쯤 갑자기 하늘에서 붉고 거대한 것이 내려와 단번에 귀신의 채찍을 잘라버렸다. 그러자 점점 기운이 돌아오면서 다시 정신이 멀쩡해졌다.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보니 염라대왕님이 무장상태로 화염을 두른 검을 들고 서계신다. 평소 그의 어깨에서 움츠려 있던 화염도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원래 지금 쯤 재판을 하고 계셔야 할 분이 웬일인지 경비병보다도 먼저 이 곳에 오셨다. 강한 상대이긴 하지만 염라대왕님이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귀신도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오른손의 모든 손가락의 붕대를 풀고 다섯 손가락에 각각 어둠을 모은다. 대왕님은 그가 무언가를 시도할 시간도 주지 않기 위해서 곧바로 달려들어서 검을 휘둘렀다. 눈으로 겨우 좇을 정도로 빠른 검이었지만 귀신은 신속하게 뒤쪽으로 뛰어 크게 거리를 벌리고, 땅바닥에 다섯 손가락을 꼽아 넣은 다음 문손잡이를 돌리듯이 손을 돌리고 손가락을 뽑았다. 놈의 손가락과 함께 땅에서 사람만한 거대한 검은 덩어리가 함께 뽑아져 나왔는데 그가 이를 땅바닥에 던지자 꿈틀꿈틀 거리면서 늑대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귀신은 늑대의 등에 올라탄 다음 손가락 끝의 검은 기운들을 검 모양으로 만들고 염라대왕님께 달려든다. 대왕님은 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화염으로 날개 짓을 하며 공중으로 도약하였고 그 뒤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밑으로 빠르게 활강하며 귀신을 베었다. 놈은 대왕님의 검에서 나오는 불꽃에 타오르며 허공으로 흩날려버렸다. 원칙대로라면 귀신이 소멸하면서 안에 담겨있던 부정이 퍼지기 때문에 생포해야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아 대왕님도 그냥 베어버린 것 같다.


나와 대왕님은 귀신과 싸우느라 잊고 있었던 박생에게 가서 괜찮은지 살펴봤다. 그의 의식은 없고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이 나있었다. 영혼이 곧바로 소멸할 정도의 큰 상처지만 아직까지도 소멸하지 않고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가슴에 난 구멍 가장자리부터 홍옥과 비슷한 색의 액체가 꾸물꾸물 거리며 천천히 구멍을 매우고 있었다. 염라대왕님은 처음에 그의 상처를 보고 크게 놀라셨지만 자세히 살펴보고 안심하신다. 그리고 나에게 그를 수레에 실으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를 태우고 나도 염라대왕님과 함께 수레에 올라 철성으로 향했다.


철성에 도착하고 명령에 따라 그를 업고 어느 방까지 이동했다. 그 방 침대에 박생을 눕히자 대왕님이 이 곳에서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시고 어디론가 나가셨다. 그리고 잠시 뒤 정화와 재생능력이 뛰어난 향로를 이 곳에 피우고 나에게 이 방을 지키라고 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하는지 궁금해 물었다.


“도대체 이 자가 누구 길래 그 향로까지 쓰는 겁니까?”


“이자는 장차 염라대왕이 될 것이다.”


왜 대왕님이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지는 이해가 됐지만 도대체 왜 이런 자가 차기 염라대왕인지는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래도 대왕님이 정한 일이니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을 지키던 내가 이 곳을 지켜야 하는 게 맘에 들진 않지만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이 방을 지킨 지 하루 정도가 지나자 박생의 가슴에 홍옥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붉은 색의 매혹적인 빛을 내뿜는다. 이를 보고하자 염라대왕님은 내게 그를 이승으로 데려다 주라고 한다. 나는 그를 업고 밑으로 내려와 수레를 타고 문까지 이동했다. 그 곳에는 나를 대신해서 다른 이가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문을 열어주자 나는 박생의 영혼을 이승으로 데려가서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몸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와 보고를 마치고 문을 지키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염부주지 끝-


작가의말

수레의 이름은 ‘누군가를 옮기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에서 ‘愛迻谁’라고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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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7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2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2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1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0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5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5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39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7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8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2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1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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