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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92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1.22 13:05
조회
499
추천
3
글자
8쪽

63화 이생규장전(4)

DUMMY

도사가 뽑아낸 대나무들은 전부 부셔졌다. 창이 안 날아오는 사이에 얼른 주먹으로 땅에서 나온 뱀을 내리쳤다. 뱀은 도자기가 깨진 것처럼 산산조각 났다. 푸른색을 띤 겉껍질과 달리 속살은 짙은 은색이었다.


발이 자유롭게 되었기에 도사에게 접근해서 공격하려 했다. 그래서 빠르게 도사 쪽으로 달려가는데 도사는 뒤로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하기 전에 해치우려고 가까이 가자마자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그는 몸을 뒤로 살짝 빼서 피한 다음 내 허벅지를 밟고 뛰어 올라 가슴을 밀어 찼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날아갔다. 다시 일어나서 그를 보니 파란 기운이 회오리치며 손과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계속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손을 물 젓듯이 부드럽게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전통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저 특유의 몸놀림은 분명 본 적이 있다. 작년 단옷날 무형문화재 시연 행사에 놀러갔을 때 그곳에서 무형문화재 지정 32주년 기념으로 택견 시범을 보여줬다. 지금 도사가 하고 있는 동작은 그 때 택견 겨루기를 하던 사람들이 했던 자세와 정확하게 같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쉴 새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 평소에 보던 태권도나 킥복싱 발차기와는 달리 날아오는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다. 한번 발이 날아왔으면 땅에 붙었다가 다시 와야 하는데 밑을 공격했던 발은 다시 부드럽게 올라와 안면을 노렸다. 내가 뒤로 물러나면서 피하면 발을 바꾸면서 들어와 또 다시 공격을 해댔다. 다행히 가드는 제대로 하고 있어서 머리를 맞지는 않았지만 계속 정강이로 들어오는 발길질에 다리가 아려왔다.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공격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왔다. 잘 피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지만 그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이대로는 맞다가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빠르게 뒤쪽으로 물러난 다음 손에 두르고 있던 사슬들을 풀고 한 갈래로 뭉쳐 밑쪽으로 휘둘렀다. 그는 발차기를 하려고 이미 한쪽 발을 공중에 들고 있던 상태였기에 사슬에 다른 쪽 다리를 맞고 앞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나는 뭉친 사슬을 풀어 빠르게 손을 감싸고 휘청거리는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려는 무게중심을 그대로 앞으로 실어서 구르기를 하는 동시에 한쪽 발을 펴서 발뒤꿈치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무게가 그대로 실렸기에 그 충격은 상당했다. 쓰고 있던 투구는 깨졌고 머리는 속에서부터 울렸다. 그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손 모양을 닭발처럼 하고 내 눈을 찔렀다. 아무것도 안보여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허벅지에 한방 세게 찍히고 쓰러지면서 다시 머리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걸 느끼고 난 뒤 다시 눈을 떴다. 내 손은 어떤 목각인형의 가운데를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도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나뭇가지들은 부러져 있었고 잔디밭 곳곳이 패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려 해도 머리를 맞은 이후의 일들은 기억이 안 난다. 여기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달려가 누웠다. 온 몸이 욱신욱신 쑤셔온다. 심장에 위치한 홍옥은 뜨거운 기운을 마구 뿜어대고 있었다. 전에 저승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처럼 온몸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가웠다. 이번에는 동자들이 구하러 와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점점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온 몸으로 퍼진 기운들을 내 힘으로 다시 모아 홍옥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 나니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배가 고팠지만 한번 침대에 눕고 나니 일어나기 싫어졌다. 굉장히 피곤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몇 번 뒤척거리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일어나보니 점심때였다.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 스트레칭 좀 한 다음에 아침 겸 점심으로 간단하게 냉동만두를 쪄 먹은 뒤 저승으로 갈 준비를 했다. 염라대왕님께서 내가 한 선택은 존중해주겠다고 했지만 보고는 바로바로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승의 문을 열었다. 원래는 동자들이 없으면 문을 열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열쇠를 받아서 언제든지 열 수 있게 됐다.


문 안에 펼쳐진 길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양쪽에서 불이 무섭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쭉 걷다보니 철문이 나왔다. 나는 빨간 천 위에 하얀 글씨가 쓰여 있는 적배지를 문 위에 붙였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문지기가 나를 반겼다. 문지기는 나를 수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줬다.


수레를 타니 성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그리고 보고를 하기 위해 판관들에게 찾아갔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들에게 기억에 없던 부분은 생략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니 빠른 속도로 종이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자 완성된 보고서를 보여주며 잘못된 부분은 고쳐달라고 말했다. 그들이 적은 것은 완벽해서 고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려주고 판관실을 나왔다.


피곤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신하가 염라대왕님을 보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항상 같이 차를 마시던 곳에 가서 앉아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대왕님께서 들어와서 반대편에 앉으셨다.


“보고서는 잘 읽어봤습니다. 꽤 힘든 일을 직접 맡으셨더군요.”


“네. 일을 하다가 도사를 만났는데 귀신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도사들이 다 그렇죠. 저도 도사와 처음 만났을 때는 애 좀 먹었습니다.”


“대왕님 같은 분을 애먹게 했으면 보통 도사가 아니었겠네요.”


“평범한 도사는 아니었죠. 이승에서 사고를 많이 치긴 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재판을 받고 나서 바로 하늘에 올려 보내졌습니다.”


“어떤 자인지 궁금하네요. 그 자를 잡았을 때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까?”


“물론 해드리겠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제가 막 월직사자로 진급했을 때였습니다. 이승에서 수명이 다한 사람들을 저승에 보내고 있었는데 동방삭이라는 도사가 명부에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저승으로 보내려고 갔는데 죽어 있어야할 그의 육체가 살아있어 놀랐습니다. 그를 저승에 보내기 위해서 영혼을 빼내려고 했지만 도망가는 게 빨라서 몇 번 놓쳤습니다.


놈을 잡기 위해 다른 도사를 이용해서 함정을 팠습니다. 저승으로 잡혀온 도사 하나를 설득해서 일단 영혼을 육체에서 뺐습니다. 그 다음에 그의 영혼을 텅 빈 인간의 몸에 집어넣어서 협상을 했습니다. 동방삭을 유인해 오면 죄를 용서해주고 원래 육체와 함께 이승으로 돌려보내 준다고 하니 그 도사도 받아들였습니다.


동방삭이 의심은 많지만 호기심이 훨씬 강한 자라서 그걸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협상한 도사가 동방삭을 만나서 자기가 도술로 가짜 저승사자를 만들어 냈다고 하자, 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서 한번 보여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도사는 변장을 하고 있던 제게 동방삭을 데려왔고 놈이 저를 보고 신기해하고 있던 순간을 노려 빠르게 포박했습니다. 생각보다 잡히고 나니 순순히 받아들이더군요. 그를 저승으로 잡아가니 그 때의 염라대왕님께 공을 인정받아 바로 일직사자로 진급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몇 번을 실패하다가 딱 한번 운이 좋아서 잡았을 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0 매월당
    작성일
    16.01.22 14:09
    No. 1

    62화 수정했습니다. 설공찬과 박생이 만난 게 5월 초이고 4일간 저승에 있었으니 28일이 지났는데 날짜를 착각하여 5월초에 부는 봄바람답게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를 곧 여름이지만 4월에 부는 봄바람처럼이라고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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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1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4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9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3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3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2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7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6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50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8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500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9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3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5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4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8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80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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