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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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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80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1.28 23:25
조회
449
추천
3
글자
9쪽

68화 전우치전(4)

DUMMY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이었다. 간호사는 내가 일어난 걸 보고 몸 상태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뒤 검은 양복을 입고 어깨에 무슨 완장을 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내 외삼촌이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만나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내가 아기 때 잠깐 봐서 기억이 안 나는 거라고 했다.


외삼촌은 나를 병원지하로 데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향냄새가 확 퍼져왔다. 나는 그를 따라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입구 쪽에는 하얀 꽃으로 만들어진 화환이 놓여있었고 방 안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 중에는 동네 어르신들도 꽤 많이 있었다. 그들은 평소 마을회관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와는 다르게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외삼촌을 따라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 한쪽에는 하얀 꽃들이 잔뜩 장식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웃고 계신 할아버지 사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외삼촌이 시키는 대로 오른손을 위로하고 큰절을 두 번 했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크게 슬프지 않았다. 현실감도 전혀 들지 않았다. 가슴 한 가운데가 뻥 뚫린 느낌이 들었지만 이게 뭔지 잘 몰랐다. 그저 눈물만 찔끔찔끔 흘렸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엄마는 오지 않았고 주변 어른들은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봤다. 외삼촌은 내게 갈 곳이 없으면 자기 집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올 거라는 생각은 예전에 버렸기에 나는 이 사람을 따라가기로 했다.


외삼촌 부부는 결혼 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내 부모가 된 것처럼 굉장히 잘해주셨다.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시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셨다. 새로운 학교생활도 만족스러웠다. 도시라서 그런지 애들끼리 뛰어노는 것은 없었지만 학교가 끝나면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가서 함께 어울렸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택견을 수련하거나 숲에서 도술을 배우던 생활은 까맣게 잊고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다.



내가 외삼촌 집에 얹혀 산지 1년이 지났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익숙해진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오랜 노력 끝에 외숙모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나도 고마우신 분들께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같이 기뻐해줬다.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집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9개월 뒤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덜 자란 상태로 나왔기 때문에 병원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고 집으로 왔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매일매일 몸이 약한 아기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나는 문소리에 잠이 깼다. 내방 창문과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도둑이 들어온 거라고 생각하고 놈을 잡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불을 켜니 붉은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것은 내 쪽을 보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잠결에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안방에서 통곡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달려가 보니 외숙모가 아기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아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놈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 붉은 형체가 내 주변에 올 때마다 소중한 사람을 한명씩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저번에 한 번 겪고서도 막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했다.


아기가 죽은 뒤 집안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외숙모는 항상 울 것 같았고 외삼촌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아기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 우리 세 명을 뒤덮은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가는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곳을 나왔다. 휴대폰과 지갑 그리고 가방에 옷 몇 벌 챙겨서 나온 뒤 막 떠돌아다녔다. 일주일간은 용돈 모아둔 걸로 버틸 수 있었지만 점점 돈이 떨어지면서 난감해졌다. 하지만 다시 그곳에 돌아가기는 싫었다.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며 방법을 찾아보다가 가출 팸 카페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멤버 한명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 그러자 남자 한명이 전화를 받았다. 내가 가출 팸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자 문자로 주소를 보낼 테니 그쪽으로 오라고 했다.


문자로 찍힌 주소로 갔더니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어느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왜 가출했는지 가출하고 얼마나 지났는지 지금 얼마나 갖고 있는지 등등 내 개인적인 정보를 묻고 나서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그러고 나서야 나를 멤버로 넣어주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인적이 드문 거리의 반지하 방으로 데려갔다. 방안은 굉장히 지저분했다. 옷과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 있었고 싱크대에는 음식찌꺼기가 묻은 그릇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형과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환영해주었다.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자유로웠다. 이곳에선 더 이상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여기서 지내는 대신 일을 해서 생활비에 보태야 했다. 나를 멤버로 넣어준 형은 내 사진을 찍어간 다음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아르바이트도 구해 줬다. 전단지나 신문을 돌리기도 하고 돈이 많이 부족할 때는 돌아가면서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며 이 곳에 지낸 지 삼 개월째 됐을 때 갑자기 가출 팸 리더가 사라졌다. 그냥 사라진 것도 아니고 이번 달 월세와 다른 형들 핸드폰을 훔쳐서 달아났다. 다음 주에 월세를 내지 못하면 방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우리는 3명이서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물류센터에서 무리를 한 형들은 허리가 나갔고 결국 나 혼자서 돈을 벌어야 했다.


일주일동안 벌긴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당장 내일 방값을 내야 하는데 8만원이 부족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집으로 걸어가다가 술에 취한 아저씨 한명이 길바닥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술에 곯아떨어져 있었고 거리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순간 나는 고민에 빠졌다. 밤새서 일하는 것보다 그냥 이 아저씨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게 훨씬 쉬워보였다.


나는 몇 분 동안 계속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돈을 훔치기로 결심했다. 주변에 cctv가 없는 걸 확인하고 아저씨 옷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안에 들어 있던 현금을 모두 내 주머니에 챙긴 뒤 빠르게 달아났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세보니 15만원이었다. 너무나 쉽게 돈이 들어왔다. 죄책감에 심장이 계속 쿵쾅거렸지만 밤새 무거운 상자를 나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치킨과 족발을 시켜먹었다. 어차피 공짜로 얻은 돈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막 썼다.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졌다. 형들은 몸이 다 나아서 다시 알바를 하러 갔다. 3주가 지나고 다시 내가 일을 나갈 차례가 왔는데 너무 하기 싫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려니까 정말 귀찮았다.


규칙은 규칙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일터로 가는데 나랑 비슷한 또래의 중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교복 위에 비싼 패딩을 걸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분명히 지금 하려는 게 나쁜 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울 뿐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들은 뿌리치려고 했지만 내가 힘으로 누르자 내가 가자는 대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그들 주머니에 있던 돈과 패딩을 빼앗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뺏은 돈을 보여주면서 내가 일해서 번 것이라고 거짓말 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말을 그대로 믿었다. 돈을 얻는 게 너무 쉬웠다. 계속 마음 한구석이 찔리긴 했지만 어느 순간 무뎌졌다. 나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비슷한 짓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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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작 줄거리 15.12.12 668 0 -
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4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9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3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 68화 전우치전(4) 16.01.28 450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4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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