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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46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1.18 01:52
조회
457
추천
3
글자
9쪽

59화 설공찬전(16)

DUMMY

영혼의 크기로만 보면 어린아이 같지만 안에 쌓인 부정의 농도는 지금까지 만났던 귀신들 중에서 가장 진하다. 이렇게 더러운 보라색을 가진 귀신은 하나밖에 없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만날 거란 보장이 없다.


끊어질 듯 말 듯한 자수를 겨우 겨우 유지하며 귀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빛이라고는 깜박거리는 가로등 하나밖에 없는 골목에서, 아이귀신은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다. 놈은 자신의 영혼에 있는 보랏빛으로 땅에 엎드려 있는 여자를 묶어 못 움직이게 하고 등에 올라타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말을 타는 시늉을 한다. 머리채가 세게 잡혀 올라갈 때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저번에 학교에서 본 김미영이었다.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빠르게 달려가서 삼수를 개방한 오른손으로 귀신의 얼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날아간 아이귀신은 다시 일어나서 나를 보며 소름끼치게 웃는다.


“공찬아, 내가 다른 애랑 노니까 화난거야? 걱정 하지 마. 예전에는 네가 하얀 강아지로 나를 쫓아내서 미웠지만 지금은 다 용서했어. 저번처럼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놀아줄 수 있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 귀신은 김미영을 묶고 있던 보랏빛 기운을 내게 집중시켰다. 갑작스럽게 날아와서 반응을 하기도 전에 묶여버렸다. 완전히 묶여서 삼수도 은장도도 사용할 수 없지만 내 영혼 그 자체의 힘은 쓸 수 있다. 은빛으로 보랏빛을 밀어내고 은장도로 끊어냈다. 그러자 놈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같은 것을 날려댄다. 빠르긴 하지만 패턴자체는 단조로워서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녀석이 날리는 공격들을 피하거나 쳐내면서 빠르게 다가가 주먹을 날렸지만 겉을 덮고 있는 진한 보라색 기운 때문에 공격이 통하질 않는다. 날아오는 공격을 다시 피하고 이번에는 머리에 은장도를 꽂아 부정을 빼냈다. 그리고 부정이 빠져 기운이 약해진 틈을 타서 삼수로 심장을 꿰뚫으려 했다. 하지만 옅어진 보라색 기운 때문에 드러난 아이의 얼굴을 보고 당황한 나는 손을 멈췄다.


분명 이 귀신은 어렸을 때 나와 같이 놀던 아이귀신이었다. 아버지가 백구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갑자기 찾아와서 백구를 죽이고 난 뒤로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 그 귀신이다. 그리고 그는 예전에 내가 하얀 강아지를 이용해서 자신을 쫓아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져서 잠깐 멈칫했지만 나와 내 동생을 죽게 한 놈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시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 때문에 나는 그 놈을 죽이지 못했다. 내 손끝이 놈에게 닿기 바로 직전에 빠르게 날아온 구미호가 아이를 채갔다. 그리고 아이귀신을 옆에 내려둔 다음 나를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자수가 없을 때는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구미호의 영혼에서 아홉 갈래로 뻗어 나온 은색 꼬리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아홉 개의 꼬리들은 길게 뻗어 나와 여러 방향에서 날아온다. 도저히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날아온 꼬리들은 나를 감싼 다음 조르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히면서 온 몸이 짓이겨지는 느낌이 든다. 내 영혼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라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점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됐다. 그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발버둥을 쳐봤지만 더 세게 조여 온다.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 주머니에 넣어뒀던 구슬이 생각이 났다. 최대한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잠시 동안 팔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빠르고 손을 주머니에 넣어 구슬을 으깨는 순간 힘이 다하면서 갑작스럽게 압박이 들어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지난 한 달 동안 거울에서 보던 모습이 누워있다. 정신이 멍하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누군가 이쪽으로 온다. 갈색 단발머리는 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건다.


“정신이 들었어요?”


“누구세요?”


“그게 힘들게 구해준 사람한테 할 소리에요?”


“잘 모르겠는데요.”


여인의 몸에서 검은 나비가 나와 머리에 붙자 갈색 단발머리가 긴 검은 생머리로 바뀌었다. 내게 구슬을 준 여인이다.


“이래도 기억 안나요?”


“기억났어요. 근데 어떻게 된 건가요?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나요? 그리고 여긴 어디죠?”


“여긴 제 집이고 당신은 거의 한달 가까이 쓰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날 저는 당신에게 준 연락용 나비가 날아와서 급히 달려갔는데 그곳에서 구미호가 당신을 완전히 부수려고 하더군요. 가까스로 꼬리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하고 최대한 빨리 도망쳐서 겨우 살아난 거예요. 아니 어쩌다가 그런 요괴랑 싸울 생각을 한 거예요? 아무리 약해진 상태라지만 구미호는 저 같은 최상급 도사 서너 명이 모여야 겨우 잡을 정도에요.”


“그게.......”


“그리고 아무리 부정이 무서워도 그렇지 인간의 몸을 뺏으면 어떡해요? 지금 이 사람 상태 좀 보세요. 영혼이 너무 약해졌잖아요. 음양의 흐름도 지나치게 느려졌고요. 제가 당신을 몸에서 안 빼놨으면 영혼 자체가 다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었어요. 당신이 환자만 아니었으면 저한테 엄청 혼났을 거예요.”


“죄송해요. 근데”


“아, 그리고 다 나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요. 당신 영혼 형체가 많이 찌그러져서 곳곳에서 음양의 흐름이 막혔어요. 제가 부적을 붙여놔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긴 하지만 아직도 위험해요. 한 일주일정도는 더 안정을 취해야 돼요. 저는 이제 일하러 나갈 테니까 저 올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누워 있으세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내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수를 열어 내 상태를 살펴봤다. 몇 군데 흐름이 느려지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부적이 붙어 있다. 부적에서 나온 검은 기운은 빙글빙글 돌면서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그녀는 내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빨리 훈련을 해야 한다. 구미호를 죽이기 위해서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선 공침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놓은 다음 머리맡에 놓인 은장도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온 몸이 삐걱거리긴 하지만 버틸만하다. 육체가 없어서 부정이 들어올까 무섭지만 전에 비해서 공기가 훨씬 깨끗해졌고 낮이라서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는다.


산에 도착해서 항상 훈련하던 장소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중간에 다리 힘이 풀려 등산로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호랑이가 이곳으로 왔다.


“오랜만이구나. 몸은 어쨌느냐?”


“주인에게 돌려줬습니다.”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 걸 보니 구미호라도 만난 모양이구나.”


“네. 손도 써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했습니다.”


“기분이 어떠하냐?”


“분합니다. 놈을 죽이고 싶습니다. 지금 바로 저를 훈련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 상태로는 무리다. 잠시 기다려 보거라.”


호랑이는 집중을 하더니 몸 안의 은색 기운을 꺼내 여러 갈래로 나눈 다음 침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음양의 흐름이 느린 곳을 찔렀다. 그러자 삐걱대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료를 잘해놨구나. 부적은 일단 붙이고 있어라.”


“네”


“육체도 없으니 훨씬 더 강도를 높여서 하겠다. 그리고 네가 필수를 완전히 개방할 때까지 훈련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각오는 됐느냐?”


“물론입니다.”


“그럼 시작하겠다.”


호랑이로부터 나온 거대한 은색 기운은 나를 감쌌다. 내가 내 자체의 힘으로 밀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 조금 밀었지만 다시 들어온다. 힘을 모아 한꺼번에 많이 밀어보기도 했지만 민만큼 다시 돌아왔다. 이 힘겨루기는 내가 이 은색 기운을 끊어낼 때까지 계속 되었다.



한 달 간의 훈련 끝에 마침내 속박을 내 힘으로 끊어냈다. 어느새 내 어깨에는 은색 영혼이 수천갈래로 가늘게 갈라져 나와 갈기처럼 보이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삼수와 같은 눈부신 은색을 띠고 있다. 호랑이는 이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끝났다면서 어디론가 가버렸고 나는 산을 내려와 구미호를 찾기 시작했다.


설공찬전 끝


작가의말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헷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연참대전이 끝나면 지금까지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연대표를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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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0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0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3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2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8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4 3 6쪽
81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2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2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2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8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0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1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1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6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5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4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4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49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0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7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0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4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8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5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8 2 8쪽
»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7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8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3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2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5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4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39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3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2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59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7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7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8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7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3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2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7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1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79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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