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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49,991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6.04.04 02:08
조회
302
추천
2
글자
9쪽

80화 전우치전(16)

DUMMY

부정 덩어리가 그를 덮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부적이 부정을 날리긴 했지만 이미 상당량이 상처에 스며들었다. 화담 선생은 내 앞에 쓰러져 괴로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을 뻗어 봤지만 그에게 닿지 않는다. 회장을 불러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는 나를 위해 달려와 줬지만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내가 너무 미워서 참을 수가 없다. 가슴이 답답하다. 속에서 뭔가 부풀어 오른다. 그것은 마음속을 채우고 넘쳐서 눈물로 터져 나왔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다. 그저 눈물만 계속 쏟아져 나온다.


너무 아프다. 숨도 제대로 안 쉬어 진다. 눈이 감긴다. 깜깜하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점점 아득해진다.



갑자기 폐로 공기가 확 차오르는 게 느껴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낯선 방이다. 방 한구석에는 향로가 피워져 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봤지만 머리가 멍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밖에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른쪽 옆구리가 쑤셔오면서 그대로 다시 누웠다. 옆구리뿐만 아니라 온 몸이 욱신거린다. 밀려오는 통증과 함께 그날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생각났다.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나 마음이 무거워진다. 돌덩이들이 차곡차곡 내 위에 쌓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담 선생이 내 앞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각났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굴러와 가슴을 짓이기는 느낌이 든다. 이런 기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답답하다.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려도 나아지지 않는다. 미칠 것 같다. 갑자기 숨쉬기도 힘들어졌다. 숨을 깊게 들이켜 봤지만 끝까지 차오르지 않고 답답한 기분만 남는다.


문이 열리고 우투리 형이 들어왔다. 형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몸 상태는 좀 어때?”


“그럭저럭 괜찮아요. 근데 여긴 어디에요?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여긴 우리 집이고 선생님은 지금 집중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계셔.”


“많이 안 좋으신가요?”


“그게 말이지. 음, 오염도가 좀 심하긴 하지만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금방 깨어나실 거야. 강하신 분이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마.”


“저 때문에 선생님이, 저 때문에.......”


우투리 형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혹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게 그러니까요.......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래 알았어. 나중에 기억나면 말해줘.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우투리 형은 방을 나갔다.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한 짓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



정신을 차린 지 삼 일이 지났다. 나는 계속 우투리 형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상체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목발 없이는 걸을 수가 없다. 형은 다 나을 때까지 여기서 지내라고 한다.


향로와 부적으로 상처에 녹아든 부정은 전부 정화했다. 하지만 상처 그 자체는 완전히 낫지 않았다. 스스로 치료하려고 했지만 그 날 한계까지 기를 사용한 탓에 도술이 안 써진다. 조금씩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계속 방에만 있는 나를 위해 우투리 형은 노트북과 작은 탁상을 가져다줬다. 나는 노트북으로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자꾸 무겁게 가라앉아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방 안에서 게임만 하면서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어느 정도 몸도 회복되고 기도 다시 순환하기 시작했다. 도술로 다리를 치료하니 이전처럼 걸을 수 있게 됐다.


갑자기 밖에 나가고 싶어서 대충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온 세상이 하얗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겨울이 온 것 같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거리에는 나밖에 없다. 새하얗게 깔린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찍힌다.


거리의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있다. 하지만 강하게 불어온 바람 탓에 전부 땅바닥에 떨어졌다. 눈꽃은 지고 휑한 나뭇가지만 남아있다. 바람에 휩쓸렸던 눈꽃 한 송이가 얼굴에 닿았다. 차갑다. 뭔가 그리운 느낌이 난다. 뺨에 붙은 눈이 녹아 흘러내린다.


오랜만에 걸었더니 금방 피곤해졌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게임을 했다. 다른 생각할 틈을 없애기 위해서 쉬지 않고 게임만 했다. 밥도 대충 챙겨먹고 완전히 몰두했다.


저녁이 되고 우투리 형이 돌아왔다. 형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내게 말했다.


“우치야, 지금 화담 선생님께 가봐야 될 것 같다.”


“네?”


“오늘 오후에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셨어. 아마 오늘 밤이 고비일 것 같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이 바르르 떨린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견디지 못할 것 같다. 그를 보는 것이 너무 무섭다. 하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다시는 그를 못 볼 수도 있다. 아마 평생 후회할 것이다. 가야한다. 마음을 잡아야한다. 늦기 전에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우투리 형의 차에 올랐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달려서 어느 시골로 왔다. 공기가 유난히 깨끗한 마을이다. 하늘에 있는 별들도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는 마을 한 구석에 있는 큰 황토 집에 들어갔다. 우투리 형은 밖에 있고 나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서 부적이 붙어 있는 문을 열었다. 순간 진한 향냄새가 퍼져 나왔다. 방안 가득 연기가 채워져 뿌옇게 보인다. 그 가운데에 온 몸이 보랏빛으로 물든 선생님이 보인다.


화담 선생의 기력은 바닥나있다. 완전히 부정에 침식당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했던 짓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마음이 괴로워서 계속 눈을 돌렸지만 아무리 피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다.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계속해서 빌었다. 선생님께 들리지 않을 것이다. 설령 들리더라도 내 잘못을 용서받지는 못 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빌었다.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있었다. 계속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차라리 누군가 와서 내가 한 잘못에 대해 벌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나를 고통스럽게 해줬으면 좋겠다. 잘못은 내가 해놓고 나만 편하게 있으려니 괴롭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우투리 형이 아니다.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 불길한 기운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붉은 형상이 보인다. 예전에는 흐릿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뚜렷하게 보인다. 검은 도복 위에 핏빛 갑옷을 입은 남자가 붉은 기운을 뿜어대고 있다. 분명 화담 선생님을 노리고 온 녀석이다. 내가 막아야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나는 발에 회오리를 두르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빠르게 접근해서 머리를 노리고 전력을 다해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놈은 한쪽 팔로 쉽게 막았다. 분명 내 다리에는 푸른 기가 강하게 휘감겨 있었는데 놈의 붉은 기운에 닿자마자 흩어져버렸다. 그 상태로 바로 발을 바꿔 몸통을 노렸지만 놈은 무릎을 들어 올려 막고 가까이 접근해서 팔꿈치로 배를 찍었다.


나는 맞은 곳을 움켜쥐면서 빠르게 뒤로 빠졌다. 놈의 소매에서 여러 갈래의 사슬이 나와 내 쪽으로 날아온다. 이리저리 도망 다녔지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나는 그대로 묶여버렸다. 사슬을 타고 불꽃이 다가온다.


불꽃이 내 몸에 닿기 바로 직전 사슬이 끊어지면서 뒤로 자빠졌다. 비록 보랏빛으로 물들었지만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붉은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는 갑옷을 입은 놈에게 다가갔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아직 제정신일 때 얼른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놈이 바닥에 손을 대니 화담 선생의 발밑에서 네모난 철문이 생겼다. 문이 열리면서 붉은 색 밧줄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선생님을 감싸기 시작한다. 이대로 놔두면 선생님이 영원히 가버린다. 보낼 수 없다. 나는 마지막 기를 다해 선생님을 데려가려는 놈에게 달려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다리가 얼어붙었다. 선생님의 도술이다. 도대체 왜 나를 막는지 모르겠다.


얼어붙은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점점 문 안으로 끌려간다. 발버둥 쳐봤지만 얼음은 깨지지 않는다. 내가 쓸모없는 노력을 하고 있던 사이 문이 완전히 닫혀버렸다. 나는 이번에도 지키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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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7화 용궁부연록(1) 16.05.21 241 2 7쪽
87 86화 진가쟁주 설화(5) 16.05.10 231 2 7쪽
86 85화 진가쟁주 설화(4) 16.05.07 414 2 7쪽
85 84화 진가쟁주 설화(3) 16.05.03 243 3 7쪽
84 83화 진가쟁주 설화(2) 16.05.01 258 2 7쪽
83 82화 진가쟁주 설화(1) 16.04.29 269 2 7쪽
82 81화 전우치전(17) 16.04.26 375 3 6쪽
» 80화 전우치전(16) 16.04.04 303 2 9쪽
80 79화 전우치전(15) 16.03.27 313 2 8쪽
79 78화 전우치전(14) 16.03.20 263 2 8쪽
78 77화 전우치전(13) 16.03.12 309 2 7쪽
77 76화 전우치전(12) 16.03.03 301 3 7쪽
76 75화 전우치전(11) 16.02.24 332 2 8쪽
75 74화 전우치전(10) 16.02.19 292 1 8쪽
74 73화 전우치전(9) 16.02.14 357 3 8쪽
73 72화 전우치전(8) 16.02.10 397 2 10쪽
72 71화 전우치전(7) 16.02.05 346 3 8쪽
71 박생 연대표 16.02.01 394 3 5쪽
70 70화 전우치전(6) 16.01.30 325 4 8쪽
69 69화 전우치전(5) 16.01.29 355 3 7쪽
68 68화 전우치전(4) 16.01.28 450 3 9쪽
67 67화 전우치전(3) 16.01.27 431 3 7쪽
66 66화 전우치전(2) 16.01.26 388 3 9쪽
65 65화 전우치전(1) 16.01.25 431 3 8쪽
64 64화 이생규장전(5) 16.01.23 375 3 8쪽
63 63화 이생규장전(4) +1 16.01.22 499 3 8쪽
62 62화 이생규장전(3) 16.01.21 399 3 7쪽
61 61화 이생규장전(2) 16.01.20 396 5 7쪽
60 60화 이생규장전(1) 16.01.19 349 2 8쪽
59 59화 설공찬전(16) 16.01.18 458 3 9쪽
58 58화 설공찬전(15) 16.01.16 388 3 8쪽
57 57화 설공찬전(14) 16.01.15 418 3 7쪽
56 56화 설공찬전(13) 16.01.14 329 3 7쪽
55 55화 설공찬전(12) +2 16.01.13 484 5 7쪽
54 54화 설공찬전(11) 16.01.12 493 4 7쪽
53 53화 설공찬전(10) 16.01.11 487 7 8쪽
52 52화 설공찬전(9) 16.01.10 436 4 7쪽
51 51화 설공찬전(8) 16.01.08 505 5 8쪽
50 50화 설공찬전(7) 16.01.06 440 4 8쪽
49 49화 설공찬전(6) 16.01.04 520 5 7쪽
48 48화 설공찬전(5) 16.01.03 404 4 8쪽
47 47화 설공찬전(4) 16.01.01 353 3 10쪽
46 46화 설공찬전(3) 15.12.29 460 3 9쪽
45 45화 설공찬전(2) +2 15.12.28 488 4 9쪽
44 44화 설공찬전(1) 15.12.27 551 6 9쪽
43 43화 남염부주지(10) 15.12.25 548 5 8쪽
42 42화 남염부주지(9) 15.12.23 319 5 8쪽
41 41화 남염부주지(8) 15.12.22 549 7 10쪽
40 40화 남염부주지(7) 15.12.20 378 4 8쪽
39 39화 남염부주지(6) 15.12.18 372 6 9쪽
38 38화 남염부주지(5) 15.12.16 434 5 7쪽
37 37화 남염부주지(4) 15.12.14 403 5 8쪽
36 36화 남염부주지(3) 15.12.12 278 5 7쪽
35 35화 남염부주지(2) 15.12.11 528 5 8쪽
34 34화 남염부주지(1) 15.12.11 613 7 7쪽
33 33화 호질(2) 15.12.09 516 8 8쪽
32 32화 호질(1) 15.12.07 622 7 7쪽
31 31화 만복사저포기(26) 15.12.06 580 8 7쪽
30 30화 만복사저포기(25) 15.12.04 624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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