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지역해방전선의 이능력자로서(2)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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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눈의 늑대 토벌이 실패로 돌아간 지 이틀이 지났다. 이지후가 깨어난 곳은 병상이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고, 팔에는 링거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아직 몸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바로 주사 바늘을 뽑았다.
병실을 박차고 나왔다
참을 수 없는 죄책감과 분노가 뒤섞여 그를 괴롭혔다.
강문호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그 병실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신윤정이었다. 그녀는 목과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지후 선배, 사령관님 뵈러 가시는 건가요?”
이지후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눈은 냉담했다. 그녀를 지나치려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요.”
“너랑 내가 할 이야기가 뭐가 있어.”
허벅지에 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옷자락을 움켜줬다. 그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 계속 떨어졌다.
“정말 미안해요. 선배는 예전부터 후배들을 소중히 아꼈죠. 그거 잘 알고 있어요. 그 애가 죽은 거... 제 잘못이기도 하니까 사죄하고 싶었어요. 사령관님께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오는 길이에요. 저번 토벌은 나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선배가 맞았어요.”
이지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하다는 말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이제 와서 내 말이 맞았다고 하면 뭐가 바뀌어?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인 걸요. 정말... 죄송해요, 선배.”
“사과는... 죽은 사람한테 해야지.”
서늘한 목소리를 내고는 그녀를 지나쳐갔다. 하지만 치밀어 오른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겠는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 소리쳤다.
“너는 나한테 배웠었잖아.”
“선배는 이능력자란 그저 이생물체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했었죠. 누군가는 라면을 기가 막히게 맛있게 끓이는 능력이 있고, 다른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다듬는 능력이 있듯이... 이런 이상한 예도 들으셨고요.”
그녀는 눈물을 손으로 닥은 후, 말을 이어갔다.
“이능력이란 특권이 아니고,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기 위한 도구도 아니라고 했어요. 이능력은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물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눈물이 계속 흐르자 그녀는 말을 멈췄다. 대신 그가 입을 열었다,
“선물은 여러 사람이 나눠가질 때 의미가 있는 거라고 했었지. 그러니까 우리의 능력은 타인을 위해 있는 거라고...”
“하지만 선배의 그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
“분명 한중전쟁 때 리시콴을 막은 사람은 명경이 언니 혼자가 아니었잖아요.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였어요.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선배는 어떻게 됐어요? 그거 때문에 지금까지 고생만 하고 있죠. 반면 명경이 언니는 국민적 영웅이 됐고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크게, 깊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당시 정부에서 한중전쟁 때 했던 행동, 잘못된 것이었다고 사죄만 하면 공로를 일정부분 인정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선배는 거절했죠.”
“맞아. 거절했어.”
“왜요? 그 제안만 받아들였다면 선배는 그림자 영웅이 아니라 진짜 한중전쟁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잖아요.”
“내 신념이었어. 나는 특정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어. 그런데 그 행동을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해버리면...”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이능력을 그저 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릴 것 같았어.”
“저희 기수는 선배를 따라서 지역해방전선에 가입한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선배의 그 신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람이라면 나 자신부터 먼저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역해방전선을 택하지 않았어요.”
“내가 이능력자가 됐을 때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보 같지만 멋있는 사람이 되자는 거야. 그래서 한중전쟁 때 했던 결정 후회하지 않아.”
“그렇게 해서 선배에게 뭐가 남아요?”
“내가 바라는 세상이 남아.”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를 쳐다봤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누구나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야. 이능력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아까 명경이 이야기 했지? 그래, 내가 영웅이 되지 않으면 어때? 나는 그저 그림자로 남고 명경이를 영웅으로 만들어서라도 내가 바라는 세상이 온다면 그걸로 된 거잖아.”
“그런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아요.”
“알아.”
“네? 안다고요? 그런데 왜...”
그녀는 멍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나처럼 바보 같은 놈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천천히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내가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걸 위해서...”
“저는 여전히 선배의 이상주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녀는 이후 토벌 전에 김우영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지후가 강문호의 병실로 들어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바라는 세상... 바보 같지만 멋있는 사람...”
이지후가 병실로 들어서자 병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강문호가 보였다. 그는 온몸이 붕대투성이였는데, 웃으며 이지후를 반겼다.
웃고 싶어서 웃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곳 안동의 책임자. 패전의 암울한 기운을 억지로라도 변화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더더군다나 비공식 영토에서는 죽음에 익숙해지고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그가 말끔해진 턱을 만지며 말했다.
“이지후 씨는 나보다 상태가 심각한 걸로 알고 있는데, 벌써 움직여도 되나?”
“사령관님보다 열 살은 어리니까요.”
그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단지 그 이유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아닐 텐데.”
이지후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강영철, 그 사람을 잡을 생각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번 토벌 실패의 원흉이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인 것은 김우영과 신윤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결국 최종결정권자는 나지.”
강문호가 씁쓸히 웃었다.
“김우영은 자기 목숨 바쳐 마지막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런 사람한테 책임을 물으면 그건 예의가 아니죠. 그리고 사령관님과 윤정이는 적어도 목숨 걸고 싸우기라도 하지 않았습니까?”
“성격상 암살 같은 방법은 쓰지 않을 테고. 물론 용납도 못하지만. 합법적으로 처리할 계획이겠지?”
“당연합니다.”
“필요한 것은?”
“본부에서 박재성을 불러주십시오. 물론 비밀 임무로요.”
이후 이지후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강문호에게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강문호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 아마 안동의 사령관으로서 마지막으로 돕는 것일 테니.”
병실을 나온 이지후는 햇볕을 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한 기분이 조금이라도 가시게 하고 싶어서.
안동지부 건물의 주변을 걸었다. 하늘은 화창했다. 화단에 핀 꽃들이 이제 5월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날씨는 좋네.’
커피를 파는 부스를 향해 걸어갔다. 점원에게 주문을 하려는 순간 그는 마치 치매에 걸린 환자처럼 멍한 눈동자를 하고는 해야 할 일을 잊은 채 우두커니 멈춰 섰다.
커피 부스의 점원은 이제 갓 스무 살 정도 돼 보이는 덩치가 크지 않은 남성이었다. 그것 외에는 김연홍과 닮은 점이 하나 없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분위기도 모두 달랐다. 그런데...
가슴을 꽉 붙잡았다. 대낮에 그것도 사람 많은 곳에서 스물여덟 살이나 된 청년이 눈물을 흘리면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꾹 참았다.
하지만 그게 안 됐다.
‘씨발 이게 무슨 개쪽이야.’
무작정 뛰었다.
‘내가 더 강했으면. 내 지휘능력이 더 좋았으면...’
꽉 막힌 가슴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안동지부 건물 안에 있는 행정실이었다. 벌게진 눈으로 들어갔다. 사무를 보는 사람이 족히 오십 명은 됐음에도.
공식 영토와 통신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찾아갔다. 비공식 영토에서는 절차를 밟은 업무상의 이유가 아니라면 공식 영토와 통신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지후가 통신담당 직원에게 말했다.
“공식 영토로 통신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그건...”
“이번 토벌에서 제 멘티가 한 명 죽었는데... 그 녀석 형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싶어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가 눈물을 흘리자 직원은 난처하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 모습을 본, 행정실장이 말했다. 지난 번 토벌에서 신윤정을 보조해 지휘를 맡은 그 사람이었다.
“허락해드려.”
그러자 창가의 책상에서 사무를 보던 감시관 강영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사적으로 통신망을 이용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건 위법입니다.”
“위법 좆까라 하십시오. 정부가 버린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 희생됐는데, 왜 이렇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많습니까?”
행정실장의 예상치 못한 말에 강영철은 당황했다.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품위 없는 말을. 이지후의 통신을 허락하면 시말서 써야 할 겁니다.”
“그깟 시말서 열 장이고 백 장이고 쓰겠으니 조용히 하시라고요. 이건 이번 토벌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에 대한 존중이고, 젊은 나이에 아스라진 생명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입니다.”
기세에 눌린 강영철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지후는 행정실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 후, 전화를 걸었다. 뚜, 하는 대기음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연흠아 나다. 지후.”
- 어, 형? 무슨 일로. 비공식 영토에서 개인적인 통화는 금지 돼있...”
“미안하다. 정말로.”
- 연홍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군요.
“내가...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연홍이가 죽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정말 미안하다, 연흠아.”
- 제가 형을 모릅니까? 형이랑 함께 했는데, 연홍이가 죽은 건요... 그 녀석이 또 경...솔하게 행동해서... 그런 거...겠죠. 원래... 철딱서니가 없는 거... 형도 잘 알잖아요.
“그게 아니야. 내 실수로...”
- 형, 죄송해요. 전화... 끊을게요. 더 이상 통화 못하겠어요. 무리해서 연홍이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전화가 끊어졌다. 통신담당 직원은 만약을 대비해 어쩔 수 없이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도록 했었다. 그래서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통화 내용을 들었고,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강영철이 노성을 지르며 그 분위기를 깼다.
“아니, 토벌에서 사망한 사람의 소식은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전까지 그 가족들에게 전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이지후는 강영철의 말을 무시하며 벽을 바라봤다. 벽에는 지역해방전선의 상징인 팔이 긴 여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여신의 팔이 길어진 이유는...”
왜 갑자기 이 말을 읊조렸을까?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행정실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행정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말을 받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차별 없이 안아주기 위해서.”
모두가 놀란 눈으로 행정실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행정실장의 옆에서 업무를 보던 직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소리로 외쳤다.
“저는 지역해방전선의 이능력자로서.”
행정실 직원들은 차례차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이지후가 이번 토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멘티의 죽음에 얼마나 큰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범한 세상을 염원하며.”
“누구나 안전한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능력을 사용하겠습니다.”
지역해방전선의 이념이었다.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이 일어나 다시 한 번 그 말을 합창했다. 그리고는 이지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심지어 강영철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부소속의 파견 직원마저 그에게 예의를 표했다. 강영철이 그에게 말했다.
“아니, 자네까지 선동 당하면 어떻게 하나? 정신차려! 자네는 정부 소속이야.”
“그런 거 아닙니다. 제 의지대로 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지금 소속이 중요합니까?”
강영철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제가 만든 주인공이지만... 이지후는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ㅎㅎ;;
바보 같지만 멋있는 사람... 저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렵더라고요...
내일, 모레 이틀간 연재 없습니다.
토욜에 연재 재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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