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변화의 시작(3)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서문영은 두 번째 구효린이 약혼자 이민호를 불러내는 것을 목격했다.
구효린은 이민호에게 할 말이 있다며,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전투의 여파로 부상이 심한 상태였으나 흔쾌히 승낙했다.
항상 냉담하기만 하던 그녀가 이렇게 먼저 찾아왔는데, 지금 부상이 문제일까?
그들은 꽤 먼 거리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서문영은 계속 그들을 따라갔는데, 숲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감히 하지 못 했다.
이지후가 임무를 내릴 때, 구효린의 감지 이능력을 조심하라고 극히 당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숲에서 뭘 하는 거지? 들어가 보고 싶은데... 청력을 최대한 높여도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그녀는 숲의 주변을 돌며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을 찾았다. 잘 하면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느껴진 섬뜩한 감각. 고개를 돌리니 회색 로브를 전신에 뒤집어 쓴 두 명의 이능력자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빠가 전투는 무조건 피하라고 했어. 일단 대화를 해야 하나?’
왼쪽에 있는 이능력자는 일본도를 들고 있었다. 일본도에 보랏빛 기공이 물들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있는 이능력자의 머리카락이 자라나더니 그녀를 휘감기 위해 날아왔다.
이미 백여우로 변해있던 서문영은 손톱을 세워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어느새 그녀의 머리 위로 일본도를 내려치고 있는 이능력자에게는 냉기의 이능력을 발동했다.
- 스윽!
옆으로 몸을 피했음에도 일본도에 의해 방어구의 팔부분이 잘려나갔다.
‘엄청 날카로워. 둘 다 레벨 6인 거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숲 안으로 들어 간 구효린과 이민호는 의외로 서문영의 전투를 눈치 채지 못 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으며, 숲에 나무가 무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스르륵, 옷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드러난 하얀 속살. 쇠골부터 허리로 이어지는 유려하면서도 슬림한 라인은 풍만한 가슴과 어우러져 뇌쇄적이 느낌과 청초한 느낌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이민호는 바로 구효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내 두 사람의 뜨거운 신음소리가 들렸으나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 소리에 가려져 지워졌다.
***
게이트 강제 생성장치가 있는 곳에 거의 다 도착한 이지후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가장 큰 전력인 김명경이 잠시 이탈한 상황. 이 공백을 어떻게든 메워야했다.
‘가장 좋은 것은 연합 측과 윤성윤 측이 공멸해주는 건데...’
그의 예상으로는 연합 측의 전력이 유리했다. 일단 레벨 8이 둘이다. 이건창이야 상성상 윤성윤에게 약하겠지만 기동력이 좋은 구효수가 있으니 해결이 된다.
물론 1:1에서 구효수가 윤성윤을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윤성윤이 다른 이능력자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붙들어만 주면 연합측이 이길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동원한 이능력자들의 숫자는 윤성윤 측이 많지만 질로 따지면 연합측이 압도적으로 유리. 아무리 윤성윤의 지휘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이 차이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지후는 윤성윤 측이 밀리면 연합 측을 기습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기는 했다. 강동현이 보여줬던 구효린의 쪽지.
만약 그녀가 판을 뒤흔들만한 행동을 한다면, 예를 들어 구효수를 전장에서 이탈시킬 만한 일을 해준다면 상황은 뒤바뀌리라.
막연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그저 감이라는 것과 같다. 일단 불확실한 요소를 배제하고 양측의 전력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지후는 강철의 군주와 싸울 때, 유일신교 레벨 7의 이능력자 진명을 퇴장시켰다.
하지만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수가 나중에는 악수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지후가 진명을 이탈시킨 일이 그랬다.
회색 빛 대지 위에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이건창의 이능력 ‘사신의 검은 구름’이 윤성윤 측 이능력자들의 몸을 뒤덮었다. 몸에 닿은 이의 이능력을 빼앗는 효과가 있다.
“정화 능력, 해제능력 발동 해!”
윤성윤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그의 좌우에 있는 두 명의 이능력자가 사신의 검은 구름을 소멸시켰다.
이건창과 싸울 것을 예측한 윤성윤은 그의 이능력을 파훼할 방법을 충분히 고려해 부대원들을 구성했다.
이건창이 대형 낫을 휘두르며 윤성윤에게 달려들었다. 윤성윤은 부하들에게 다른 이능력자들을 상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본인이 직접 이건창을 상대할 의도.
윤성윤이 활시위를 당기자 화살은 이내 비수가 되어 이건창의 허리로 향했다. 이건창은 화살을 쳐냈으나 다시 날아오는 두 발의 화살에 눌려 뒤로 물러났다.
“계집애처럼 생긴 꼬맹이 새끼는 왜 갑자기 사라져가지고는. 병신 같은 새끼!”
윤성윤에게 점점 밀리는 형국이 되자 이건창의 입에서 연신 욕이 터져 나왔다.
윤성윤의 화살이 이번에는 크게 휘어지더니 이건창이 아니라 다른 이능력자에게로 향했다.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내는 EOA 이능력자의 등을 꿰뚫었다.
그리고는 다시 이건창의 다리를 향해 활을 날려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윤성윤이 활약을 하자 그를 돕는 최현준마저 날뛰기 시작했다. 그의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둘 다 이능력을 사용하도록 특수하게 개조된 것들.
오른손의 총은 순수하게 공격에 초점을 맞춘 이능력으로 만들어진 탄환이 장착돼있었다. 왼손의 총에는 상황에 맞게 마취 이능력, 흡수 이능력, 파편으로 변환되는 이능력을 담았다.
전투는 생각보다 훨씬 윤성윤 측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윤성윤의 활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쏜 화살이 이건창의 좌우, 머리 위, 무릎 등 여러 방면으로 날아갔다. 이건창은 낫을 휘둘러 좌우에서 오는 것을 잘라내는 동시에 옆으로 뛰어 다른 화살들을 피해냈다.
하지만 연이어 쏜 윤성윤의 화살이 그의 허벅지에 적중했다.
“큭!”
다시 새로운 한 발이 허리에 닿으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옆에 있던 유일신교 신도를 끌어당겼다. 화살은 신도의 허리에 박혔다.
“아악!”
신도가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해내자 이건창은 시니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고맙군!”
그러자 현재 유일신교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레벨 7의 이능력자 채윤아가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지금 미쳤습니까?”
“씨발! 미친 건 내가 아니라 그쪽 꼬맹이지. 그 꼬맹이가 이탈하는 바람에 지금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일단 어떻게든 협력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협력? 말 잘 했네. 지금 이 전투의 중심이 누구야? 나잖아. 그럼 너희 쪽에서 할 일은 몸 바쳐서라도 나를 지키는 거 아니야? 몸 바치고, 돈 바치고 하여간 뭔가 바치는 건 너희 종교쟁이들 특기잖아!”
이건창의 조롱과 비릿한 웃음에 채윤아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임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저 자식 뒤통수를 날려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네.’
하지만 그녀는 자제력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불과 바람 이능력을 섞을 수 있는 그녀는 환상생물 청룡으로 변신하는 이능력자였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자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후, 하고 이능력 ‘풍염(風炎)’을 토해냈다. 그러자 붉은색과 푸른색이 반씩 섞인 화염이 바람의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그녀의 의도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진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풍염 때문에 윤성윤 측 이능력자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윤성윤에게 가는 길이 만들어졌다. 이제 돌격력이 좋은 이건창이 윤성윤에게 붙어주면 된다.
“이런...”
채윤아가 탄식을 했다. 이건창이 움직이지 않은 것. 그는 방금 전, 공격에 맞았기에 허벅지에 무리가 생겼다. 그곳은 강철의 군주에게 당한 부위이기도 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야 윤성윤에게 달려들 수 있었겠지만 채윤아와 사인이 맞지 않았다.
이건창이 화를 냈다.
“멍청한 년, 미리 신호를 줬어야 내가 들어가지. 종교쟁이들은 모든 게 신의 뜻으로 통하는 줄 아나.”
이렇게 EOA와 유일신교의 불화는 커져만 갔다.
드디어 이지후 일행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다다랐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을 할 수는 없었다.
이지후가 감탄했다.
“윤성윤 철저하네. 여기에도 매복을 해놨어.”
아파트와 상가 건물 잔해가 무성한 곳을 지나려 했는데, 포탄처럼 생긴 이능력이 날아왔다. 윤성윤이 숨겨 놓은 이능력자들이었다. 당연 함정도 깔아 두었을 터.
“여기에 병력을 돌릴 정도라면 분명 전투는 성윤이한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정말로 효린이가 효수를 치워준 건가?”
***
서문영의 팔에서 흐른 피가 백색 털을 붉게 적셨다. 혀로 상처를 핥으며 너털너털 걸어갔다.
백여우의 장점 중 하나는 훌륭한 속도. 그녀는 간신히 회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왔다. 다시 유일신교 진영이 자리 잡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구효린이 보였다. 부상이 심한 이능력자들을 치유해주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옷에 피가 튀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성녀 그 자체였다.
서문영은 혼란에 빠졌다.
‘분명 숲으로 간 성녀님일 리는 없어. 그렇다면 처음에 움직였던 성녀님이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인데...’
이상한 점이 있다면 상황을 보아 하니 자리를 그리 오래 비우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치료 능력을 보니 이쪽 성녀님이 진짜 같은데...’
서문영의 생각이 맞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구효린은 첫 번째 구효린이며, 진짜 구효린이었다.
그녀는 구영진과 함께 나섰다가 금방 이곳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놓고 온 게 있는데, 빨리 가지러 갔다 오면 안 될까요?”
“그러려무나.”
아무리 이생물체가 출현할 확률이 희박한 곳이라 하더라도 이능력자가 아닌 구영진 혼자 걷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낸 건 두 명의 레벨 6 이능력자가 안 보이는 곳에서 은밀히 호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
구효린이 구영진 곁을 떠난 이유는 잊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것은 핑계.
그녀의 진짜 목적은 그 두 명의 호위를 살해하는 것이었다.
평소 아버지의 경호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그녀가 의심받을 리는 없기에 그들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구영진의 목숨을 끊기 위해 벌인 일. 이제 그녀가 그를 죽이는 일이 뭐가 어려울까? 하지만 그녀는 그냥 돌아와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알리바이와 계획의 완성을 위해서였다.
구영진은 배호영과 만나기로 한 곳에서 죽어야한다. 그곳까지 가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점을 이용했다.
구영진이 약속한 곳에 거의 당도하자 김청호가 재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그에게는 구효린만 아는 숨겨진 이능력이 있었다. 바로 타인의 이능력을 보관하는 것.
김청호는 구효린의 이능력을 보관하고 있다가 구영진을 향해 쏴 살해했다. 굳이 구효린의 이능력을 사용한 이유는?
배호영이 구효린과 같은 비전계열 이능력 사용자였기 때문이었다.
목격자도 필요했다. 구영진이 죽는 즉시, 구효수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효수와 배호영이 만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구효린이 이민호를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 유혹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배호영과 이민호가 공모해 구영진을 죽인 것으로 꾸미기 위해서였다.
배호영에게 보낸 쪽지. 그녀가 썼으나 그녀의 글씨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능력으로 이민호의 필체를 흉내 내 적은 것이었다.
이민호가 글씨를 여자처럼 예쁘게 쓰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구효린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그녀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기억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구영진이 그녀를 놀이공원에 데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그녀를 안고 회전목마에 탔었다. 갑자기 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무섭다고 그를 꽉 안았다.
딱 한 번뿐인, 아버지와 함께 한 아름다운 추억.
‘온기... 그리워...’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녀가 부상당한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칭송했다.
‘내가 나로 남기 위해서? 그게 어떤 의미지?’
그녀는 자신이 어둠만이 남아 있는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떠오르지가 않아.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게 뭐였더라?’
그녀의 입매가 초승달처럼 변했다.
‘이제 그런 건 상관없나?’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원래는 어제나 그제 올리려고 했는데...
감기에 걸렸습니다 ㅜ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하루 푹 자면 나았는데... 이제는 좀 오래가네요.
슬픕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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