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전패의 이능력자(1)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은 안동에서는 합동 영결식이 열렸다. 녹색 눈의 늑대를 토벌하다 죽은 이능력자들을 보내기 위한 자리였다.
영결식은 안동의 동쪽에 있는 시립묘지에서 진행됐다.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서, 죽은 이의 동료와 가족들이 모였다.
아침부터 무거웠던 하늘은 유족들과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빗방울을 눈물처럼 쏟았다.
식이 끝나고 이지후와 멘티들, 김명경 그리고 김연흠은 1차 토벌에서 사망한 김연홍의 묘 앞에 섰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은 묘지석의 윗부분을 때리며 아스러져가거나, 표면을 쓰다듬으며 흘러내렸다.
이 묘에 김연홍의 시체는 없었다.
이생물체들과 싸우다 죽으면 시체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탓에 시립묘지에는 시체가 없는 묘가 꽤 있었다.
다들 그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지나고 진정이 되는 기미가 보이자 이지후가 김연흠에게 말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저녁에 올 거냐?”
“아니요, 저는 역시 안 되겠어요.”
“그래. 알았다.”
저녁에는 토벌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다. 추모하는 자리와 행사 자리가 한 날에 열린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장례식장이 시끌벅적해야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이 희석될 수 있다 하듯이, 죽은 사람으로인한 슬픔을 빨리 덜어버리라는 의미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눈물을 흘렸으면 그만큼 웃어야 했다.
죽음이 만연하는 시대이기에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고, 그들은 다음 날이면 또 다시 목숨을 걸고 이생물체들과 싸우러 나가야 하는 이능력자들이었으니까.
저녁이 되기 전까지 이지후는 구미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김명경과 함께 보육원으로 향했다.
서문영과 최진혁은 개인적인 볼일을 보기로 했으며, 민승아의 선택은 의외로 훈련이었다.
1차 토벌이 끝나고부터 그녀는 이전보다 더 훈련에 열중했는데, 2차 토벌 이후에는 훈련 강도를 대폭 늘리기까지 했다. 훈련이 힘들다고 투덜대는 모습은 사라졌다.
보육원에 들어선 이지후가 아이를 안아서 어깨 위에 올렸다. 그러자 김명경이 말했다.
“오! 너 행동이 능숙하다. 마치 애 아빠 같은데.”
“아빠는 무슨.”
김명경이 웃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고 시내에 나가면 내가 엄마 같아 보이겠지? 좋아, 좋아! 이런 분위기로 계속 가는 거야.’
보육원 직원이 이지후에게 다가왔다. 보육원 직원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이지후 씨,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며칠 전에 저희 신입 직원이 보육원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아이에 대해서 묻고 갔다고 했어요.”
순간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누가요?”
“유일신교의 신도분이라는데, 3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성분이라고 했어요.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고요.”
“무엇을 물었나요?”
“아이의 이능력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그런데 저희 직원이 잘 못 알아서 환상생물형이 아니라 여우로 변하는 짐승형이라고 대답했다고 그러더군요.”
“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일신교에서 왜? 무언가 이유가 있나? 지금으로써는 아무 것도 모르겠네. 왠지 기분 나빠.’
직원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나중에 또 오면 저에게 알려주시겠어요? 연락처 같은 것을 받아주시면 더욱 좋고요.”
“알겠습니다.”
이지후는 보육원을 나오면서 아이에 대해 물은 사람이 누군지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김명경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했다. 그 후에는 안동의 시내를 걸었다. 비는 그쳤지만,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탓에 걷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발목까지 물이 차는 곳이 많았다.
적당히 산책을 한 다음,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이의 연습을 돕기 위해서였다.
훈련장에는 오늘도 훈련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십 명은 됐다. 그 가운데 보이는 익숙한 얼굴.
이지후가 말했다.
“어? 승아야. 열심이구나.”
민승아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목으로 훔치며 대답했다.
“오빠, 선생님! 아이 훈련 봐주려고 오신 거예요?”
“응.”
이지후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승아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아이가 배꼽인사를 했다. 표정은 감정이 없는 로봇 같았으나 점점 이렇게 타인의 말해 반응을 했다.
“명경아, 아이 좀 네가 봐주라.”
“응? 너는?”
“멘티가 이렇게 열심인데, 멘티 훈련도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알았어.”
그 말을 들은 민승아는 갑자기 거울이 보고 싶어졌다.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머리는 다 헝클어졌고, 몸은 땀투성이인데.
그리고 오늘 훈련복으로는 무릎까지 오는 살짝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왔다. 조금 타이트하고 짧은 반바지를 입고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했다. 다리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얼굴이 확 붉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왜 그래, 민승아. 정신 차려.’
그가 어깨를 돌리는 것으로 몸을 풀며 말했다.
“승아야, 전신에 기공을 연결시켜봐. 그 후에 천천히 1분에 걸쳐서 폭발의 구체를 만들어. 단 구체가 커지는 속도는 일정해야 된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키는 대로 했다. 이지후는 이런 특이한 기초 훈련을 많이 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잘 하지 않는.
그녀는 그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근래에 이런 류의 훈련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 덕분인지 구체가 제법 괜찮게 만들어졌다.
그가 웃었다.
“좋은데. 요즘 열심히 연습하더니 많이 늘었다.”
그녀의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칭찬 받으니 기분이 좋아.’
한 시간이 넘게 이런 기초 훈련을 반복했다.
이지후가 몸에 이능력의 기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손에서 비수 모양 이능력이 뿜어져 나왔다. 웃으며 말했다.
“실전 훈련도 해볼까? 내가 상대해 줄게.”
5분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꽤나 많이 맞았다.
양 허벅지는 하단 차기에 수차례 가격 당해 퉁퉁 부운 상태였고, 허리도 발차기와 비수 모양 이능력에 가격당해 욱신거렸다. 등도 아파 죽겠는 게, 그가 몇 번이나 땅에 매쳤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는 그녀에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오늘은 좀 아프겠다. 실력이 많이 늘어서 나도 모르게 강도를 높여버렸네.”
그가 저런 말을 하면 요즘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저 장난스럽게 받아치면 됐는데.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의 방법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잘 되지 않는 거 같았다.
“여기저기 다 아파요. 적당히 때리시라고요. 청순가련한 제가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청순가련해도 잘 찾아보니 때릴 곳은 많더라고.”
저 얄미운 말. 그런데 예전처럼 야속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아련한 감정이 가슴에서 일었다.
그가 말했다.
“요즘 페이스가 정말 좋아. 네가 아직 문영이랑 진혁이에 비해 부족하지만 이런 추세로 3개월 정도 지나면 비등해질지도 모르겠어.”
“제가 또 은근 노력파죠.”
“그러게. 몰랐네. 이렇게 변할 줄은.”
그녀는 잠시 아이의 훈련을 돕고 있는 김명경을 바라봤다.
“목표가 생겨서요.”
“훌륭해. 그런 자세로 열심히 하라고.”
그가 돌아섰다. 그러자 그녀가 한 마디를 더 했다.
“오빠는 재능이 엄청 없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레벨 7을 달성했어요? 레벨 7이면 전체 이능력자의 0.05%인가 그렇잖아요.”
“노력했어.”
더 이상 말이 없자 그녀는 다시 질문했다.
“그게 다예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력했어.”
그도 김명경을 쳐다봤다. 말을 이었다.
“저 멀리 앞서가는 천재의 등을 동경과 질투가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그것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가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 과정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네.”
그녀는 요즘 연습하면서 벽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동기인 서문영이나 최진혁을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그런.
김명경과 대등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는 것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누가 뭐래도 엄청난 천재니까. 민승아도 재능이 뛰어난 편이라 하지만 그녀에 비하면 초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승아야, 이제 정리하고 가자. 오늘 같은 날은 술 한 잔 해야지. 훈련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 가서 더 하자고.”
멀어져가는 그의 등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잡히지 않았다.
그는 김명경에게로 걸어갔다.
그녀는 뻗은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 저는 더 강해지고 싶어요.”
그가 뒤를 돌아봤다. 미소를 지었다.
“그래, 힘내라. 무엇을 위해 강해져야 하는지 잊지 말고.”
그녀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저 지켜줘야 하는 멘티가 아니라 당당한 한 명의 이능력자로 오빠의 옆에 설 거예요.’
이지후는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변해가는 멘티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 변화의 원인이 그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갑자기 김명경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와! 너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예쁘다!”
이지후가 아이를 돌아봤다. 아이의 몸이 영롱한 진주에서나 발산될 법한 그런 신비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야? 도대체 뭘 한 거야?”
김명경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한테 뭔가 알 수 없는 이능력이 있는 거 같아서, 한 번 깨워보려고 했지. 아이는 이지후식 기공 운용법을 사용하니까 거기에다가 변형을 가해보려고 내 이능력을 주입시켜봤어.”
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바로 아이에게 갔다. 아이가 자신의 몸에서 날뛰는 이능력을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후, 김명경에게 다가가 그녀의 볼을 확 잡아 당겼다.
“너... 그게 애한테 얼마나 위험한데. 아직 어려서 몸에 무리가 간다고. 알아 몰라?”
“아! 아! 아파. 아는데... 그냥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더 확 잡아당겼다.
“잘못했어. 앞으로 절대로 안 할게. 아! 아! 이거 놔줘.”
이지후도 아이에게 무언가 다른 이능력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다만 천천히 관찰하며 정확하게 어떤 이능력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녀와 같은 행동을 할 생각은 못 했다.
이능력을 머리로 이해하는 그와 몸으로 이해하는 그녀의 차이였다. 그리고 신체 자체가 강해서 뭐든지 먼저 몸으로 시험해 보는 그녀와 그럴 수 없는 그의 차이기도 했고.
훈련장을 나서는데, 이지후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의 이능력을 일부 받아들인 오른쪽 팔이 미약하지만 평소보다 시원했다.
그리고 그의 고질적인 부상 부위인 오른쪽 어깨의 고통이 줄어들었다. 오늘처럼 많이 움직이고 나면 항상 욱신욱신거렸는데.
오른손을 바라봤다.
‘뭐지, 도대체? 설마...’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아이와 둘이 있으면 사고치는 아빠 같은 김명경과 그런 김명경을 혼내는 엄마 같은 이지후였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이지후의 과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과거 이야기를 풀어갈 때마다 항상 고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가 쭉쭉 나가야 하는데 과거로 가니...
일단 그리 길게 갈 생각은 없고요... 앞으로의 사건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기에 잠시 과거로 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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