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아이의 눈물과 어른의 눈물(1)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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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지나고 6월이 됐다. 태양이 연일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울 것이라고 예고를 하려는 것 같았다.
이지후의 일행들이 세종특별자치시로 돌아갈 시기가 됐다.
이지후가 떠나려는데, 박찬진을 비롯한 안동의 젊은 이능력자들이 배웅을 하러 나왔다.
박찬진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 다음번에도 안동으로 와요.”
둘은 함께 밤새도록 토할 만큼 술을 먹고는 결국 형동생 사이를 맺었다.
“잘 모르겠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마 포항이나 경주로 갈 거 같은데...”
“안동에 다시 오면 지난번처럼 술 한 잔 거하게 합시다.”
“그래. 그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
“형도요. 그런데 형은 하는 행동 보니까 무탈하게 지낼 사람 같지는 않아.”
이지후는 정곡을 찔렸는지 말없이 웃었다.
그가 차량에 탑승하려는 순간 박찬진이 그에게 경례를 했다. 그러자 안동의 젊은 이능력자들 역시 모두 경례를 하며 외쳤다.
“고마웠습니다.”
안동의 젊은 이능력자들이 하나, 둘 이지후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이는 지역해방전선 세력구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일이었다.
비공식 영토 도시의 이능력자들은 대부분 지역해방전선이 정치와 권력을 거머쥔 강력한 집단으로 변모한 후, 국가에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비공식 영토의 도시들이 생존할 수 있다고 여겼다. 공식 영토에 편입되든, 독자적인 길을 걷든 관계없이.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지역해방전선의 부대표인 조창호였다.
하지만 이지후의 생각은 달랐다. 술자리에서 박찬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형, 지역해방전선의 미래는 뭐유?”
“소멸하는 거지.”
“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생물체에 효율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해. 그런 논리로 지역해방전선은 결국 국가에 편입돼야 하는 거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형은 왜 지역해방전선에 있는 겁니까?”
“국가가 국가의 의무를 저버려으니... 그걸 바로 잡기 위해서랄까?”
올해 안동으로 오기 전까지 이지후의 뜻에 동조하는 이능력자들은 본부의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이능력자들과 경주의 이능력자들밖에 없었다.
이지후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경례를 한 박찬진에게 누군가 말했다.
“너 저 사람 너무 좋아한다.”
“형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근거 없는 기대감이 생기거든. 언젠가 비공식 영토와 공식 영토를 하나로 묶어 줄 사람이라는 그런...”
“정말로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군.”
“기대는 기대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해야지. 다시 장벽으로 돌아가 볼까?”
덜컹거리는 수송용 차량 때문인지 구미호 아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결국 이지후의 무릎을 베고 잠들고 말았다.
민승아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말로 쟤랑 헤어져야 돼요?”
“운이 좋다면 종종 보러 갈 수는 있겠지.”
비공식 영토의 거주자가 공식 영토에서 살기 위해서는 레벨 3 이상의 이능력자가 돼야만 한다.
아이는 공식 영토로 가면 이능력 레벨 테스트를 볼 것이며, 레벨 3 이상을 달성하면 국가의 관리 하에 공식 영토에서 살아갈 것이다. 실패하면 다시 안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이능력은 2차 성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개화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만약 발현되더라도 미약한 힘만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하지만 이 아이는 특이 케이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안동에는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설이 없었다. 지속적으로 유혹 이능력을 컨트롤 해주거나 이능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다.
아이가 다시 안동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상당히 고생하며, 외롭게 지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유혹 이능력 때문에 위험이 따를 수도 있었다. 유일신교 문제도 얽혀 있었고.
민승아는 이지후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쟤... 레벨 3 넘을 수 있겠죠?”
이지후는 눈을 감았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우리는 가르칠 수 있는 거 다 가르쳤어. 얘가 레벨 3을 넘고 못 넘고는 이제 우리 손에 달린 일이 아니야. 얘 혼자 힘으로 해쳐나갈 일이지.”
이지후는 아이를 거의 두 달간이나 돌보면서도 끝까지 그냥 아이라고만 불렀다. 이름이나 애칭 같은 것을 붙여주지 않았다.
민승아는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 했었다.
이지후는 처음부터 아이와 헤어져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정을 많이 붙이지 않기 위해 그냥 아이라고 부른 것일 테다.
하지만 그와 민승아, 둘 다 알고 있었다. 이미 정을 과도하게 붙였다는 사실을. 심지어 이지후는 아이에게 자신의 오리지널 기공 운용법까지 가르쳤다.
사실 이지후의 행동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으나 민승아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안동에 도착하자 젊은 여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정부에서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파견한 사람이었다.
이지후는 아이의 손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를 보며 말했다.
“테스트날 갈게. 그 때 보자. 잘 지내고 있어야 돼. 알겠지?”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 잘 덥고 자고, 밥 먹는 거 거르지 말고. 천천히 씹어 먹고. 힘들어도 훈련 꼬박꼬박 하고. 또...”
그는 더 말하려다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고 생각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작별의 인사를 했다. 정부의 직원이 아이를 데리고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아이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말해준 거 잊지 마...’
그는 세종특별시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인, 지역배방전선의 본부 건물로 향했다.
1층의 복도를 걷는데, 머리와 옷차림은 단정했으나 강인한 인상이 엿보이는 40대 남성과 마주쳤다. 레벨 5의 이능력자이자 지역해방전선의 부대표 조창호였다.
조창호의 옆에는 장신의 이능력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민철. 레벨은 7이었고, 조창호의 조카였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레벨 7을 달성한 지역해방전선의 유망주이기도 했다.
이지후가 먼저 조창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 안동에서 막 복귀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만나러 가는 길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나중에 차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하지요.”
짧은 대화만 나누고 스쳐지나갔다.
조민철이 조창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지후가 안동에서 꽤 인망을 쌓았다고 하던데요.”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이지후 같은 이상주의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야. 알아서 무너진다고.”
“삼촌, 너무 여유 있으신 거 아닌가요? 저는 솔직히 불만입니다. 이지후만 없었어도 우리 지역해방전선이 더 강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변모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야 정부를 넘어설 수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겠냐? 통합을 너무 서두르면 안 돼. 탈이 나기 마련이야. 차후 이지후의 실패가 결국 지역해방전선을 단합시켜 줄 거다. 그러니 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
이지후가 대표실로 들어갔다.
지역해방전선이 재정적으로 그리 풍족한 단체가 아니다 보니 대표실 역시 화려하게 꾸며졌다거나 시원시원하게 넓지는 않았다. 다만 커다란 유리창으로 내려다보이는 해방전선 본부의 전경이 아름다웠다.
이지후의 정면에 모니터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지역해방전선의 대표 황석두.
황석두는 레벨 7의 이능력자로 볼 살이 통통한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가 해방전선의 상징인 촌스러운 녹색 재킷 안에 입은 셔츠와 바지는 이탈리아의 장인이 만든 것이었다. 요즘처럼 각국간의 물자 이동량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제품이었다.
그가 해방전선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대한 이유는 집안의 재력이었다. 그가 막대한 재산을 쏟아 붇고 있기에 해방전선이 간신히라도 돌아가는 것이었다.
황석두와 이지후가 소파에 앉았다. 황석두가 말했다.
“꼭 비공식 영토로 돌아다녀야 돼? 이제는 그냥 본부에 있어. 여기서 컨트롤 타워 역할이나 맡으라니까 왜 맨날 말을 안 들어?”
“저는 평생 현장에서 일할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어봤자 형이 하기 귀찮은 일이나 떠맡을 텐데 뭘...”
“그... 그렇지 않아!”
황석두는 이지후의 눈을 피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하여간 널 부른 이유는 두 가진데. 첫 번째는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거야.”
“정부요? 또 무슨 일을 벌이는 중인데요?”
“윤성윤이 인천 근방에서 활동하고 있어. 아직 정확하게 뭘 하는지는 파악이 안 됐어. 보안이 철저해서... 이건 소진욱 의원이 가져다 준 정보인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윤성윤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윤성일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거지.”
윤성일은 정부 강경파의 수장이자 윤성윤의 형이었다.
순간 이지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놀랍네요. 윤성일의 지시였다면 또 강경파 쪽에서 뻘짓하고 있겠구나 하겠는데, 대통령이라니... 대통령이 강경파하고 손 잡은 건 아니겠죠?”
“그런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군. 하여간 그 일은 네가 자세하게 알아 봐.”
“역시 이렇다니까. 결론이 왜 언제나 절 부려먹는 것으로 귀결됩니까?”
“네가 잘 하니까... 적재적소에 인재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덕목!”
“추가근무수당 주세요.”
황석두는 또 한 번 헛기침을 했다.
“자! 두 번째 사항.”
“악덕 고용주 같으니라고. 말 돌리려고 하시네. 사람이 자원이라더니, 그게 사람을 땔깜처럼 다 탈 때까지 부려먹겠다는 말이었을 줄이야...”
“그만 해, 인마.”
황석두는 쫑알쫑알 불만을 내뱉는 이지후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갔다.
“푸른 비늘의 기린이 움직였다. 동향이 파악됐어.”
이지후가 입에 가져가려던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장난기가 서렸던 표정이 금세 심각하게 변했다.
신대한민국의 전라도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생물체는 ‘보랏빛 요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영역화 능력을 가진 엠페러급이었다.
전라도 부근에서 활동하는 엠페러급 이생물체는 한 마리가 더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푸른 비늘의 기린’이었다.
푸른 비늘의 기린에게 영역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엠페러급답게 자연재해급의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 최근 활동이 포착되지 않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이지후가 말했다.
“보랏빛 여왕과 충돌할 기미가 보이나요?”
“정보국의 분석에 따르면 그래.”
두 엠페러급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단일 개체로는 푸른 비늘의 기린이 보랏빛 요새의 여왕보다 훨씬 강할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보랏빛 요새의 여왕은 푸른 비늘의 기린과는 달리 근방 이생물체들을 모조리 자기 세력 안에 품었고, 본거지인 광주에는 일종의 요새를 구축하기까지 했다.
그런 이유로 푸른 비늘의 기린이 보랏빛 요새의 여왕에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남부가 요동치겠군요.”
“만약에 정부국의 분석이 사실이면 어떻게 할 거야?”
이지후는 잠시 손으로 찻잔을 매만졌다.
“어떻게 하긴요. 당연히 남부로 내려가야죠.”
“그래서 뭐 하려고?”
“일단 상황을 봐야겠지만... 가능하다면 비공식 영토의 모든 도시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도록 그 일대를 평정할 겁니다. 그것으로 비공식 영토를 공식 영토에 편입시킬 수 있도록 만들 거고요.”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 다들 잘 보내고 계시죠?
저의 작은 이벤트는 끝났습니다 ㅎ
쟈드린님하고 붕어빵빵님은 선물을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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