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전패의 이능력자(4)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일대일 공식 대결에서 0승 100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다들 앞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그 후에는 그 기록을 계속 경신했다.
동기인 윤성윤과 최현준은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이지후, 저 새끼 발버둥 치는 거 벌레가 죽기 직전에 하는 짓 같아서 꼴 보기 싫군.”
“그러게 말이야. 안 되는 놈은 평생 안 되는 건데. 병신 같은 새끼.”
날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당시 3기에는 여러 그룹들이 있었다. 서로 노골적으로 싸우는 사이는 아니었다. 순위 때문에 경쟁을 하는 정도였다.
성윤이와 현준이가 이끄는 그룹이 있었는데, 이들은 소위 잘 나가는 멤버들이었다. 이능력이 강하면서, 집안도 좋은 그런...
나는 동현이와 명경이, 재성이와 함께 했다.
2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성윤이네 그룹의 위세가 가장 강했다. 성윤이가 부동의 1위인 동현이를 이기지는 못 했지만 동현이 다음이었고, 현준이의 학년 랭킹은 효린이 다음인 4위였으니까.
2학년 2학기 때부터 세력구도의 변화가 시작됐다. 명경이가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명경이는 자신보다 랭크가 높은 애들을 하나하나 무참하게 박살냈다..
학년 랭킹 5위 ‘불꽃의 마녀’ 하예영과 6위 ‘스마일 멍청이’ 이동진마저 꺾었다.
그 후, 현준이와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모두가 6:4 정도로 현준이의 우세를 점쳤다. 상성상 현준이가 유리했으니까.
대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명경이는 상성이고 뭐고 다 무시하며, 현준이를 말 그대로 죽기 전까지 두드려 팼다. 현준이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복부가 파열 돼, 병원 신세를 졌다.
그 대결이 끝나고 명경이는 나에게 말했었다.
“저 새끼, 너한테 하는 게 재수 없어서 벼르고 있었는데... 어때? 나 완전 잘 했지? 다음에는 성윤이 차례야.”
그녀라면 진짜로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중장거리 이능력이 없어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재능으로 모두 뛰어 넘어버렸다.
그녀가 부러웠다. 질투도 났고. 그녀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염없이 그녀의 작은 등을 쳐다봤다. 손을 뻗어봤는데, 닿지 않았다.
명경이가 성장한 덕분에 나를 포함한 우리 그룹은 성윤이네 그룹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에 대한 시선은 더욱 곱지 않게 변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잘난 녀석들에게 묻어가는 놈이 됐다. 난 딱히 으스댄 적이 없는데, 왜?
나는 패배의 기록을 계속 이어가며, 이능력의 기공을 잇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이 방법이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의 방법보다 출력은 떨어지는데, 신경 써야 할 것은 많았다. 그 의미는 집중력이 많이 요구된다는 것이었고, 이는 체력 역시 많이 소모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정신력과 집중력은 체력에서 나오니까.
그 모습을 본 재성이랑 명경이가 말했다.
“육상선수로 전향했어?”
이능력자가 되면 기본적으로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리고 다른 훈련을 하다보면 체력은 자연스레 좋아진다. 그러니 나처럼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밤에는 기록 노트를 보면서 외웠다. 지는 방법을 외웠다. 어떻게 해서 졌는지 모조리 외웠다. 거리, 타이밍, 들어가는 방법, 상대방의 리치와 기술 등등... 모든 것들을.
나는 이능력 재능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무술 센스마저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부족한 무술 센스는 머리로 보충하겠다고.
대결을 할 때, 외운 것들은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지는 방법이니까. 이렇게 지는 방법을 하나하나 제거하다보면 언젠간 이기는 방법이 남겠지.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멍청하면서도 무식한 최악의 방법이라고 자조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능력의 기공을 가늘게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그걸 신경으로 흘려보낼 때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팔다리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기공을 보내다 고통 때문에 기절한 적도 있었다. 재성이가 날 업어서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여인호 선생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그래서 물어봤다.
“선생님, 이거 제대로 된 방법 맞나요?”
“장담할 수 없다.”
웃으며 말했다.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신가요?”
“미안하구나.”
“장난으로 한 말이에요. 처음부터 각오하고 한 건데요 뭘.”
“좋은 소식이 있다. 그것도 두 가지나.”
“뭔데요?”
“이능력의 기공을 보내는 방법을 바꾼 덕분인지 신체가 조금 튼튼해졌어. 다행이구나.”
“오! 이런 날도 있군요.”
“그리고 두 번째 소식은 좌절의 나날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면 될까?”
선생님께서 뜸을 들이셨다.
“왜 그러세요?”
“분명 이능력이 새로 발현된 것은 아닌데... 정신계열 이능력에 대한 저항 수치가 상당하구나.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정신계열에 저항하는 이능력보다도 더 대단해. 이 수준이면 완전 면역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겠어.”
“매일 울었더니 정신력이 단련됐나 보네요. 아! 수련하는 과정이 멋있어야 자랑도 하고 그러는데, 이건 자랑하기도 부끄럽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요?”
“네 신체가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야. 이생물체들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것은 당연히 무리고, 네 몸이 망가져 가는 것도 속도만 조금 늦췄을 뿐이다. 아마 2년 안에 몸이 녹슨 기계처럼 삐거덕거릴 거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네요. 원래는 1년이었잖아요.”
나는 또 다시 웃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시는 것 같았다. 내가 진짜로 웃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3학년이 됐다.
나는 계속해서 전패의 이능력자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이어나갔다. 이생물체들과 실제로 싸우러 나갈 때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민폐만 끼쳤다.
어느 날, 행정직원 한 분이 찾아오셨다. 나 때문에 규정이 바뀌었단다.
“다른 녀석들은 기준에 미달되면 알아서 후방 요원으로 빠지는데... 너는 뭘 믿고 그렇게 버텨?”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인생이 장난이야?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끼쳐도 된다고 생각해? 왜 이리 이기적이야?”
“어떤 말씀이신지...”
“너처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녀석 때문에 병원비로 예산을 많이 써야 하잖아. 그리고 신경도 써야 하고.”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펐다.
사실 병원비 부문은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남들에게 걱정 끼치는 것도 그렇고, 이생물체 토벌에 나설 때는 나 때문에 주변사람들의 부담이 심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열심히 한다는 것은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고, 이기적인 행동이기도 하단 것을 이때 배웠다.
예전에는 기본 점수를 충족시키지 못 하면 후방 요원으로 빠지도록 권고를 받았는데, 이제는 무조건 옮겨야 한단다. 기한은 3학년 1학기가 끝날 때까지고.
나의 재능은 이렇게 규칙도 변경시켰다. 보통 스포츠를 보면 재능이 워낙 뛰어나 그걸 막으려고 룰을 변경하던데, 내 경우는 그 반대였다.
내 인생에 꼭 안타까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모의 전쟁 시험에서 승률 100%를 자랑했던, 나보다 한 기수 선배인 장주찬을 3:1로 박살내버렸다. 주찬이 형은 고맙게 그 후에도 단 한 번을 지지 않고 졸업을 했다. 덕분에 형에게 유일하게 승리를 따낸 사람은 나밖에 없게 됐다.
그 때, 재성이가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넌 후방으로 빠져서 나중에 사령부쪽으로 가는 게 어때? 최고라는 주찬이 형까지 이겼는데...”
“그래봤자 내 통산 승률은 65% 정도라고. 역대 10위권 밖에 안 되는걸 뭐.”
“하지만 통산 성적 최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전적은 다 우위잖아. 통산성적 2위인 동현이도 너한테 졌고.”
여자 친구도 생겼다. 나와는 동기지만 한 살 많은 연수 누나였다. 누나는 효린이나 헤영이 같은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 명경이처럼 귀엽지도 않았다. 평범 보다 조금 나은 정도?
누나는 나에게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말해줬다. 꿈 많은 소년 같아서 보고 있으면 힘이 난다고 그랬다.
그래서 좋아했다.
나는 계속해서 오리지널 운용법을 연습했다. 솔직히 잘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연습한 성과가 나오는 것인지 이제 기공을 흘려보낼 때, 온몸이 찢어질 듯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연습하다가 막힐 때마다 여인호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는 말은 참 말만 멋있는 거 같아요. 겉으로는 강한 주관을 가지고 독자적인 방법을 확립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더 열등한 방법을 택하는 거뿐이잖아요. 다수가 하는 방법을 따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축하한다. 너 인생의 진리를 터득했구나.”
“이능력 단련하면서 굳이 인생의 진리까지 터득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선생님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직 가설인데 말이야... 게이트가 새로 출현하면, 게이트의 일정 반경 안에서 이능력자가 새로 나타날 확률이나 기존 이능력자들의 이능력이 강해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구나.”
“헉! 정말이에요? 새로운 발견이네요?”
“그렇지도 않아. 예전에 중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국경에서 발생한 엠페러급 이생물체 있지?”
“최초로 영역화 능력을 가지고 나타난 이생물체, ‘더 퍼스트’요?”
“그래, 그 놈은 중국이 IETS의 힘을 빌려 억지로 게이트를 열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일 가능성이 높아.”
“그 말씀은 중국이 이능력자들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게이트를 열었다는 거예요?”
“맞아.”
놀라운 말이었다. 들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지후야, 어쩌면 인천의 강철의 군주도 우리 정부가 중국의 실험을 보고 따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건 더 놀라운 말이었다.
하지만 놀라움보다는 불안감이 스쳐지나갔다. 요즘 선생님은 연구실에 계시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 이유가 이것에 관해 조사를 하시기 위해서였나? 선생님의 성격상 이미 가설에 관한 근거자료를 대부분 확보해놓으셨을 거다.
“선생님, 설마 요즘 바쁘신 이유가 조사 때문인 거예요?”
대답을 해주지 않으셨다.
어느덧 내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공식 일대일 대결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날 밤에도 선생님을 찾아갔다.
“지후야, 그래도 이제 새로운 방법이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든 것 같구나.”
“그래도 여전히 지는 걸요.”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할 줄 몰랐다. 난 네가 실패할 줄 알았어. 실패하길 바란 것도 있고.”
“네?”
“새로운 방법마저 실패하면 네가 단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너는... 이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성공시켰구나.”
그 때, 내 귀를 스쳐간 밤바람은 정말 차가웠던 것 같았다.
“내일 제 거취가 결정돼요. 지난 번 이생물체 토벌 때요, 새로운 기공 운용 방법이 먹혀서 조금은 활약을 했거든요. 덕분에 점수를 땄어요. 내일 일대일 대결에서 이기기만 하면 기준 점수를 통과해 전투 요원으로 남을 수 있어요. 저 응원해주실 거죠?”
“네 몸을 생각하면 응원해서는 안 될 것 같다만, 네 노력을 생각하면 응원해야 할 것 같구나.”
“애매한 답입니다, 선생님.”
“인생에 확실히 결정되는 것은 없는 법이니, 답변도 애매할 수밖에.”
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하나도 없어 새카맸다.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훈련을 정말 많이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훈련량만 따지면 제가 넘버 원이 확실해요. 그런데 잘 관찰해 보니까요, 명경이랑 동현이의 훈련량이 저랑 크게 차이가 안 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노력까지 하는 천재들은 어떻게 이겨야 돼요?”
“너는 나한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경향이 있어. 그리고 일단 내일 대결부터 생각해야 되는 거 아니니? 내일 지면 다 끝인데.”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다 대답해주셨다.
“비록 나는 네가 한 질문에 대답을 못 해주지만 너는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에 섰을 때, 너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렴.”
“그렇게 할 게요. 그리고 제가 내일 승리하면 꼭 칭찬해주세요.”
“그래.”
“많이요.”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분량 조절 실패 ㅠㅠ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4화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5화까지 가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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