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누가 누구의 편인가(4)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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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차 인천 공략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이능력 테스트가 시행됐다. 레벨 5이상의 이능력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때마침 IETS에서 레벨 9에 대한 기준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강 3인은 레벨 9에 도달하지 못 했다. 김명경 역시 실패했다. 레벨 9에 도달한 사람은 전세계에서 딱 한 명뿐이었다. 최강의 이능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중국의 리시콴이었다.
레벨 테스트를 보는 건물의 입구에서 이지후와 김명경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화가 잔뜩 났는지 투덜거렸다.
“진짜 그 중국 아저씨는 괴물이네. 혼자 레벨 9를 달성하다니... 내가 재능의 벽을 느끼게 될 줄이야. 으아! 재수 없어!”
“그러게. 정말 괴물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따라 잡고 말겠어!”
다짐을 하는 그녀를 보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재능의 벽이라... 나는 너를 보면서 느낀다.’
그녀는 두 주먹을 맞부딪치며 말했다.
“흥! 그래도 그 아저씨는 우리한테 졌으니까.”
“우리가 이겼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
김명경이 혀를 쏙 내밀면서 멋쩍은 웃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이지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눈이 따가운 탓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저 막아낸 정도라 해야 정확하지.”
“그게 어디야! 관우 아저씨는 비참하게 패퇴했는데... 성건이 오빠나 동현이었어도 마찬가지 신세였을 거라고 본인들 입으로 그랬잖아.”
“우리는 둘이었으니까... 그리고 운이 많이 따라줬어. 꼼수도 부렸고.”
이지후가 말한 꼼수란 이생물체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당시 중국군은 빠른 진격을 위해 이생물체들이 많은 곳을 통과했었는데, 이지후는 그들의 경로로 이생물체들을 유인해서 서로 충돌하게 만들었다.
국제협약에는 인간들의 전투에 이생물체들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물론 전혀 지켜지지는 않는 유명무실한 조항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생물체들을 전쟁에 이용한 행동 때문에, 그를 음해하는 세력들로부터 두고두고 많은 공격을 받았다.
잠시 옛 생각이 떠오르자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우리는 리시콴이랑 정면으로 싸우지도 않았지.”
“정면승부는 그저 승리를 얻는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 사람이 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이번 3차 인천 공략에서도 그 실력 보여주라고!”
“글쎄... 내가 나설 일은 별로 없을 거 같은데. 어차피 큰 작전이야 정부에서 정해줄 테니까. 전술적인 부문에서도 내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을 거야.”
“흠... 그런 건가? 그래도 난 니가 더 활약해서 멍청한 정부 아저씨들 콧대를 확 뭉개줬으면 좋겠는데.”
“강철의 군주와 일족들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서 난장판이 벌어진다면야 활약할 기회가 많아지겠다만 그럴 일은 없겠지. 바래도 안 되는 거고.”
“그러네. 사람이 많이 죽으면 안 되니까...”
그녀는 못내 아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둘은 지금 그의 멘티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대화가 끊기자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완연한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했지만, 이제 그 길목에 들어섰다는 표현을 쓸 정도는 됐다.
그녀는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테스트... 왜 이번에도 제대로 안 쳤어?”
“언제는 안 그랬나?”
“하지만 최근에 능력이 많이 강해졌잖아. 특히 신체가 꽤 튼튼해지지 않았어?”
“알고 있었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종종 몸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거든. 특히 오른쪽 어깨랑 양 무릎에서.”
“넌 소리를 보는 여자냐?”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걱정해주는 표정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런 그녀가 고마웠다.
“그런데 최근 그 소리가 줄어들었어.”
솔직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 그걸 다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의 눈은 항상 정확했다. 무술과 이능력의 재능에서는 그녀를 죽어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현실, 또 한 번 마주쳐야 했다.
“역시 너는 대단해.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있지? 솔직히 질투 나네...”
“그건 단순히 내 눈이 좋아서가 아니야. 내가 널 누구보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지후도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미소가 좋았다. 나이를 먹어도 바래지 않는, 그 순수한 느낌은 그녀만이 발산할 수 있는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기다려줄 것 같았다.
‘만약 명경이랑 결혼하면...’
요즘 예전과는 달리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 엄격한 사람이었다. 고전적인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여자가 인생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는 건강한 남성이었으며, 만약 인생의 동반자가 함께 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상을 위해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칼날 위를 위태로이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죽음에 가까이 맞닥뜨려 있기에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다.
아니, 무서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항상 그 눈이 생각났으니까. 학생 시절, 다쳐서 돌아올 때마다 그를 바라보던 옛 여자친구의 눈이...
그 울먹이며, 불안에 떠는 눈이 보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안하기도 했고. 그래서 연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입양하고 나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아직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지 못했지만...
그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상상했다. 그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평소에는 그의 작은 변화까지 모두 감지하는 그녀이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 했다. 그저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간만에 탐정 명경으로 변해보지. 앞에 명자를 붙여야 하니까 탐정 명명경인가? 어라? 갑자기 이게 왜 헷갈리지?”
“그러니까 멍멍견 같아. 하지 마.”
이지후는 일부러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직 레벨 8이 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의 다 도달한 거 같은데, 한 번 확인해보지 그랬어.”
깜짝 놀랐다.
“정말 명탐정이네.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어.”
“후후... 나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지.”
“아직은 숨길 필요가 있어서. 조만간 싸워야 할 사람이 많거든.”
“조만간인데 싸워야 할 사람이라고? 이생물체가 아니라?”
그녀에게 아직 게이트 강제 생성 장치를 확보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조만간 해둘 생각이긴 했다.
“그래. 사람이야. 특히 성윤이랑 현준이와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겠지.”
“현준이 그 밥맛없는 놈이랑? 그리고 성윤이랑 또?”
“물론 내가 다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더 자세하게 말해 봐.”
“그건 나중에.”
갑자기 이지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그의 옆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저건 자신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인데. 도대체 뭐지?’
그가 말했다.
“인천 공략이 끝나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거야. 레벨 8을 달성해서 다시 독립적으로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내려고. 그렇게 해서 남부로 내려가겠어.”
그는 일단 게이트 강제 생성 장치를 확보해 선생님의 복수부터 하겠다는 계획은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지휘 권한을 다시 확보하겠다는 말에는 혹시 그녀가 그를 도와주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남부 공력을 진행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그의 시선은 정면에 우뚝 솟은 나무를 향했다. 푸르른 나뭇잎들은 약동하는 생명력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도 이지후의 모든 속내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저 좋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그래도 멋있어!’
그녀의 눈이 하트로 변하려는 순간 입구로 세 사람이 나왔다. 민승아, 서문영, 최진혁이었다.
‘아쉽네. 조금 더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는데...’
김명경을 발견한 서문영이 환하게 웃었다. 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쌤, 짜잔! 저 레벨 6 달성했어요.”
“우와! 역시 우리 문영이 대단하구나. 수고했어.”
“오빠도 저 칭찬해주세요.”
그러자 이지후는 입을 쭉 내밀었다.
“내가 멘토인데, 나한테 먼저 안 오고...”
“미안하지만 오빠는 요즘 좀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게 뭔데?”
그녀는 잠시 민승아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지후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쳐다봤으나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김명경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최진혁이 이지후에게 조용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이지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통과했구나.”
“네. 다 형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죠.”
“내가 잘 가르치긴 하지.”
이지후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다 이게 니가 평소에 기본기를 탄탄히 했으니 나온 결과겠지? 정말 잘 했어. 성질 나쁜 멘토 밑에서 고생도 많이 했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형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하지 마. 넌 나처럼 될 수 없으니까.”
“하긴... 형은 그만큼 대단하니까요.”
“너는 분명 나보다 뛰어난 이능력자가 될 테니까, 나처럼 되지 않겠지.”
그는 이제 민승아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꼬리와 입매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저 기분이 들떠서 나온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눈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혼자 레벨 6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했다. 일부러 밝은 척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의 수준은 확실히 그 둘보다 떨어졌으니까.
“승아야, 너도 수고했어. 레벨 6은 다음 번에...”
갑자기 그녀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저도 통과했습니다만.”
“뭐?”
“이야! 엄청 놀라시네. 우리 멘토님 너무해요. 솔직히 저 혼자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었죠?”
“미... 미안... 너는 아직은 안 될 거 같았어.”
그녀의 눈이 다시 아까의 그 눈빛으로 변했다. 이지후는 그 눈빛에 도통 어떤 감정이 섞여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오빠한테 그거 물어봤었잖아요. 어떻게 하면 재능의 벽을 넘을 수 있냐고요. 그 때, 오빠가 이렇게 말했었죠? 노력했어.”
그녀는 이지후의 말투를 흉내 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력했어. 저 멀리 앞서가는 천재의 등을 동경과 질투가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그것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생각해보니 그 과정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네. 이렇게 말이에요.”
이지후의 동공이 커졌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시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그 알 수 없는 눈빛은 여전했다. 그녀의 입술을 쳐다봤다. 그러자 생그러운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저도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력했어요. 오빠 말처럼 그 과정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네요. 그런데요... 제가 왜 노력했냐면요... 그 이유는요...”
그녀는 말을 마치지 않고 그를 지나쳤다. 시선은 잠시 김명경에게 머물렀다. 뒤를 돌아봤다. 이지후 역시 뒤를 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비밀이에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헤헤... 정말 기분 좋다.”
그녀는 김명경과 서문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지후는 우두커니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자신의 옛모습이 그녀와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김명경과 구미호 아이에게서 빛나는 재능에 대한 동경과 매료 같은 것을 느꼈다면, 그녀에게서 보는 것은 한계를 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지후 자신의 모습이었다.
다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1초, 2초, 3초... 평소보다 길게... 이지후는 여전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빛이 당황스러웠다.
“오빠도 꼭 달성하세요.”
“뭐... 뭐를?”
그녀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넘버 원이요! 저는 믿고 있어요. 언젠가는 꼭...”
“고마워.”
천천히 입을 뗐다.
“진심입니다. 제 마음은요.”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제발 문피아 좀 살려주시길................................... ㅠㅠ
진짜 짜증이 폭발합니다.
지난 화 가장 렉 심할 때 + 점검 있을 때 올렸더니 조회수가 처참하네요 ㅎㅎㅎ;;;
이번 화는 로맨스 소설 분위기가.....
제가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으면 한 곡만 주구장창 듣는 버릇이 있는데, 이 글을 쓸 때, ‘더 데이지’의 ‘내 사랑 눈을 감아봐요’를 들었더니..... 이런 글이 나왔나 봅니다 ㅎㅎ;;;;
벌써 금요일입니다! 다들 불금 즐겁게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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