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그림자 영웅(3)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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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나라의 방위체계는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생물체들이 많이 서식하는 서쪽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중국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생물체들이 자연스럽게 방패막이가 돼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태안반도 일대로 병력을 침투시키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했다. 이능력자 부대와 일반인 병력으로 이동경로를 방해하는 이생물체들을 쓸어버리며 진격했다.
중국의 침공을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임시정부였으나 대처는 생각보다 빨랐다. 김관우를 필두로 방어병력을 구성해 중국을 막으러 보냈다.
중국군에는 당시 전세계에서 유일한 레벨 8의 이능력자인 리시콴이 있었다.
김관우는 무인의 피가 끓었는지 그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했다. 아주 호기롭게 말이다.
리시콴은 그에 응했다. 둘의 대결은 상상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무신의 칭호를 가진, 그 강한 김관우가 삼십 합을 버티지 못 하고 무참하게 박살났다.
그 탓에 김관우가 이끄는 1차 방어 병력은 시간을 얼마 끌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그 후, 중국군은 부대를 세 개로 쪼갰다. 두 부대는 대한민국의 중심지인 수원으로 향했고, 나머지 한 부대는 예상과 다르게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쪽으로 움직인 이능력자 부대의 숫자는 고작 1000명가량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리시콴이 있었다.
임시정부는 세종시 주변을 방어하는 군병력과 근처 방위를 맡은 이능력자들을 합쳐 방어부대를 편성했다. 이능력자들의 지휘는 김수영과 이영훈이 맡았다.
연이은 참패! 리시콴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이능력자들 및 병력은 수원을 방어하기 위해 결집했다. 당연히 리시콴 부대를 막을 이능력자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
국가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이능력 학교의 학생들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나는 명경이와 함께 이능력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및 기타 업무를 맡고 있었다.
동현이나 성윤이, 효린이 같은 막강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들은 대부분 다른 기관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학교에는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명경이와 함께 본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학교에 파견을 나와 있는, 임시정부 소속의 이능력자 세 명이 있었다. 후배인 근우와 찬구도 보였다.
임시정부 소속의 젊은 이능력자, 이정민이 나에게 물었다.
“지후야, 왔구나. 소식은 들었지?”
“네. 그런데 왜 세 분밖에 안 계시나요?”
“그게... 민식이는 방금 전, 여기보다 더 남쪽으로 배치를 받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홍민식의 부친은 이능력 학교의 책임자이자 육군 장성인 홍우영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애국심을 강조했으면서... 전쟁이 벌어지니 자기 아들만 안전한 곳으로 쏙 빼가는구나.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지.
브리핑이 시작되자 이정민이 말했다.
“지금 이쪽 세종시로 오는 병력은 결국 방향을 선회해 수원으로 다시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니 청주시로 병력을 집결해 방어를 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나는 이상한 점이 있어 질문을 했다.
“리시콴의 부대가 방향을 선회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그럴 거면 굳이 이쪽까지 내려올 필요가 없지 않나요? 그리고 왜 청주시 근처에서 방어를...”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나만 의문을 가진 것이 아닌가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리시콴이 왜 이쪽으로 오는지는 파악이 됐습니까? 세종시가 목적인 거 같은데... 그 이유를 알아야 어디를 방어할지 결정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키가 큰 정부 이능력자, 최한울이 인상을 썼다. 그는 이곳의 최고 책임자다.
“상부의 지시야. 우리가 굳이 세세한 사항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나. 그저 명령에 따르면 돼.”
“죄송하지만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방어 작전에 동원되는 사람들은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상황도 모른 채 무작정 전장에 투입돼야 합니까?”
“국가가 위기야. 지금 그런 개인적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국가의 위기 상황이니까 더더욱 적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한 후에 방어 작전을 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최한울은 헛기침을 몇 번 한 후에 대답을 했다.
“리시콴 부대의 목적은 청주 방면에 있는 대이생물체 방어구 군수 공장이라는 상부의 분석이다. 그래서 청주 근처에서 진을 치라는 거야. 됐어?”
“그러기에는 일단 경로가 이상합니다. 리시콴 부대는 거의 일직선으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대이생물체 방어구 공장을 공격할 이유도 없고요. 엄청나게 중요한 시설은 아닌데...”
“그... 그건.”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여기 세종시에 있지 않습니까?”
“그게 뭐... 뭔데.”
“이능력 연구 시설과 연구 자료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이능력 연구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특정 분야에서는 미국보다도 뛰어났다.
중국은 항상 대한민국의 이능력 기술을 탐냈다. 리시콴이 남쪽으로 향한 이유는 당연히 이능력 연구 자료 및 시설을 탈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게 여의치 않으면 모두 파괴하는 것이리라.
“그럴 수도 있지만... 하여간 상부의 명령이라 어길 수는 없어. 그... 그러면 지후 니가 연구동에 가서 모두 자료를 가지고 피하라는 지시를 내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바로 연구동으로 달렸다. 그러다 퍼뜩 든 생각.
청주에 있는 방어구 공장은 분명 고승표 의원의 동생인 고승호의 소유였지?
나 참,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재산만 지키려고 하다니... 나는 이 따위 명령을 따라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에...
연구소에 들어서자 흰 가운을 입은, 백 명에 달하는 연구진들이 모였다.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방에 있는 연구진들까지 모두 합치면 연구소의 총인원은 오백 명이 넘는다.
나는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모두 피하셔야 합니다.”
그 중, 머리는 반백에 은색 안경테를 쓴 연구원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그는 허탈하다는 듯, 천장을 쳐다보았다. 눈시울은 벌겠고, 목이 메어서인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나와 우리 연구 직원들이 왜 여기서 십년 가까이 햇빛도 제대로 받지 못 하면서, 가족 얼굴도 못 보면서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소... 소장님...”
“우리가 하는 이능력 연구가 대한민국을 강국으로 이끌 거라고, 이생물체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데 기여를 할 거라고... 국가에서 그렇게 말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몇 년을 여기서 연구만 했는데...”
소장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흘렀다. 많은 연구원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뒤로 돌리고 있었는데, 아마 그들 역시 눈물을 흘리는 중이리라.
“그런 우리의 노력과 연구 결과가 고작 개인의 공장 하나만도 못 하다고?”
“그런 말은 아닙니다.”
“이능력 연구 자료는 단순히 서류로만 돼있는 게 아니네.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70% 이상이 여기서 들고 나갈 수 없는 것들이야. 그런데 전략적으로 아무 가치 없는 공장 하나 지키겠다고 병력을 거기다 투입하면... 여기 있는 자료들은 모두 폐기하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우리가 애지중지 자식처럼 아낀 것들인데...”
“죄송합니다. 상부의 명령이라서...”
“그리고 여기 있는 이능력 연구 시설들. 이게 하루아침에 구축된 게 아닌데... 샐 수도 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이루어놓은, 독자적인 것들인데 이걸 포기하라고?”
소장은 뒤돌아섰다.
“난 여기 남겠네. 지후 군은 볼 일 보게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가 크게 소리쳤다. 밤낮으로 연구만 한, 나이 50이 넘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백이 흘러나왔다.
“나는 피땀으로 일군 이 자료와 시설들을 도저히 버리고 도망칠 수 없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직원들은 망치라도...”
그는 테이블에 있는 핀셋을 집어 들었다.
“정 안 되면 이거라도 들고 여기를 지키세. 함께 할 사람들 있는가?”
몇몇이 손을 들자 잠시간 침묵이 일었다. 이내 몇몇은 수십으로, 전원으로 변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이분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원동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 역시.
하지만 나는 결정 권한이 없다. 그저 학교에 소속된 이능력자 중 한 명일뿐이다.
그래서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리시콴은 동남아시아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한 전력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에도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마시고...”
“감정적? 목숨이 걸린 순간에 단순히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네. 상황이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고, 가슴은 과도하게 가열돼 터져나갈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능력자란 과연 어떤 존재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더라?
나는... 나는... 나는...
본관으로 돌아갔다. 최한울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따지듯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연구소 분들을 버려두고 이대로 갈 건가요?”
“어쩔 수 없잖아. 본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겠다는데... 우리는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명령입니까? 사람입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시간 없어. 빨리 움직이자고.”
화가 난다. 수많은 사람이 그냥 죽게 생겼는데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저 태도.
물론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그 역시 큰 권한이 없는 직위에 있기에.
하지만 이능력자라면 아니, 그 전에 사람이라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이 땅의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지닌 이능력자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명령입니까, 사람입니까?”
“시간 없다니까! 명령을 지키는 게 사람을 지키는 일이야.”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명경아, 근우야, 창진아... 너희는 내 선택을 따를 거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무... 무슨 말이야?”
“형, 갑자기...”
“빨리 대답해!”
“난 항상 너와 함께야.”
“형이랑 같이 있으려고 여기 남았잖아.”
발끝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진다. 곧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내가 상단 차기로 최한울을 쓰러트린 것.
명경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했다.
“지... 지후야...”
“명경이랑 근우는 애들 모두 훈련장에 집합 시켜. 창진이는 정부 사람들 감금시키고.”
“너... 어쩌려고 그래.”
상황이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내가 지금 연구소 직원들을 살리려는 일은 감정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그저 명령 불복종인가?
답은 내지 않기로 했다. 뒤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감정에 따르기로 했다.
“지금부터 지휘는 내가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책임 역시 내가 진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3일 안에 올린다고 해놓고...
양치기도 이런 양치기가 없습니다 ㅡㅡ;
죄송합니다.
급똥별님 쪽지는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답쪽지를 보내려다가... 글을 한 편 올리는 게 답이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렸습니다.
원래는 내일 새벽에 올리려고 했거든요 ^^;
제가 요즘 건강에 많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재가 지연되더라도...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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