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작은 파괴의 여제(3)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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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경과 지역해방전선의 이능력자들이 안동에 도착했다. 그녀는 바로 녹색 눈의 늑대 2차 토벌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장에는 그녀와 함께 온 김연흠과 정현석을 비롯해 이지후, 사령관 강문호와 안동의 여러 이능력자들이 있었다. 새로 온 정부의 감시관도 자리에 함께 했으나 신윤정은 보이지 않았다. 직위가 해제된 탓이었다.
한 번 실패를 했기 때문인지 이번 회의에는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백 명이 넘게 앉을 수 있는 회의장이 꽉 찼으며, 방송 장비들도 보였다.
회의는 속도감 있게, 이지후의 의도대로 진행됐다.
여기서 김명경의 위세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지후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강문호는 지난 토벌의 실패 탓에 안동의 사령관에서 물러난 상태였는데,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임시로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다.
이번 감시관은 강영철과는 달리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토벌대의 대장은 레벨 8인 김명경이 맡기로 했으며, 그녀를 이지후와 정현석, 김연흠이 보좌하기로 했다. 강문호는 후방을 담당하기로 했고.
토벌대의 주력을 본부에서 온 이능력자들이 맡기로 한 것이다.
회의는 모두 끝났고, 일정의 마무리로 김명경이 연설을 할 차례가 됐다. 그녀가 연단위에 서자 방송장비가 가동됐다. 이번 연설은 안동 방송에서 생으로 중계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카리스마 있는 연설로 안동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워주고,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이게 레벨 8인 그녀가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에 무척 약했다. 더군다나 공식 석상이라면 질색을 했다. 하지만 이지후가 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였다.
이지후는 그녀를 위해 연설문을 써주었고, 모두 외우도록 시켰다. 언제 그녀가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모르기 때문.
촬영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연설이 시작됐다.
안동의 주민들은 TV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화면에 그녀가 나타나자 환호성을 질렀다. 방벽 근처의 빈민가에부터 시내까지 들썩거렸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인기!
“안녕하세요. 안동 주민 여러분. 지역해방전선의 김명경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뼈 아픈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미흡한 대처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그에 대해 지역해방전선의 일원으로서 정중하게 사과를 하겠습니다.”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묵념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눈시울이 벌써부터 붉어진 사람도 있었다.
그녀의 연설은 2분 정도 이어졌고, 이제 가장 중요한 마지막 1분을 향해 달려갔다. 안동 주민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찬가를 불어 넣기 위해.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흐트러짐 없는 몸짓과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눈빛이 좌중을 압도했다. 어께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기백은 작은 체구의 그녀를 한 없이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시민들은 왜 지역해방전선의 이능력자들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죽음의 대지로 진격할 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인류의 천적 이생물체들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어떻게 얻었는지 이해했다.
이지후는 그녀가 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제 연설은 거의 다 끝났다. 한 고비만 넘기면 된다. 그런데...
“비공식 영토, 안동에 사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소중한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 지역해방전선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갑자기 눈을 멀뚱멀뚱 뜨기 시작했다.
“지역해방전선은... 전선은...”
재빠르게 원고를 보거나 정면에 있는 종이를 보면 되지만 당황한 탓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곁눈질로 이지후를 슬쩍 쳐다봤다. 그의 오른쪽 안면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 화났구나... 이지후, 저 얼굴 무섭다. 하지만 어떡해...이미 까먹었는걸. 에이! 몰라. 될 대로 되라.’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파괴의 여제의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사르르 녹았고, 애교가 묻어나는 웃음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헤헤... 뒤에 내용이 더 있는데 까먹었어요. 음...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뭐냐? 아! 맞아.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녹색 눈의 녹대를 토벌 하는 거잖아요.”
그녀는 갑자기 주먹으로 연단을 내려쳤다. 힘 조절에 실패한 탓에 애꿎은 연단만 박살났다.
“어라? 실수!”
혀를 빼꼼 내민 후,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제가 앞장서서 이 두 주먹으로 늑대들을 다 때려잡고 올게요. 그러니까 여러 분은 토벌에 나서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덜 다치도록 빌어주기만 하세요. 그거면 돼요.”
그녀가 오른쪽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귀엽게 웃자 또 한 번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일었고,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오로지 이지후만이 경직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공식 일정이 끝나자 그녀는 바로 그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양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은 다음 말했다. 기가 죽은 목소리가 나왔다.
“화... 났어?”
그는 볼멘소리를 냈다.
“안 났을 리가 없잖아.”
“미안... 한 번 봐줘.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했으니 된 거잖아.”
“이제 이미지를 바꿀 때가 됐다고 했잖아.”
예전에는 그녀의 이런 독특한 매력으로 많은 재미를 봤다. 그래서 이지후는 일부러 그녀의 실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제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 과거와 같은 전략은 점점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마치 갓 데뷔한 아이돌이 귀엽고 순수한 컨셉으로 나서다가 나이가 들면 섹시 노선으로 바꾸는 것처럼, 이제 그녀는 공식석상에서 성숙하고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비공식 영토의 희망의 여신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이미지를 통해 공식 영토의 여론을 움직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식이니 그의 의도는 매번 어그러질 수밖에.
그녀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며칠 만에 보는 건데 화 풀어.”
이지후는 TV를 잠시 바라봤다. 안동 중앙 시내를 잡아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김명경과 지역해방전선을 외쳤다.
그는 더 이상 화를 내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매사 이랬으니까.
그가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녀의 얼굴이 바로 환해졌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그래. 그래!”
“나 요즘 돈 없으니까 본부 식당에서 먹자.”
“알았어. 대신에 밥 먹고 파르페 콜?”
“그건 내가 살게.”
“오! 좋아. 완전 좋아.”
“파르페는 구미호 아이랑 같이 먹자.”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지하 2층에 다 달았을 무렵 맞은편에서 낯익은 두 명의 여성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민승아와 서문영이었다.
서문영이 반갑게 말했다.
“어? 명경 쌤, 언제 오셨어요?”
김명경은 그녀들이 지역해방전선의 이능력 학교를 다닐 때, 무술을 가르쳤다.
김명경이 활짝 웃으며 그녀들을 안았다.
“우리 애기들 잘 지냈어? 여기서 고생 많았지? 다들 여전히 예쁘네.”
“오빠랑 식사하러 가시는 거예요?”
“응. 있다가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그들은 서로를 지나쳐갔다. 한 세 걸음 쯤 걸었을까? 민승아가 뒤를 돌아봤다. 계단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는 이지후와 김명경의 모습이 보였다. 다정해 보였다.
시선이 그의 옆얼굴을 따라갔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다. 명경아 너 애 옷 사왔어?”
“당연 사왔지.”
“예쁜 걸로 사왔지?”
“후후! 내 안목을 믿으시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에게 보이는 미소와는 다른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서문영이 그녀에게 말했다.
“승아야, 뭐해?”
“보기 좋아서.”
“오빠랑 쌤?”
“응.”
스스로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청 친해 보이시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어떤 사이시려나? 궁금하다. 그렇지?”
“그래. 궁금하네.”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
식사를 마친 이지후가 말했다.
“명경아 나랑 갈 데가 있어.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밥을 먹다 그녀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던지 귀까지 쫑긋 세워졌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눈은 초롱초롱 반짝였고.
갑자기 품에서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마셔.”
“뭔데?”
“있어. 몸에 좋은 거.”
이지후는 그녀가 주는 것이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모두 마셨다. 그녀는 그가 행여나 한 방울이라도 남길까 걱정이 돼 계속 주시했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엑, 뭐 맛이 이따위야.”
“뱉지 마! 좋은 거는 원래 맛이 없는 법이야.”
“으... 이거 정말 최악이다.”
그녀가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두 뺨은 잘 익은 사과 색이 됐고, 목소리는 한 음 올라갔다.
“어... 어디 가려고? 왜 사... 사람이 없는 곳으로...”
“아! 나 신기술을 하나 만들고 있는데, 봐 달라고.”
열기는 급격하게 오른 만큼 식는 속도 역시 빨랐다. 그녀는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어. 그래.”
뚱한 눈. 고저가 없는 목소리.
‘아니 처음부터 기술 봐달라고 하면 되지... 그걸 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는 말로 하는 거야.’
이지후는 입맛이 쓴지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다.
“명경아 그런데 이거 도대체 뭐야?”
궁금해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냥 아무 것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김명경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ㅎ
다음 화 부터는 다시 전장으로...
아... 이지후의 신기술의 정체부터 밝히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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