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전장에서 흐르는 핏빛 발라드(3)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붉은 미늘창의 기사는 화염에 휩싸였으면서도 무기를 휘두르며 이능력자들의 몸통을 벴다. 그 모습은 악귀 그 자체였다.
그는 영혼까지 태우는 고통에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불의 여인이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단백질 비슷한 무언가가 타는 냄새와 금속이 녹는 냄새가 동시에 풍겼다.
“크라라라!”
붉은 미늘창의 기사는 고통 때문인지 큰소리를 내며 하혜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정현석이 횡으로 도를 휘둘렀고, 진명은 옆구리에 쌍장을 날렸다.
그녀의 기술 ‘불의 여신’은 그칠 줄 모르고 붉은 미늘창의 기사를 휘감았다. 그 탓에 붉은 미늘창의 기사는 정현석의 대도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진명의 공격 역시 허용했다.
갑주가 너덜너덜해졌으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넘어지려 했다.
이지후의 눈이 번쩍였다.
‘지금이 바로 기회!’
다리에 최대한 이능의 기공을 모았다.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자 그 순간 하혜영와 진명의 눈이 그의 다리로 향했다.
‘어? 이지후... 저 막강한 기운은 뭐야? 명경이가 저런 얘기는 안 해줬는데.’
‘저 얄미운 놈. 강해졌잖아. 그것도 상당히.’
이지후가 도약했다. 붉은 미늘창 기사의 얼굴을 후려찼다. 하지만 붉은 미늘창의 기사는 마지막 힘을 다해 양팔을 들어 발차기를 막아냈다. 그러자 이지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공중에서 몸을 틀었다.
‘계산은 마쳤어. 내가 잡을 수 있어.’
돌려 찬 발이 정확하게 얼굴을 때렸다. 붉은 미늘창의 기사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미늘창을 지팡이처럼 짚는 것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하혜영이 발동한 기술은 계속 그의 생명을 갉아 먹고 있었고, 조금 전 이지후에게 당한 공격 때문에 의식이 날아간 것처럼 보였다.
이지후가 붉은 미늘창의 기사와 가장 가까웠다. 그는 다시 한 번 미끄러지듯 전진하며 발차기를 날릴 준비를 했다.
‘이거만 먹이면 내가 잡는 거야. 할 수 있어.’
그 때, 두 마리의 이생물체가 그를 가로막았다. 이지후가 양손에 비수 모양 이능력을 발동했다.
‘이 녀석들을 처리할 시간은 없어.’
비수 모양 이능력을 휘둘러 그들의 공격을 흘려냈으며, 그 사이를 통과했다. 붉은 미늘창의 기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기공을 잔뜩 모아 놓은 오른 발을 날렸다.
- 퍼벙!
이지후의 눈이 커졌다. 그의 발보다 하혜영이 발동한 불기둥이 먼저 붉은 미늘창의 기사를 덮쳤다.
- 쿵!
붉은 미늘창의 기사는 외마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 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토록 인간을 괴롭혔던 강철 종족 최강의 치프틴급은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세 번에 걸친 전투에서 붉은 미늘창의 기사가 죽인 이능력자의 수는 도대체 몇 명 이란 말인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수백이 넘을 것이라고 짐작만할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지후는 허탈하다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좋아서 팔짝 뛰고 있는 하혜영이 보였다.
그녀의 기술이 어느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현석과 진명의 위치 계산까지 해가며 최적의 타이밍에 붉은 미늘창의 기사에게로 뛰어들었다. 확실한 전공을 세우기 위해서!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불꽃 마녀의 히스테리를 사용하고 바로 공격을 날릴 수 있을 줄이야. 그래, 내가 강해지는 것처럼 혜영이도 강해지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빼먹고 계산했어. 바보처럼...’
그는 사람이 모든 상황을 고려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책을 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하혜영에게 다가갔다. 신나게 뛰던 그녀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비틀거렸다. 모든 힘을 쏟아 부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녀를 붙잡아 주었다.
“불꽃, 수고했어. 역시 불꽃 마녀의 히스테리는 대단해.”
“야, 그런 이름 아니거든. 불의 여신이라는 기술이거든.”
“하지만 불꽃 마녀의 히스테리가 더 어울리는 걸. 결혼하고 싶으나 결혼 못 한 여자의 한이 느껴지는, 마치 니 캐릭터 같은... 아, 뜨거!”
이지후의 머리에 또 한 번 불이 붙었다. 그가 울먹였다.
“이 씨... 내 머리...”
“대머리로 만들어주려다 기분 좋아서 이 정도로 봐준다. 붉은 미늘창의 기사를 내가 잡았으니 포상금 두둑이 나오겠지?”
“붉은 미늘창 잡는데, 고생은 니가 젤 많이 했으니까...”
“보험금이랑 포상금 합치면 방어구 새 걸로, 더 괜찮은 걸로 맞출 수 있겠다. 이번에는 방어구 라인에다가 크리스탈을 밖아 볼까?”
“보험 사기꾼 기질이 있어... 하여간 부럽습니다.”
그녀는 이지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이지후가 웃고 있지만 실제로 웃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붉은 미늘창의 기사 니가 잡으려고 했던 거야? 이유가 있어서?”
그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재빨리 여태까지 미루어 두었던 의문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아까는 전투 중이라 경황이 없어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그래, 지역해방전선이 맡은 곳은 여기가 아니잖아. 그리고 김관우 대장님이랑 지후가 같이 왔다는 이야기는...’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지후, 너... 설마 또?”
“뭐가 또야.”
“명령 위반한 거야? 그렇게 김관우 대장님을 살려서...”
“그런 거 아니야.”
“우리가 일이 년 봤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갑자기 기공 끌어 올려서 붉은 미늘창의 기사한테 달려든 것도 이상해.”
“이상할 게 뭐 있어.”
“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특히 진명 스님 앞에서 모든 능력을 발휘할리 없잖아.”
이지후가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진명을 바라보았다. 진명은 이지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할 수 없었다. 반면 이지후는 딱히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혜영이 그런 말을 한 이유.
예전에 이지후는 진명과 연습대결을 했었다. 그 때, 진명에게 제대로 패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본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지후가 입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
“이생물체들과 전쟁 중인데, 능력 발휘 다 해야지. 숨겨 두는 게 말이 되냐.”
“그건 맞지만 너라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을 거야.”
“그런 거 진짜 아니야.”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전신에서 고통이 엄습하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이지후가 잡아주고 있었기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나 정말 한계인가 보다. 붉은 미늘창한테 너무 많이 당했어.”
“정말 수고했어, 불꽃 마녀의 히스테리가 원래 몸에 엄청 무리 가잖아. 게다가 그 괴물 같은 놈을 상대했으니...”
이지후는 그녀를 똑바로 일으켜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붉은 미늘창의 기사를 잡은 1등 공신이니, 힘들겠지만 사람들의 사기 올려주는 역할까지는 부탁하고 싶은데.”
“그래. 그게 내 의무겠지. 그런데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이지후는 그저 웃었다.
쌍검의 엠페러급을 상대하고 있던 김연흠은 붉은 미늘창의 기사가 잡혔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져 있는 이지후를 쳐다봤다. 이곳에 오기 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전공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것도 눈에 확 띄는 것으로.
평소 그가 출세욕이나 명예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김관우 및 부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한 번 위태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네임드 치프틴급 이상의 목을 베 공적을 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의 지휘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에.
김연흠은 붉은 미늘창의 기사를 이지후가 아니라 하혜영이 잡은 것을 확인했다. 쓴웃음을 지었다. 이지후가 공적을 위해서 자신에게 기회를 밀어달라고 할 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으니까. 본인의 미래가 위태롭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생명 때문이다. 이지후는 특정인에게 기회를 주려다 타인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납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안동에서 김연흠에게 동생의 복수를 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김연흠은 그걸 이해했다.
김연흠은 이지후에게서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지후 형의 행동... 좋게 표현하면 고결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거지. 하지만 그 공정하고 대쪽 같은 태도에 우리가 끌린 게 아닐까?’
다시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전쟁이 끝나고 형이 만약 다시 한 번 징계를 받는다면... 형은 그리고 해방전선은 어쩔 수 없이 변화의 길을 걸을 거다. 여태까지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왔던, 정부와 해방전선의 투쟁 없는 공존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니까.’
이지후는 마지막 연출을 하고 있는 하혜영의 등을 바라봤다.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일장 연설을 통해 이능력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피냄새를 머금은 전장의 바람이 이지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아무리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이라 한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그도 평범한 인간인데.
깊은 숨을 내쉬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하혜영의 위치에 자신이 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질투는 접어 두자고. 뭐 방법 있나? 쌍검 든 놈을 잡는 게 나에게는 마지막 기회일 테니 놓치지 않는 수밖에.’
분명 김명경에게 자신이 쌍검의 목을 치고 싶다고 하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아니 눈에 불을 키고 그 이상으로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팀플레이가 어긋나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면?
“그럴 수는 없지...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야.”
그 순간 정현석이 다가와 그의 어께에 손을 올려놓았다.
“형! 역시 형은 대단해요.”
정현석은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며, 눈은 하트로 변해 있었다. 이지후는 불길함을 느꼈다.
“갑자기 웬 칭찬이야?”
“에이, 알면서.”
정현석이 하혜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혜영이 누나는 어떻게 저리 예쁠 수 있죠? 스포츠 브라에서 이어지는 허리 라인 보세요. 마치 신이 빚어낸 백자의 유려한 곡선이 떠오르지 않나요? 저 모습을 봤더니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요.”
“그럼 그냥 죽어.”
“저는 이번 일로 형을 더욱 존경하게 됐어요.”
“도대체 왜?”
“형이 의도적으로 혜영이 누나를 벗긴 거잖아요.
“뭐... 뭐? 뭘 벗겨.”
“남자의 당연한 욕망이니까 다 이해해요. 명경이 누나한테는 비밀로 해주죠.”
이지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반면 정현석은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그 후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혜영이 누나가 쓴 마지막 기술, 그거 쓰면 누나 전용 특수 방어구가 아니면 열기 때문에 모두 날아가 버리잖아요. 그러면 자연히 누나의 아름다운 몸매가 드러나고요. 형은 그걸 계산해서 누나한테 그 기술을 쓰라고 한 거 아닌가요?”
“난 최대한 빨리 붉은 미늘창을 잡으려고...”
“그리고 일부러 마지막 공격을 양보해서 누나가 사람들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 거잖아요. 저렇게 양팔을 들어 올리며 점프를 하니 눈이 호강하는 장면이 완성되죠. 역시 형은 대단해요. 천재라고요. 그걸 다 계산하다니...”
이지후는 할 말을 잃었다.
‘여자 몸매 한 번 보려고 자기 미래를 거는 놈이 어디 있어. 이 미친놈아...’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았다.
결국 하혜영은 이번 전투를 마지막으로 전장에서 퇴장했다. 이동진처럼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지후는 쌍검의 이생물체와 싸울 채비를 시작했다. 김관우가 점점 쌍검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무리를 많이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관우 아저씨를 잠시 쉬게 하고 진명 스님이랑 현석이를 투입하면 어떻게 메워지려나? 하지만 그걸로 쌍검을 잡기에는 부족한데. 진명 스님도 지금 상태 보니 위태위태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마지막 퍼즐 조각이 필요한데...”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소리냐?”
이지후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전장으로 복귀한 윤성윤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당당한 태도로 그가 말했다.
“작전 짠 게 있으면 말해봐라. 들어보고 판단해주마.”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추석 때 놀았더니... 글이 늦었습니다.
다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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