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전패의 이능력자(2)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토벌 성공 축하 술자리는 안동지부 건물의 지하 식당에서 벌어졌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분위기는 떠들썩했다.
이지후가 있는 테이블에는 김명경, 박재성, 정현석과 멘티들이 있었다. 김연흠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자기 방에 있겠다고 했다.
술로 안동 소주가 나왔다. 생산량이 확 줄어 보기 힘든 고급술이었다. 40도가 넘는 독한 술이었지만 이지후와 김명경, 박재성, 정현석은 맛있다며 신나게 마셨다.
반면 멘티들은 그러지 못했다. 높은 도수가 부담스러웠으니까. 나이와 경험에서 오는 차이였다.
그들의 테이블로 누군가 다가왔다. 덩치가 큰 남자 두 명이었다. 안동의 젊은 이능력자들.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 하고 머뭇거렸다.
이지후가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오른쪽에 있는 이능력자가 팔꿈치로 왼쪽에 있는 동료의 허리를 찔렀다. 그러자 그 남자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저... 저기... 그러니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남자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헛기침을 한 번한 다음 말을 하는데, 간신히 목소리를 낸다는 느낌이었다.
“민승아 씨랑 서문영 씨, 저희랑도 술 한 잔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녀들은 인기가 많았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늘씬한데다가 둘 다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인기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상큼하고 발랄한 민승아와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의 서문영은 안동의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민승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저희는 여기서 할 대화가 있어서요.”
“그러면 있다가라도 꼬... 꼭 저희 쪽으로 와... 주시면...”
“여기 대화 끝나고 기회가 되면요.”
“가... 감사합니다.”
남자 둘은 그들의 의도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어깨에 힘을 주며 돌아갔다.
그러자 이지후가 풋, 웃으며 말했다.
“그거 정중한 거절 아냐? 저쪽은 모르고 있는 거 같은데? 이생물체들하고 싸우기 바빠서 여자 만날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그러자 서문영이 말했다.
“내가 대답할 걸. 확실하게 거절해주는 건데.”
“왜? 나이도 비슷할 텐데 놀다 오지.”
“저는 술자리에서 작업 거는 스타일 싫어해요. 진중함이 없는 거 같이 느껴져요.”
“이런 면에서는 보수적이네. 승아 너도 그래?”
“저는 별 상관없긴 한데... 그냥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민승아는 손으로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지후가 가지 말라고 말려줬으면 하고 바랐으니까.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서문영이 김명경을 보며 질문을 했다. 날카로운 그녀의 눈이 평소와 다르게 초롱초롱하다는 느낌이었다. 김명경은 그녀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쌤하고 지후 오빠 지난번 토벌에서 보여준 합동 공격 정말 환상이었어요.”
조용히 있던 최진혁이 거들고 나섰다.
“맞아요. 정말 대단하셨어요.”
“두 분이 어떻게 호흡을 맞추셨어요? 이능력 학교 다닐 때 처음 만나신 거죠? 그 때 몇 살이셨어요?”
김명경이 대답했다.
“그렇지. 우리 기수는 입학 기준이 너희랑은 다르게 스무 살부터였어. 그 때 우리는 둘 다 스무 살이었고.”
“우와! 딱 우리 나이 때셨네요. 처음부터 사이가 좋으셨어요?”
그러자 박재성이 웃었다. 그가 대신 말을 이어갔다.
“사이라... 엄청 났지.”
그 말에 이지후도 웃었다. 멘티들은 궁금하다는 눈을 했고, 김명경은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박재성과 이지후가 말을 주고받았다.
“너랑 명경이 진짜 매일 같이 싸웠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그 때의 명경이는 엄청난 고집쟁이였으니까.”
“말이 안 통했지. 삐뚤어진 10대 소녀의 전형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1학년 때, 같은 팀 돼서 팀별 전투했던 거 생각난다. 명경이가 그 때, 너네들은 내 도구나 다름없으니까 닥치고 나만 서포트 해, 이랬던 거 같은데.”
“맞아. 그랬었지. 다시 들으니까 정말 엄청난 대사네. 진짜 그립다, 그리워. 스무 살의 김명경 다시 보고 싶다.”
둘이 큭큭거리며 웃자 김명경이 탁, 소리가 나도록 잔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말했다.
“난 안 그리워! 여자의 과거를 함부로 말하지 마! 더 이상 입 한 번 뻥긋하면...”
그녀의 주먹에 기운이 응축됐다. 이지후와 박재성이 뜬금없이 경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가계부채가 문제야.”
“하수도 사업 민영화 한다며?”
“하수도 민영화되면 몇 년 후에는 상수도 민영화로 이어질 텐데.”
노련한 이능력자들 다운 재빠른 태도 전환이었다. 과거를 까발리는 것으로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으니까.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다들 술을 꽤 많이 마신 상태가 됐다. 이지후가 잠시 화장실에 가자 민승아가 말을 꺼냈다.
“선생님네 기수에서도 썸 같은 거 많지 않았나요? 윤성윤 선배님하고 이미나 선배님 같은...”
“3년간을 매일 부대끼니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지. 그리고 성윤이랑 미나는...”
박재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받았다.
“안타깝지. 특히 미나 입장에서는. 여기서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아니지.”
김명경은 민승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스무 살 나이의 여성이 딱 관심가질 만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질문 귀엽네. 술기운 때문에 볼 발그레해진 것도 귀엽고. 인기 정말 많겠어.’
하지만 김명경의 생각과 달리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순수한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따로 알고 싶은 게 있었다. 그녀가 질문을 하나 더 던지려는 순간 박재성이 주의를 끄는 말을 했다.
“그 말 들으니 연수 누나 생각나네. 우리 동기였던.”
김명경의 표정이 뚱해졌다.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정현석이 신나서 말했다.
“지후 형, 옛 애인이요?”
“응. 지금은 정부 소속이지.”
정현석이 슬쩍 김명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 누나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뭐!”
“화난 거 같은데요.”
“화 안 났어. 내가 화를 왜 내?”
“에이! 아닌 거 같은데요.”
박재성은 김명경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을 봤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보는 느낌이라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눈치 없는 후배를 말리고 싶었으나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도 같이 휘말릴 수 있기에.
정현석이 다시 들떠서 말했다.
“누나가 색기(色氣)를 발산 못하니까 형이 관심을 안 갖죠.”
김명경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네가 뭘 알아. 나처럼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여자가 어디에 있다고. 나 만인의 아이돌 김명경이야!”
“누나의 얼굴과 몸매는 분명 괜찮은데요... 그런데 그게 왜 형한테는 안 먹힐까요? 다 색기 문제라니까요. 형도 예전에 애인이 있었던 것을 봐서 형이 고자는 아닌 거잖아요.”
박재성은 이제 정말 무서웠다.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반면 멘티들은 이 흥미진진한 상황에 온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민승아의 경우는 복잡한 심정이겠지만.
김명경이 벌떡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내가 왜 지후한테 매력을 어필해야 돼? 우리 그런 거 아니라니까!”
후배의 도발에 말려든 그녀는 이성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후 고자 아니야. 내가 확인해 봤어. 코끼리가 뿌우하고 우는데 엠페러급은 아니더라도 치프틴급은 된다고.”
정적이 일었다. 엄청난 말이 나왔으니까. 당황한 박재성이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며... 명경아... 오해의 소... 지가 있는 발언 같은데, 진정하고 다시 말을...”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얼굴이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새빨갛게 변했다. 어떻게든 정정해야 했다.
“그... 그러니까 그 말이... 같이 자고 일어나서 확인을 했는데...”
술을 넘기던 민승아가 풋, 술을 뱉어냈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것은 매한가지였다.
사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이지후네 집에서 함께 티비를 보다가 잠들었었고, 먼저 일어난 그녀가 자고 있는 이지후를 깨우기 위해 이불을 치우다 엉겁결에 그 무언가를 봤다는 것이었는데...
뇌가 술과 당황으로 취한 상태라 말이 이상하게 나왔다. 그렇게 오해는 깊어져갔다.
민승아가 입술을 떨며 말했다.
“가... 같이 자... 고 일어나서 확... 인을 했다고요? 그 의미는 보통...”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뭐냐면... 자긴 잤는데... ”
정현석이 키득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그녀의 눈에 불이 일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냅다 정현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컥!”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니라니까!”
박재성에게도 어퍼컷을 날렸다. 그의 몸이 붕 뜨더니 정현석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는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 했다.
그 광경을 본 주변의 이능력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역시 파괴의 여제.”
“화끈하시네.”
정확하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필요도 없었다. 술자리에서 이런 상황은 그냥 신나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그 때 이지후가 돌아왔다. 영문 모를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녀의 붕권이 이지후의 복부마저 가격했다.
“크억!”
그도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정현석, 박재성과 같은 운명이 됐다. 쓰러지면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도대체 왜...”
민승아가 그에게 다가갔다.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이 코끼리를 확인하셨는데, 치프틴급이라서...”
“그게 무슨 말이야...”
***
폭풍 같았던 일련의 소동이 지나가자 분위기는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다들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을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연 김명경이 어떻게 확인을 했으며, 코끼리가 뿌우하고 우는데 치프틴급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하는...
입 밖으로 냈다가는 그녀한테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문영, 민승아, 최진혁은 그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수밖에.
‘코끼리가 치프틴급이라는 것은 크기? 그래, 꼭 키와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치프틴급은 강하기를 말하는 걸까? 하긴 오빠의 스태미나는 정말 엄청나니... 으악!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치프틴급이라니! 역시 나의 존경하는 멘토님. 나는 나이트급이나 될까? 자신이 없네... 부럽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민승아는 술을 계속 마셨다. 그러다 아까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지후에게 질문을 했다.
“오빠, 아까 재능 이야기 했었잖아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고 하셨는데, 자세히 들려주시면 안 돼요?”
“그 노력이라... 이거 멘티가 물어보니까 안 알려줄 수도 없고.”
그러자 김명경과 박재성이 마주보며 웃었다.
“이 이야기도 참 재밌는데.”
“그러게. 나 지후랑 기숙사 룸메이트 할 때, 지후 맨날 지고 와서 펑펑 울던 거 생각나네. 그거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지.”
이지후가 볼멘소리를 냈다.
“맨날이라니... 그리고 펑펑 울지는 않았어. 살짝 눈물을 찔끔 했을 뿐이지.”
김명경과 박재성이 배를 잡고 큰 소리로 웃었다. 웃다가 눈물까지 나왔는지 김명경은 손가락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녀가 멘티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 전패의 이능력자라고 들어봤어?”
다들 못 들어본 눈치였다.
“하긴 너희는 우리랑 기수 차이가 많이 나니 모를 수도 있겠네. 2년 반 동안 일대일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 한, 이능력 학교 역대 최다 패배 기록 보유자가 있는데 말이야...”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19금이 될 뻔 했어...
내일 연재 쉽니다. 야구보러 광주 챔피언스 필드 갑니다!
비록 저는 기아와 SK 팬이 아니지만...
다들 연휴 잘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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