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혁의 하루
“어따, 죽겠다.”
두혁은 입을 쩍 벌리며 크게 하품을 했다.
목이 다 늘어난 러닝셔츠.
앞이 누렇게 변색된 트렁크 팬티.
몸이 간지러운지 온몸을 긁으면서도 씻지는 않는다.
평일 낮이지만 일을 나갈 생각은 없는 것인지 앞에는 술병 두어 병이 굴러다닌다.
온몸에서 풀풀 풍기는 술 냄새가 역겹다.
“후.”
있는 것이라고는 벽에 걸린 작은 TV와 소주 열댓 병이나 겨우 들어갈까 싶은 작은 냉장고뿐.
화장실도 딸려 있기는 하지만 들어가서 샤워나 겨우 할 수 있을까 한 작은 크기다.
게다가 거구의 두혁이 대자로 뻗어 누우면 꽉 차버릴 것 같은 작은 방.
그것이 두혁의 보금자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에 차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방을 구할 당시의 두혁에게 돈이 거의 없었던 것을.
그도 그럴 것이다.
두혁은 바로 몇 달 전에 교도소를 출소했기 때문이다.
죄목은 미성년자 강간치상.
벌써 두 번째 같은 죄목으로 교도소를 갔다 오는 참이다.
빌어먹을 년.
지도 좋았으면서 왜 신고를 하고 지랄이야.
그 년을 떠올리자 분노와 함께 묘한 흥분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고 하얗고 보들보들한 살갗이 떠오르자 저절로 입이 쩝쩝하고 입맛을 다신다.
고년은 참으로 맛났다.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보들보들한 살갗.
두혁을 쏘아보던 그 눈빛.
가느다란 허리.
그 촉감만 떠올리면 아직도 힘이 불끈 솟을 정도로 황홀해진다.
“에이, 망할 년.”
두고두고 예뻐해 주려던 그 년이 경찰에 두혁을 신고했을 때는 정말로 충격을 받았다.
솔직하게 인정한다.
처음에는 다소 강제적이긴 했다.
한 달.
야간 일에 찌들어있으면서도 자그마치 한 달 동안이나 그 년을 지켜봤다.
귀가한 후 저녁을 먹고 학원을 갔다가 다시 귀가.
그 길에서 그 년만 쏙 빼 올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그 년의 이동범위 중 유일하게 CCTV가 없는 낡은 건물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옛날에는 학원이었던 듯한 건물은 거의 폐허가 되어있었지만,
관리인이 창고 겸 관리인 실로 쓰던 방에는 매트리스까지 있었다.
여기다.
두혁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사타구니를 꾹 눌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노리고 있던 그 년을 학원에 가는 길에 쏙 빼서 데리고 왔다.
“이, 이러지 마세요.”
귀가 후 갈아입은 사복이 두혁의 입맛을 돋웠다.
짧은 바지 아래로 드러난 새하얀 허벅지가 아직 앳된 티는 나지만,
그 앳된 모습이 좋았다.
처음엔 강제로 데려왔지만, 틀림없이 그 년도 즐겼다.
중간부터 전혀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 그 증거다.
재판정에서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 날 두혁은 술을 마셨고, 그 년이 두혁을 유혹했다고.
처음에는 싫은 척 튕겼지만, 나중에는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고.
재판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두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증거가 없는데.
그 길에 있는 CCTV는 꽤 오래전부터 고장 나 있었다.
두혁이 그 년을 지켜보다가 자주 음료수를 사러 가는 슈퍼 사장이
얼마 전 도둑이 들었는데 CCTV가 고장 나 잡지 못했다며 분해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두혁이 억지로 그 년을 끌고 갔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 년이 두혁을 유혹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술은 좋은 핑곗거리다.
두혁은 일부러 몸에 술 냄새가 나도록 잔뜩 술을 뿌렸다.
입에서도 냄새가 나게 하려고 다소 마시긴 했지만 많이 마시진 않았다.
당연하다.
이제부터 즐겨야 하는데 그런 아까운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술을 먹으면 감각이 둔해져 버리는데.
하지만 아쉽게도 2번째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었기 때문에,
즉 재범이었기 때문에 참작하고도 10년이 넘는 형을 받았다.
그렇게 그 년하고도 멀리 떨어지게 되어버렸다.
교도소 생활은 두 번째지만, 처음 이상으로 거지 같았다.
좁은 방안에 사내새끼들끼리 모여앉아서 하는 이야기라곤 자기들이 사회에서 했다는 각종 범죄 이야기들뿐.
그나마도 대다수는 허세다.
두혁과 10년간 복역하면서 같이 방을 쓴 놈들은 두 손으로는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두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다른 놈들은 들락날락했으니.
하나같이 또라이라기엔 좀 모자란 놈들이었다.
허세로 누굴 담궜니 어쨌니 하지만 소문으로는 그냥 양아치 새끼들이었다.
멍청한 놈들.
두혁은 남몰래 그들을 비웃곤 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교도소에 있는 동안 교도소 생활도 점점 더 편해졌다.
예전에는 좁은 방안에 여럿을 쑤셔 넣어놓아서 칼잠을 자야만 했지만, 최근에는 그래도 잠자리는 나름 편해졌다.
밥도 꽤 맛이 괜찮아져서 콩밥을 먹는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게다가 자그마치 출역을 하면 돈을 준다.
모아둔 돈도 거의 없는 두혁에게 그 돈푼은 꽤 소중했다.
영치금을 모아봤자 쓸 데도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10년 후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당장 잘 곳은 구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출소하자 손에 쥐어진 것은 10여 년 동안 모은 돈 600만 원.
분명 더 받았던 것 같은데 세면도구나 수건이나 의복 따위로 꽤 써버렸다.
어쨌든 남은 돈으로 서울로 돌아와 겨우 방을 구하고 먹고 살 단도리를 쳤다.
할 줄 아는 건 몸 쓰는 일밖에 없어 막노동판을 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약 다섯 달.
그동안 모을 만큼은 모은 두혁은 어제부로 일을 쉬기로 했다.
딱히 나갈 돈도 없고 술값, 담뱃값이나 좀 나가고 아침저녁은 대충 근처 국밥집에서 4천 원으로 때웠기 때문에 다섯 달 일하고 모은 돈이 약 천만 원이었다.
이정도면 최소한 일곱 달은 놀 수 있다.
그런 계산이었다.
어제 일을 그만두자마자 술을 퍼부었다.
오래간만에 뜯는 치킨은 맛도 좋았다.
고된 노동에 지쳤는지 술 한 병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남은 치킨으로 아침에 2차를 달린 참이었다.
아침부터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기분이 알딸딸하다.
그러자 문득 여자 생각이 났다.
자연히 손이 사타구니를 향한다.
“아, 그 년 다시 먹고 싶다!”
눈앞에서 그 년의 넋 나간 얼굴이 아른거린다.
빌어먹을 년.
얼마나 좋은지 눈 풀린 것 봐라.
군침이 꿀꺽 흐른다.
저 피부에 혀를 대면 그 어떤 감미보다 달콤할 터였다.
두혁은 눈을 감고 허공에 혀를 날름댔다.
술기운 때문일까.
혀가 달았다.
안 되겠다.
큭큭, 거리며 그 날의 그 년을 떠올리던 두혁은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바지를 껴입었다.
빨래를 안 한 지 꽤 돼서 냄새가 나긴 하지만 아직은 입을 만하다.
새로운 사냥이다.
두혁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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