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자신은 혹시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 정도로 부모님은 상혁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늘 아빠랑 엄마 데이트 가는 날이니까 저녁은 알아서 먹어~. 냉장고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으니까 시켜먹던가 알아서 해.”
그 날은 상혁의 6번째 생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전에도 상혁은 단 한 번도 생일을 축하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생일파티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었다.
“와, 상혁이 내일 생일이구나?”
“떠때이, 때이가 뭐야?”
“아, 생일이라는 건 태어난 날을 말하는 거야. 케이크 먹으면서 축하하는 날이잖아.”
세상에!
케이크를 먹으며 뭔가를 축하하는 날이라니!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생일’이라는 멋진 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상혁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에이크!”
“에이크가 뭐야?”
“아, 음, 케! 이! 크!”
“아, 케이크? 뭐하게?”
“어, 나, 때이!”
“때이는 또 뭐야.”
“때앵이!”
“뭔진 모르겠지만 케이크 사주면 되는 거지?”
그녀는 몰랐다.
자기 아들의 생일이 내일이라는 것을.
갑자기 웬 케이크인지 모르지만 어디서 들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
그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아프다.
어쩌면 그 날 알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탄생이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축하할 일이 아니었음을.
그 후로도 상혁은 단 한 번도 생일을 축하받지 못했다.
그때마다 상혁은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부모님이, 누나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단지 우리 가족은 그런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초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스스로 몸단장을 할 때도 솔직히 말해 황당했다.
뭘 가르쳐나 주고 하라고 하던가.
“이제 너도 초등학생이니까 씻고 머리 빗고 이런 건 너 알아서 해.”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상혁은 몇 번이나 어머니에게 씻는 방법을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7년을 씻겨줬는데 그걸 못하니?”
였다.
상아에게 물어보는 것은 아예 논외.
아버지는 어머니 외의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처음에는 제대로 씻질 못해 꾀죄죄하게 돌아다니곤 했다.
사실 상혁 딴에는 깨끗이 씻는다고 씻은 것이었지만.
오죽하면 주변에서 수군거리다 못해 담임이 직접 상혁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상혁이가 요즘 잘 씻고 오지 않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나요···?”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물론, 상혁의 어머니는 거기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뇨? 씻는 건 애한테 맡겨놔서 전 잘 모르겠는데요.”
처음엔 망연자실한 얼굴로 듣고 있던 담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상혁의 어머니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상혁의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담임은 그녀를 포기하고 상혁을 가르치기로 했다.
“상혁아, 선생님이 너 씻는 방법 조금만 도와줘도 될까?”
그렇게 제대로 씻는 방법을 배우고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다소 꾀죄죄하게 다녔다.
그래도 고학년으로 들어가자 제법 깔끔하게 몸단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 어머니가 한 번도 도와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사람처럼 하고 다니자 친구도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물론, 마침 시기가 아버지의 전근과 맞물려 이사를 한 덕분이기도 했다.
무난히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갑자기 어머니는 선언했다.
“밥은 해 놀건대 차려 먹는 건 너네 알아서 해.”
사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상혁이 6살 때 8살 된 상아가 몸단장을 혼자 하도록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 어려서 뭐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상혁은 알고 있었다.
최근 갑자기 혼자 밥을 차려 먹게 된 누나의 모습이 곧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딱 한 번 투덜거린 적이 있다.
“밥 차려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어차피 밥은 해놓잖아.”
“너네 누나는 한 번도 투덜거린 적 없는데 넌 왜 그래?”
돌아온 답은 참담했다.
상혁의 질문에 전혀 대답이 되지 않는 대답.
그때쯤부터였을 것이다.
상혁이 부모님과의 대화를 포기하기 시작한 건.
아, 물론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누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아침과 저녁에 인사만 나눌 뿐인 십여 년을 보내자, 자연스럽게 대화도 사라졌다.
하지만 어머니와는 종종 대화를 나누곤 했다.
퉁명스러운 상아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울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상혁의 성격이 원래 그렇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인 것은 확실했다.
어머니는 옆에서 조잘거리는 상혁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엄마는 너네 또래 일 같은 거 몰라. 친구들한테 말해, 그런 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말을 걸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항상 그래서야 의욕도 사라질 만하다.
그렇게 상혁은 집안 식구들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누나와의 대화는 왜 포기했냐고 혹자는 물을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서술을 보면 상아의 성격이 대충 보일 것이다.
상아가 얼마나 ‘어머니’와 똑 닮았는지.
“후···.”
그리고 오늘.
상혁은 분명 아침에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었다.
“요즘 몇 번 지각했더니··· 가정 방문 오신데.”
“그래? 몇 시?”
“학교 마치고···. 한 5시나 6시쯤이라던데.”
“알았어.”
상혁은 어차피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심 기대했다.
어쩌면 뭔가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라고.
“다녀왔습니다···?”
현관에 신발이 하나도 없다.
깔끔떠는 어머니의 성격상 자주 신발을 정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바로바로 신고 나갈 신발은 항상 현관에 놓여있었는데.
“엄마?”
무엇보다도 집안이 싸늘하다.
기온이 낮고 높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기척이 없을 때 느껴지는 그 싸늘함.
상혁은 시계를 보았다.
4시 40분.
분명히 5시에서 6시 사이에 선생님이 도착한다고 했는데 대체 어딜 간 걸까.
상혁은 급하게 핸드폰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어디야?”
-나? 아빠랑 놀러 나왔는데.
“···뭐?”
황당했다.
말문이 막혔다.
한참을 어버버하고 있는 상혁의 귀에 어머니의 재촉이 들려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지금 놀러 나갔다고?”
-어, 밥은 해놨으니까 대충 꺼내먹어.
“내가 오늘 아침에 말했잖아. 오늘 선생님 오신다고.”
-그랬나? 어쩌지? 우리 지금 강원돈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분명히 아침에 가정 방문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도 했고,
이유도 이야기했는데.
정말 내가 저 둘의 아들이 맞긴 한 걸까?
저들이 내 부모가 맞긴 한 걸까?
내가 여기 가족의 구성원이긴 한 걸까···?
손안의 핸드폰을 꽉 쥔다.
“···됐어, 끊어.”
상혁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 움찔했다.
몸을 살짝 돌려 소파에 핸드폰을 집어 던져버렸다.
차라리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혼자 살 수 있게.
상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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