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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살인마는 궁금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9.01 22:33
최근연재일 :
2019.10.21 00: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0,408
추천수 :
658
글자수 :
199,025

작성
19.10.09 00:04
조회
111
추천
7
글자
8쪽

성실한 사채업자

DUMMY

하, 돌겠네.

이 사람한테 돈 받아내려면 식겁하는데.


성호는 작게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요즘은 불법 추심이다 뭐다 해서 사채업자들도 살기 힘들어졌다.


2016년 전까지는 그래도 겁 좀 주는 정도까지는 뭐라 하지 않았는데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인지 뭔지 거지 같은 것이 나오고 나서는 빡빡해졌다.


이제는 채권 추심 하러 가면 신분도 밝혀야 하고,

반복적인 전화나 방문을 해서도 안 되고,

야간에 전화나 방문을 해서도 안 된다.

관계인이나 제삼자에게 이 사람이 빚졌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안 되고,

그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하는 것도 안 되고,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해서도 안 된다.

다른 데서 빌려서 갚으라고 해도 안 되고,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해버리면 손도 대지 못하게 된다.


이리되니 죽어나는 것은 업자들뿐이다.

연락도 받지 않고 잠적하는 것은 기본이요,

불법적인 이율을 받다 보니 신고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서 협박하는 일도 왕왕 있다.

그런데도 성호가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집에 홀로 있는 여동생 때문이었다.


성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8살짜리 늦둥이 동생이 있다.

어머니는 동생을 낳다가 잘못되어 돌아가셨다.

지나친 노산이라 의사가 처음부터 위험하다고 낙태를 권했던 것을 무시한 결과였다.


축복받아야 할 동생의 탄생은 그렇게 가족의 눈물이 되었다.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래도 가족을 먹여 살릴 거라고 술 냄새 풀풀 나는 몸으로 막노동을 나가곤 했다.

그러나 아직 술이 덜 깬 채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혼자 휙 죽어버렸다.


다행히 가족인 성호와 동생이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은 없었다.

상대는 조금 다치긴 했지만, 충돌 직전에 아버지가 핸들을 틀어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음주운전에 인사사고라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다행히 보험사에서 알아서 척척 처리하고, 차는 폐차되었다.


그러고 나니 먹고살 방도가 없었다.

음주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사망보험금은 제대로 지급되었다.

5000만 원.

당장 먹고는 살 만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그때의 성호는 겨우 20살이었으며, 동생은 이제 막 돌이 지난 돌쟁이였다.

아버지를 묻고 집에 온 날, 성호는 망연자실해 방 한가운데 멍하니 앉아 눈물을 흘렸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동생이 나쁜 걸까?

동생이 생기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울고 있던 성호의 등을 누군가 토닥였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아버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뒤돌아보았더니 거기엔 동생이 있었다.


조막만 한 손으로 토닥토닥 성호의 등을 치는 그 손길은

아마도 위로의 손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어린것이 무엇을 안다고 성호를 위로했겠나.

그래도 그 순간 성호는 정신을 차렸다.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겠나.

정신 차리자.

이제 내가 동생을 책임져야만 한다.

그 책임감이 성호를 눈뜨게 했다.


일단 성호는 대학부터 자퇴했다.

4년 동안 3~4천만 원 정도 되는 등록금을 내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1학기가 거의 끝난 시점이라 낸 돈은 되돌려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이상 돈이 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다음에 한 것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동생을 이래저래 발품 팔아 알아봐서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겼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아버지의 지인인 황 씨 아저씨를 통해 막노동판에 들어갔다.


처음 해보는 낯선 일이라 처음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온몸이 당기고 쑤시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떨 때는 손이 부어서 숟가락조차 쥐기 힘들었고,

어떤 날은 갈라진 손 사이로 시멘트 독이 올라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한 후 첫 월급날,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네?”


귀를 의심했다.

황 씨 아저씨가 사장과 짜고 일부러 어수룩한 치들만 모아 일을 시킨 후,

공사대금을 들고 날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기가 힘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준 것도,

옳은 친척 하나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성호에게 상주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도,

3일 내내 같이 먹고 자며 동생을 돌봐주고 몇 안 되는 손님을 맞이해준 것도

모두 황 씨 아저씨가 자처해서 한 일이었다.


겨우 돈 몇천에 그 황 씨 아저씨가 자신을 내쳤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망연자실해 주저앉은 성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친구, 재민이었다.


재민은 말 그대로 불알친구였다.

당시 살던 옆집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다닌 둘도 없는 친구였다.


다만 최근 연락이 뜸했던 것은 재민이 소위 말하는 사채업자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그런 재민을 못마땅해하며 성호가 연락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그래도 성호가 재민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자 3일 내내 밤마다 찾아와 위로해줬었다.


“너 나랑 같이 일해 볼래? 동생 앞으로 들어갈 돈도 장난 아닐 텐데 너도 돈 좀 벌어야지.”


번쩍이는 금목걸이에 금팔찌를 찬 재민의 말에 성호는 망설였다.

아무리 그래도 범죄는 좀···.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좀 더 건실한 일을 찾으려 했었다.


그러나 고졸에 대학을 자퇴한 성호가 할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용모가 빼어난 것도, 성격이 서글서글한 것도 아니라 접객업에서는 잘리기 일쑤였다.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격도 덤벙대는 부분이 있어 서류하다가도 종종 실수하곤 했다.


몇 번이나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고생하던 성호는 결국 재민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인마.”


재민은 성호를 자신의 쩐주에게로 데려갔다.

쩐주라고 해서 나이 든 노인을 연상했는데 생각보다 상대는 젊었다.

한 40대 초반쯤 되었을까.

우락부락한 몸에 험상궂은 인상이 조폭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그래? 한 번 열심히 해 봐.”


재민과 팀을 짜서 일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수중에 4백만 원이라는 큰돈이 생겼다.


“내가 너랑 아가 생각해서 좀 더 넣었다. 힘내, 짜샤.”


재민은 여러모로 성호를 잘 챙겼다.

원래 나누기로 했던 수익분배를 훨씬 넘어서는 돈을 성호에게 주었다.

종종 아기 선물이라며 옷가지나 먹을 것을 안겨 주었다.

하루는 추심을 마치고 낮술 한 잔을 걸치며 물었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 해주냐?”


성호의 마음속에는 재민을 괄시했던 그 날의 기억이 죄책감으로 변해 고여 있었다.

아버지의 탓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성호도 재민을 괄시했었다.

천한 직업을 고른 재민을.

그러자 재민이 말했다.


“친구한테 잘 해주는데 이유가 있냐? 나 사채업자 되고 거의 다 연락 끊겼는데, 넌 연락 안 끊었잖아. 아버님 장례식 때도 나 불러주고.”


입맛이 썼다.

성호는 재민에게 최대한 잘해주려 했다.

그리고 둘은 지금까지도 절친한 친구이자 파트너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 재민이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 방금 전화 온 계혁이었다.


“아, 뭐라고 말하지···.”


재민에게 말하면 무시당할 게 뻔하니 성호에게 전화한 모양이었다.

성호에게도 돈 받을 길이 막막한 놈이니 무시하라고 재민이 신신당부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놈도 나름대로 살기 힘든 놈인 것 같던데.


대학 졸업하고 취직도 못 하고 빈둥대면서 도박에 빠진 구제 불능인 쓰레기지만,

그래도 돈 빌릴 곳 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라는 것이 성호를 약해지게 했다.

예전의 자신이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놈이었기에.


에라, 모르겠다.

여차하면 또 동생한테 웃는 사진 하나 보내달라고 해서 그거 보여줘야지.

오늘도 들러야 할 집이 아직 많이 남았다.

고민할 시간은 없다.

성호는 발길을 재촉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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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8 힘찬연어
    작성일
    19.10.09 00:44
    No. 1

    작가님의 글이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인 것 같습니다.

    항상 실패하지만 인간적이고 현실성있는 사람들. 가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오면 괜히 마음 한켠이 뭉클해지네요. 약간은 울적해지기도 하고.

    전작부터 느끼고 있지만 말이죠. 당연한 말을 한 번 해봤습니다.

    항상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10.09 00:46
    No. 2

    헉.. 과분한 말씀입니다.
    현실에서 완전한 악역도, 선역도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 이유가 어쨌든 악행은 악행이라 생각할뿐...
    실제로 현실 속에서 한번쯤은 보일만한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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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6 19.10.13 102 6 7쪽
41 기나긴 밤 +4 19.10.12 95 5 14쪽
40 사채의 이유 +4 19.10.11 103 6 9쪽
39 8살의 하루 +4 19.10.10 114 7 8쪽
» 성실한 사채업자 +2 19.10.09 112 7 8쪽
37 쓰레기라 불리는 남자 +2 19.10.08 125 7 7쪽
36 수확 +7 19.10.07 137 6 15쪽
35 사냥 전야 +4 19.10.06 130 7 7쪽
34 사냥 준비 +4 19.10.05 120 10 7쪽
33 두혁의 하루 +6 19.10.04 125 8 7쪽
32 그 날의 기억 +6 19.10.03 145 9 7쪽
31 SAW(Sulfuric Acid Wet) +10 19.10.02 152 10 14쪽
30 러브라인 강제연결게임 ~ 일렉트릭 시그널 ~ +7 19.10.01 176 10 7쪽
29 선물연가 +2 19.09.30 161 8 8쪽
28 그 팬이 알고 싶다 +4 19.09.29 162 11 9쪽
27 오, 나의 남신님! +2 19.09.28 230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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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족? +13 19.09.08 852 2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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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달무지개가 뜬 새벽 +20 19.09.06 1,004 28 16쪽
5 속삭임 +9 19.09.05 1,162 25 8쪽
4 묘한 형 +13 19.09.04 1,071 24 8쪽
3 그 소년의 이유 +13 19.09.03 1,165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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