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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살인마는 궁금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9.01 22:33
최근연재일 :
2019.10.21 00: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0,413
추천수 :
658
글자수 :
199,025

작성
19.09.16 00:05
조회
399
추천
12
글자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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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숙취 탓일까.

머리가 아프다.

언젠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아연은 쿡쿡 쑤시는 머리를 싸쥐었다.

뭉근한 아픔도 관자놀이를 감싼다.

손가락을 세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자 조금 덜 아픈 것도 같다.


어제, 어떻게 됐더라.

그 어딘지 예감이 좋지 않은 남자와 만났다.

분명히 카페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쩌다 보니 남자의 권유에 넘어가 술집으로 향했다.


그때쯤에는 이미 남자에게 완전히 마음이 열려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주절대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처음 남자를 봤을 때부터 느껴졌던 그 불길한 예감.


자신감 넘치지만 침착하다.

언변이 좋은 반면 묘하게 거짓말 같은 냄새가 난다.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유려한 화술.

그 용모의 뛰어남도 유효하게 사용한다.

주위를 끌어당기면서 벽을 칠 줄 안다.


청란.

먼 옛날의 여신.

먼 옛날의 마음속 지주.


그런 그녀를 떠오르게 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몇 마디 말에 분명 활짝 열려버릴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감대로, 청란은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버렸다.


“그럼 소설가인가요?”


남자의 질문에 쓰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을 소설가라 부를 수 있을까.

딱 하나의 히트작을 썼을 뿐인.

그 후로 글 한 자 제대로 적지 못하는.


아연이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글을 쓰면 소설가 아닌가요? 저는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는걸요.”


남자의 말에 공연히 술을 더 많이 들이켰다.

왠지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했다.

처음 아연이 글을 쓸 때 가졌던 생각이었다.

내 상상을 글로 엮어 풀어내는 글을 쓰는 사람.

그것이 소설가.


남자는 마법사라도 되는 것일까.

자신이 원하는 말을 콕콕 집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설정이 재미있네요.”


카페에서 썼던 글을 보자 남자는 웃었다.

남자는 요즘 트랜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의 가벼운 소설과 다른 매력이 있어 좋다고 했다.

언젠가 이런 소설이 트랜드가 되는 날도 분명 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아연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에 심장이 뛰었다.


술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의 눈길 때문일까.

얼굴에 화끈화끈 열이 올랐다.


“청란 씨의 소설은 저도 읽었어요.”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라고 이야기했다.

섬세한 감정 묘사라고 했지만,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 말에 거의 폭발하듯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남자에의 감정은 아니다.

그런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좀 더···.


“하아···.”


아연은 생각을 그만두기로 하고 노트북 덮개를 열었다.

글을 쓰자.

이 마음으로 글을 쓰면 분명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연의 눈이 반짝였다.

먼 옛날, 처음으로 나의 글을 썼던 중학생 때의 그 날처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점심을 건너뛰었지만,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한 페이지의 글을 수십 번, 수백 번 읽고 고쳤다.

마음에 든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기뻐서 아연은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 페이지를 쓰고 나니 9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후, 배고프다.”


거짓말처럼 글 쓰는 것이 끝나자마자 배가 울렸다.

식욕이 돋는다.

최근 뭘 먹어도 힘이 없던 아연에게는 큰 변화였다.


“뭐라도 먹을까.”


듣는 이도 없는데 질문을 하고 잠옷을 벗었다.

옷을 벗을 때마다 보이는 손목의 흉터가 거슬린다.

평소라면 여기서 우울해졌겠지만, 오늘의 아연은 기분이 좋다.


아연은 흉터를 못 본 체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 중 하나를 주워입었다.

음, 아직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됐지, 뭐.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이 울렸다.


“···?”


모르는 번호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역시나 모르는 번호다.

애초에 기억하는 번호는 부모님 번호뿐이지만.


일단은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에 광고성 전화 경고도 뜨지 않아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연 씨.”


맑은 목소리.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 남자다.


“아, 안녕하세요. 저기 저희가 번호 교환했던가요?”

“네. 아연 씨가 먼저 번호 물어보셨었는데, 잊으셨나요?”


글쎄.

아마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하긴 남자가 자신의 번호를 먼저 물어볼 리가 있나.


“그렇군요.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서···. 무슨 일이신가요?”

“아연 씨를 꼭 만나야 할 일이 생겨서요.”


생글생글 웃는 목소리.

화장실에서 통화하기라도 하는 걸까.

소리가 묘하게 울렸다.


“무슨 일인데요?”

“와보시면 압니다.”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었다.

그 소리조차도 크게 울려 수화기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자, 아연 씨에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상대방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다.


“···청···란?”


대답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들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그 남자가 청란이랑 같이 있는 건가?

왜?


원래 아는 사이였나?

설마 어제 자신이 청란에 대해 푸념하는 걸 듣고?

하지만 청란은 이미 인기스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아연 씨. 청란 씨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가 보네요. 오랜만에 재회시켜주려 했는데···.”


당연하다.

그 날의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흑역사.

서로가 서로의 상처.

서로가 서로의 흉.

그런 둘이 만나서 좋은 일은 없다.


“아무튼, 아연 씨, 빨리 와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렇게 인내심이 길지 않은데, 청란 씨가 자꾸 나를 화나게 하고 있거든요.”


화나게 만든다?

인내심이 길지 않아?

잠시 생각에 잠기던 아연이 문득 남자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비정하고 냉정한,

날카롭기 그지없는 그 눈동자.


안 돼.


뭔진 모르지만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아연에게 가지 말라고 외치는 본능 또한 있었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동영상이라도 찍어서 보내줄 테니까. 어떻게 할 거예요?”


올 거냐,

오지 않을 거냐.

남자는 달콤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파리지옥.


거기에 끌려 들어갈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무시한다면 나는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아연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아연은, 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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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남자 +2 19.10.17 112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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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성실한 사채업자 +2 19.10.09 112 7 8쪽
37 쓰레기라 불리는 남자 +2 19.10.08 125 7 7쪽
36 수확 +7 19.10.07 137 6 15쪽
35 사냥 전야 +4 19.10.06 130 7 7쪽
34 사냥 준비 +4 19.10.05 120 10 7쪽
33 두혁의 하루 +6 19.10.04 126 8 7쪽
32 그 날의 기억 +6 19.10.03 145 9 7쪽
31 SAW(Sulfuric Acid Wet) +10 19.10.02 153 10 14쪽
30 러브라인 강제연결게임 ~ 일렉트릭 시그널 ~ +7 19.10.01 176 10 7쪽
29 선물연가 +2 19.09.30 161 8 8쪽
28 그 팬이 알고 싶다 +4 19.09.29 162 11 9쪽
27 오, 나의 남신님! +2 19.09.28 230 9 8쪽
26 ⁢⁢⁢——————————————————————————— +6 19.09.27 204 10 15쪽
25 두근두근 +8 19.09.26 186 12 7쪽
24 깨갱 깽깽 깨개개갱 +8 19.09.25 193 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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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족 +15 19.09.07 958 27 7쪽
6 달무지개가 뜬 새벽 +20 19.09.06 1,004 28 16쪽
5 속삭임 +9 19.09.05 1,162 25 8쪽
4 묘한 형 +13 19.09.04 1,071 24 8쪽
3 그 소년의 이유 +13 19.09.03 1,165 29 9쪽
2 학교가 싫은 소년 +17 19.09.02 1,527 3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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