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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살인마는 궁금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9.01 22:33
최근연재일 :
2019.10.21 00: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0,399
추천수 :
658
글자수 :
199,025

작성
19.09.11 00:04
조회
713
추천
19
글자
18쪽

가족···.

DUMMY

10화 :


5시쯤이었다.


“이거로 필요한 거 다 사.”


상태도 묻지 않고 카드를 내민 어머니는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최소한 돈은 주고 갔으니까.

그렇게 상혁은 병원에서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준비하고,

일주일 후 퇴원 때 병원비도 스스로 계산했다.


물론, 마중은 오지 않았다.

언제나의 일이라 상혁은 담담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집에 아무도 없는 지는 꽤 된 것 같았다.

싸늘한 냉기만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냉장고에서 물을 마시려던 상혁의 눈에 식탁 위의 쪽지 하나가 보였다.

상혁의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부모님이나 상아가 쪽지를 남긴 적은 거의 없었다.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했으면 했지.


이게 대체 무슨···.

상혁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집어 들었다.


- 상혁 군, 집으로 돌아온 걸 축하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가족들도 상혁 군을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손이 파르르 떨린다.

상혁은 손에 쥔 쪽지를 구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가지런한 글씨 밑에 있는 주소를 바라보며 상혁은 이를 악물었다.


핸드폰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가 떴다.

동네 근처 달동네의 한중간이었다.

CCTV가 달려있다고는 해도 제대로 작동이나 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름한 동네.

친구가 살고 있어 단 한 번 가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데서 어떻게 사냐?”


라고 했다가 절교한 이후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상혁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채소를 보관할 때 사용하려 둔 신문지에 과도를 넣어 둘둘 싸맸다.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였다.


상혁은 현관으로 향하며 문득 경찰을 떠올렸다.

바보같이 왜 혼자 가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켜자 어딘지 익숙한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아, 물론 경찰에 신고하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나도 딱히 내키지는 않거든요.


“···.”


어디서 보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상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점퍼 지퍼를 내려 그 안에 과도를 넣었다.

배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든든하다.

상혁은 신발을 신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결심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택시를 타자 1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목표한 동네에 도착했다.

이제 곧 가족들을, 그 남자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상혁에게 택시기사는 목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더는 차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카드를 건네자 기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계산을 했다.

상혁이 인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내리자 뒤에서 작게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든지 말든지 상혁은 높은 경사의 길을 따라 달렸다.


시궁창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더러운 길을 따라 상혁은 달렸다.

네비게이션의 화면을 바라보며 5분 정도 달렸을까.

이번엔 순간 숨을 삼킬 정도로 긴 계단이 보였다.


“···젠장.”


순간적으로 멈칫한 상혁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네비게이션 화면 위쪽으로 문자 알람이 뜬다.

이제 누군지 확실하게 기억하게 된 번호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5분 후, 저는 당신의 가족을 모두 죽일 겁니다.

당신에게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빨리 오세요.

이곳으로.


“씹새끼!”


상혁치곤 드물게 진심으로 험한 말을 내뱉는다.

얼핏 본 시계가 10시 34분을 가리키고 있다.

상혁은 잠시 멈춰선 사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다리를 억지로 끌어 올렸다.

처음엔 느렸던 다리가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아니, 억지로 붙여나간다.


내일이 온다면 틀림없이 근육통에 시달릴 것이다.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헉, 헉···.”


거친 숨이 청력을 빼앗는다.

귓가에 들리는 것은 오로지 숨을 몰아쉬는 소리뿐.

그래도 상혁은 멈추지 않았다.


겨우겨우 계단을 다 오르자 다시 오르막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헉, 헉, 헉···!”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점퍼 안에 숨겨둔 과도가 거추장스럽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처럼 지끈거린다.

목에서 나오는 피 냄새에 골목에서 나던 구정내가 사라져 간다.

그렇게 상혁은 다시 한참을 뛰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셨습니다.’


네비게이션의 그 한마디에 상혁의 다리 힘이 풀려버렸다.

쿠당탕, 하고 지저분한 골목 위로 엎어진 상혁의 눈이 시계로 향한다.

10시 38분.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쓸린 뺨이 아팠다.

아마 무릎도 따끔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처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혁은 일어나야만 했다.


풀려버린 다리 때문에 상혁은 허물어진 담벼락을 짚고 일어났다.

기듯이 무너진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혁 군.”


생글생글 웃는 얼굴.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웃고 있었다.

상혁의 눈에 불꽃이 튄다.


“헉···, ···어, 헉···, 어딨···어···.”


가쁜 숨 때문에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상혁은 가슴을 손으로 억누르며 호흡을 조절하려 노력했다.

그런 상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지금.

찔러야 하나.

상혁은 품속의 과도를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상혁이 품 안에서 과도를 꺼냈다.

신문지를 풀어헤쳐 칼 손잡이를 단단히 쥐자 뛸 때만큼 심장이 쿵쿵 뛰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집 안으로 들어선다.

목 안 가득한 비릿한 냄새 때문에 냄새를 못 느끼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집 안은 참담했다.


해가 환한 아침인데도 어둑어둑한 집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낡은 검정 봉투.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

그리고 피비린내 같은 목 안의 냄새조차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드는 악취.


썩은 생선 냄새 같기도 하고, 물이 썩은 냄새 같기도 하고, 하수구의 악취를 농축해 놓은 냄새 같기도 하다.

상혁은 코를 막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상혁 군.

가족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웃음기 서린 목소리.

왜일까.

그 목소리가 비웃음처럼 들렸다.

상혁은 불길한 예감에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거기엔···.


“이, 이 씨발 새끼야!!”


상혁의 눈동자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핏줄이 터지는 것처럼 눈앞이 흐려진다.

이대로 차라리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좋을 텐데.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눈물이 아니라 피라면 좋을 텐데.


“얼마나 오랫동안 상혁 군을 기다렸는지 몰라요.”


남자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만이 이질적이다.

상혁의 반응을 살피는 것처럼 남자는 시선을 상혁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어때요, 상혁 군? 가족들을 만난 기분은?”


후후후, 하고 웃는 목소리는 마치 장난을 하다 걸린 아이 같다.

여기가 만약 달동네 어느 무너져가는 집이 아니었다면,

남자의 발밑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아니었다면,

그 시체들이 가족의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상혁의 분노는 너무나 컸다.


“죽어, 이 또라이 새끼야!”


상혁이 과도를 손에 꽉 쥐고 달려들었다.

남자의 배를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너무 뻔히 보이게 움직였기 때문일까.

남자는 손쉽게 옆으로 피했다.

그래도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에 남자의 왼팔을 꽤 깊게 벨 수 있었다.


“으악!”


피하면서 다리를 건 남자 때문에 상혁은 그대로 넘어졌다.

넘어지는 기세에 과도 역시 손에서 떨어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상혁은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흑, 흐흐흑···.”


흐느끼는 소리만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차디찬 눈물이 상혁의 얼굴을 베어낸다.

남자는 그런 상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혼자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남자의 말투가 묘하다.

얼핏 볼멘소리처럼 들린다.

상혁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상혁 군이 혼자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저런 가족들은 있어도 없어도 마찬가지라고.”


어디서 들은 것일까.

길거리를 걷다가 푸념했을 때?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투덜거렸을 때?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궁싯대었을 때?


남자가 만약 자신의 볼멘소리를 듣고 이런 짓을 벌였다면···.

상혁의 등줄기에 오한이 달린다.


하지만 상혁은 아무것도 되묻지 못했다.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했다간···.


“일단 상혁 군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요.”


약간 불만스러워 보이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한다.

마치 가면을 바꿔쓴 것처럼.

남자는 다시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짜잔, 사실 이 사람들은 상혁 군의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엎드린 채로 남자를 올려다보던 상혁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저 남자는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것일까.


그대로 기어가 시체의 얼굴을 확인한다.

정말이다.

그들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옷은 상혁 군의 집에 들렀을 때 잠시 빌렸던 거에요. 상혁 군의 가족들은 옆 방에서 푹 자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상혁은 그대로 몸을 질질 끌어 남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거기엔 정신을 잃은 가족들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하···, 하하···.”


다행이다.

죽지 않았다.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다.


상혁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심으로 안도하며 상혁은 울며, 웃었다.

그런 상혁을 바라보던 남자가 상혁의 등 위에 걸터앉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혁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남자가 씩 웃었다.


“누가 제일 싫어요? 아빠? 엄마? 아니면 누나? 골라봐요.”


열이 올라 붉게 달아올랐던 피부가 싸늘하게 식는 것이 느껴진다.

상혁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들었다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잘 모르겠어요. 상혁 군이 누구를 제일 싫어할지. 아빠, 엄마는 상혁 군에게 별 관심이 없다고 했었죠? 누나와 상혁 군은 뒷전이라고. 그럼 아빠, 엄마가 제일 싫으려나?”


언제부터 들고 있었던 것일까.

남자는 오른손에 총처럼 생긴 것을 들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우리나라에 권총이 어딨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턱이 달달 떨려온다.


언젠가 읽었던 뉴스 기사에 봤던 개조 총의 뉴스.

사정거리가 얼마라고 했더라···.


“상혁 군, 잘 보세요.”


흐린 햇빛에 남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깔린다.

남자는 그 어스름한 방에서 상혁의 아버지를 조준했다.


“내가 사격은 좀 잘 하거든요.”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를 찢는 것 같은 총성이 울렸다.

상혁의 아버지는 단말마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 소리에 어머니와 상아가 눈을 떴다.


“···?”


둘은 한참 동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듯 풀린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혁은 그런 둘에게 시선조차 주지 못하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한 아버지였다.

살가운 말 한마디 해준 적 없는.

남들 다 하는 가족 행사 하나 해준 적 없는, 그런 무심한 아버지였다.


그래도 상혁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줬고,

상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단 한 번도 가족을 굶겨본 적 없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숙인 머리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내린다.

흐린 시야 탓에 상처가 제대로 보이진 않았다.

그게 상혁에게는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제대로 보였다면 상혁은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상처는 참혹했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이 상혁에게 있어 좋았던 것일까.


“나이스 샷!”


철컥,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렸다.

또다시 총알을 장전한 남자가 경쾌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상혁은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을 멈췄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 미친 새끼가, 내 아버지를 죽였다.

그것도 겨우 내 한마디 때문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상혁은 미친 듯이 몸을 뒤틀었다.

절대 가볍지 않은 남자건만 순간 몸이 들썩일 정도로 상혁은 몸을 비틀어댔다.

하지만 남자가 이내 중심을 잡고 상혁의 목을 짓누르자 그 움직임은 강제로 멈춰졌다.

양팔로 어떻게든 목과 땅 사이에 공간을 만들려 상체를 일으켜보지만, 남자의 힘이 더 강했다.


“상혁 군, 지금 어떤 기분이에요?”


또라이 새끼.

상혁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혁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남자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뿐이었다.


“···.”


남자의 얼굴에서 드디어 웃음이 사라졌다.

그러자 상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서렸다.


“미친 새끼.”


남자는 얼굴에 튄 침을 닦아내며 상혁의 목을 짓이겼다.

목뼈가 부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받으며, 지면에 뭉개지면서 호흡이 어려워지는데도 상혁은 웃었다.

남자의 여유 없는 얼굴이 너무나 상혁을 즐겁게 했다.


“너··· 컥, 이 새···ㄱ끼야···. 어···헉, 떤 기분인데···.”


상혁의 말에 남자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남자가 상혁의 목에서 손을 뗐다.

갑자기 들어오는 산소에 상혁은 크게 기침을 하며 몸을 흔들었다.

그 사이 남자의 총이 어머니에게 향했다.


“너 이 씨발,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절규하는 상혁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던 남자는 총을 내리진 않았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채 남자는 물었다.


“그럼 제 물음에 답해 주세요, 상혁 군. 어째서 당신은 여기에 왔나요?”

“뭐···?”

“당신은 혼자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가족들이 나한테 죽게 내버려 두면 당신은 자연히 혼자 살게 될 텐데, 왜 여기에 왔나요?”


그제야 상혁은 깨달았다.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던 그 묘한 이채.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 온 거지, 당연히.”


상혁의 대답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어머니를 조준한 채 물었다.


“왜 당신은 저들을 살리고 싶어 하나요? 정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가족 같지도 않은 존재라고 말한 건 상혁 군 당신이에요.”


그랬나.

상혁은 자신이 대답했던 말을 듣고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랬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니야. 난 그냥···.”


가족이고 싶었다.

남들처럼 서로 울고 웃고 떠들고 싸우면서.

나도 가족에게 소속되어 있고,

가족이 나에게 소속되어 있는,

그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편안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차라리 혼자가 낫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투정에 불과했다.

상혁이 외면하고 있었던 마음속에서는 항상 외치고 있었다.

‘가족이 되고 싶다’라고.


상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기묘한 남자에게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상혁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는 상혁을 바라보던 남자가 왼손으로 상혁의 고개를 억지로 들게 고정했다.


“잘 봐요. 또 한 명, 당신의 가족 같지도 않던 사람은 사라질 거에요.”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상혁은 몸을 뒤틀려 했지만 자세 탓인지 다리만이 움직였다.

남자를 강하게 발로 찼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총성이 울린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머니의 왼쪽 가슴이 피로 물든다.

억지로 고개가 들려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혁은 절규했다.

다행히 심장은 피해간 것인지 아직 숨은 쉬고 있었지만, 그 숨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억, 헉, 하는 헛바람 소리만이 들린다.


“이거 놔, 이 개새끼야! 그만하란 말이야! 차라리 날 죽여! 날 죽이라고!”


상혁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의 마음속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음을.

그리고 깨닫자마자 그 마음은 산산이 깨어져 나가고 있음을.


“그만해!”


총성과 상혁의 절규가 상아의 의식을 깨웠다.

멍하던 눈동자에 조금씩 초점이 돌아온다.


“상아 양이 곧 완전히 정신을 차릴 것 같군요. 정신이 돌아온 후에 총을 맞으면 아마도 불편할 거에요. 차라리 지금 보내주는 게 낫겠군요.”


남자는 곧바로 노리쇠를 열어 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내 장전했다.

노리쇠를 닫기 무섭게 곧바로 총구를 상아에게 향했다.

무심한 손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흐···.”


뭔가 가는 소리가 들린 듯하더니 그대로 꺼졌다.

어느 순간 헛바람조차 들이키지 않게 된 어머니와,

심장을 맞았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왼쪽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상아.


상혁은 멍하니 눈을 연 채로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남자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언젠가의 그 날처럼.

상혁은 멍하니 입을 열었다.


“죽여줘요···.”


그 말을 끝으로 상혁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상혁의 텅 비어버린 눈을 바라보던 남자가 상혁의 위에서 비켜났다.

그러나 상혁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재미없네요.”


남자는 뚜벅뚜벅 걸어 옆방으로 사라졌다.

그 소리가 들리는 것인지 아닌지 상혁은 마치 시체처럼 그저 누워만 있었다.

잠시 뒤 남자가 손에 과도를 가지고 나타났다.


“재미없네요, 정말.”


흥이 식었다는 눈으로 남자가 과도를 휘둘렀다.

둔탁한 칼날을 힘으로 목에 박아넣은 남자는 상혁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약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던 눈동자에서 완전히 생기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도 남자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 혀를 찼다.


“칫.”


남자는 피가 약간 튄 손을 상혁의 점퍼에 닦아냈다.

그리고 조용히 옆 방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4구의 시체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38 힘찬연어
    작성일
    19.09.11 00:52
    No. 1

    상혁이는 어쩌면 지금까지 이 소설에 나온 인물중에서 가장 선한 인물상일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11 00:54
    No. 2

    play님! 오늘도 첫 댓글 감사합니다!

    상혁이는 가장 순수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만약 상혁이가 더 커서 남자를 만났다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망치단장
    작성일
    19.09.11 09:52
    No. 3

    너무 슬픈군요 ㅜ ㅜ
    상혁찡 가버렸어...다시 나올 수 없어
    그러면 장르가 바뀌게 돼버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11 21:35
    No. 4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가장 속하고 싶었던 집단인 가족을 자신으로 인해 죽게 만든 상혁이
    만약 살아있었다면...
    과연 어떤 지옥을 맛보고 있었을까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추세추종
    작성일
    19.09.20 17:15
    No. 5

    그런데 저런 비정상적인 가족속에 태어나면 상혁이 같은 푸념을 충분히 할수 있을텐데요..불쌍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0 19:22
    No. 6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가족의 사랑을 받고 싶었을 아이일 뿐인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밤비부
    작성일
    19.09.21 16:10
    No. 7

    상혁이 불쌍해. 사랑받지 못 하는데 자긴 가족들을 사랑해.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1 16:10
    No. 8

    아, 밤비부님..ㅜ
    상혁이의 마음을 알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밤비부
    작성일
    19.09.21 16:15
    No. 9

    그렇게 재미없으면 죽이지 말고 살려두지. 그럼 나중에라도 다시 재밌어졌을텐데. 상혁이가 복수한다고 쫓아다니면서 방해라도 해봐. 그 때마자 가지고 놀았으면 얼마나 비틀린 만족감을 줬겠어.주인공 바보네. 상혁인 너무 불쌍한 아이임. 마지막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인 채로 죽었어. 씁쓸한 죽음임.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1 16:17
    No. 10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묘형이의 사고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것일까요.
    상혁이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없었을까요?
    그렇다며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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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7 꿈설
    작성일
    19.09.28 01:53
    No. 11

    에피소드가 각각 다르군요.
    성현이 이야기가 끝나자
    상혁이 관련 에피소드...

    그나저나 묘형의 정체가 궁금해지는군요.
    도대체 뭐지?
    사이코패스 같은 묘형의 정체가 궁금하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8 07:52
    No. 12

    맞습니다, 작가님!
    살궁은 옴니버스 식으로, 각 에피소드 5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이 묘형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묘사 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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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년시절 +7 19.10.14 119 7 8쪽
42 +6 19.10.13 102 6 7쪽
41 기나긴 밤 +4 19.10.12 95 5 14쪽
40 사채의 이유 +4 19.10.11 103 6 9쪽
39 8살의 하루 +4 19.10.10 114 7 8쪽
38 성실한 사채업자 +2 19.10.09 111 7 8쪽
37 쓰레기라 불리는 남자 +2 19.10.08 125 7 7쪽
36 수확 +7 19.10.07 136 6 15쪽
35 사냥 전야 +4 19.10.06 130 7 7쪽
34 사냥 준비 +4 19.10.05 120 10 7쪽
33 두혁의 하루 +6 19.10.04 125 8 7쪽
32 그 날의 기억 +6 19.10.03 144 9 7쪽
31 SAW(Sulfuric Acid Wet) +10 19.10.02 152 10 14쪽
30 러브라인 강제연결게임 ~ 일렉트릭 시그널 ~ +7 19.10.01 176 10 7쪽
29 선물연가 +2 19.09.30 161 8 8쪽
28 그 팬이 알고 싶다 +4 19.09.29 161 11 9쪽
27 오, 나의 남신님! +2 19.09.28 230 9 8쪽
26 ⁢⁢⁢——————————————————————————— +6 19.09.27 204 10 15쪽
25 두근두근 +8 19.09.26 185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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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남자에게 있어 그녀란 +8 19.09.22 280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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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선택 19.09.16 399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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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현실 +4 19.09.14 499 16 7쪽
12 질투 +8 19.09.12 693 15 7쪽
» 가족···. +12 19.09.11 714 19 18쪽
10 불길 +8 19.09.10 738 23 7쪽
9 이방인 +13 19.09.09 773 24 7쪽
8 가족? +13 19.09.08 852 25 7쪽
7 가족 +15 19.09.07 958 27 7쪽
6 달무지개가 뜬 새벽 +20 19.09.06 1,004 28 16쪽
5 속삭임 +9 19.09.05 1,161 25 8쪽
4 묘한 형 +13 19.09.04 1,071 24 8쪽
3 그 소년의 이유 +13 19.09.03 1,164 29 9쪽
2 학교가 싫은 소년 +17 19.09.02 1,527 32 8쪽
1 프롤로그 +16 19.09.01 2,023 39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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