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연가
이번엔 뭘 줘야 할까.
이번에야말로 기뻐해 줬으면 좋겠는데.
라희는 손톱을 질겅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손님은 라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매대로 향했다.
라희의 머릿속이 다시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한 선물 때문에 토라진 그를 어떻게 달래야 할까.
그동안 라희가 그를 지켜봐 왔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시기별로 두 장씩 사진을 선택해서 쥐여주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원래 처음부터 서로에게 운명을 느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선물을 주어봤자 의미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체 뭘 줘야 좋을까.
라희는 그 방에 있는 보물들을 떠올렸다.
그의 그 고운 입속에 들어갔다 나온, 라희도 살짝 입에 물어본 빨대 한 묶음.
그의 그 예쁜 얼굴을 닦는 영광을 누린 화장지 한 아름.
그의 고운 보석 같은 머리카락 한 움큼.
그가 대본 분석 때 쓰던 볼펜 한 뭉치.
그가 극을 위해 입었었지만, 이제는 헤지고 구멍 난 옷가지와 신발 한 무더기.
그가 사용했던 일상용품 한가득.
그리고 그에게 준 것을 제외해도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사진들.
그중에서 뭔가를 보내기엔 아쉽다.
라희가 아끼는 컬렉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진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다른 물품에 감동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좀 더···.
“계산 좀요.”
짜증 섞인 말투가 라희의 생각을 긁어낸다.
라희는 방해받은 기분에 울컥했지만 그래, 손님이니 참자는 마음으로 생글 웃어 보였다.
계산을 위해 라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물건의 바코드를 찾았다.
거의 등을 덮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이 사르르 흘러내린다.
그 순간, 라희의 눈이 반짝이며 입술이 쓱 올라갔다.
“19800원입니다.”
라희의 환한 미소에 손님이 움찔, 하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카드를 카운터에 던졌다.
그러나 라희의 눈에 이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선물을 받고 환한 얼굴로 웃어주던 그의 얼굴이었다.
“···.”
오늘도 해준의 집 앞에는 상자가 놓여 있었다.
재민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염없이 상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진 모르지만, 과거에 놓여있던 상자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것임은 틀림없었다.
약 한 달 전 토요일, 일주일 치의 장을 보기 위해 해준은 아침 10시에 집에서 나왔다.
장을 본다고 해봤자 대부분은 라면을 사재기해놓는 것이 대부분 이었지만,
최소한의 양심으로 대파와 양파 정도는 사두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12시경.
들어가자마자 짜장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던 해준의 눈에 작은 상자가 보였다.
순간 그 여자한테서 받았던 상자가 생각나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최근 묘하게 시선이 느껴지는 빈도가 잦다고 생각했더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상자 앞에 다가선 해준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포장지도 없는 그냥 보통의 상자에 택배 송장도 붙어있었다.
해준은 상자를 발로 밀어 옆으로 치워두고 일단 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 양손 가득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상자를 들었다.
보내는 이는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받는 이는 틀림없는 해준이었다.
해준은 현관문도 채 닫지 않고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여기서 해준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 구역에는 토요일에 택배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다는 것이다.
“으아아악!!”
상자를 개봉한 해준이 비명을 내질렀다.
사진까지는 그래도 처음에는 최소한 팬의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건···.
“미, 미친년···.”
길이는 한 15cm 정도 될까.
낯설지만 기억에 남은.
“미쳤어···.”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 말을 중얼거리던 그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자 옆집에 사는 친한 형, 재민이 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소리를 지르···고···.”
재민은 해준의 손에 들린 상자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상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머리카락은 딱 봐도 푸석푸석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곱게 올려진 카드가 괴이함을 부추긴다.
“···.”
멍하니 굳어 있는 해준에게서 상자를 빼앗은 재민이 카드를 꺼냈다.
카드를 읽던 재민의 표정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 여자친구 있었냐?”
해준은 잠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이내 축 어깨를 떨구고 고개를 저었다.
재민의 표정이 굳었다.
“이거 누가 보냈는지 알아?”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민이 송장을 확인했다.
거기엔 최라희라는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해준의 입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떨림이 입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혀, 형. 나 어떻게 하죠?”
해준이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더니 현관 옆 벽에 기댄 채로 주르르 미끄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서 있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뭘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부터 하자.”
재민은 주저앉아있는 해준을 토닥여주며 부축했다.
해준은 재민이 이끄는 대로 일단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한 달 전의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매주 토요일마다 그 여자는,
이번에는 송장을 붙이지 않은 작은 상자를 해준의 방 앞에 놓았다.
두 번째 주,
재민이 보는 곳에서 해준이 연 그 상자에는 약간 피가 묻은 손톱과 발톱 깎은 것이 각각 10개씩 들어있었다.
세 번째 주,
해준이 보는 곳에서 재민이 연 그 상자에는 사용이 끝난 생리대가 하나 들어있었다.
네 번째 주,
그러니까 오늘은···.
“후···.”
재민은 상자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난주까지 상자가 보내져 올 때마다 재민은 패닉에 빠진 해준을 대신해 경찰을 불렀다.
그러나 경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신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출동한 두 명의 경찰.
그들 중 조금 나이가 든 쪽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배우라면서요? 팬인 여자가 보낸 거 같은데···. 원래 연예인들은 이런 선물 많이 받지 않나? 남자가 뭐 여자가 무서워서 그래요?”
발끈한 재민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다고 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귀찮다는 얼굴로 순찰을 강화하겠노라 약속했다.
재민이 택배 상자를 건네주며
“이게 정말 그 여자 주손지는 모르지만, 한 번 확인해 봐 주세요.”
라고 하자 경찰은 똥 씹은 얼굴로 상자를 받아 갔다.
그러나 순찰이 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경찰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둘째 주에도 경찰을 불렀지만, 이번엔 출동조차 하지 않고 귀찮다는 듯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셋째 주에 경찰에 전화를 걸자 이번엔 오히려 혼났다.
바쁜데 그 사건만 붙잡고 있을 순 없다.
별일 없지 않으냐? 하고.
그리고 이번 주에도 송장 없는 상자가 놓여있었다.
“이번엔 또 뭐야···.”
집 안에서 쉬고 있을 해준이 괜히 스트레스받을까 재민은 자신이 상자를 열었다.
“윽.”
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열기 위해 틈 사이로 손을 넣자마자 재민은 손을 빼야만 했다.
뭔가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설마, 하는 생각에 가지고 있던 열쇠를 틈 사이에 넣어 상자를 열자
틈 사이에 촘촘하게 박힌 면도날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상자 안에는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왜 니가 열어? 그이한테 보낸 거야.
그 안에는, 뭔가가 엉겨 딱딱하게 굳은 화장지가 가득 들어있었다.
뭐지 싶어서 엄지와 검지로 하나를 들어 코에 가져다 댄 재민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미친년···.”
재민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 망원경을 설치해 보고 있으리라고는 재민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 미친 새끼, 왜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거야.”
라희는 언짢은 얼굴로 혀를 찼다.
이번엔 절대 방해받지 않아야 할 텐데.
라희는 저 얄미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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