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경수는 마음이 급하다.
앞서간 친구를 쫓느라 짧은 다리가 분주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경수의 다리가 짧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최소한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소한 지금 쫓아가고 있는 친구에 비하자면 턱없이 짧다, 고 생각한다.
과학실 거의 바로 앞에서 친구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
경수는 손을 뻗어 친구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야, 너 먼저 가기 있냐?”
돌아보는 소년, 아니, 소년과 청년의 경계선에 있는 경수의 친구는 몹시도 아름다웠다.
사춘기 특유의 거친 피부조차 보이지 않는다.
반들반들한 도자기 피부에 깊이 있는 갈색 눈동자.
진한 검은색의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묘한 붉은색마저 띤다.
진한 이목구비에 화사한 미소가 매력적인 소년.
이런 소년이 자신의 친구라니.
경수는 소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마다 자신도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 미안.”
소년은 생글 웃고는 경수를 기다리기 위해 멈춰섰다.
경수는 재빨리 소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으씨, 과학실 춥겠다. 넌 안 춥냐? 하복 입고.”
소년은 경수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자신의 팔을 살짝 쓸며 웃어 보였다.
“그러게. 춥네.”
“으이그. 넌 집안도 좋으면서 가정부나 그런 사람들이 안 알려줬어?”
“음,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소년은 실없이 웃으며 과학실의 문을 열었다.
경수는 그 뒤를 쫓아 과학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 왕자님과 금붕어 똥~. 오늘도 똥 달고 다니냐?”
“야, 똥이 뭐냐, 똥이. 하다못해 따까리 정도로 해둬.”
“따까리도 격이 맞아야 하는 거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옆 반 아이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경수와 소년의 조합은 그들의 반에서는 이미 익숙한 조합이었기에 아무도 트집 잡지 않는다.
아니, 같은 반의 누구도 그들과 얽히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것을 왠지 모르지만, 옆 반의 일진 두셋이 볼 때마다 트집을 잡곤 했다.
경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소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도발 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깨끗이 무시하며 소년은 자리에 앉았다.
그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스며 있었다.
화도 안 나나.
경수는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왠지 모르지만 과학 시간은 다른 반과의 교류를 위해서라며 합동 수업을 할 때가 많았다.
과학실의 크기가 쓸데없이 커서 난방비가 아까우니 한 번에 여러 번을 수업하자,
라는 교장의 연설이 있었다는 비공식 정보가 있는데 사실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렇게 두 개 반이 들어있는데도 맨 끝의 실험 책상이 세 개 고스란히 남을 정도로 넓으니까.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마치 링 위에 올라선 두 명의 권투선수처럼 두 반이 묘한 라이벌 기류를 풍긴다.
오늘도 그렇다.
경수의 반에는 딱히 일진이랄 만한 존재가 없는데, 그것은 바로 이 소년 때문이었다.
고3이 된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왔더니 순식간에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세상에.
학교 제일의 양아치라는 무형과 소석이 떡하니 맨 뒤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놀고 있었다.
아니,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놀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필통게임이라는 레트로 게임을 구해와서 말 그대로 놀고 있었다.
조용히 놀면 좀 좋을까.
어찌나 시끄럽게 굴어대는지 경수도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을 정도였다.
그게 하필이면 무형의 눈에 띄었다.
“야, 너 이리 와봐.”
아차 싶었다.
재빨리 귀에서 손을 뗐지만 이미 무형의 기분은 꽤 상해버린 모양이었다.
슬쩍 곁눈질해서 본 무형의 표정이 심상찮다.
경수는 망했다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말이야, 너. 귀는 왜 막냐? 지금 시끄럽다고 항소하냐?”
“미친 새끼, 크크크크크. 항소가 뭐냐. 항거겠지.”
멍청한 새끼들아.
항의다.
경수는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눈을 더 세게 감았다.
마치 눈을 마주치면 돌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경수의 그 반응이 무형의 화를 더 돋웠다.
“와, 이 새끼, 쌩까냐?”
무형이 경수의 배를 발로 찼다.
몸집이 작은 경수는 그대로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경수가 누군가의 다리를 쳤다.
“윽···.”
경수가 신음성을 삼켰다.
크게 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재미있게 만들 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경수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무형은 경수가 앉았던 자리에 침을 탁 뱉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 했다.
“으아아아악!”
몸을 웅크린 채 발발 떨고 있던 경수가 뜻밖의 비명에 눈을 떴다.
거기엔 몹시 잘생긴 소년 하나가 서 있었다.
창가에 밀려드는 아침 햇살을 등에 업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소년은
왠지 모르지만, 손에 샤프를 하나 들고 있었다.
햇빛 아래 끝이 날카롭게 빛나는 샤프에서 뭔가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두가 쓰는 교실에서는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남색 교복 재킷에 묻은 검은 얼룩이 거슬린다.
차분한 말투지만 눈에서는 붉은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그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팔을 감싼 채 바닥을 뒹구는 무형이었다.
대체 왜 무형이 바닥에···?
사태를 파악하기 전에 소석이 움직였다.
“뭐야, 이 또라이 새끼는!”
소석이 먼저 선제공격을 날렸다.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급소면서 노리기는 쉬운 곳.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오른쪽 옆구리에 소석의 발이 꽂혔다.
소석은 됐다, 싶어 미소지었다.
하지만 소석은 이내 그 미소를 지워야만 했다.
소년은 아파하지 않았다.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눈으로 옆구리에 꽂힌 소석의 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에 들려있는 샤프가 소석의 종아리 옆쪽에 꽂혔다.
“으아아악! 이 미친 새끼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마치 기계 같다.
다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뒹구는 소석에게 소년이 말했다.
“조용히 해줄래? 좀 시끄러운데.”
그때, 반의 모두가 알았다.
저 소년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그 무언가다.
마치, 괴물처럼.
그날부로 소석도 무형도 전학을 가버렸다.
소문으로 들리기에 소년의 집안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 같았다.
돈의 힘은 대단했다.
소년이 일으킨 사건을 사고로 만들어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 모습을 본 같은 반 학생들은 소년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오직 경수만이 소년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강함을 동경하여.
소문을 들은 옆 반의 양아치들만이 가끔 소년을 건드렸지만, 소년은 대응하지 않았다.
어쩌면 직접적인 폭력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한체해도 소년에게 쉬이 달려들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경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까의 양아치들이 경수의 옆에 다가왔다.
“야, 새끼야. 넌 똥 소리 들으면서 저 새끼한테 붙어있고 싶냐?”
툭툭, 경수의 팔을 친다.
손에는 황산을 들고 있다.
경수는 기겁하여 황산이 든 유리 시험관을 시험관 꽂이에 조심스레 놓았다.
과학 선생은 경수가 양아치들에게 얽힌 걸 보면서도 못 본 척했다.
선생이 도와줄 리 없다.
경수의 눈이 소년에게로 향했다.
“···.”
놀랍게도 소년은 경수가 양아치들에게 얽힌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얼굴로 태연하게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양아치들의 목적이 경수가 아닌 소년이기 때문에 일부러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
경수가 초조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야, 이거 황산이 사람한테 닿으면 그렇게 위험하다면서?”
양아치 하나가 낄낄거리며 경수가 시험관 꽂이에 꽂아놓은 황산을 꺼내 들었다.
시험관 가장 얕은 곳에서 위태롭게 찰랑거리는 액체.
경수의 몸이 움찔 떨렸다.
소년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
나눠준 금속조각에 황산을 뿌리며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양아치 하나가 열이 받은 듯 황산을 슬쩍 경수의 손에 떨어뜨렸다.
아마 이정도쯤 어떠랴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경수는 황산의 위험성에 관해 설명하는 과학 선생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움에 휩싸였다.
어쩌면 경수가 당황한 나머지 바로 물로 씻어내지 않았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으아아악!”
손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모두가 경악에 물들어 쳐다보는 그 시선 속에서,
경수는 소년만을 찾았다.
소년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경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 소년은,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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