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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살인마는 궁금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9.01 22:33
최근연재일 :
2019.10.21 00: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0,403
추천수 :
658
글자수 :
199,025

작성
19.09.29 00:06
조회
161
추천
11
글자
9쪽

그 팬이 알고 싶다

DUMMY

시선이 느껴진다.

해준은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역에 몰입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끈질긴 시선은 끈적끈적한 젤리처럼 해준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다.


젠장.

해준은 결국 대본을 덮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주연에게는 꽤 깨끗한 화장실이 제공되지만,

예산이 부족한 영화라 다른 사람들은 근처 공원의 이동식 화장실을 사용했다.

냄새도 나고 솔직히 위생적이지도 않지만, 차라리 이쪽이 좋았다.

최소한 몰래카메라 같은 걸 설치하거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은 없으니까.


바지를 입은 채로 변기에 앉아 해준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앞을 딱 막고 있는 얇은 판자 문 덕에 마음이 진정된다.

짜증이 가라앉자 이번엔 두려움이 치밀어 오른다.


그 시선을 처음 느낀 것은 언제였더라.


솔직히 말해 해준은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는 자신이 있었다.

부산 여고생 중에서 해준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해준의 인기는 드높았다.


공부도, 운동도 애매모호.

그렇다고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었던 해준이 가진 것은 딱 하나.

얼굴밖에 없었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보드라웠던 피부에 서글서글한 인상.

거기에 약간 서구형 느낌이 드는 얼굴 생김에 여성들은 환호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러브레터를 받았고, 길을 걸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봤다.


해준은 생각했다.

갈 길은, 역시 연예계밖에 없다고.


그런 해준이 배우를 떠올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인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처럼 생활하면서 잘생기기만 하면 될 수 있는 것.

그게 해준이 가지고 있던 배우에 대한 인식이었다.


어차피 대학에 돈을 버릴 바엔 차라리 서울로 가자.

해준은 부모님께 받은 돈 천만 원을 가지고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그가 품고 있던 안일함은 첫 오디션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마스크는 괜찮은데···.”

“호흡, 대사 암기, 연기력 다 꽝이네요.”

“솔직히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는 아니네요. 연기 배워본 적이 있긴 해요?”


혹평, 혹평, 혹평.

연달아 이어지는 혹평에 해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체 저들이 뭐길래 감히 해준을 이따위로 취급한단 말인가.

해준은 두고 보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첫 번째 오디션에서는 당연히 붙을 것으로 생각해 아무 준비 없이 향했다.

그래서 두 번째 오디션에서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향했다.

당장 연기력을 어찌할 순 없으니 고급스러운 샵에서 꽤 비싼 돈을 내고 꽃단장을 했다.


“와, 진짜 잘생기셨다. 배우 하셔도 되겠어요.”


그 말에 다시 자신감이 솟았다.

이전의 오디션은 잊자.

이번 오디션을 첫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자.

이번에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가슴 깊은 곳에 묻은 채 해준은 두 번째 오디션으로 향했다.


“···배우가 우습나요?”


꽤 비중 있는 조연을 뽑는 자리였다.

주연배우와 꽤 자주 얽히는 역할인지라 주연배우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화내는 연기를 해보라는 요청에 해준이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주연배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연기가 끝나자마자 으르렁거리듯 말을 꺼냈다.


“호흡, 흐름, 연기, 감정표현···.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지금 뭐하자는 거죠?”


외모로는 해준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남자.

그가 해준을 질투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해준의 생각일 뿐이었다.


“뭐, 마스크가 나쁘진 않은데 특출나지도 않고···. 발연기를 커버할 정도의 매력적인 마스크라면 모를까 무리겠네요.”


작가로 보이는 여자가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울컥, 차오르는 화를 견디지 못하고 해준은 오디션장에서 뛰쳐나왔다.

한참을 달리다 멈춰선 곳은 한 대학가 앞이었다.


그때, 해준은 처음으로 서울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나쁘진 않지만 특출나지도 않은 마스크.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주변에 해준 정도의 외모를 가진 남자들은 우글우글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오히려 해준보다 잘생긴 남자들도 꽤 많이 보였다.


해준은 그제야 처음으로 자신이 그렇게 잘생긴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번의 혹평을 들으며 해준에게는 오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손쉽게 돈 벌 생각으로 배우가 되려 했지만,

처음으로 해준을 인정사정없이 깎아내린 이들에게 보란 듯이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당장 가져온 돈은 보증금과 월세로 거의 다 나가버리고 남은 돈은 100만 원 남짓.

그래서 해준은 눈에 띄는 피시방으로 곧장 들어가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졌다.

좀 쉽고 보수가 센 아르바이트는 없나 둘러보는 그의 눈에 한 공고가 보였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할 엑스트라를 모집하는 공고.

그 날부터 해준의 엑스트라 생활이 시작되었다.


엑스트라로 일하는 이들 중에는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 연기 선배들에게 질문하고 배우며 조금씩 연기가 늘었다.

배우다 보니 연기가 너무 재미있고, 또 어려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별거 아닌 역할이지만 배역을 연구했고,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아 들어갈 수 있게 노력했다.

괜히 감독 앞에서 얼쩡거리기도 했다.

그런 노력 끝에 해준은 큰 비중은 없지만, 자리 하나를 따낼 수 있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거리의 왈패 패거리의 부하 5.

왈패두목이 손을 내밀면 담뱃불을 붙이거나 뒤에 졸졸 따라다니는 정도의 역할이었다.


꽤 껄렁한 이미지를 내기 위해 자비를 들여 뒷머리를 붙이고,

앞머리도 일부러 약간 눈을 가릴 정도로 길렀다.

어리바리한 막내 역할이라 나름대로 눈빛 연기로 맹한 척도 해봤고,

거리의 왈패다 보니 일부러 살짝 살을 태워보기도 했다.


노력하는 해준을 감독은 꽤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연기력은 아직 멀었다며 혹평하곤 했다.

그래도 그 전의 감독들에게서는 그런 평가조차 듣지 못했기에 해준은 만족스러웠다.


그 날은 해준이 드라마상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감독은 꽤 아쉬워하며 해준의 연락처를 물어왔다.

차기작에서 조금 더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줄 테니, 꼭 참여해달라 했다.


“대신, 다음에도 이정도 연기력이면 그냥 취소하고 너 안 쓸 거야.”


그 말이 얼마나 기뻤던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해준은 그때, 시선을 느꼈다.

뭔가 끈적거리듯 해준을 훑는 시선을.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모두가 해준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뭔가 착각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 후로도 몇 번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해준은 시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해준을 자주 기용해주는 감독이 해준에게 술 한잔하자며 불러냈다.

술자리에 나가자 거기엔 감독과 비슷한 또래의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는 자신을 영화감독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평소 해준의 연기를 지켜봤다며 역할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첫 영화.

해준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의 친구 역으로 꽤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

게다가 촬영장은 바로 자취방 옆.

해준은 운명을 느꼈다.


촬영은 순조로웠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고,

감독도 다른 배우들도 스텝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빛이 보인다.

내게 운이 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며 귀가하던 도중이었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웬 머리 덥수룩한 여자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외모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어울리지 않게 스쿨룩을 입고 있었다.

이상한 여잔가 싶었지만, 얼굴은 온순하고 멀쩡해 보였다.


그녀는 해준을 발견하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해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선물상자를 건넸다.


“이건···.”


직접 포장한 것인지 삐뚤삐뚤한 포장지로 감싼 가로세로 20㎝ 정도의 상자.

누구에게 전해달란 건가?

누구한테 전해주면 되는지 묻기 위해 해준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패, 팬이에요.”


팬.

그 한마디에 해준은 환하게 웃었다.

직접 이렇게 선물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랑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귀여운 인상의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해준은 선물을 받아들며 마주 웃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선물을 건네주자마자 해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뛰어가 버렸다.

쑥스러워하는 건가.

해준은 설레는 기분으로 선물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녀가 직접 찍은 것으로 보이는 해준의 사진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엑스트라를 할 때의 해준.

첫 조연작품 촬영장소에서의 해준.

그동안 촬영했던 다양한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해준.

첫 영화, 그러니까 지금 찍고 있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해준.


그리고···.

집에서 쉬고 있는 해준.

화장실 변기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해준.

어두운 밤,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달빛 아래의 해준.


“···.”


해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상자를 떨어뜨렸다.

거기엔 해준이 모르는 해준이 잔뜩 들어있었다.


스토커.

해준의 첫 팬은,

해준의 스토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8 힘찬연어
    작성일
    19.09.29 00:13
    No. 1

    이게 이런 반전이 있네요ㄷㄷ 저 엑스트라분이 살인마의 희생자가 될거라 생각했는데 여자가 스토커라니, 이거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항상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9 00:16
    No. 2

    과연, 누가 죽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죄송합니다(쿨럭)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차르르
    작성일
    19.09.29 19:07
    No. 3

    어우.. 상황 묘사가 참 자세하네요 오싹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9 19:41
    No. 4

    헛, 항상 상황묘사가 부족하단 이야길 듣곤 했는데ㅜ.ㅜ
    뜻밖의 칭찬이 제 심장을 어택하는군요!!
    차르르님 칭찬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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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8살의 하루 +4 19.10.10 114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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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쓰레기라 불리는 남자 +2 19.10.08 125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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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냥 준비 +4 19.10.05 120 10 7쪽
33 두혁의 하루 +6 19.10.04 125 8 7쪽
32 그 날의 기억 +6 19.10.03 144 9 7쪽
31 SAW(Sulfuric Acid Wet) +10 19.10.02 152 10 14쪽
30 러브라인 강제연결게임 ~ 일렉트릭 시그널 ~ +7 19.10.01 176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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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팬이 알고 싶다 +4 19.09.29 162 11 9쪽
27 오, 나의 남신님! +2 19.09.28 230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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