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익숙한 천장.
언제나 그랬듯 아침이 찾아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
머리맡에 놓여있는 시계를 본다.
시계는 언제나처럼 평온하게 째깍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아니었다.
“···9···. ···9? 9시?! 와 씨, 미쳤다! 와!”
뭔가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오늘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뭐야, 고장이라도 난 건가?
아닌데.
제대로 움직이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알람만 고장 난 건가···?
망했다.
이번에 또 지각하면 반성문 쓰라고 한다 했는데!
상혁은 벌떡 일어나 잠옷을 벗어 던졌다.
머리를 대충 빗으로 빗어내고 교복을 입는다.
시계는 벌써 9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 차라리 1교시 끝나고 들어갈까···.”
수업 도중에 들어가느니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조회시간에는 늦었는데, 뭐···.
조금 마음이 느긋해지자 문득 분노가 치밀었다.
왜 이 시간까지 아무도 깨우지 않은 걸까.
“···하.”
뭐, 이유야 뻔하다.
이 집의 사람들은 죄다 개인주의자들이다.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상혁의 가족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망할.”
아무리 그래도 아직 중학생 밖에 안 된 아들이 안 보이면 좀 깨워줄 수도 있지 않나?
하나뿐인 동생이 학교 갈 시간에도 일어나지 않으면 한 번쯤 들여다봐 줄 수도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상혁은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다.
“어? 너 왜 아직 거기 있어?”
아침 드라마를 보던 어머니의 말에 상혁은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여기 있냐니···.”
“아, 맞아. 상아가 알람 꺼버렸지.”
···뭐?
지금 뭘···?
아연실색하는 상혁에게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너 대체 알람을 몇 개나 켜는 거야. 상아가 시끄럽다고 꺼버렸다, 아침에.”
하, 어쩐지.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던 알람이 뜬금없이 울리지 않은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나.
한순간이라도 혹시 시계가 고장 나기라도 해서 알람이 울리지 않았나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미안하다, 시계야.
상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상아, 미쳤나 진짜.”
“누나한테 신상아가 뭐야, 신상아가.”
“그게 무슨 누나야? 누나 노릇은 하나도 안 하는데.”
“누나 노릇은 무슨···. 사람은 원래 혼자 태어나서 홀로 가는 거다.”
무슨 헛소리야.
상혁은 황당하다고 쓰여 있는 것 같은 얼굴로 어머니를 흘겨보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으며
“나 오늘 늦어. 도서관 갔다 올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상혁에게 어머니는
“알아서 해~.”
라고 이야기한 후 다시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다른 집은 미리미리 말 안 한다고 혼난다는데 대체 우리 집은···.
입맛이 쓰다.
상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
“우와, 너네 집 개쩐다. 나랑 바꾸자.”
“진짜 바꿀래?”
맛없는 급식을 뒤적이며 상혁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놈의 집구석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성적을 잘 받아와도
“니 성적 니가 잘 받는데 그게 뭐?”
라고 이야기하고 끝.
운동대회에서 좋은 순위에 들어도
“니가 니 몸 잘 챙기는데 그게 뭐?”
라고 이야기하고 끝.
좋은 글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 와도
“니가 니 상 받았는데 그게 뭐?”
라고 이야기하고 끝.
그 허무감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야야, 나 같은 새끼한텐 완전 천국이겠는데. 우리 집 아줌마 얼마나 시끄러운지 니가 아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와 진짜 개짜증남.”
퍽퍽, 반찬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태민이 웅얼거렸다.
그런 태민을 보며 너는 참 속 편해서 좋겠다,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상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혼자 사는 게 낫겠어.”
이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더 그렇다.
이제 중학교 2학년생인 상혁이나, 약 9년 전부터 그랬다.
때는 2010년, 봄.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가게 되는 상혁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상혁아, 이제부터 넌 어린이집을 갈 거야.”
“···어이니지?”
다소 말이 느렸던 상혁은 그게 무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어머니는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상혁에게 말했다.
“그래, 어린이집. 앞으로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랑 재미있게 놀 거야.”
어릴 때부터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했던 상혁에게 어머니가 설명하는 그곳은 꿈의 장소와 같았다.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듣는 상혁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이제 앞으로 네가 어린이집 차 오기 전에 일어나면 어린이집 갈 수 있고, 아니면 못가는 거야. 알았지?”
6살의 아이가 뭘 알겠는가.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좋아했다.
참고로 상혁의 어린이집 출석률은 60%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정말로’ 상혁을 깨워주지 않았다.
상혁 스스로 9시에 자서 8시에 일어나야만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도와주었고,
그렇지 않으면 내버려 뒀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씻거나 몸단장하는 것을 혼자 하게 시키더니
중학교에 올라오자 이제 밥 차려 먹는 것까지 스스로 하게 시키고 있다.
물론 음식을 미리 해두기는 하지만···.
혼자 사는 거랑 대체 다른 게 뭘까.
아침에 혼자 일어나지,
집에 일찍 들어가든 늦게 들어가든 신경도 안 쓰지,
사람이 어디서 뭘 하는지 관심도 없지.
이럴 바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속 시원하고 편할 것 같다.
“혼자 살면 좋지~. 나도 나중에 대학 가면 자취하려고. 너도 같이 살래?”
“미쳤냐? 너랑 살면 내가 엄마 역할 해야 될 게 뻔한데. 난 차라리 나 혼자 맘 편하게 살 거야.”
“헐, 왜~. 너 혼자 잘 일어나고 한다며? 나도 좀 깨워주고 그래라. 나 혼자 못 일어날걸?”
그럼 자취를 하면 안 되지, 미친놈아.
그렇게 생각하며 상혁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녀왔···습니다···?”
“아, 왔냐?”
밥그릇에 얼굴을 박고 태연하게 인사하는 모습에 머릿속까지 확 열이 뻗쳤다.
신상아, 이 개···.
“야 이 미친···, 신상아! 너 미쳤냐? 아침에 알람 왜 끄고 나가!”
“뭐래? 병신아. 그러게 누가 알람 다섯 번 울리는데도 안 일어나래? 너 때문에 나 새벽 6시부터 잠 설쳤거든?”
상아는 마치 하잘것없는 걸 보는 듯한 눈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움찔, 잠시 말문이 막힌 상혁이었으나 이내 곧 다시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야! 끌려면 깨워주던가! 깨워주지도 않고 그냥 끄면 어떡해!”
“지랄. 우리가 언제 서로 깨워주고 깨움 받고 그랬냐? 못 일어나면 지 잘못인 거지.”
속이 터진다.
하지만 반박할 말이 없다.
상혁은 한참을 붉어진 얼굴로 서 있다가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씨발!!”
상혁의 절규를 들으며 상아는 낄낄거리며 마지막 남은 갈비를 먹었다.
상혁의 것을 좀 남겼어야 했나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늦게 들어와서 못 먹은 제 잘못이지.
상아는 깔끔하게 설거지까지 해치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상혁의 절규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그 절규를 배경으로 상아는 실로 평온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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