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다음 날 상혁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어딘지 싸구려 느낌이 나는 석고 텍스 소재의 천장.
멍하니 천장의 문양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벌떡 일어났다.
“···?!”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자 11시 23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보였다.
방에는 총 6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5개가 비어 아무도 없다.
아마 집 근처에 있는 그 허름한 병원인 모양이다.
팔에 꽂혀 있는 링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혁은 정신을 잃기 전을 떠올렸다.
누나가 갑자기 데려왔던 이상한 남자.
그 남자를 떠올리자 오한이 올라온다.
뭔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지만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굉장히 기분 나빴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 남자는 위험하다.
상혁의 머릿속이 빨간 경보음을 낸다.
“아, 일어났네요.”
열려있던 병실 문으로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쉽게도 간호사라는 이미지에서 떠올리는 미인은 아니었다.
다만 푸근하고 따스한 인상의 아주머니였다.
“아···.”
“신상혁 님, 열 좀 잴게요. 어제 감기로 실려 왔었는데···. 기억나요?”
상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흔들리는 머리에도 상관없이 간호사는 체온을 재고 있었다.
목소리를 내어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에 찰흙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목이 답답했다.
“형이 신상혁 님 안고 왔어요. 엄청 잘 생겼던데, 친형이에요?”
간호사가 체온계를 빼자마자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목을 풀어보려 헛기침을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그런 상혁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호사가 말했다.
“지금 목이 많이 붓고 가래가 많이 껴서 목이 답답할 거에요. 당분간은 말 많이 하지 말고 따스한 물 많이 마시는 게 좋아요. 자세한 건 저녁에 의사 선생님 오시면 말씀드릴 거고요.”
간호사는 생글 웃곤 링거를 확인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상혁에게 간호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그리고 와서 있어 줄 가족 없어요? 아직 열이 좀 높아서 누가 있어야 하는데···.”
상혁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다소 힘이 없어 보였다.
간호사는 난감하다는 듯 흐음, 하고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일단 알았어요. 혹시 최대한 빨리 와줄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면 와달라고 하세요. 어제 어머니가 번호를 잘못 알려주고 가셨는지 연락이 안 되네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옆 협탁에 얌전히 올려져 있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친구들의 걱정 섞인 메시지는 몇 개나 들어와 있었지만 역시나 가족들 것은 없었다.
“···.”
작게 한숨을 내쉬자 목이 아프다.
상혁은 짜증 섞인 손짓으로 핸드폰을 발치로 내던지고 벌렁 드러누웠다.
아직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걸 보니 간호사의 말대로 열이 내리지 않은 것 같다.
자자.
아프면 언제나 그랬듯 상혁은 눈을 꽉 감고 잠을 청했다.
꿈을 꾸었다.
새까만 어둠 속을 홀로 달리는 꿈이었다.
상혁은 꿈이라는 걸 깨달았으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 따라오는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헉, 헉···.”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내린다.
느껴질 리 없는 땀이 둔탁한 감촉으로 흘러내린다.
꿈에서는 분명 감각이 없다 했는데, 어째서일까.
뒤에 있는 것에게 잡히면 절대 안 될 것이라는 공포심과
뺨을 타고 흐르는 불길함과
땀이 흘러내리는 간지러움과
등 뒤를 적시는 축축함이 느껴졌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꿈이기에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혁은 그저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어둠 속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그 앞에는 부모님과 상아가 있었다.
“···!”
애타게 불렀다.
상혁의 눈에 그들은 마치 구원의 방주처럼 보였다.
제발 나를 알아채 줘.
나를 봐 줘.
상혁은 외쳤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마치 수건을 물려 막아놓은 것처럼 목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돈다.
상혁은 답답함에 더 강하게 소리쳐보려 했지만···.
“···!!”
목이 터질 것 같다.
머리도 터질 것 같다.
마치 폭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가족들은 상혁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웃고 있었다.
상혁이 없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문득 상혁은 생각했다.
저 무서운 것이 왜 자신을 쫓는 걸까.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차라리 저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뒤에서 쫓아오던 그것이 웃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데 어째서일까.
상혁은 그것이 웃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다.
“···?!”
검은 그것은 마치 지금까지의 속도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재빠르게 상혁을 지나쳐갔다.
잡으려 하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대체 왜···.
멍하니 검은 것의 궤도를 눈으로 좇던 상혁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
피해!
라고 외치고 싶었다.
겨우 깨달았다.
그것은 상혁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그것이 뒤돈다.
새빨간 핏빛의 그것은 마치 상혁을 놀리는 것처럼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방금처럼 빠르게 달리던 상혁의 발은 거짓말처럼 바닥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
피해!
상혁은 깨달았다.
자신이 가족들을 원망하는 것을 그것은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에게 대신 가라는 그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혁은 꼼짝없이 그것에게 가족들이 먹히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리고,
상혁은 잠에서 깨어났다.
“헉, 헉···.”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자 어느덧 시간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옆에는 쟁반에 국그릇, 밥공기와 찬기 세 개가 뚜껑이 닫힌 채 놓여있었다.
바람이 새는 것 같은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상혁은 황급히 발치에 던졌던 핸드폰을 찾았다.
화면을 켜자마자 문자메시지가 하나 보였다.
-상혁 군.
한 문장밖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는 저장되지 않은 상대에게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알고 있었다.
저 문자가 누구한테서 온 것인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스와이프하자 문자의 전문이 보였다.
-상혁 군,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걱정이에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아요.
건강해진 후에 다시 만나요.
문득 그 남자의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요?”
였던가.
나는 그 남자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상혁은 한참을 생각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열이 확 오르던 하필 그때 대답했던 터라 기억이 애매했다.
하지만 상혁은 알 수 있었다.
다시는 그 남자와 마주쳐선 안 된다.
만약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땐···.
창밖에서 까마귀가 운다.
상혁은 그 울음소리가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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