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의 하루
아침 7시.
시호의 눈이 반짝 떠졌다.
눈에 끼인 눈곱을 떼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부비던 시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오빠? 오빠?”
처음엔 작은 목소리였던 부름이, 어느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변한다.
그래도 오빠는 나오지 않았다.
시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오빠!!!!! 오빠!!!!!”
터져버린 눈물에 눈을 부빈다.
남아있던 눈곱이 진득해져 눈가에 달라붙는다.
손으로 쥐어뜯듯 잡아떼며 오빠를 간절하게 부르자
벌컥, 하고 화장실 문이 열렸다.
“왜 그래, 시호야!”
당혹에 찬 목소리.
시호는 벌떡 일어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렸다.
타닷, 하고 달려가 오빠의 다리에 매달리자 오빠가 윽, 하는 소리를 냈다.
“오빠, 시호 놔두고 어디 갔었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시호는 칭얼거렸다.
성호는 미안하다는 듯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해. 오빠가 안 보여서 놀랐지? 시호가 일어나기 전에 씻으려고 했어.”
성호의 얼굴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물이 그대로 시호의 머리에 떨어졌다.
시호는 머리에 차가운 물방울을 느끼며 오빠가 이곳에 있음을 실감했다.
성호가 한참 동안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에야 시호는 성호에게서 떨어졌다.
“오늘 일찍 일어났네?”
“응.”
나 잘했지?
라고 묻는 것 같은 웃는 얼굴.
성호는 그 얼굴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을 비웃음으로 받아들인 시호의 얼굴이 이지러진다.
“왜 웃어!”
“응? 귀여워서.”
“헤헤.”
귀엽다는 말에 금방 풀려서 헤실거리는 얼굴.
사랑스럽다.
왜 이 아이를 원망했었던 것일까.
성호는 시호를 보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빠, 나 오늘 수영장 갈 거야.”
벌써 몇 번째 이야기하는 것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영장에 가보는 시호에게는 아마 생애의 대사건일 것이다.
그걸 잘 아는 성호는 미안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저 씩 웃었다.
“밥 뭐 먹을래?”
“음, 김! 계란!”
“알았어. 세수하고 와. 예쁜 얼굴 엉망이다.”
헤헤, 하고 웃어 보인 시호가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덜 씻었는데.
음.
성호는 머리를 긁적이다 티셔츠 앞자락을 들어 올려 얼굴을 닦았다.
어쩔 수 없지 뭐.
계란이랑 김이 어디 있더라.
성호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성호는 아침을 먹자마자 나가버렸다.
시호는 혼자 전날 챙겨둔 책가방을 챙겨 들었다.
아침은 먹었고, 양치는 귀찮아서 패스했다.
어차피 오빠는 일하러 갔으니 확인할 사람도 없는데, 뭐.
거울에 머리를 비춰보며 혹시 엉킨 곳은 없나 야무지게 확인한 후,
시호는 현관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계단은 오빠가 몇 번이나 전구를 갈아달라 했지만,
아직도 방치하는 집주인 때문에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다.
시호는 오빠가 비상용으로 만들어준 키즈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서 겨우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다 오르자 환한 햇빛이 몇 줄기 스며들었다.
따스하다.
햇빛에 온도가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매일 지하 방에 있다 보니 햇빛에 민감해진 걸까.
시호는 나중에 크면 꼭 실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공동현관의 문을 열었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면 갑자기 바깥의 소리가 파도처럼 덮쳐온다.
거기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지나치게 눈부시다.
시호는 살짝 눈을 찡긋하며 귀와 눈이 바깥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 하시호? 너 여기 사냐?”
시호는 낯선 목소리에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얼굴은 낯익지만 이름은 제대로 모르는 반의 동급생이 서 있었다.
“어···, 음···, 응.”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써봤지만, 이··· 뭐였는지 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결국, 시호는 이름을 불러주려던 것을 멈추고 생글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남자아이는 잠시 우물우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 살아. 내 친구들 다 저쪽 살고. 너도 그러냐?”
시호는 어설프게 웃었다.
따지자면 돈이 없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힘드니 처음부터 일부러 혼자 다녔다.
그래서 이 동네에 같은 반 아이들이 사는지 아닌지 관심도 없었다.
시호가 대답을 망설이자 남자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야, 우리 같이 갈래?”
“어···?”
“같이 가자.”
남자아이가 시호의 손을 끌었다.
시호는 얌전히 남자아이의 손에 이끌려 발을 옮겼다.
유치원 때까지는 등 하원 차를 타고 다녔기에 다른 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렸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하굣길에 주전부리를 하자고 했지만, 시호는 돈 백 원이 아까웠다.
오빠가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지는 잘 모르지만,
가끔 술에 취해 우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힘든 일일 터였다.
오빠는 용돈으로 쓰라고 매일 만 원씩 쥐여줬지만,
시호는 단 한 번도 그 돈을 쓴 적이 없었다.
애초에 먹고 싶지도 않은 간식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사 먹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학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반에서도 밖에서도 혼자였다.
“넌 친구 누구누구 있냐?”
그래서 남자아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아이는 묵묵히 걷는 시호를 보다 문득 멈춰섰다.
왜 그러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남자아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씩씩대고 있었다.
“야! 너 벙어리냐? 왜 말을 안 하냐?”
“···벙어리 아닌데.”
우물우물 시호가 대답하자 남자아이는 더 열이 뻗치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눈에는 얼핏 물기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대답을 안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호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남자아이가 순간 표정을 풀었다.
의아함으로 가득 찬 그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시호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나 친구 없어서 대답 못 했어. 미안.”
이번엔 남자아이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 눈동자에는 묘한 치기와 죄책감이 갈등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시호는 이럴 때 말을 걸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호는 그저 가만히 남자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기다렸다.
“어, 그, 미안.”
남자아이는 의외로 순순히 사과했다.
묘한 치기를 죄책감이 찍어누른 모양이었다.
시호는 씩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남자아이가 시호의 뒤를 졸졸 쫓아왔다.
“근데 나 너 이름 모르는데. 물어봐도 돼?”
“왜 아직 내 이름도 몰라?”
“혼자 다녀서···? 우리 집 가난하거든. 친구들이랑 잘 못 어울려. 그래서 친구들도 잘 몰라.”
남자아이가 다시 움찔했다.
시호의 뒤에서 걷고 있던 남자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해 본 것은 생애 처음인 모양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내 이름은 강하늘이야!”
“고마워, 하늘아. 이제 꼭 기억할게.”
시호가 뒤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그 모습이 햇살 아래서 반짝반짝 빛난다.
하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야, 오늘 나랑 같이 집에 갈래?”
“그래, 좋아.”
둘의 뒤로 길게 그림자가 늘어진다.
그 뒤에서 한 남자가 미소짓고 있었다.
“···.”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 갈색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 불길함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시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골목 그림자 속에 숨은 남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시호는 다시 앞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어느 아침의 일이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