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무지개가 뜬 새벽
남자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요.”
라며 웃었다.
성현은 남자의 말대로 얌전히 남자의 차 조수석에서 기다렸다.
차는 잘 모르지만 한눈에 봐도 좋은 차인 것 같았다.
손에 닿는 보들보들한 가죽의 감촉,
차 내부를 은은하게 채우는 시원하고 화한 향,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실내.
거기에 남자가 틀어놓은 고요한 클래식 음악까지.
흔들림도 적어 한참이 지난 후에야 성현은 남자가 시동을 켜 놓은 채로 나갔음을 알았다.
30분, 1시간, 2시간···.
왠지 모를 긴장에 굳어 있던 성현의 몸이 나른해지고,
살짝 잠이 오기 시작할 때까지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7시가 지났을 무렵에는 그냥 집에 갈까, 라는 마음에 살짝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시동이 켜진 차를 그냥 두고 가기에는 너무 찝찝하였다.
딱, 딱 30분만 더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하던 성현의 귀에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
방음이 잘 되어서인지 아니면 특수한 장치가 되어있는지 남자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 입 모양이 왠지 나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아니, 아니다.
입 모양도 흐리지만, 왠지 그 눈웃음이 성현을 나오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다.
달칵, 하고 문을 열자 남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성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갈까요?”
마치 여자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그 얼굴에 성현은 되려 불안해졌다.
대체 이 남자를 따라간 그곳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성현은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었다.
“···헉···.”
성현은 소리를 지르는 대신 숨을 삼켰다.
어찌 된 영문일까.
남자의 손에 이끌려 온 이름 모를 폐건물 안에서 성현은 뜻밖의 인물들과 조우했다.
강성현, 하민호, 정태우, 유세명.
왜 저놈들이 여기에···.
멍하니 넷을 바라보는 성현의 귀에 남자가 속삭였다.
“성현 군이 원하는 네 명, 맞죠?”
이름조차도 말한 적 없었다.
이 남자에게.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저 넷을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일까.
“으, 으으으으, 읍!!”
넷은 끊임없이 뭐라 이야기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재갈이 물려있어 알아들을 순 없었다.
남자는 다시 성현에게 속삭였다.
“성현 군이 원하는 복수를 내게 가르쳐 줘요.”
성현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잠에서 깬 것처럼 또렷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이상하다.
벗어나야 한다.
여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면 처음은 제 마음대로 해볼까요? 당신에게 영감이 떠오를 수 있게.”
으음, 하고 고민하던 남자가 세명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감는다.
하얀 손가락을 휘감은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남자는 그대로 세명의 눈을 가린 안대를 벗겨냈다.
세명은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뱉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라는 성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남자는 마치 잡초라도 베는 것처럼 세명의 머리를 들어 올려 그대로 목에 칼을 박아넣었다.
“···!”
신음성이 나오려 하는 것을 남자의 손이 억누른다.
코와 입을 막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세명의 머리를 놓지 않았다.
남자는 눈높이를 맞춰 세명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꺼져가는 눈동자를 희열에 찬 눈동자가 탐닉한다.
무섭다.
여기서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왠지 모를 눈물이 줄줄 흘러 시야를 흐린다.
남자는 세명이 완전히 절명할 때까지 가만히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자, 어때요?”
남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그 웃음은 좀 전의 놀이터에서 본 그것과 같아서 더 무섭다.
마치 눈앞에 있는 세명의 시체가 신기루라도 되는 것처럼.
“어떤 기분인가요?”
달콤한 목소리가 묻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남자가 가까워진다.
그때마다 성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방울도 더 굵어졌다.
이 두려운 상황에서도 이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그 목소리만큼은 귓가에 잘 닿는다.
너무나도 달콤해서 더 무서운 목소리가.
“가르쳐 줘요, 네?”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남자의 눈동자는 찬란한 태양 같다.
호기심으로, 궁금증으로 가득 차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
성현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남자의 눈동자에 집중했다.
“무, 무서워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
눈물 때문에 잠겨버린 목소리로 성현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서워요? 후련하지 않고? 왜지?”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의 뒤로 침묵이 흐른다.
셋은 어느새인가 몸부림도 멈추고 소리 지르던 것도 멈추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는 것일까.
아니면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까.
“아, 죽여버려서구나? 보통은 사람이 죽으면 두려워한다고 하죠···. 알았어요. 이번에는 바로 죽이지 않을게요.”
남자는 생글생글 웃더니 이번엔 태우의 머리채를 쥐었다.
이번에는 태우의 눈가리개를 풀고, 입에 물린 재갈도 풀어주었다.
“이 씨발새끼! 너 뭐야, 이 새끼야!”
재갈을 풀자마자 거친 말이 쏟아져 나온다.
남자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꿇어앉아 있는 태우의 입을 그대로 발로 차버렸다.
“으아아아악!”
“조용히 하세요.”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까지 성현에게 말하던 목소리와는 천차만별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태우가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시끄럽고 천박한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용히 해 주세요. 지금 말해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성현 군입니다.”
익숙한 이름에 태우가 주변을 둘러본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태우가 이를 으득, 갈았다.
“이 개새끼가! 야이 씹새끼야! 니가 찌질해서 당한 걸 왜 개지랄이야! 아는 형 불러서 이러고 싶냐? 니가 내일부터 학교 편하게 다닐 것 같아? 이 개새끼, 내가 너 절대로 죽여버린다, 이 새끼야!”
처음에는 버릇처럼 움찔하던 성현의 눈에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이 성현의 마음에 울분이 일었다.
“뭐래, 이···, 이 개새끼야.”
어렵게 내뱉은 욕에 태우의 눈에 살기가 서린다.
그 눈에서 이 끈만 풀리면 널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친다.
성현은 이미 절명하여 텅 빈 눈동자를 하고 있는 세명을 보았다가 다시 태우를 보았다.
내일, 죽여버리겠다?
그 내일이 과연 너에게 올 수 있을까?
눈물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성현의 눈앞이 아주 조금 맑아졌다.
“찌질하다고? 넌 그 형 하나 못 이겨서 나한테만 그렇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잖아. 그런 너는 안 찌질해···?”
말문이 막힌 태우가 헛바람을 삼킨다.
슬쩍 옆을 돌아보자 남자가 묘한 미소를 띠고 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이 씨발! 뭔 헛소리야, 개새끼야! 니, 니가 먼저 우리 일에 이 새끼를 끼웠잖아!”
내가 너희한테 당하는 건 찌질한거고,
너희가 그 형한테 당하는 건 찌질한 게 아닌가?
성현의 입이 씰룩였다.
“···형, 저 새끼는 머리가 문제인 것 같아요. 생각이 없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은데 뇌가 없는 거 아닐까요?”
맑아졌던 시야가 다시 흐려진다.
흐르는 눈물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남자는 그런 성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이내 씩 웃었다.
“그러게. 뇌가 있는지 확인해볼까?”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녹슨 쇠파이프 하나를 들고 왔다.
저벅저벅.
자신에게 남자가 가까워질 때까지만 해도 태우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남자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태우는 깨달았다.
이 남자가 진심이라는 것을.
“그러게 왜 생각 없이 지껄이고 지랄을 하셨어요.”
남자의 말을 마지막으로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되었다.
마치 성현의 옆구리만을 노렸던 그 주먹과 발처럼 남자는 오로지 태우의 머리만을 노렸다.
처음에는 뭔가 신음이나 비명 비슷한 무언가가 터져 나왔던 기분도 들지만, 이제는 아니다.
남자는 마치 샌드백을 때리듯 한참 동안 태우의 머리를 짓이겼다.
“음, 일단 뇌가 있기는 있네.”
씩 웃는 남자를 보며 성현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명백하게 남자는 성현의 의사대로 움직였다.
성현이 그렇게 하길 원했다.
겨우, 겨우 놈이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이유 하나로.
남은 둘은 덜덜 떨고 있었다.
아마 소리로도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널 제일 괴롭힌 건 이놈이지?”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남자는 친밀한 말투로 성현에게 물었다.
그러나 성현은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구역질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부터 보자.”
남자는 민호를 질질 끌어 성현의 앞에 무릎 꿇렸다.
민호는 아는지 모르는지 벌벌 떨며 납작 엎드렸다.
“미, 미안해. 내, 내가 잘못했어. 다 강성현이 시켜서 한 거야! 진짜로! 나는 너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데, 강성현이 시켜서···.”
감정이 없었다···.
편리한 변명이다.
“그럼, 왜 소설에서 봤다면서 점혈인지 뭔지를 나한테 실험했어···?”
태우 때보다 훨씬 편안하게 말이 나온다.
성현은 어느샌가 자신의 떨림이 멈춘 것을 깨달았다.
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은 여전했고, 코까지 막혀오기 시작했지만 묘하게 머리는 맑아졌다.
“왜 날 때리면서 그렇게 웃었어? 왜 날 괴롭히면서 그렇게 즐거워했어? 왜 날 창피 주면서 그렇게 재미있어했어?”
성현의 말이 이어지면 질수록 성현은 침착해졌고, 민호는 창백해졌다.
어둠 속에서도 민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은 느껴졌다.
“형, 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달콤한 목소리.
저 목소리가 자신을 이끌어준다.
성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전 항상 민호가 까불거리는 걸 보면서 저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 괴롭히면서 사람 속 뒤집는 말을 하는··· 그 입을요.”
남자가 작은 편지 칼을 꺼내 들고 민호에게 다가갔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연신 휘파람을 불면서 남자는 민호의 등 위에 올라타 자신도 엎드렸다.
그 모습을 성현은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넌 운이 좋구나? 아까 태우라는 애는 머리가 깨질 때까지 맞았는데. 아, 아니야. 어쩌면 너는 더 운이 안 좋을 수도 있겠다.”
더 오래 아플 테니까.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칼로 민호의 입가를 서서히 찢기 시작했다.
“으으으응!!!!”
혀가 말려 들어가 기묘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남자는 마치 그 비명이 좋은 음악 소리라도 되는 양 최대한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칼을 타고 피가 흐른다.
투둑투둑 바닥으로 흐르는 피를 타고 성현의 시선도 흘렀다.
하지만 이내 다시 괴로워하는 민호의 얼굴로 눈이 향했다.
“아파? 괴로워? 기분이 어때?”
남자가 민호의 귓가에 속삭인다.
얼핏 로맨틱한 영화의 한 장면인 것처럼 남자의 목소리는 몹시도 달콤하다.
민호는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자신을 누르고 있는 남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꿈틀거릴 뿐이었다.
거의 귀 아래까지 양쪽 입꼬리를 모두 베어낸 남자가 성현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눈동자에 성현이 입을 열었다.
“죽여버려요, 형.”
처음으로 새어 나온 직접적인 살의.
그 한 마디를 기다렸다는 듯 남자가 황홀한 미소를 띄웠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남자는 민호의 목에 칼을 박았다.
행여나 옅게 박힐까 봐 칼 손잡이까지 민호의 목에 묻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남자는 민호의 위에서 내려왔다.
“기분이 어때?”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울음으로 막혀버린 코가 신경 쓰여 코를 들이마신다.
남자가 손수건을 성현에게 건넸다.
아까 낮에 본 것과 같은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현은 사양하지 않고 손수건에 흥, 하고 코를 풀었다.
“자, 이제 얘만 남았네?”
남자의 말에 성현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강성현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왜 그래? 항상 날 괴롭힐 때는 언제고···.”
성현은 강성현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강성현은 반대 방향으로 몸을 피했다.
재미있다.
성현은 처음으로 이 상황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형. 혹시 담배 피워요?”
성현은 강성현의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냈다.
강성현의 눈동자는 눈물로 얼룩져 있어 왠지 우스웠다.
왜 내가 이런 놈을 무서워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성현은 자신의 팔오금을 내밀었다.
“기억나? 너 담배 재떨이가 없다면서 내 팔에 담배 껐었잖아.”
남자는 태우의 품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주었다.
성현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담배 필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익숙지 않은 냄새만으로도 코가 아파 한참을 기침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눈물을 머금고 참아냈다.
“그거 알아? 담뱃불이 표면 온도가 500도 정도 된대. 담배 피울 때는 800도 정도 되고. 몰랐지? 너도 알았으면 좋겠어.”
성현의 손이 강성현의 얼굴로 향한다.
자신의 눈을 향해 다가오는 담뱃불을 바라보던 강성현이 움찔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눈 떠, 성현아. 너 내 앞에서 이런 모습 보인 적 없잖아. 언제나처럼 나 노려보면서 짜증 내야지. 응? 우리 찌질이처럼 이러지 말자.”
눈을 꾹 감고 있던 강성현이 ‘찌질이’라는 말에 반응해서 번쩍 눈을 떴다.
그 순간만 노리고 있던 성현이 손을 뻗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를 찢는 절규.
성현은 가슴속에 맺혀있던 그 무언가가 사르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그 덩어리는 크고 강성현은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밤도 길어, 성현아.”
남자는 흡족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밤은 길다.
그리고 밤 뒤에는 새벽이 올 것이다.
“기분이 어때요?”
강성현의 시체를 앞에 둔 성현에게 남자는 물었다.
어느새 남자의 말투는 다시 존댓말로 돌아가 있었다.
강성현의 목에 난 손자국을 손가락으로 더듬던 성현의 눈에서 이미 눈물은 멎은 지 오래였다.
남아있는 눈물 자국도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좋아요.”
성현의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남자는 그런 성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현은 남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감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남자가 성현을 살려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현은 각오를 다지고 눈을 감았다.
“···.”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눈을 뜬 성현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남자는 처음부터 성현의 착각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아있는 네 구의 시체만이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웠다.
“···.”
성현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언제 꺼진 것인지 알 수 없는 핸드폰의 까만 화면을 바라보던 성현이 전원을 켰다.
익숙한 로고가 뜨고,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메신저 305개,
문자 1003개.
모두 부모님한테서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겨우 참아낸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성현이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는 이미 없다.
혹시나 해서 나오기 전에 자신이 입에 댔던 담배꽁초를 찾아봤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남자가 처리해준 듯했다.
성현도 미련 없이 바로 그 건물을 나왔다.
이대로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
설령 경찰이 조사를 하러 오더라도 겁낼 것은 없다.
증거 따윈 이미 남아있지도 않으니까.
이미 동은 텄다.
새벽 여명의 색이 묘하게 탁하다.
성현은 새벽 여명을 바라보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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