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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살인마는 궁금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9.01 22:33
최근연재일 :
2019.10.21 00: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0,381
추천수 :
658
글자수 :
199,025

작성
19.09.28 00:05
조회
229
추천
9
글자
8쪽

오, 나의 남신님!

DUMMY

오늘도 그는 예쁘다.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

그 입가에 맺힌 부드러움.

눈동자에서 뚝뚝 흘러넘치는 상냥함.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오직 모니터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게 모니터의 빛인지 아니면 그의 얼굴에 비친 후광인지 라희는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라희는 황홀한 얼굴로 모니터 속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그를 처음 발견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길거리를 걷는 엑스트라들 속에서 주연배우보다도 더 반짝반짝 빛나던 그의 모습을.


그는 조금 긴 뒷머리를 목까지 늘어뜨리고, 살짝 눈을 가리는 긴 앞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 흑요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그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보석 같았다.

그 눈동자는 또 어떤가.

긴 속눈썹에 덮인 깊이 있는 연한 갈색 눈동자는 부드럽고 상냥해 보였다.

허여멀건 하기만 한 요즘의 허약한 남자들과 달리 살짝 볕에 그을린 피부는 남성미 가득했고

살짝 붉은 빛 도는 붉은 입술은 그야말로 키스를 부르는 것 같았다.


저 남자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때의 라희는 한 무명배우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것은 30대가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명이었지만 종종 엑스트라가 아닌 비중 있는 조연으로도 나오곤 했다.

그러나 감독들의 눈이 삐었는지 그 어떤 주연보다도 빛나는 그를 계속 조연으로만 기용했다.


“멍청하긴···.”


사실, 라희는 좋았다.

그가 주연인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를 혼자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니까.


모니터 속 그의 모습을 한 장 넘긴다.

그는 정면이 아니라 측면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라희가 가진 사진 중에서도 Top of Top을 차지할 정도로 아름다운 웃음.

라희의 입가도 덩달아 올라갔다.


라희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라희의 시선을 눈치채고 웃었다는 것을.

사실은 라희에게 웃어주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라희에게 말 걸고 있다는 것을.


“나도 사랑해.”


라희는 달콤하게 속삭이며 모니터 너머의 그에게 입 맞추었다.

따스하지만 딱딱하다.

라희는 언젠가 그의 입술에 정말로 입 맞출 그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희는 오늘의 그를 아무도 모르게 카메라에 담았다.

오로지 그를 찍기 위해 산 DSLR의 렌즈 속에 그가 담긴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머리카락.

부드럽지만 아주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냉정한 감정을 담는 갈색 눈동자.

오똑한 콧날에 보드라운 입술.


응, 역시 좋다.

오늘도 그의 얼굴은 열일하는 중이다.

라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


그는 그런 라희를 아는지 모르는지 촬영장 스텝의 배웅을 받으며 라희 쪽으로 걸어왔다.

이대로 마주쳐볼까.

하지만 얼마 전에 라희와 마주친 그가,

라희에게서 도망쳤었던 것을 기억해내자 이내 시무룩해졌다.


라희는 확신하고 있었다.

TV 브라운관 너머로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느꼈다.

저 남자도 나를 사랑하게 되리라는 것을.

라희가 그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자그마치 13년의 기다림.

그 기다림 끝에 라희는 용기를 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성 들여 준비한 선물을 품에 안은 채로.

촬영장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그의 앞에서 라희는 머뭇머뭇 선물을 건넸다.


“이건···.”

“패, 팬이에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의 눈동자에 살짝 물기가 차오르는 그 순간.

라희는 확신했다.


역시 우리는 운명이었다.

봐라, 그도 지금 나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았는가.

이제 그 누구도 우리 사이를 방해할 순 없다.

라희의 입술이 귀에 걸릴 듯 찢어졌다.


“사랑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그는 선물을 받아들고 예쁘게 웃었다.

그 순간 라희는 그와의 미래가 눈앞에 떠올랐다.

수줍게 처음 손을 잡은 날, 그대로 분위기에 휩쓸려 저 탐스러운 입술에 입 맞출 것이다.

그러면 그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저 예쁜 눈동자로 라희를 바라봐 줄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우리는 운명이야. 나랑 결혼해 줘.”


그렇게 그와의 첫날밤을 보내고 속도위반.

그래, 첫째는 딸이 좋겠다.

그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애 끓이던 라희를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부모님은 놀랄 것이다.

설마 진짜로 그를 사위로 데려올 줄 몰랐겠지.

라희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들에게 그를 소개해 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를 내조하느라 아르바이트 인생이지만, 그와 식을 올리면 직장을 구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배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지원할 것이다.

그가 처음 주연으로 발탁된 날, 그들은 전에 없이 뜨거운 밤을 보내고 둘째를 가질 것이다.

둘째는 역시 아들이 좋겠지.

그렇게 아들딸과 오순도순 살며 그는 점점 배우로서 대성하게 될 것이고,

라희는 인터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것 외에는 한 게 없어요.”


모두가 라희를 부러워할 것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남자를 가지게 된 라희를.

그 날 밤, 라희는 잠을 설쳐야만 했다.


다음 날에도 라희는 그를 찾았다.

이미 사귀는 것과 다름없는 사이지만 촬영장까지 들어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어제 그 장소에서 기다렸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이 조금 늘어지는 걸까.

예상했던 것보다 3시간이 더 지나서야 그가 모습을 보였다.


“아···.”


라희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라희를 발견한 순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돌아 도망쳤다.

그런 그를 뒤쫓지조차 못하고 라희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얼어버렸다.


뭘까.

라희인 것을 몰라본 것일까.

그렇겠지.

설마 라희를 보고 도망갔을 리가 없다.


왠지 모르게 가슴을 뒤트는 불안감을 뒤로한 채 그 날은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라희는 그가 출연하는 장면이 끝나기 7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라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살지만,

촬영장과 그의 집은 경기도 외곽이었다.

면허도 옳게 따지 못한 라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뿐.


물론 시간상으로는 넉넉잡아도 2시간 30분이면 촬영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지만,

혹시라도 그가 빨리 촬영장을 나설지도 모르고 어제는 설렘에 미처 찍지 못한 사진도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도 촬영장으로 발길을 향하는 그와 마주쳤다.

라희는 그의 이름을 부를까 하다가 거리가 멀어 그냥 뛰기로 했다.

조용한 길에 탁탁탁, 하는 발소리만이 가득 찬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아···.”


라희는 반갑게 그를 부르려 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어제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아무리 라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누가 봐도 명백하게 라희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그 날 이후로 라희는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사진을 찍을 뿐.

알 수 없었다.

왜 그가 갑자기 돌변했는지.

그 날 그렇게 환한 웃음을 흘려주었으면서···.


“아니, 아니지.”


라희는 고개를 저었다.

상냥한 그가 일부러 라희를 피할 리 없다.

그저 지금 무언가 라희에게 화가 난 것이다.

선물이 너무 성의가 없다고 느껴졌나?

라희가 그것을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는 모를지도 모른다.

그래, 틀림없이 선물이 문제다.


다음에는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며 라희는 셔터를 눌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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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8 힘찬연어
    작성일
    19.09.28 00:09
    No. 1

    라희씨의 광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슬슬 잘까 했는데 이 글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요즘 추워지는데 작가님, 건강 챙기세요~

    항상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8 00:11
    No. 2

    play님!
    그렇게 봐주셨다니 너무 다행입니다.ㅠ.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표현에 너무 가슴이 설렜어요.ㅎ.ㅎ
    play님도 학생이라 하셨는데,
    몸 건강 망쳐서 공부까지 망치실까 걱정입니다..
    몸관리 잘 하셔서 꼭 좋은 성과 내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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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냥 준비 +4 19.10.05 119 10 7쪽
33 두혁의 하루 +6 19.10.04 125 8 7쪽
32 그 날의 기억 +6 19.10.03 144 9 7쪽
31 SAW(Sulfuric Acid Wet) +10 19.10.02 152 10 14쪽
30 러브라인 강제연결게임 ~ 일렉트릭 시그널 ~ +7 19.10.01 176 10 7쪽
29 선물연가 +2 19.09.30 160 8 8쪽
28 그 팬이 알고 싶다 +4 19.09.29 161 11 9쪽
» 오, 나의 남신님! +2 19.09.28 230 9 8쪽
26 ⁢⁢⁢——————————————————————————— +6 19.09.27 204 10 15쪽
25 두근두근 +8 19.09.26 185 12 7쪽
24 깨갱 깽깽 깨개개갱 +8 19.09.25 193 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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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족? +13 19.09.08 852 25 7쪽
7 가족 +15 19.09.07 958 27 7쪽
6 달무지개가 뜬 새벽 +20 19.09.06 1,004 28 16쪽
5 속삭임 +9 19.09.05 1,161 25 8쪽
4 묘한 형 +13 19.09.04 1,070 24 8쪽
3 그 소년의 이유 +13 19.09.03 1,164 29 9쪽
2 학교가 싫은 소년 +17 19.09.02 1,524 3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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