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싫은 소년
“성현아, 얼른 학교 가야지!”
깨우는 소리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성현은 새벽 5시부터 깨어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가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아니, 차라리 시간이 확 지나가서 방과 후가 되어도 좋겠다.
“얼른 일어나~.
안 씻고 학교 갈 거니?”
괄괄한 목소리에 결국 몸을 일으킨다.
밤새 꺼둔 핸드폰을 켠다.
익숙한 로고를 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오늘은 별말이 없기를···.
-야 이성현
-이새끼 씹냐?
-학교에서 디질라고 작정한거지ㅋㅋㅋ
-저거 ㄸㄹㅇ인듯
-맞는 걸 즐기나 보지
-변태새끼ㅋㅋ
-강성현은 때리는거 좋아하고 이성현은 맞는거 좋아하고 딱이네ㅋㅋ
-ㅆㅇㅈ ㅋㅋㅋ
-이런걸 뭐라더라? 영혼의 단짝?
-응~ 아니야~
-니도 강성현한테 졸라 처맞고 싶냐ㅋㅋㅋ
-이성현한테 풀지 뭐ㅋㅋ
-미친새끼들ㅋㅋㅋㅋㅋ
성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다.
그 뒤에도 한참 그들의 욕지거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강성현은 첫 문장 외에는 거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 머릿속으로 성현을 어떻게 요리할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
억눌린 신음성 같은 것이 성현의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가고 싶지 않다.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성현! 너 요즘 왜 그래!
갈 시간 됐다니까?”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간 다 들통날 것이다.
자신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도,
죽을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옆구리가 아팠다.
슬쩍 옷을 들춰보자 새카맣게 멍이 들어 있다.
“야, 옆구리 몇 대 치면 사람 죽을지 한 번 실험해볼래?”
엊그제였나.
갑자기 생각난 듯 내뱉은 강성현의 한 마디가 시발점이었다.
그거 재미있겠다며 주위의 두셋이 흐름에 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둘러싸였다.
그 뒤로는 언제나와 같았다.
폭력과, 폭력과, 폭력의 연쇄.
“와, 씨발. 손 아파.”
“키킥, 바보냐? 발로 차면 될 거 아냐.”
“씨발새끼야, 제대로 안 보고 치냐? 내 손 쳤잖아, 씨발!”
“네가 피해야지, 새끼야!”
“헐? 인성 보소. 씹하타치네.”
“야, 빨리 손 치워봐. 그래야 옆구리를 치지. 이게 손 때리기 게임이 아닌데.”
낄낄거리며 기계적으로 성현의 옆구리를 때린다.
성현은 배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리고 묵묵히 견뎠다.
그러나 그 무수한 폭력 중 하나가 손가락뼈에 정확히 맞으면서 손이 풀려버렸다.
“오, 풀었다, 풀었다!”
신나서 성현의 옆구리를 차던 놈들의 웃는 얼굴이 흐릿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까.
성현은 들쳤던 옷자락을 내렸다.
보고 있어도 낫는 것도 아니고···.
“후···.”
옷걸이에 걸린 교복을 바라보는 눈이 무겁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눈을 뜨지 않으면 될까.
그렇다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텐데···.
“성현아! 8시 10분이야!”
올라가지 않는 팔을 올려 억지로 잠옷을 벗는다.
싸늘하다.
조금 전까지의 그 따스함이 거짓말인 것처럼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싼다.
파르르 떨리는 몸은 여기저기 멍이 가득했다.
다리를 타고 점점이 흩뿌려진 갈색 멍은 3주 전 정도 생긴 것이었다.
민호, 그 미친놈이 어딘가의 무협 웹소설에서 나온다는 점혈인가를 시험해본답시고
다리를 찔러대며 한 번 찌를 때마다 일어나서 걷게 하고 다시 찌른 후에 걷게 했다.
“아, 이상한데? 여기 찌르면 못 움직인댔는데.”
“멍청아, 네가 무슨 검객이라도 되냐?”
“분명히 된다고. 안 되면 그 작가 새끼 확 조져버릴라니까 기다려봐.”
그렇게 스무 번 가까이 반복하고서야 민호는 성현을 놓아주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그 작가 새끼를 죽여버리겠다고 구시렁거리면서.
팔을 물들인 녹색에 가까운 멍은 지난주에 든 것이었다.
태우가 무슨 복싱 웹툰인지 뭔지를 보고 왔다며 가드를 푸는 방법을 연구해왔다고 했다.
“봐봐, 내가 한 방에 이거 가드 풀게 만들 테니까. 야, 너 제대로 해라? 가드 쉽게 풀리면 니 얼굴 그대로 날려버릴 테니까.”
퍽, 하고 가드를 올린 팔에 태우의 주먹이 작렬했다.
움찔, 성현이 몸을 움츠리며 가드를 풀지 않자 태우는 당황한 듯 멈췄다.
“뭐, 뭐야. 왜 안 풀려.”
“병신새끼, 큭큭. ”
비웃는 소리에 태우의 눈이 번뜩였다.
이 씨발! 하고 외치며 태우는 성현의 팔을 더 강하게 쳤다.
그러면 그럴수록 성현은 더 단단히 몸을 움츠렸다.
“야야, 그만해. 한 백 번은 쳐야 풀리겠구만.”
“그래, 병신아. 약해빠져갖고.”
“아 씨발, 다 닥쳐봐! 내가 오늘 이 새끼 조져버릴라니까.”
잠시 망설이던 성현은 다음엔 결국 곧바로 주먹이 닿기 전에 가드를 내렸다.
대신 몸을 움츠려 머리로 주먹을 받아냈다.
“와씨, 풀었다. 내가 뭐랬냐? 풀린댔지?”
“멍청한 새꺄, 그 정도로 때렸으면 당연히 풀려야 되는 거 아냐? 나 같으면 두 대 쳤을 때 저 새끼 팔 부러뜨렸다.”
휴, 끝났다.
성현은 안도하고 몸에 힘을 풀었다.
마치 그 순간을 노리기라도 한 듯 강성현의 주먹이 성현의 얼굴을 때렸다.
“병신. 이러면 되는 거 아냐? 뭐하러 가드를 일일이 푸냐. 가드 올리기 전에 조지면 될걸.”
씩 웃는 얼굴에 성현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움찔거리며 몸을 떠는 성현을 물끄러미 보던 강성현이 이내 흥미를 잃은 듯 시선을 돌렸다.
몸에 멍이 들 정도로 때리는 것은 보통 1~2주에 한 번 정도.
놈들은 말했다.
“야, 우리 정도면 엄청 상냥하지 않냐?”
“그러게. 부러뜨리길 했냐 죽이길 했냐. 이 정도면 완전 양호하지.”
“넌 운 좋은 줄 알아, 새끼야.”
의자 대신 깔고 앉거나
입으로 담뱃불을 끄게 하거나
신발 닦을 때 받침대로 쓰거나
머리를 한답시고 입에 손거울을 물고 있게 하거나
심심하다는 이유로 옷을 벗기고 몸 여기저기를 가지고 노는
그런 게 상냥한 거라고···?
성현의 눈동자에서 불이 튀었다.
그러나 그 불꽃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상대는 여러 명, 자신은 하나.
덤벼들기에는 너무나 두려웠다.
“이성현~!”
위험하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옷을 벗은 채로 엄마를 맞이하게 된다.
성현은 좀 전까지 시간을 끌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빠르게 옷을 입었다.
성현이 바지를 추켜올리자마자 문이 열렸다.
“어? 옷 다 입었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밥 다 식어!”
“응, 나, 나갈게.”
세이프.
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방을 팔에 걸치고 터덜터덜 주방으로 나갔다.
“미안, 엄마. 나 오늘 밥 못 먹을 거 같아. 속이 좀 안 좋네.”
보복당할 것은 알고 있다.
평소에 당하던 것보다 더 심하게 맞을 것도 알고 있다.
한 번씩 죽을 만큼 힘들어,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 학교 마치자마자 핸드폰을 꺼둔다.
어제도 그랬다.
여학생들 앞에서 스트립쇼를 펼치고 조롱당한 것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두었다.
아마 오늘은 아침에 가자마자 맞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거의 하루 종일.
이런 날 밥을 먹고 나가면 거의 백 퍼센트 토한다.
그러면 놈들은 당연하다는 듯 모두 핥아먹게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몸이 힘든 건 익숙해서 괜찮지만, 그 역겨운 맛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현은 꾀병을 부렸다.
“그래? 약 줄까?”
걱정스럽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웃어 보였다.
“그럼,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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