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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살인마는 궁금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9.01 22:33
최근연재일 :
2019.10.21 00:0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0,402
추천수 :
658
글자수 :
199,025

작성
19.10.14 00:04
조회
119
추천
7
글자
8쪽

유년시절

DUMMY

“···.”


소년이라고 부르기도 아직 빠르다 싶을 정도로 작은 아이.

그 아이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도련님, 작업치료 시간입니다.”


따스한 목소리가 아이를 감싼다.

차락, 하고 커튼을 치는 손은 그 목소리와 다르게 단호하다.

아이는 눈 앞을 가리는 커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커튼을 친 것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할아범이었다.

턱수염이 희끗희끗하다.

염색을 한 듯 부자연스럽게 까만 머리카락 아래 뿌리가 하얗다.

그는 아이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나가고 싶을까.

하지만 안된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었던 작년, 크게 다쳤었다.

잠시 사용인들이 눈을 뗀 사이 밖에 나간 아이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머리 옆을 계단에 찧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머리 옆이 묘하게 불룩한 걸 눈치챈 할아범이 그대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는 이야기를 듣더니 곧바로 MRI 검사 후 수술을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는 다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일단, 처치는 잘 끝났습니다. 생명에 큰 문제는 없지만···.”


의사는 말을 잇는 것을 망설였다.

아이의 부모는 얌전히 의사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안 그래도 특이케이스인 아이다.

CIPA의 원인도 확실하지 않은데,

보통의 CIPA와 달리 압각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에게 다른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그들을 오래전부터 보아온 의사에게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친 부위는 측두엽, 즉 청각이나 후각, 미각, 장기기억과 정서를 담당하는 부위입니다. 거기에 뇌출혈이 일어났어요. 이대로 아무런 장해가 생기지 않는다면 괜찮지만 어쩌면 그런 기능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거의 반쯤 울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의사는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수술이 끝나고 찍은 MRI에서 다른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어딜 다쳤단 말인가?

아이의 아버지는 사용인들을 총괄하는 할아범에게 전화하기 위해 전화를 꺼냈다.

그 의도를 눈치챈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다쳐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선천적인 거에요.”


후, 하고 심호흡을 한 의사가 입을 열었다.

마치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 아이는 전두엽에 손상이 있습니다.”

“전두엽?”


이번에도 역시나 둘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런 용어들은 하등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뇌의 앞쪽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의사가 이마보다 조금 위를 짚어 보이며 말했다.

아, 하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두 분의 자녀는···.”


이어진 단어는 무식한 범주에 들어가는 두 사람조차 알고 있는 단어였다.

그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아이 어머니의 눈가에서 어른거리던 눈물조차 살짝 사그라졌다.


침묵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작년.

다행히 아이의 청각은 무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아이는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느낄 수 있던 몇 안 되는 감각마저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뒤로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더 구속했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사용인들과 함께라면 종종 밖으로 내 보내줬지만,

이제는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이는 그런 생활 속에서 1년을 버텼다.


대신 온갖 지원은 다 해주었다.

아이에게 다양한 장난감을 사주었고, 운동실도 만들어 주었다.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에게 막대한 금액을 주고 매일 저택에 방문하도록 했다.


옆에는 항상 할아범이나 보모가 달라붙어 아이의 앉아있는 자세부터 노는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감시했다.

그게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범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도련님, 가셔야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들은 아이의 부모고 자신은 사용인에 불과한 것을.


아이는 아쉬워 보이는 얼굴로 커튼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범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할아범의 목을 감싸 안았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아이의 눈이 사납게 빛난다.

할아범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재빨리, 그러나 조심스럽게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멀리 떨어진다.


아이의 손에는 작은 유리 조각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차.

아직 무언가를 잡는 것이 미숙한 아이라 주변에 유리로 된 물건은 두지 않았는데.

아마 잠시 눈을 뗀 사이 다른 방으로 가서 유리병 하나를 깬 모양이었다.

재질과 문양이 눈에 익다.


제 손이 피범벅이 되었는데도 아이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에게 있어서 피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움직일 수만 있다면 아무리 다쳐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할아범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어깨를 손으로 꾹 눌렀다.

뒤늦게 따끔따끔한 감촉이 어깨를 타고 흐른다.


“도련님. 이렇게 하시면 도련님도 저도 아픕니다.”


할아범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에서 유리 조각을 빼냈다.

아이는 아직 눈빛이 사납긴 하지만 의외로 순순히 유리 조각을 놓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파?”


할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말이리라.

할아범은 이 아픔을 모르는 아이에게 어떻게 아픔을 전달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쪼그려 앉은 할아범의 손가락 끝이 아이의 가슴에 닿았다.


“도련님, 혹시 여기가 이상할 때가 있으신가요? 뭔가 싫은 기분이 들 때 말입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범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떤 때 그랬는지요?”

“지금. 할아범이 나 들고 가려고 했을 때.”


할아범이 씩 웃었다.

됐다.

그거면 된다.


“그거랑 같은 것이 이 상처에서 느껴집니다. 아주 싫은 기분이요.”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는 표시였다.


“도련님이 그게 싫으신 것처럼, 할아범도 그게 싫습니다. 그래서 안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난 안 가고 싶은데 어떡해, 그럼?”


할아범의 말문이 막혔다.

아이의 눈동자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뭔가 대답해야 할 텐데.

할아범은 다시 곰곰이 생각했다.


“도련님. 도련님은 아프다는 걸 모르시지요? 그래서 몸이 위험한 자세를 취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건 싫으시죠?”


얼마 전, 거의 팔꿈치가 탈골될 정도로 무리하게 자세를 잡고 있다가 혼났던 것을 기억해낸 아이가 다시 기분이 나빠진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 얼굴에서 감정을 읽은 듯 할아범이 아이의 팔꿈치를 잡았다.


“여기가 아프게 되면 팔 전체가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싫으시겠죠?”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범이 아이의 팔을 놔 주었다.


“그래서 배우셔야만 하는 겁니다. 나중에 도련님이 저곳을 마음껏 다니실 수 있도록.”


할아범의 손가락이 창밖을 향했다.

커튼으로 가려진 그곳.

병원에 갈 때 밖에 나가 본 적 없는 그곳.


아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스로 치료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 걸음이 미숙해 조심스럽다.


휴.

나도 치료를 받아야겠구먼.

아이의 손을 잡아 주며 할아범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 작성자
    Lv.99 방객
    작성일
    19.10.14 00:48
    No. 1

    할아버지가 죽었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10.14 03:54
    No. 2

    헛.. 아직 안돌아가셨습니다!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힘찬연어
    작성일
    19.10.14 01:51
    No. 3

    이번화의 묘사로 이 아이가 살인마인게 좀 더 확실해졌군요. 미영씨가 나오는 화에서 살인마가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묘사가 있죠.

    게다가 아이는 이름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꾸준히 나왔다는걸 생각하면 이는 이례적인 일로써 아이가 살인마라는 의혹을 더욱 확증시킵니다.

    물론 작가님의 기분좋은 함정일 가능성도 있지만요. 처음 댓글을 남길때 느껴졌던 두근두근함이 또다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글 잘읽고 가요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10.14 03:54
    No. 4

    항상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차르르
    작성일
    19.10.14 03:36
    No. 5

    오 드디어 유년시절이 나오는군요
    아픔을 못 느껴서 위험한 부분은 학습으로 알게된 건지.. 뒷내용이 궁금하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10.14 03:55
    No. 6

    내일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탈퇴계정]
    작성일
    19.10.19 13:50
    No. 7

    그전까지
    내보내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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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청소년기 +5 19.10.15 101 5 9쪽
» 유년시절 +7 19.10.14 120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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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8살의 하루 +4 19.10.10 114 7 8쪽
38 성실한 사채업자 +2 19.10.09 111 7 8쪽
37 쓰레기라 불리는 남자 +2 19.10.08 125 7 7쪽
36 수확 +7 19.10.07 137 6 15쪽
35 사냥 전야 +4 19.10.06 130 7 7쪽
34 사냥 준비 +4 19.10.05 120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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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 날의 기억 +6 19.10.03 144 9 7쪽
31 SAW(Sulfuric Acid Wet) +10 19.10.02 152 10 14쪽
30 러브라인 강제연결게임 ~ 일렉트릭 시그널 ~ +7 19.10.01 176 10 7쪽
29 선물연가 +2 19.09.30 161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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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묘한 형 +13 19.09.04 1,071 24 8쪽
3 그 소년의 이유 +13 19.09.03 1,164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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