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한국에서 나타난 언어의 마법사.
불세출의 젊은 소설가.
한국 소설계의 새로운 자긍심.
묘사의 명인.
이 모든 수식어가 일컫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여자, 청란이다.
마치 눈앞에서 소설 속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화사한 묘사.
그러면서도 결코 겉모양에만 치중되지 않고 내실이 튼튼한 스토리.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는 듯 보이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표현력.
그 모든 것을 갖춘 불세출의 천재.
그래서 아연은 그 여자가 싫었다.
미칠 듯이.
“뭐, 너랑은 격이 다르니까 말이지.”
앞에 앉은 남자가 다소 까불거리는 목소리로 아연의 마음을 긁었다.
아연은 인상을 찌푸린 채 남자에게 말했다.
“너 내 애인이다?”
“그럼 그럼. 사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하하하, 하고 웃곤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아연의 눈이 심란하다.
“하···.”
청란은 어렸을 때부터 특별했다.
초등학생 때의 청란은 묘한 지식이 많은 아이였다.
비나 구름의 생성과정이라던가, 진화론 같은 묘한 이야기를 자주 하던 아이였다.
보통이라면 인기가 없었겠지만···.
“진화론이란 다윗이 주창한 이론인데···.”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
어깨를 조금 넘어서는 살랑이는 검은 머리카락.
새하얗고 보드라운 피부.
가녀린 몸매.
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공주님 같은 외모가 그녀를 더 돋보이게 했다.
그녀가 어려운 말을 떠들 때마다 주위의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어려운 말을 마치 신의 말씀처럼 경청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싱그러운 미소로 화답하곤 했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의 아연도 그녀의 신봉자 중 하나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가장 열렬한 신봉자였다.
아연은 그녀가 가는 곳마다 함께 했으며,
그녀의 시녀이기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청란도 아연에게는 유독 상냥했다.
생일을 챙겨준다거나 하굣길을 함께 한다거나 고민 상담을 하는 등.
소위 베프처럼 아연을 대했다.
주위에서 청란을 떠받들면 떠받들수록 아연도 함께 의기양양해졌다.
실제로 초등학교 때는 청란과 함께 아연도 어느 정도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뭐, 청란과 친한 것이 부럽다는, 그런 이유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말이야···.”
하소연하는 목소리에 남자가 지겹다는 듯 인상을 썼다.
벌써 몇 번째 들은 소리일까.
아연은 남자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옛날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중학교 때가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물론, 청란이 아닌 아연의 상황이 말이다.
주변의 아이들은 여전히 청란에게 열광했다.
그즈음 청란은 지식자랑보다는 사색대회를 자주 열곤 했다.
사실 그저 멍하니 생각에 잠겨 두서없는 별별 생각을 즐기는 것이었지만,
주위에서 보기에는 절세의 미소녀가 곰곰이 세상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이 종종 아연에게 불만을 토하곤 했다.
“저 못생긴 거 뭐야, 왜 우리 생미한테 쳐 붙어있는 거야.”
“생미한테 붙은 생령이라도 되나?”
“와, 그거 말 된다. 킥킥킥.”
그런 뒷말들을 청란은 알았을까, 아니면 몰랐을까.
지금 와서야 알 방법이 없지만 그때의 아연은 알 것이라 짐작했다.
언제나 같이 있는데, 자신이 들은 것을 청란이 못 들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넌 내가 친구로 보이긴 하는 거니?”
어느 날이었던가.
다투던 끝에 나온 그 말에 청란은 곤란한 듯 웃었다.
말한 아연도 아차 싶었다.
청란이 친구처럼 대해준다고 해서 아연이 청란의 친구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연의 시작은 청란의 신봉자였다.
그다음에 아연은 청란의 신봉집단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학교까지 이어져 왔을 뿐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래, 아연은 청란에게 있어 팬클럽 회장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아연은 상처 입었었다.
그래도 아연은 청란을 떠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연은 청란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보고 싶어.”
어느 날의 하굣길.
청란은 문득 내뱉듯이 이야기했다.
아연은 움찔, 몸을 떨었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잘 쓸 것 같아.”
그 말은 진심이었다.
청란은 아연의 여신님.
그녀가 못 하는 일이란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청란이 글을 쓰겠다는 것을 반길 수 없었던 것은,
글이 아연에게 있어 유일한 표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아연은 아무도 모르게 청란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아름다운 별
아름다운 시
아름다운 꽃
그 모든 것이
진짜 태양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태양은 압도하며
태양은 자애롭고
태양은 거부한다’
따위의 시를 쓰곤 했다.
주위에서 거의 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청란을 제외하면 오로지 글뿐이었다.
아무리 청란이라도 글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틀림없이 청란은 시작한 이상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뽐낼 테니까.
그래도 말리지 못한 것은 아연이 청란과 대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연은 청란을 신봉하고, 지지할 수는 있었지만
그녀의 결정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교내 백일장을 시작으로 시, 도에서 열리는 백일장을 모조리 휩쓸고 다녔다.
청하가 나갔다 하면 최하 우수상, 보통이 최우수상이나 대상이었다.
아연은 모든 백일장에서 참가상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아연의 자존감은 늪 속에 처박히고 있었다.
“난 네 글 좋아하는데···.”
청란의 그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평소와는 거꾸로 호를 그리는 눈썹.
살짝 눈웃음 짓는 눈매.
어설프게 끌어올린 입꼬리.
불쌍한 것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닥에서 짓이겨진 벌레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한 그 표정.
아연의 피해망상이 낳은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청란도 모르는 사이 본심이 흘러나왔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와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미 그녀와의 관계는 끊어진 지 오래니까.
“번호는 아직 가지고 있잖아?”
남자의 말에 아연은 으음, 하고 신음성을 흘렸다.
이미 아연은 인사불성이었다.
멍하니 뜨고 있는 그 눈동자에 청란과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됐던 그 날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의 가을.
그 날 그 둘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그 다리를 부숴버린 것은 청란이기도 했고, 아연이기도 했다.
청란은 제일의 신봉자를 잃었으며,
아연은 여신을 잃었다.
“싫어···.”
어릴 때 예뻤던 아이는 크면 역변한다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곱게 자란 청란이 너무나 얄밉다.
자신이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바라는 것들을 그저 손가락만 튕기면 만들어내는
그 재능이 너무나 얄밉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아연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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