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의 이유
“하, 짜증 나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화가 난다.
이 멍청한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부름을 무시한 걸까.
성현은 가만히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미, 미안해. 배터리 충전시켜놓은 줄 알았는데···. 추, 충전기가 제대로 안 꽂혀 있어서···.”
멍청한 새끼.
그 변명이 이번에도 통할 줄 알았나.
성현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이 미친 새끼야, 그걸 믿으라고 말하고 있냐?”
민우가 앞장서서 이성현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녀석은 겁을 먹었는지 몸을 움츠리며 덜덜 떤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성현을 화나게 했다.
“야, 이제 변명도 안 하냐? 그냥 처맞으면 그만이다, 뭐 그런 생각인가?”
으르릉, 하고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놈은 역시나 바들바들 떨고만 있다.
성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아이, 그것이 이 이성현이었다.
맞기 싫으면 개기질 않으면 된다.
개길 거라면 정말 물고 늘어져서 질릴 정도로 개기면 된다.
대체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성현은 그게 더 화가 났다.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나도 그 나름대로 응해줘야겠지?”
싸늘한 눈동자가 빛난다.
이성현은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다.
“걱정 마. 오늘 딱 오줌 지릴 만큼만 패줄 테니까.”
아프다.
성현은 손을 거두고 자신의 손을 살폈다.
붉게 부어올랐다.
“에이, 썅! 아프잖아!”
괜히 이성현을 한 번 더 발로 찬다.
20분 넘게 이어진 구타로 힘이 빠져 제대로 차진 못했다.
그래도 녀석은 아픈 듯 윽, 하는 소리를 냈다.
“야야, 그만해. 진짜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죽긴 개뿔. 이런 거로 죽을 것 같으면 벌써 죽었지. 애초에 이 새끼, 죽으려고 어제 폰 꺼 논거 아냐?”
세명이 말리는 것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성현은 이성현을 내려다보았다.
이성현은 파르르 몸을 떨면서도 꿋꿋하게 몸을 말고 있다.
무슨 공 벌레도 아니고.
성현은 괜스레 화가 나 한 번 더 밟아준 후 이성현에게서 떨어졌다.
“이제 분이 좀 풀리냐?”
어깨를 으쓱해 보인 성현은 흥미를 잃은 듯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아 씨발, 부었어. 졸 아프네. 어떻게 된 게 맞는 놈보다 때리는 놈이 더 아픈 것 같냐.”
“네가 하도 때려서 맷집 좀 붙었나 보지.”
낄낄거리며 이성현은 내버려 둔 채 발걸음을 옮긴다.
그대로 쓰러져있던 녀석은 잊어버린 채 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었다.
다시 이성현이 떠오른 것은 종례 무렵이었다.
“성현이, 아, 이성현은 어디 갔어?”
심약해 보이는 여선생의 말에 겨우 생각해낸다.
아직도 거기 있나.
설마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성현은 설마, 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평소라면 이 정도까지 심하게 때리진 않았다.
하지만 내려올 땐 분명히 숨을 쉬고 있었는데···.
“모르겠는데요, 얼른 마쳐 주세요.”
“아, 하지만···.”
“이성현이 어떻게 됐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학원 시간 늦었어요, 빨리 마쳐 주세요.”
“나중에 선생님이 찾아보시고 일단 마쳐 줘요!”
여선생은 역시나 그대로 종례를 마친다고 조그맣게 속삭인 후에 앞문을 열고 나갔다.
시끌시끌하던 주위도 아이들이 나가고 나자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성현과 세명, 민호, 태우뿐이었다.
“오늘 이성현이랑 뭔 일 있었냐?”
역시나 성격 급한 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종례시간을 용케도 다 참아냈네.
성현은 작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새끼가 미쳐가지고 어제 전화 꺼놨었잖아. 그래서 좀 패줬는데···.”
“오늘 너 좀 심하게 하긴 했다.”
슬쩍 손등을 보니 엷게 멍이 들었다.
아 씨발, 또 아줌마가 떽떽거리게 생겼네.
아버지가 집 안에 끌고 온 그 여자를 성현은 아줌마라 불렀다.
아버지는 엄마라 부르라 강요했지만, 웃기지도 않는다.
어딜 봐서 그 여자가 내 엄마인가.
뚱뚱하지,
할 줄 아는 건 헤실헤실 웃는 거밖에 없지,
화장도 못 하지.
여자로서 심각한 결함품인 그딴 여자를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게다가 싸워서 상처가 나거나 멍이라도 들어오면
“성현아, 자꾸 이렇게 다쳐 오면 어떡하니. 이러면 나도 네 아버지한테 말하는 수밖에 없어···.”
따위의 협박이나 주절거린다.
망할 년.
언젠가 그 짜증 나는 년을 흠씬 두들겨 패줄 것을 생각하던 성현을 세명이 살짝 흔들었다.
“야, 듣냐?”
“어? 뭐. 뭐 어쩌라고.”
심하게 하긴 개뿔.
그 미친 새끼가 날 무시한 거 자체가 문제지.
“뭐 어쩌라고. 이미 팬 건 팬 건데.”
“이럴 때 소설 같은 데서 보면 옥상에서 자살하고 그러던데, 이 새끼도 그런 거 아냐?”
실실 웃으면서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
성현은 민호의 뒤통수를 소리 나게 후려갈겼다.
“미친 새끼야. 그 새끼가 그럴 용기가 있으면 벌써 그랬지. 그건 죽을 용기도 없는 새끼야.”
세명이 한심하다는 듯 민호와 성현을 번갈아 쳐다본다.
생각 없는 태우조차도 불안한지 눈알을 굴린다.
막상 성현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문득 불안해졌다.
설마 진짜로 자살 같은 걸 한 건 아니겠지···.
“···알았어, 새끼야. 가보면 될 것 아냐.”
괜히 세명의 표정 때문에 일어나는 척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주 이성현을 끌고 가는 옥상 구석으로 향했다.
“···뭐야, 없잖아.”
점점이 피가 흩뿌려져 있다.
하긴, 때린 성현의 주먹이 이 정도인데 맞은 이성현이 멀쩡할 리 없다.
이번엔 얼굴도 꽤 때렸으니 코피가 나든 입술이 찢어졌든 했을 것이다.
“···.”
여태껏 피가 날 때까지 누구를 때려본 적 없었던 민호와 태우는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초록색 바닥에 묻은 피가 묘한 생생함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팼길래 애가 피가 나···.”
“···뭐?”
태우의 말에 성현이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성현의 표정을 본 태우가 움찔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아니, 이제까지 그래도 피 난 적은 없었잖아···.”
“옥상 밑에 떨어진 건 아니네. 집에 갔나 보다.”
아니면 병원을 갔던지.
세명이 옥상 끝자락에서 아래를 보고 돌아오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럼 우리도 집에 갈까? 가면서 코노 갈까?”
딱히 노래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민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우도
“그, 그래. 가보자! 이런 날엔 노래라도 불러야지.”
라고 동조했다.
세명은 오늘도 고개를 젓고 씩 웃었다.
“난 오늘도 학원이라. 너네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어라. 내가 저녁 쏜다.”
“넌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러냐? 일진 짓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내가 무슨 일진이냐? 너네랑 같이 노는 거지, 그냥.”
뭔 헛소린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성현이 발걸음을 떼자 나머지 셋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문득 세명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왜 이성현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몰라, 새꺄. 그 새끼 보면 그냥 기분이 나빠.”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성현을 보며 세명은 흐응, 하는 소리를 냈다.
미친 새끼.
몰라서 묻나?
성현의 눈썹이 씰룩였다.
세명의 질문에 학기 초반이 생각난다.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던 태우와 민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이유를 만든 것이 태우와 민호이니까.
“이성현.”
출석을 부르는 소리에 민호가 말했다.
“오오, 여기 성현이가 하나 더 있네.”
호명에 대답한 쪽을 흘긋 쳐다보던 민호가 낄낄거리고 웃었다.
뭔가 싶어 민호가 보는 쪽을 보자 거기엔 말라깽이 하나가 앉아있었다.
“씨발, 완전 개찐따. 성현아, 보이냐? 저거 완전 개찌질해보이는데?”
누가 봐도 얼굴에 찌질이라고 적혀있는 듯한 맹한 얼굴이었다.
단정하게 입은 교복에 뿔테 안경까지.
거기 안 보일 거라 생각했는지 책 사이에 숨겨둔 만화책까지.
태우도 그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성현을 보며 말했다.
“이름은 너랑 같은데 영 다르다?”
씨발.
이름이 같으면 사는 것도 같냐?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조회시간이라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민호는 여전히 낄낄거리고 있었고 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날 이후로 성현은 계속 이성현을 건드리고 있었다.
나중에 합류한 세명이 이유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나랑 같은 이름이면서, 그따위로 찌질하게 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쪽팔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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