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오랜만의 이른 귀가.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현관문 밖에서도 들리는 웃음소리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집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아무리 무심하다 해도 어떻게 가정 방문을 잊을 수 있냐는 상혁의 절규에 그들은 침묵했다.
그 날 이후 상혁은 거의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고,
부모님은 상혁이 들어오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딱 한 번, 누나만이
“야. 잊어버릴 수도 있지 그런 거 가지고 뭘 그래? 너 때문에 지금 집 분위기 그지 같은 거 몰라? 너 이러는 거 에바야. 그것도 개에바.”
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혼자 붉으락푸르락하던 상아를, 상혁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망한지 혼자 쌍욕을 내뱉던 상아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랬던 집에서 웃음소리라니.
상혁은 조심스럽게 열쇠를 열고 문을 열었다.
“어머, 대단하시네. 소설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간드러진 어머니의 목소리.
상혁은 비위가 상하는 것을 꾹 참으며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거실에는 어머니와 상아가 웬 남자와 함께 있었다.
약간 금빛이 도는 갈색 머리카락.
반짝거리는 갈색 눈동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고 듬직한 느낌을 주는 몸 선.
상혁은 왠지 남자가 께름칙했다.
어째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채를 띠고 있는 눈동자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시선 때문인지.
“어, 상혁이 왔구나.”
···미쳤나?
상혁은 상아를 묘한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남자에게서 뒤돌고 있는 상아가 표정으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방으로 꺼져.
상혁은 괜한 오기에 버티고 있어 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요즘 상혁의 눈치를 보기 바빴던 둘이 오랜만에 웃는데 굳이 초를 치고 싶진 않았다.
조금 화는 나지만.
“나한텐···.”
한 번도 저래 준 적 없으면서.
방문을 닫자마자 상혁은 그대로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사실 오늘 상혁이 일찍 들어온 이유는 몸 상태가 안 좋기 때문이었다.
근래 저녁도 거르고 추운 밤거리를 쏘다녔더니 아무래도 감기가 온 것 같다.
자자.
자는 게 최고다.
상혁은 그렇게 되뇌며 눈을 감았다.
사르르 잠에 빠져들려던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상혁아, 잠깐 괜찮아?”
미친.
순간 입 밖으로 욕을 내뱉을 뻔했다.
신상아 저게 미쳤나.
그런 생각으로 눈을 뜬 상혁의 앞에 상아와 남자가 서 있었다.
“잠깐 괜찮아?”
빨리 안 일어나냐, 이 새끼야.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열이 나려는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도 상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앉았다.
일단 상아의 손님이니 그 앞에서는 상아에게 좀 져주자,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누나?”
“안녕하세요.”
상아가 입을 떼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상에.
어떻게 목소리까지 저렇게 완벽하지?
상혁은 세상은 불공평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씩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상아 누나 동생, 신상혁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쉬는데 미안해요. 사실 저는 소설가인데 길에서 우연히 누나분이랑 만나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동생이 있다는 말에 제가 소개해 줄 수 없겠냐고 부탁해서 오게 됐어요.”
차분하게 경위를 설명하는 목소리에 가슴에 있던 약간의 분노가 사그라졌다.
역시 미남은 치사하다.
상식적인 사과를 그저 부드럽게 이야기할 뿐인데도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뭐가 궁금하신데요?”
“또래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과목을 뭘 배우는지,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같은 거요. 미안하지만 상아 양은 잠깐 자리를 피해줄 수 있을까요?”
상아가 아쉬운 눈으로 상혁을 보았다.
대충 눈빛을 읽어보니 어색함을 핑계로 자신을 잡으라는 것으로 보인다.
상혁은 잠시 상아와 눈을 마주치다가 씩 웃으며 입을 뗐다.
“누나.”
“응? 역시···.”
“나갈 때 문 좀 닫아 줘.”
평소라면 벌써 주먹이 날아왔을 텐데, 남자가 있다고 이만 으득으득 간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상혁은 피식피식 웃었다.
“그···으래. 닫아 줘야지···. 응···.”
상아는 아쉬운 듯 남자를 계속 돌아보더니 결국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자 방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상혁이었다.
“아 또래들과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셨죠···. 뭐 별거 없고 그냥 학교에서 같이 수업받다가 수업 끝나고 같이 피시방에 가거나 해요. 전 따로 학원 가는 게 없어서 대부분은 애들이랑 좀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요.”
아, 안 된다.
이마에 불이 붙은 것처럼 후끈거린다.
상혁은 빨리 대답해주고 남자를 내보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과목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체육, 음악, 미술, 도덕, 진로인데 학교마다 다른 것 같아요. 또 뭐가 궁금하시댔죠···?”
상혁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자가 조용히 상혁에게 다가왔다.
상혁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가 씩 웃었다.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요?”
“아···.”
가족들, 이라···.
상혁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솔직히 우리 가족은 좀 이상해요.”
“이상? 어떻게요?”
은근한 목소리가 계속 이야기할 것을 부추긴다.
상혁은 조금 멍해진 머리로 생각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음, 가족 같지가 않아요. 내가 뭘 하던 관심도 없고, 내가 아파도 관심도 없고···. 지금도 내가 아픈데도 아무도 모르잖아요. 서로 기념일도 생일도 안 챙기고 데면데면. 부모님은 두 분끼리만 사이좋고 저랑 누나는 뒷전이에요.”
살짝 숨소리가 거칠다.
남자는 상혁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혁은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가족이에요. 서로 정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상혁의 말에 남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 반짝임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불길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차라리 혼자였으면 좋겠다고?”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가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진다.
멍한 눈동자는 점점 초점이 흐려진다.
“내가 그 소원, 이루어 줄까요?”
어떻게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상혁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몸이 기울었다.
상혁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쓰러진 상혁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뜨겁다.
어찌 보면 열렬하고, 어찌 보면 얼 듯이 차갑다.
이미 상혁의 이마는 펄펄 끓고 있었다.
어째 영 위험해 보이는 상태의 상혁을 그저 바라만 보던 남자가 문득 생각난 듯 상혁을 안아 올렸다.
“어서 몸 상태가 나아지길 바라요.”
그래야 우리 다시 만나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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