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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저승이 처음인 나는 죽음을 바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1.05.12 17:20
최근연재일 :
2021.12.08 20:50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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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5
추천수 :
39
글자수 :
43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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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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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64] 살생하지 말라.

DUMMY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온몸이 얻어맞은 듯 욱신거렸다. 정신이 들려고 하면 날아오는 주먹에 다시 정신을 잃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것이 남들처럼 살아가 늙어죽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니까. 늘 그래왔으니까.


또다시 돌아온 것이다. 오진호의 품으로.


“ 우리의 볼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겠죠? ”


나는 지금 호랑이굴에 입성한 것이 틀림없었다. 의자에 묶인 채로 오진호의 볼일을 위해 말이다.


나는 학습능력이 없는 자신을 자책했다. 나는 다시 그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다. 조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조심한들 무얼 할 수 있었을까?


“ 어이, 강아지! 오랜만이다. ”


나는 지뢰밭에라도 온 것처럼 온몸이 쭈뼛쭈뼛 섰다. 어둠 속에서는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서까지 찾아온 망령.


그는 언급할 것도 없이 송현우였다. 겉만 보면 속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인상. 내겐 부모님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던 그녀석이 내 눈앞에 있다. 나는 PTSD를 느끼듯이 떨렸다.


“ 인상 좀 펴. 친구가 먼 곳까지 보러왔는데 반갑지도 않냐? ”


녀석이랑 참으로 많은 추억을 공유했다. 아니, 악몽이라고 해야 할까. 세기엔 손발이 모자랄 정도다. 그 기억들 하나하나가 나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송현우의 얼굴색이 변한다. 송현우는 투명한 녀석이다. 그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화가 날 때 놈은 얼굴을 붉히고, 기쁠 때는 웃는다. 안 그러면 입에 가시가 돋는지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양심에 가책도 없다.


“ 네가 내 셔틀이었을 때가 생각나네. 내가 네 팔을 부러트려서 야구를 그만두게 했을 때도 생각나. ”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야구를 거론하다니. 정신이 드니 주변이 확연히 보였다. 삽시에 분노가 타올랐다.


나는 피가 고인 입으로 조소를 지었다. 갑자기 모든 게 가소로웠다. 더 이상 겁먹을 이유는 없었다.


“ 뭐가 그리 웃긴 거야! ”


남에게 무시 당하기를 참지 못하는 송현우가 발끈했다.


“ 그냥, 넌 아직까지 나를 잊지 못했구나 싶어서.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도 예전 버릇을 되풀이하는 거구나. 넌 사실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내가 너 따위에 관심이 없으니까 화가 난 거지. 그리고 그런 내가 널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거야. 넌 날 좋아했어. 그게 진실이야. ”


나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저녀석의 기분을 마구 헤집어놓고 싶었다. 삼류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다.


“ 호오.. 재밌어지는군요. ”


오진호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인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송현우는 그 말에 기가 찬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기분 나쁘도록, 업신여기는 듯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재밌긴 개뿔. 이 개자식, 많이 컸다? 저승에서 우유 많이 쳐먹었나봐? ”


여유로운 척하지만 놈은 제법 흔들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으니까. 나는 겁먹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오히려 내 목적달성에 이용할 수도 있었다.


“ 그거 알아, 땅딸보? 나 원래 너보다 컸어. 땅딸보 친구하려고 무릎 굽히면서 다니는 거 존X 힘들었어. 네 원래 위치는 아래라고, 이 땅딸보야. ”


“ 그렇게 부르지 마.. 그렇게 눈뜨지 마!! ”


송현우가 절규하듯 소리치며 작은 칼을 던졌다. 던진 칼날이 내 눈으로 파고들었다. 눈은 불바다가 되어 주변까지 통증이 번져갔다.


삽시간에 송현우가 어떤 놈인지 깨달았다. 폭력의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진정한 악마. 망설임과 두려움을 모르는 놈.


“ 이런, 이런. 대형사고가 일어났군요. ”


오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 이정도로 대형사고는 무슨.. 다음번엔 못 걷게 만드는 수가 있어. ”


아직 분통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그가 열을 냈다.


“ 남자답게 뱉은 말은 지켜라, 땅딸보.. ”


나는 그가 더욱 분을 쏟아내도록 성질을 건드렸다.


“ 오냐, 그러면 각오해라! ”


나의 도발에 걸려든 송현우는 칼을 든 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현명한 오진호는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 뭡니까, 지금. 상대방의 흐름에 맞춰가는 것이 당신의 복수입니까. 더 재밌는 방법이 있는데, 벌써 끝내려고요? ”


나는 눈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눈에 박힌 칼 틈에서 피가 솟구쳤다.


송현우는 짐승처럼 씩씩대며 손에 든 칼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막아서는 오진호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저들이 빨리 나를 해치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꿈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밑거름이니까.


동물을 사냥하듯이 탐욕스럽게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그래, 어떤 꼴이든 상관없다.


“ 어이, 땅딸보! 예전엔 고통이 두려웠지만 이젠 고통과 죽음은 내겐 축복이야. 어서 나를 끝장내버려라! 칼로 그어도 좋고 짐승처럼 뜯어먹어도 좋다! 나에게 죽음을 선사해라! ”


나는 미친듯이 도발했다. 나는 소멸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죽어서도 나를 볼 수 없도록 멀리 떠나고 싶다. 지금까지 느껴온 온갖 고통의 기억들을 버리고 사라지고 싶다.


“ 주둥이 닥쳐. 어디서 명령이야. ”


나는 묘하게 웃음이 났다. 나의 기분은 고조되었다. 기분이 왜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드디어 미친 것일까. 나의 어긋난 정신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 제가 말했을 텐데요. 흥분하지 말라고. ”


오진호가 그를 제지했다.


“ 날 막지 마! 너까지 죽는 수가 있어! ”


실제로 지금 송현우는 어떤 것으로도 말릴 수 없을 듯했다.


“ 그래, 너한테 살인은 일도 아니겠지. 그것도 나잖아. 네 꼬붕, 박재현! 널 죽인 진범! 간단한 거야. 그 칼로 날 그으면 모든 게 끝나! ”


그의 눈빛이 떨렸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러면 안됀다. 어째서 망설이는 걸까. 왜 내가 바랄 때는 요지부동인 것인가. 짐승 같은 놈이 본능을 억누른다니.


“ 날 죽이라고! 그게 네가 바라는 거잖아! ”


정말 지긋지긋하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그들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나는 틀려먹은 인생을 고칠 수 없었다.


“ 인간은 말이야. 지성을 지녔기에 살아남은 거야. 나는 또 하나를 깨달았어. 넌 죽는 걸 바랐기에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거잖아. 그럼 널 죽여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어. 이거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놈 손으로 오진호를 죽이는 거지. 피해자 노릇도 지겹잖아? 한 번쯤은... 가해자가 되보는 거야. ”


송현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정상 궤도에 올라선 정신으로 말했다.


“ 뭐라고요? 그 말은... ”


오진호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송현우의 손에 들린 칼은 오진호의 눈에 박혔다.


“ 내가 바라는 건 살인 따위가.. ”


나의 말에 송현우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곤두서있었다.


“ 네가 엄마 시켜서 날 죽이려 한 건 뭔데? 그러고도 네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


그의 시선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보통의 그도 충분히 악랄하지만 지금은 정말인지 미쳐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오진호가 자신의 주특기인 가시 공격으로 송현우의 안면부를 꿰뚫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먹히지 않았다. 송현우의 몸에 닿튼 가시는 금세 부러지고 말았다.


“ 뭐지? 공격이 먹히질 않잖아! ”


“ 익숙하진 않겠지.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까. 네놈의 전술을 보고 이곳에는 체술 말고도 써먹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 가령 마법 같은 거 말이야. 저승 자체가 말도 안돼는 곳이니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더군. 당신이 나의 사자를 죽였을 때 이미 증명하기도 했고 말이야. ”


“ 제 기술을 파훼하신 겁니까. 대체 어떻게.. ”


눈에서 칼을 뽑고 고통스러워하는 오진호의 면모는 처량해보이기까지 했다. 겉이 투명한 송현우에게도 교활한 모습이 있다. 그런 그였기에 학교를 휘어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는 일반 사람과 달랐다. 아버지가 살생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한다면, 그 반대로 송현우는 폭력광이었다.


“ 진짜 바보 같아. 아무도 여길 못 찾을 거라고 확신하니까 모든 게 헐겁잖아. 당신의 서재를 뒤져서 저승놈들이 쓰는 마법과 그 파훼법을 익히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어. ”


송현우가 오진호의 뺨을 때리고 가슴을 걷어차더니 눈에서 뽑힌 칼로 허벅지를 찔렀다. 오진호가 비명을 지르자 송현우는 조소를 지으며 그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 뭐야, 너! 어디 가! ”


나는 아까까지의 호기로운 용기는 온데간데 없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송현우만이 날 구할 수 있었다.


“ 돌아이처럼 죽여달라고 발악하더니.. 이제 알겠어? 그게 네 위치야, 땅딸보. ”


나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 ”


송현우는 힘겹게 말하는 오진호를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곧이어 그가 입을 열었다.


“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는데, 그 실험을 하러 가는 거야. 너는 영광스러운 제물이 될 테고. ”


금세 그는 오진호를 데리고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곧 다시 오더니 나의 포박을 풀어주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긴 시간 함께한 친구를 대하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 아니, 대체 어딜 가는 거야! ”


시간이 흘러 나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알게 되었다. 그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오래되보이는 서재였다. 서재 중앙에는 마법진 같은 것이 그려져있고 오진호가 누워있었다.


“ 식탁 위에 먹잇감이 된 기분이군요.. ”


“ 네 목숨은 내가 친히 맡아두지. 마지막까지 너는 너의 직분을 다한 거야. 영광스러운 죽음인 거지. ”


그때 서재 테이블 위에서 전화가 울었다. 송현우는 처음엔 그걸 무시하다가 뒤늦게 받았다.


“ 여보쇼. 늬들 보스는 이제 없어. 나한테 지X하지 말고 엄마 아빠 젖이나 더 빨고 와 애새끼들아! ”


송현우가 전화를 끊는다. 그가 내뿜은 분노는 내가 지금껏 봐온 분노 중에 엄마를 제외하고는 최고였다.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어둠에 휩싸인 서재에는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송현우! 이제 좀 정신 차려! ”


나는 이 고통의 연쇄를 끊어내고 싶었다. 지금의 송현우는 악마의 다른 이름이었다.


“ 나는 세상을 거머쥐라는 임무를 맡기 위해 태어난 거야. 아무도 날 막지 못해. ”


그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상태였다. 그의 언동은 불안하게 튀어오르는 불티 같았다.


“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무슨 짓을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제발 멈춰! ”


“ 그리도 날 막고 싶다면 힘으로 해보시지! ”


송현우는 병적인 분노에 휩싸인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살기에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도망가자 그가 따라왔다.


“ 부모님에게 살려달라고라도 애원하지 그래! 혹시 알아? 널 잃은 충격으로 너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그래서 지금 머지않은 곳에 와계실지! ”


저 한 마디가 나의 가슴 속에서 기폭제처럼 작용했다. 나는 정해야 했다. 망설이지 않고 그를 죽여야 했다. 생각은 집어치우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해야 했다.


“ 지금 뭐라 그랬어! ”


나는 분노하며 내 눈에서 뽑은 칼로 그의 복부를 찔렀다.


“ 현우야, 이제 그만.. 가라! ”


나는 있는 힘껏 찔러넣으며 말했다. 살생하지 말라는 집안의 가훈 아닌 가훈은 지킬 수 없겠다.


아주 불행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끝내 불가능하단 말인가. 혐오스럽다. 나의 운명이.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 그러면 안돼! ”


저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나를 말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아들, 그만둬! ”


이번엔 엄마의 소리가 들린다. 이 승부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들의 조언을 따를 수 없었다.


“ 부모님한테 미안하지도 않으냐!! ”


송현우가 발악하듯 말했다.


“ 그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


그래, 그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끝을 봐야 한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칼을 뽑고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때, 송현우의 뒤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저를 잊으시면 안돼지요.. ”


송현우의 뒤에서 나타난 오진호가 몽키스패너로 그의 머리통을 날렸다. 눈과 허벅지에 흐르는 피를 안고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 짐승만도 못한 게 감히 나를... ”


그의 세상을 향한 갈망은 이제 끝난 것이다. 무엇이 그를 이리도 흉측한 괴물로 만들었을까. 부모님? 돈? 아니면 천성일까.


“ 이건 신기루야, 현우야. 네가 짓밟은 사람들로 세워진 신기루! 이제 꿈 깨! 넌 아무런 핑계도 댈 수 없어. 부모님도, 세상도, 인간의 본성도 너의 악행에 대한 핑계가 될 순 없다고! ”


나는 쓰러져가는 그를 향해 말했다.


“ 틀려. 난 핑계 따윈 대지 않아. 내가 그들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종속되어 있으니까! 난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아! ”


송현우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 저로서도 어찌할 수 없겠군요. ”


무엇으로도 이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 원망스럽게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다. 송현우 때문에 죽어야 했던 나인데, 이 복수의 순간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


하는 수 없는 걸까. 완전히 편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처음부터 그랬을까. 나는 가훈을 상기했다. 이것이 누차 강조했던 살생의 무게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인간은 죽고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바람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것인가. 나의 복수심은 삽시간에 소멸되어버렸다.


원망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로 소멸된 것일까. 이런 법이 어딨나. 없어졌으면 할 때는 타오르더니 이제는 잠잠하다. 게다가 송현우에게 연민의 감정까지 든다.


“ 당신이 어렵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오진호는 끝을 보려 몽키스패너를 들어올렸다. 끝까지 살생을 운운하는 가훈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나는 내가 고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눈앞에서 송현우는 완전한 생을 마감했다.


“ 당신의 용감함을 높이 사죠. ”


일을 마친 오진호가 말했다. 그는 살인이 처음이 아닌듯이 여유로웠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 그게 무슨 소리죠? ”


“ 용서라는 거.. 힘든 일이거든요. 눈앞에 원수가 있는데 그걸 참는다는 게.. 저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세지 못할 만큼 많은 살생을 범했습니다. 복수대행이란 그런 고달픈 일이죠. ”


무력하게 주저앉은 나는 천천히 산화되어가는 송현우의 몸을 어루만졌다. 이 순간 만큼은 나도 그를 존중해주고 있는 걸까.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증오하던 녀석을 이리 쉽게 보내주다니.. 게다가 내 기분이 싫지 않다니. 몇날 몇일을 상상해온 이날을 나 스스로 거부하다니.


나는 일어서서 뒷걸음질 쳐 도망치듯 달렸다. 모든 것이 그리웠다. 나의 쉴 곳이 그리웠다. 우리 동네, 우리집, 우리 가족까지도.


주인을 물다가도 상처 부위를 핥아주는 강아지처럼 내 몸 속에 기생하던 증오심들이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가시밭길을 달리는 듯한 통증을 발바닥에서 느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멈춰서서 끝없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나 혼자 나가기엔 너무 길다.


절망에 잠겨있을 때쯤 내 입과 코엔 물수건이 덮히고 내 의식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나는 내 몸이 들리는 느낌을 알았다. 오진호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못한 것일까.


그의 음모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꺼져가는 정신 속에서 나는 의문을 키워갔다. 나는 이제 죽음의 신에게 먹히고 싶다.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다.


작가의말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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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 늦어서 미안해. 21.12.08 46 0 13쪽
85 [85] 원귀는 원귀를 알아본다. 21.12.01 21 0 12쪽
84 [84]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21.11.28 21 0 11쪽
83 [83] 도망쳐. 21.11.24 18 0 13쪽
82 [82] 존버는 승리한다. 21.11.20 17 0 11쪽
81 [81] 제발 그만해.. 21.11.17 19 0 13쪽
80 [80] 미안하다, 혼돈이다. 21.11.12 17 0 12쪽
79 [79] 아... 그는 갔습니다.. 21.11.10 19 0 13쪽
78 [78] 용과 같이. 21.11.04 17 0 11쪽
77 [77] 심판 받고 심판하고 21.10.30 19 0 13쪽
76 [76] 메이드 인 오병택을 조심하세요. 21.10.25 19 0 11쪽
75 [75] 눈물이 증거입니다. 21.10.22 18 0 9쪽
74 [74] 이의 있습니다. 21.10.21 18 0 13쪽
73 [73] 불효자는 웁니다. 21.10.18 19 0 11쪽
72 [72] 엄마가 왜 여기서 나와. 21.10.14 21 0 12쪽
71 [71] 암군인가 성군인가. 21.10.11 14 0 11쪽
70 [70] 모두가 있으니까. 21.10.08 16 0 12쪽
69 [69] 나를 돌아봐. <3> 21.10.05 15 0 15쪽
68 [68]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어딘가 낯설다. 21.09.29 19 0 12쪽
67 [67] 마지막...인 줄 알았지? 21.09.24 17 0 11쪽
66 [66] 인간이 인간한다. 21.09.19 19 0 10쪽
65 [65] 소원이 이루어졌다. 21.09.14 18 0 13쪽
» [64] 살생하지 말라. 21.09.09 17 0 16쪽
63 [63] 문을 여시오. 21.09.05 18 0 9쪽
62 [62] 끼리끼리 논다. 21.09.01 19 0 11쪽
61 [61] 의리 빼면 시체다. 21.08.30 18 0 12쪽
60 [60] 널 위해 준비했어 21.08.25 19 0 11쪽
59 [59] 저승이 처음인 나는 복수를 바란다. 21.08.20 20 0 12쪽
58 [58] 승자도 패자도 없다. 21.08.15 33 0 13쪽
57 [57] 내 아내에게서 낯선 향기가 난다. 21.08.08 28 0 12쪽
56 [56] 부자상봉은 따뜻하지 않다. 21.08.06 17 0 9쪽
55 [55] 답은 정해져있어, 넌 듣기만 하면 돼 21.07.31 19 0 12쪽
54 [54] 나를 돌아봐 2 21.07.27 19 0 10쪽
53 [53] 몸 소중한 줄 모르고. 21.07.24 19 0 11쪽
52 [52] 노인과 철의 바다에서 21.07.23 19 0 7쪽
51 [51] 빛과 어둠으로 갈라지다. 21.07.20 20 0 8쪽
50 [50]다시 시작해. 21.07.18 23 0 12쪽
49 [49] 갑자기 분위기 싸움판이 바로 갑분싸다. 21.07.15 17 0 11쪽
48 [48] 같은 상황, 다른 느낌, 변한 건 마음이다. 21.07.13 19 0 11쪽
47 [47] 지옥 아니면 천국이지! 21.07.11 17 0 8쪽
46 [46] 또 속냐. 21.07.09 21 0 11쪽
45 [45] 모르는 게 약이다. 2 21.07.08 20 0 11쪽
44 [44] 죄는 다른 놈들이 지었는데.. 21.07.05 17 0 9쪽
43 [43] 안녕, 또 안녕 21.07.02 21 0 14쪽
42 [42] 아무 일 없었습니다. 21.06.30 18 0 8쪽
41 [41] 우리들의 밤. 21.06.28 21 0 11쪽
40 [40] 그에게서 나를 보았다. 21.06.25 22 0 8쪽
39 [39] 꿈에 갇히다. 21.06.23 24 0 11쪽
38 [38] 부러우면 지는 거다. 21.06.20 24 0 11쪽
37 [37]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21.06.18 21 0 8쪽
36 [36] 널 놓을 수 없다. 21.06.17 24 1 11쪽
35 [35] 속죄하려 죄를 짓는다. 21.06.16 16 0 11쪽
34 [34] 은혜 갚은 까치가 부럽다. 21.06.15 20 1 10쪽
33 [33] 나를 돌아봐. 21.06.14 21 0 12쪽
32 [32] 주사위는 굴려졌다. 21.06.12 23 0 11쪽
31 [31] 죽음을 위해 복무하라. 21.06.11 24 0 12쪽
30 [30] 네가 떠난 자리가 너무 크다. 21.06.10 23 1 11쪽
29 [29] 진실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21.06.09 21 0 11쪽
28 [28] 모르는 게 약일까. 21.06.08 21 1 12쪽
27 [27] 기억이란 대륙은 너무 넓다. 21.06.07 23 0 12쪽
26 [26] 보온병을 안으면 내 마음도 따뜻해질까 21.06.07 25 1 8쪽
25 [25] 사람이니까 딜레마도 겪는다. 21.06.05 21 1 8쪽
24 [24] 우리가 아닌 나여야 한다. 21.06.04 17 0 11쪽
23 [23] 아직 잃을 게 하나 있었다. 21.06.03 34 0 11쪽
22 [22] 자화상은 사진이 아니다. 21.06.02 21 0 12쪽
21 [21]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잊는다. 21.06.01 28 0 12쪽
20 [20] 반년이지만 소꿉친구라구요! 21.05.31 32 0 9쪽
19 [19] 죽은 자는 말이 많다. 21.05.30 33 0 11쪽
18 [18] 가출인가 외출인가 21.05.30 30 0 14쪽
17 [17] 나의 구원자는 바나나를 사왔다. 21.05.28 37 0 11쪽
16 [16] 나는 그들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을 꾸고 싶었다. 21.05.27 35 0 11쪽
15 [15]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21.05.26 45 1 12쪽
14 [14] 강제로 사십춘기가 올 것 같다. 21.05.25 44 1 11쪽
13 [13] 죄인이 몇 명인가 21.05.24 47 2 10쪽
12 [12] 그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 21.05.23 52 1 8쪽
11 [11] 나를 살린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21.05.22 44 1 15쪽
10 [10] 아들의 심정을 알겠다. 21.05.21 51 0 12쪽
9 [9] 잘못을 알았을 때는 항상 늦다. 21.05.20 65 1 12쪽
8 [8] 그 순간, 나는 그에게 운명을 걸었다. 21.05.19 74 1 12쪽
7 [7] 저승의 밤은 가혹하다. 21.05.18 9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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