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의리 빼면 시체다.
“ 주희야, 내가 잘한 짓일까. ”
객실 침대에 앉은 나는 엄마의 범행을 막기 위해 아버지를 끌어들인 일에 대해 생각했다.
“ 넌 최선을 한 거야. 아줌마를 지킬 방법은 그것 뿐이었잖아. ”
주희는 연신 내 결정을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십수 번을 되물어도 내가 한 짓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내가 패륜적인 생각을 했다는 건 알고 있다. 다름아닌 엄마를 복수의 매개체로 이용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것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짓이다.
내 수준은 고작 여기까지인가. 나는 고상하고 선량한 피해자가 되기엔 불완전하고 비겁한 자식인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누구보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문장이지만 그랬나. 나는 겨우 18살, 적다면 적은 나이다.
불완전한 것이 당연하고, 아닌 것이 비정상인 나이. 참으로 편한 방패막이 같은 문장이었다. 나는 낯부끄러워져 얼굴을 들 수 없었다.
“ 우린 고등학생의 몸으로 영생하게 될까. 정말 죽을 수는 없는 걸까. 이곳에서의 생활도 정말 끔찍해. 이제는 더 견딜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 ”
나는 몸도 마음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족을 증오한다고, 가족을 파괴해버린 나에게 실망했다.
“ 어린 목숨은 더더욱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된다네. ”
살생의 기운이 흐르는 검을 차고 있는 한 노인이 객실로 들어와 말했다. 노인의 가슴팍에 사자 배지가 달려있었다.
인간이라기엔 덩치가 말도 안돼게 컸다. 호문쿨루스가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들었다. 늙었지만 다부져서 건강으로는 나보다 압도적이었다.
“ 자네는 구제불능 1급 감시 인물이 될 거야. 인류에게서 장생은 만인의 꿈이거늘, 그것을 부정하고 어린 맘에 삶이란 고귀한 가치를 비관하다니. 치기어린 마음으로 또다시 돌발적인 일을 행한다면 저승법으로 다스릴 것이네. ”
노인은 어린아이에게 충고하듯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 그것 참, 수준 낮은 발상이네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이지 마세요. ”
나는 그런 노인을 향해 조소를 지어보였다.
“ 머리가 나쁘면 노력을 해서라도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자네에 대해서 모르는 건 없다. 도망치기를 좋아하는 나약한 꼬맹이라는 것 정도는 우리 정보력으로 우습지. 모든 생명은 귀하다. 자네는 그걸 부정했어. 인간의 생명이 무슨 날파리인 줄 아나. ”
노인은 이단을 꾸짖는 성난 교주처럼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는 순간 귀를 막을 뻔했다.
“ 나에 관해서 다 알고 있다고요? 그럼 그런 소리 못하실 텐데요. ”
나의 말에 노인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기분 나쁜 미소였다. 탐욕스러운 어른의 비웃음. 이미 가졌으면서도 무언가 바랄 것이 남은 자의 웃음.
손에 수많은 것이 존재하는 그로서는 죽음이 억울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 손에 쥐여진 모든 걸 버린 나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일까.
“ 알다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삶을 갖다버린 악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
노인은 큰 오해를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무얼까. 곧이어 현관문을 열고 업무를 처리하고 오겠다던 한울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핬다. 미간은 깊게 패여 있고 피부는 조금 거칠어졌다.
“ 무슨 일입니까, 어르신. ”
그는 노인을 보고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잠시 교양없는 악귀를 가르치고 있었다. 네놈이 싸고 도는 자살귀가 누군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
어르신이 고개만 돌려 한울에게 말했다. 업신여기는 기색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표정이었다.
“ 아주 가르쳐주셔서 고맙네요. ”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나를 매도하는 노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 스스로 죽을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세 살 배기도 심심풀이로 죽을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는 왜 남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 설마 했는데, 정말 오셨군요. 여긴 제게 맡겨 달라 했잖습니까! ”
“ 천륜을 배반한 네가 할 말이냐! 난 애초에 너 같은 걸 사자로 인정하지 않았어. 네가 의뢰인 100명을 채운다고 설칠 때마다 토가 나오는 줄 알았다! 염라대왕님도 이제 노망이 나신 거지. 너 같은 걸 사자로 들였으니. ”
노인은 한 치의 미안함도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는 한울을 싫어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잠시 홀로 있고 싶었다. 내게 일련의 사건들이 어지럽기만 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 그러면 저를 제명시켜 보시죠. 어르신은 하실 수 있잖아요. ”
“ 갈 수록 태산이군. 내가 못할 줄 알고 설치나? 놀랍군. 날 이렇게 모르다니. 한울 군, 후회할 짓 하지 않는 게 좋아. ”
노인은 정말로 그렇게 할 기세였다. 남이 인생을 바쳐 얻어낸 명예를 제명이라는 이름으로 훔치려 하다니. 그건 말도 안돼는 처사다.
“ 그러지 마요! 내 전담 사자는 한울 뿐이에요! ”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 당신보단 내가 더 한울을 잘 알아요! ”
창밖은 노을진 해변이었다. 나의 호소가 저 추억의 바다 너머까지 닿기를.
“ 자격도 없는 놈을 믿는 자네도 참 불쌍하군. ”
노인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주희는 왔다갔다 하던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켰다. 그녀의 눈빛에는 불안감이 어려있었다.
“ 노인네 잔소리는 끝을 모르는군. ”
한울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네가 아니었으면 더 길어졌을 거야. ”
그는 마치 교장실에 불려간 학생 같았다. 나와 주희는 그에게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 너희는 나에 대해 할 말 없냐. ”
한울은 골몰히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실내는 급격히 냉각되듯이 조용했다. 그것을 깨뜨리려고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 혹시 우리가 모르는 게 있는 거야? ”
나는 그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머리가 지끈했다. 나는 어쩌면 그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 나 이전까지 자살귀가 사자가 될 가능성은 없었어. 전례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 의해 구제 받았어. 그리고 정식 시험을 치고 염라대왕님의 허가를 받았지. 모든 것이 꿈만 같았어. 내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범죄자도, 겁쟁이도 아니었어. 그래, 그러면서 잘도 동족들을 저승으로 데려왔지만. 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내가. 나는 사자계에서 별종으로 불리며, 자살귀들에겐 변절자였고 사자들에겐 들어와선 안돼는 불순물이었어. 어르신이 하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야. 나에겐 애초에 망자를 이끌 자격이 없었던 거야. ”
“ 그런 말 아무렇게나 하지마! 네 인생을 헛되게 만들잖아! ”
나는 격발하는 총구처럼 쏘아붙였다. 머리가 아팠다. 이제부터 뭘 해야 좋을까.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 일목요연하게 알려주었으면.
“ 난 여기까지인가. 미안해. 너흴 저승에 데려와서. ”
나는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보았다. 나는 한울의 미소를 되찾고 싶었다. 내게 그 미소를 다시 지어주기를. 우리들의 초석이었던 때로 돌아가기를.
“ 미안해? 그럼 책임져! 끝까지 나아가!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책임지라는 둥,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는 둥,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 강한 척 했지만, 나는 그리 강하지 못했어. 그래서 도망... ”
“ 그럼 넌 우릴 도망자라고 말할 셈이야?! 네가 도망자면 나도, 주희도 도망자인 거야! 다시 한 번 지껄여봐! ”
나는 격분해서 한울의 멲살을 틀어쥐었다.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저 우리가 도망자인 거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자살귀를 도망자로 만드는 짓이었다.
“ 재현아, 그만해! ”
나의 격앙된 반응에, 주희가 다가와 나를 뜯어말렸다. 나는 분노를 삭히고 한울을 똑바로 봤다. 시름시름 앓는 표정이 한층 나아졌다.
“ 날 한 대 쳐라. 그래야 정신을 좀 차릴 것 같거든. ”
“ 정말 괜찮겠냐? 좀 많이 아플 거다. ”
나는 한울의 말을 따라 멲살을 놔주고 주먹을 쥐고 우두둑 소리를 내며 손을 풀었다.
“ 진짜 때리려고? ”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다해 그의 뺨을 쳤다.
“ 이 자식! 고작 이정도 가지고 주저앉는 거냐! ”
나는 살아서 처음으로 사람을 때렸다. 아버지가 경멸하는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나도 아버지의 경멸을 받는다는 것이, 폭력범들과 동일시된다는 것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멋진 한 방이었어. 살짝 세게 때리긴 했지만. 내 광대뼈 무사하지? ”
주희는 이 광경을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객실을 뒤져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우리의 미래는 밝을까. 그럴까.
“ 야, 정말 괜찮아? 아프면 말해. ”
주희는 능숙하게 한울을 치료했다.
“ 아빠가 자주 다치셔서 간단한 처치는 할 수 있어. ”
“ 오.. 대단하네. 의사 같아. ”
“ 너무 띄워주진 마. 누구나 이정도는 가능해. ”
“ 그만해도 되. 난 괜찮아. ”
“ 괜찮은 거 맞아? 내 손이 다 아프다. ”
이외에 달리 할 말은 없었다. 인간적으로 너무 세게 때렸다. 그러나 한울의 눈빛은 한결 편안해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 부모님과 사이가 좋았구나. ”
나는 주희의 뛰어난 처치술에 감탄하면서도, 그녀가 내뱉은 ‘아빠’라는 말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 아빠는 취재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시거든. 그래서 자주 다치셔. 그러면서도 병원은 죽어도 안가시니까, 내가 웬만큼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
“ 그쯤이면 됬어. 이제 다신 약한 소리 안할 거야. ”
주희의 치료는 간단한 수준이었지만 몇 번이나 해본 솜씨였다. 나는 대뜸 그녀가 어느 대학교에 가고 싶었을지 생각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의외로 나는 주희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내가 생각하는 주희는 어릴적의 반년과 다시 만난 뒤의 몇 달 뿐이다.
나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그녀의 미래를 추론해보았다. 정말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릴 때, 동물을 좋아하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으로 동물병원 의사가 된 그녀가 떠올랐다.
있을 수 있을까. 코피를 쏟으며 시험을 준비하는 고3은 우리에겐 영영 닿을 수 없는 코앞의 순간이 되어버렸다. 눈앞에 있던 고3 수험생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선택한 일이다. 멍청한 실족 같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마음도 없다.
“ 현재까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송현우라는 놈이 결국 죽었다더군. 놈이 너의 심판에 변수가 될지도 몰라.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종종 저승에서도 보복 범죄가 일어나지. 난 널 지킬 거야. 한 대 맞은 값은 그때 받도록 하지. ”
“ 조심해야 되. ”
나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쯤이면 됬다, 싶을 때쯤 더 큰 사건이 우릴 덮쳐온다.
“ 한울. 넌 우리의 전담 사자야. 우리도 끝까지 네 편이야. ”
주희의 눈에는 신뢰로 가득했다. 한울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웃었다. 우리는 서로의 무운을 빌었다.
- 작가의말
진짜 시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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