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 아이를 보고도 멀쩡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할까. 유화는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을 향해 조소를 흘렸다.
말도 안돼는 소리다. 그건 불가능했다. 이 증오가 윤리 따위에게 굴복할 리가 없었다. 증오는 선인도 괴물로 만들 수 있으니까.
“ 제가 잘못했어요! ”
명줄을 구걸하는 송현우의 목소리는 자극적이었다. 마치 날 죽여달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가식적이고 삶만을 갈구하는 목소리. 위기의식 속에 발현된 자백.
구원을 바라는 그의 얼굴을 짓밟아주고 싶었다. 네 까짓게 구원을 바란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어떤 것으로 손을 봐줄까.
바닥에 즐비한 각종 연장을 훑어본다. 뭘로 내려쳐도 놈은 죽을 것이다. 망치, 총, 몽키스패너, 나이프, 쇠몽둥이.
“ 이미 늦었어! ”
부디 오판하는 것이 아니기를. 어리석은 일이 아니기를. 인간성을 잃어도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앙갚음은 거센 감정을 동반한다. 감정에 잡아먹혀도 좋았다. 자발적으로 감정에게 자신의 정신을 공양하듯이.
유화는 송현우의 파멸을 소망했다. 그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완벽한 복수. 그것이 운명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지시한 것이었다.
“ 원하는 게 뭐에요! ”
뭐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거렁뱅이들의 레퍼토리. 그 말이 오히려 명줄을 앞당긴다는 것도 모르고.
“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니? ”
“ 예, 물론이죠! ”
송현우가 화색이 돋아서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도 좋을까. 하찮은 것.
“ 네가 죽어 마땅하다는 거 아니? 모른다면 알아둬. 그게 이 아줌마가 원하는 첫번째란다. ”
어떤 말로도 이 분노를 표현할 수 없어서 괴로웠다. 분노의 단어들이 외계어처럼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흩어졌다.
“ 제가 그애를 직접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그냥... 지켜본 것 밖에는.. ”
“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
그의 변명이 소망에 확신을 더했다. 망설일 것도, 질문할 것도 없이 이 아이를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사소한 죄책감은 밀어두고서. 이 아이의 인권에 오물을 투척하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었다. 잔인하다 해도 상관없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미련을 품는 사람일 뿐이다.
“ 네가 우리 딸을 죽였어. ”
잠자코 보고 있던 승조가 차가우리만치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냉정한 얼굴이지만 유화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몸 안에선 축적된 분노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너무 커서 돌이 되버린 분노. 유화는 그런 승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노를 쌓는 그였으니까.
“ 아니에요.. 저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
뭐를 써야 이 아이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을까. 잘못했다는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송현우의 변명. 아직도 응징이 배고픈 것일까.
“ 개똥도 약에 쓴다는데, 넌 정말 쓸모없구나. ”
유화는 의자에 묶여 발버둥치는 어린 양의 뺨을 어루만졌다. 과분할 정도로 부드럽다. 젊음은 공평하다.
모두에게 탱탱한 피부를 주니까. 속이 어른 못지 않게 잔악한 아이에게까지. 누가 이 아이를 최악의 학교폭력 주동자로 보겠는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들을 세상에서 없애버린 아이. 아들의 젊음을 빼앗아간 역겨운 피부를 도려내고 싶었다.
뭐를 써야 이 아이를 응징할 수 있을까. 방식은 이미 상식을 뛰어넘었다.
송현우의 벗겨진 교복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놈에게 창피를 주었다. 한 덩어리로 아무렇게나 놓여진 교복은 현재 그가 나신임을 증명했다.
볼품없는 악마의 맨몸. 그 맨몸이 아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라는 것이 토기가 밀려왔다.
마주치는 것조차 버거운 이 아이의 옷을 벗기고 온몸을 때리고 멍들게 하고 피가 흐르게 했다. 죄책감은 시간이 갈 수록 합리화되기 시작했다.
돈이 전부라고 배웠던 실패없는 인생을 살던 아이들은 무법이란 무기를 장착한 어른들에게 속수무책이었다. 돈으로 사람을 구할 수는 없으니까.
이 겁먹은 멍청한 눈을 보고 있노라면, 아들이 이런 하잘것없는 아이에게 당했다는 것이 분했다. 빌고 또 빌어도 안됀다는 걸 알았을 때의 절망어린 눈은 볼만 했다.
“ 수준 낮은 대화는 접어두자. ”
“ 대체 저를 어쩔 셈이죠? ”
송현우가 울먹이며 말했다. 이제는 눈물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정말 어떻게 할까, 궁리할 뿐이다. 확 죽여버릴까.
어떻게 죽일까. 아직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진짜 원하던 복수가 이런 거였나. 더욱 속시원한 복수는 없을까.
“ 고민중이야. 너를 어떻게 처리할지. ”
승조가 대신 대답했다.
“ 원하시는 게 뭐죠? 아버지라면 뭐든지 드릴 수 있을 거에요. 전화 한 번만 쓰게 해주세요, 네? ”
“ 빌어먹을. 까불지 말고 가만히 있어! ”
승조가 송현우의 주둥이를 테이프로 막았다. 그의 목소리가 테이프에 막혀 웅웅거렸다.
“ 하, 고놈 말 많네. 그 많은 말 중에 참회하겠다는 말이 없어서 문제지만. ”
송현우는 거의 발작하듯이 몸부림쳤다. 테이프를 벗기니 그가 발광을 했다.
“ 나보고 어쩌라고! ”
송현우의 본성일까. 날카로운 눈에선 살기가 꿈틀거렸다. 이 아이, 범상치 않다. 아까까지 목숨을 구걸하던 아이가 맞을까.
유화는 숨죽인 채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처럼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 아줌마 아들이.. 찐따라서 그래요. 찐따는 원래 그런 꼴을 당해요, 알아요? 어른이 뭘 안다고 끼어들어요. ”
이번에도 승조가 한 발 먼저 그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유화는 담배를 빼물었다. 처녀적 이후로 처음 물어봤다. 참을 수가 없었다.
“ 뚫린 입이라고 다 말인 줄 알아? 너 같은 건.. 너 같은 건.. ”
“ 아저씨 딸도 마찬가지에요. 생긴 것도 재수없게 생겨갖고 딱 반장처럼 별것도 아닌 거 선생한테 일러바칠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좀 이뻐갖고 좀 창의적인 방법으로 본때를 보여줬죠. 아, 근데 지가 알아서 죽더라니까요, 사람 무안해지게. 애들이... 내가 죽였다잖아요. 인생 종치게 하려고 작정한 거죠, 앙큼한 년이. ”
“ 이 자식이! ”
승조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송현우에게 달려들었다. 의자가 뒤로 넘어지고 그 위로 올라탄 승조가 거칠게 송현우의 뺨을 가격했다.
“ 약해빠져가지고. 그러니까 이런 소리까지 듣기 전에 풀어줬어야지. 세상이 그런 걸 나보고 어쩌라고. ”
송현우는 뻔뻔하게 미소를 지었다. 퉁퉁 부은 눈과 핏빛 입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여유로웠다. 분노로 인해 스스로를 좀먹는 건 승조일 뿐이었다.
“ 네 까짓 게.. 뭘 안다고.. ”
승조는 씩씩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 벌써 포기하셨어? 아빠가 그리 약골이니까 딸도 나약하지. 지 분수도 모르고 찐따나 사귀다가 봉변 당한 거지. 안 그래요, 찐따 아줌마? ”
놈은 타깃을 바꾸듯이 유화를 거론했다. 유화는 그의 넘어진 의자를 일으켰다. 눈을 맞추고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 아이의 눈은 정말인지 무서웠다.
“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왜 우리 애한테 그랬어. 왜. ”
“ 정체랄 것도 없어요. 난...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었거든요. 숨만 쉬어도 애들은 내 앞에서 기어요. 왜? 우리 아빠가 하늘이니까. 애들도 다 알아요. 순진하게 왜 그러실까, 아줌마. 아줌마 아들은 내 앞에선 그냥 찐따에요. 볼 때마다 재밌어요. 어리숙하게 굳은 표정, 움츠러든 어깨, 야구한다고 설치는 모습까지 다 웃겨요. ”
“ 악마니, 넌? ”
유화는 이가 갈렸지만 참았다. 손을 더듬어 땅에 늘어선 연장 중에 하나를 잡았다. 몽키스패너.
“ 그걸로 치시게요? 그걸로 치시면, 난 걔 안 죽였는데 아줌마는 날 죽인 거에요. 이건요. 복수도 뭣도 아니고 그냥 아들 죽어서 미친 거에요. ”
유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성을 놓았다. 놓아도 좋을 것이다. 이미 세상은 끝났으니까. 그때였다. 철문이 벌컥, 하고 열리면서 달빛이 비쳐들었다. 제법 눈이 부셨다.
“ 제가 잘못했어요! ”
송현우가 가식적인 어조로 말했다. 좀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송현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겁먹은 아이, 그 자체였다.
“ 당신, 여기서 뭐해. ”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남자의 음성이 철문 쪽에서 바람처럼 들려왔다. 유화는 철문 쪽을 바라보며 토끼눈을 떴다. 서있을 수 없는 사람이 서있었다.
“ 그만둬! ”
환자복에 헬쓱한 행색의 남편이 달려들어 그녀에게서 몽키스패너를 빼앗았다.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어? ”
유화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서있고 말하고 표정을 짓는다. 이제는 그럴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하고 있다.
“ 살려주세요! ”
희망을 본 아이는 남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남편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분노를 할까. 이 아이가 아들을 죽였는데.
“ 안돼, 설마. ”
승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 식물인간이 아니었습니까? ”
승조가 다시 말했다. 남편의 눈은 온화했다. 분노보다는 안도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남편은 침묵을 지켰다. 다만 송현우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다시는 내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는 하지마. 그때는 내가 널 죽일 거야. 못할 거 같지? 난 할 수 있어. ”
남편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묶던 끈을 풀어주었다.
“ 당신, 미쳤어? 누구 마음대로 풀어주는 거야? ”
승조가 남편의 멲살을 잡았다. 유화는 비명을 지르고 풀려난 송현우는 재빨리 의자에서 튀어올라 도망친다. 승조는 남편을 밀쳐내고 연장 틈에 있는 권총을 집어들었다.
“ 거기 서! ”
승조는 송현우의 뒤를 쫓고 유화와 규성이 뒤를 따랐다. 달빛이 내려앉은 숲속을 달려 어느 자동차가 보였다. 앞서 걷던 송현우가 안에 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였다.
“ 아저씨, 문 좀 열어주... ”
총을 겨누고 달려드는 승조의 뒷덜미를 잡아챈 남편이 뒤로 넘어지며 그를 막아섰다. 하늘을 향해 총 몇 발이 발포되었다. 탕, 탕.
“ 왜 나를 막는 거야! 당신 아들을 저 자식이!
“ 이런 식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
당황한 운전자가 내리자 송현우는 그를 밀치고 운전석으로 다리를 들이밀었다. 송현우에겐 선물 같은 절호의 기회였다.
“ 거기 서! ”
송현우가 출발하자 승조는 가능한 힘을 다해 규성을 떨쳐내고 일어나 보닛 위로 뛰어들었다.
“ 이 거머리 같은! ”
“ 나는 널 놓지 않을 거야! 남에 귀한 딸을 죽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
“ 얼마면 되는데? 비켜, 아저씨! 앞이 안 보여! ”
“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지! 네 목숨 밖에는! ”
그는 총신 안에 존재하는 모든 탄약을 쓰고 말겠다는 듯이 앞유리에 대고 총알을 연신 발포했다.
“ 그래, 우리 다 같이 죽자! ”
총알이 유리를 뚫고 송현우의 머리에 박히고 운전자를 잃은 자동차는 저 편의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사고 수준을 넘은 참사가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 차승조 씨! 차승조 씨! ”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은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딱히 대단한 내일을 원한 적은 없었다. 승조와 달콤한 나날을 꿈꾼 적도.
말문이 막히고 서러움이 북받혔다. 예측불허의 세상 속이라지만 이처럼 충격적인 결말이 또 있을까. 유화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실연 당한 여자아이처럼 울었다.
“ 그를 막지 못해서 미안해. ”
“ 당신, 어째서 그아이를 풀어준 거야. 당신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당신을 대신해서 나를 지켜주던 소중한 사람이.. ”
현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공허가 폐부로 흘러들어왔다. 유화는 남편이 저지른 행동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다.
“ 난 이제 당신 곁에 존재할 수 없겠어. 상처만 주니까.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피를 묻히는 게 싫었어. 그뿐이야. 재현이도 그걸 원하지 않아. ”
환자복에 환자용 팔찌를 착용한 그가 뒤돌아 떠나간다. 그녀의 곁에 존재하지 않으려 떠나간다. 환자복은 시야에서 멀어지고 곧 자취를 감춘다.
“ 당신은 끝까지 나를 바보로 만들며 떠나는구나. ”
- 작가의말
최악의 결말.(아직 소설은 끝난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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