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변화의 시작(1)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검은 갑옷을 입은, 덩치가 큰 사내가 2m가 넘는 대형 낫을 휘둘렀다.
- 휘익! 스르릉!
대형 낫이 원을 그리자 강철 갑주를 입은 이생물체들의 상하체가 분리돼 땅으로 떨어졌다.
이생물체들의 피를 뒤집어쓰는 것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대형 낫을 휘둘렀는데, 그 모습은 죽음의 신이 보낸 사자 같았다.
앞을 막아서는 강철종족 이생물체들을 베어 넘길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생물체들을 살해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는 EOA 레벨 8의 이능력자 이건창이다.
그의 옆에서 아직 앳된 얼굴의,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어려보이는 남자가 함께 했다. 푸른 갑옷을 입은 어린 청년의 손에서는 번쩍이는 레이저 빔 공격이 나갔다.
유일신교 레벨 8의 이능력자 구효수.
그 둘의 뒤를 모두 합쳐 50명 가량 되는 EOA 직원들과 유일신교의 신도들이 따랐다.
EOA와 유일신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평소 유일신교 신도들은 EOA 직원에게 ‘썩은 권력과 재벌을 비호하는 돈의 노예들’이라고 비난했다.
EOA 직원들은 유일신교 신도들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신으로 장사를 하는 사기꾼들’이라고 조롱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이 정부의 중재도 없이 뭉쳤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강철종족의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모여 웅덩이가 생겨났다. 웅덩이 끝에는 기묘한 생명체가 하나 서 있었다.
그 생물체는 여타 강철종족 이생물체처럼 몸이 금속으로 덮여 있었는데, 갑옷이라고 부르기에는 얇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금속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외향은 인간 여성과 흡사했다. 다만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조차 금속처럼 보였으며, 눈동자는 아무 것도 반사하고 있지 않았다.
이건창이 그 이생물체 앞에 섰다.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섹시하네. 그런데 강철종족은 마더(Mother)급이 없는 종족 아니었나?”
마더급은 마치 여왕개미처럼 이생물체들을 출산하는 개체를 뜻했다.
구효수가 대답했다.
“쌍검의 이생물체와 같은 종족인 듯싶습니다.”
“그런 건가?”
“이 녀석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걸까요?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네요.”
“저기.”
이건창이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게이트가 하나 있었다. 그의 명령을 받은 이능력자들이 게이트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마더급 이생물체의 목에 낫을 걸어 놓았다. 마더급 이생물체는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뭐야? 이년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네. 나랑 조금 놀아주는 게 어때? 난 여자라면 종족 안 가리는데.”
“이상한 장난은 그만 하시고 빨리 처리하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신속하게 임무를 마쳐야 합니다.”
“보채기는.”
“언제 윤성윤 씨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윤성윤이든 뭐든, 처치하면 그만이지 뭔 걱정이 그리 많아. 기집애처럼.”
이건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마음에 안 들어. 아직 20살도 안 된 어린 새끼가 자꾸 내 신경을 긁네.’
구효수도 이건창이 마음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
‘내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연합 팀의 공동 리더인데, 계속 반말을 하네. 그리고 하는 행동은 왜 이리 야만스러운지...’
유일신교 신도들은 지금 화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당연히 이건창이 구효수에게 하는 행동 때문.
다만 서로 싸워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구영진이 내린 임무를 어떻게든 완수해야 하기에 참는 중이었다.
몇몇 EOA 이능력자들은 유일신교 이능력자들이 화를 꾹 참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 때로는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EOA와 유일신교 연합은 지금 바로 해체돼 서로가 서로를 공격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이건창을 그럭저럭 통제할 수 있는 하혜영이 이곳에 있었다면, 아니면 구효수를 받쳐줄 수 있는 진명이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갑자기 이건창이 대형 낫을 쥐고는 이능력을 끌어 올렸다. 구효수 역시 푸른 장미를 생성했다. 이건창이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왔구나, 윤성윤. 안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이렇게 싸울 수 있어서.”
저 멀리서 윤성윤을 필두로 한 강경파 세력 이능력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쪽보다 연장잔데, 존댓말이라도 써주는 게 어떤가?”
“지금은 서로 적인데, 그럴 필요 있나.”
“하긴 이건창하면 천박하기로 유명하지. 세련된 매너를 바라는 건 무리겠군. 아! 매너가 뭔지는 알고 있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매너는 영어야. 한국어 아니야. m! a! n! n! e! r!”
“나는 바보가 아니야!”
“아! 그런가? 사과하지. 하는 짓거리가 초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거 같길래 노파심에서 한 행동이니 이해해주게.”
“역시 소문대로 정말 재수가 없군.”
구효수는 이건창이 과도하게 흥분했다는 생각에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저희가 질 리 없습니다.”
“뭐야? 지금 내가 저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서 미련한 멧돼지처럼 돌진할 거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패할 거라 생각 한 거냐고!”
이건창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고 말했다.
“괜히 저에게 신경질 부리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경파 이능력자의 수는 예상대로 60명 근처입니다. 우리보다 숫자는 많지만 저쪽은 레벨 8이 단 한 명. 게다가 구성원 수준도 우리보다 떨어집니다.”
“나도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거 아니까 쫑알쫑알 대지 마.”
“작전대로 하죠.”
순간이동 및 중장거리 공격이 장기인 구효수가 윤성윤을 전담으로 상대하는 사이, 난전에 강한 이건창이 나머지 이능력자들을 쓸어버리기로 입을 맞췄다.
이건창은 자신이 윤성윤을 상대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임무가 중요했다.
“그래, 저 곱상한 얼굴을 낫으로 긋는 건 나중에 해도 되겠지. 시작하자.”
이건창이 앞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구효수가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른 것.
“아... 안 돼. 이... 이럴 리가 없어!”
이건창이 뒤를 돌아봤는데, 구효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이동을 사용해 전장에서 이탈했다. 이건창은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 미친 새끼...”
어느새 윤성윤의 화살이 목젖까지 다가왔다.
***
이지후 일행이 숲을 거의 다 빠져나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게이트 강제 생성장치가 있는 곳에 도달한다.
그런데 잘 달리던 김연흠이 멈춰 섰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선가 뿜어져 나온 강대한 기운에 짓눌렸기 때문.
회색 나무들이 엉켜있는 곳에서 3m 정도 되는 이생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생물체의 몸에는 검은 피가 말라 붙어 있었고, 갑옷은 모두 파손되어 너덜너덜했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에서는 자색빛이 감돌았는데, 길이와 모양이 창인지 검인지 구분하기 애매했다.
이지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야? 이미 죽은 거 아니었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입술이 파르르 떨려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김명경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근육에 이능력이 돌기 시작하자 주먹에 막대한 기운이 모였다. 나머지 일행들도 모두 전투 준비를 위해 이능력을 발동시켰다.
김명경이 두 주먹을 맞부딪치며 입을 열었다.
“전쟁터에서 안보여서 섭섭했는데, 이렇게 만나네. 이번에야말로 죽여버리겠어. 자색창검의 학살자!”
자색창검의 학살자는 강철종족 네임드 치프틴급 중 하나. 강하기로 따지면 검은 눈의 악어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였다.
이번 전투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있다. 광대들과의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
이지후, 김명경과 자색창검의 학살자는 인연이 있었다. 2차 인천 공략 당시의 일이다. 당시 강동현의 연인이었던 민성예를 찾기 위해 다시 인천으로 들어왔을 때, 자색창검의 학살자와 마주쳤었다.
이지후는 재빠르게 전력을 파악했다.
‘간신히 몸만 움직일 정도인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뿜어져 나오는 저 투기. 역시 치프틴급은 치프틴급.’
도망쳐야 할지, 싸워야 할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몰아치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김명경을 쳐다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싸워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그가 손을 들었다. 전투개시 신호를 하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인간... 나... 알고 있다.”
자색창검의 학살자가 사람의 말을 한 것. 김명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가... 강한 이... 인간. 나는 싸.... 우다 죽고 싶다.”
이지후는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자색창검의 학살자를 쳐다봤다. 전투개시 명령을 내리는 것마저 잊었다.
자색창검 학살자의 눈이 빛났다.
“우리... 전사의... 조... 종족. 싸우다... 주... 죽어야 시... 신들이 이... 있는 곳에 갈 수 이... 있다. 나... 안다. 우리... 왕... 주... 죽었다. 신들의 땅... 으로 가... 갔다. 나도... 가고 싶다.”
이지후는 이생물체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저 녀석이 말을 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처치하고 빨리 이 숲을 빠져나간다.’
다시 전투 명령을 내리려 했는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어느 날, 갑자기 이... 곳에 오게 됐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당겨... 졌다.”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자색창검의 학살자의 말이 이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 우리 살기 힘들... 다. 여기 있으면 이상한 일... 생겨난다. 왕은 점점 강해졌... 다. 새로운 능력... 생겨났다. 나는 인간 말 이해...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나... 남쪽에 우리 왕처럼 강한... 생명체. 우리랑 같은 곳에서... 오지 않았다. 부... 북쪽 날개 있는 초월자. 같은 곳에 있었다.”
결국 이지후는 대화를 시도했다.
“초월자라고? 파멸의 여섯 날개를 말하는 거야?”
“이름 모른다. 시... 신과 비슷한 존재다. 초월자라... 면 알지도 모른다. 우리가 왜 여... 여기에 오게 됐는지.”
“신이라니? 정말이야?”
“지... 진짜 신인지는 모른... 다. 이곳 강한 생명체... 모두가 힘을 모... 아도 못 이긴다. 그래서 초월자라... 부른다.”
“인간하고 이생물체 전부를 합쳐도?”
“그... 렇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한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나... 아는 거 모두 말해줬다. 그러니 소원... 있다. 들어줘라.”
“뭔데?”
“1:1로 싸우고... 싶다. 전사의 심장... 가진 자와.”
자색창검의 학살자가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바로 김명경이었다. 그는 이지후를 보며 말했다.
“너... 강하다. 하지만 전사의 심장... 없다. 너는 지도자... 전사와 다르다. 우리 왕과 함께 전쟁터에서 죽어야 신이 있는... 곳에 갈 수 이... 있다. 그러지 못 하면... 전사의 심장 가진 자와 저... 정당한 결투 벌이다... 죽어야 한다.”
이지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그럴 수 없어. 네 사정 봐줄 여유가 없거든. 미안하지만 그냥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누구 맘대로? 난 1:1 대결 받아줄 생각인데.”
예상 밖의 말에 이지후가 놀란 눈을 뜨고 뒤를 돌아봤다. 김명경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 되는데. 나 진짜로 1:1 대결 할 거야.”
그가 화를 냈다.
“아니, 도대체 왜? 장난치지 마.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웃긴다. 왜 내가 항상 네 말에 따라야 돼?”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빠... 빨리 썼습니다. 칭찬해 주세요 ㅎㅎ;;;
다음 화도 빨리 쓸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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